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07화 (107/301)

107화

“반만큼? 어떤 점에서?”

빈우의 물음에 아앤아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 모습에 빈우와 마커스는 서로 마주 보더니 어깨를 으쓱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커스가 말을 걸어본다.

“자비? 관용? 인류 연방이 무자비 무관용으로 전쟁에 임하는 것은 세 번의 교섭 결렬 이후잖아. 다른 종족들과 비교해도 우린 비교적 평화주의자에 속한다는 걸 너도 잘 알 텐데?”

그제야 바닥에 누운 아앤아의 말이 번역기를 통해 나온다.

-그래, 동족인 너희의 눈으로 보면 그렇겠지. 우리 연방은 세 번이나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저놈들이 모조리 걷어찼다. 암, 그렇게 보이겠지….

지느러미로 물을 차고 떠오른 라출노그인이 옛 동기들을 마주 본다.

-하지만 밖에서 본다면, 다른 종족의 시각에서 본다면 달라. 너희들의 그 삼진아웃제는 무엇을 의미할까? 전쟁을 막기 위한 구실? 아니 그보다는 종전을 막기 위한 구실이 아닐까? 연방은 이미 세 번이나 기회를 주었음에도 저놈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쳐들어온다. 저 호전적인 종족을 내버려 두면 우리 인류가 위험해질 것이다. 이렇게 받아들이지 않나? 그리고 일단 전쟁을 일으킨 너희들은 결코 멈추지 않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말을 들은 빈우와 마커스는 과거를 떠올렸다. 둘이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기억이다. 위은쓸납학의 알에 지구제국 나노 머신 무기인 쉬바를 심은 파괴 공작. 당시 모성까지 밀린 위은쓸납학은 항복을 고려했지만, 유생마저 무기로 이용하는 연방의 행위에 격노해 결사 항전에 들어갔다.

그 결과 위은쓸납학의 문명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소규모 잔당 몇몇. 그것도 보이는 족족 소탕된다. 인류는 한번 적으로 삼은 대상을 어지간해선 용서하지 않는다.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빈우와 마커스에게 종전을 막는다는 아앤아의 말이 너무나도 사무치게 다가왔다. 사전에 조금만 더러운 짓을 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전의 허가가 나지 않으니 그들로선 답답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외계종족의 주전파 몇 명만 암살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텐데 상부에선 비 교전 종족을 상대로 무슨 짓이냐며 호되게 질책한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군사정보국은 협정이 이루어져 있지 않은 외계종족을 상대로 온갖 잔혹한 짓을 저지른다. 위은쓸납학의 알에 쉬바를 주사한 것? 그딴 건 빈우와 마커스가 겪었던 그대로 풋내기들이나 하는 일이다.

-우린 운이 좋았어. 너희들과 싸우고도 살아남았으니.

아앤아의 말에 두 사람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번역기를 통해서긴 하지만 ‘우리’와 ‘너희’란 단어가 그들 사이에 더욱 거리감을 나타낸다.

-너희들을 탓하는 것은 아니야. 그냥… 그냥 내가 힘없는 것을 한탄했을 뿐이야. 호의는 고마웠어.

떠올랐던 아앤아가 다시 뒤돌아서 구석으로 들어간다.

-최대한 협조할게. 그러니 부디 우리 종족을, 라출노그를 구해다오.

아앤아의 마지막 말은 정말 안쓰럽게 들렸다. 유학파인 그는 인류 연방이 전쟁을 하는 상대에겐 자비심이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아는 것이다.

라출노그는 정말 특별사례 중의 특별사례로, 처음부터 협상해오던 슈홀루 외의 다른 분파들은 하마터면 멸종될 뻔했다. 아니, 원래대로였으면 그 슈홀루조차도 도매금으로 도살당했을 가능성이 높았었다.

허나 슈홀루는 결코 전쟁에 나서지 않았고 자기들이 쌓아온 연방과의 라인을 총동원해 자비와 종전을 구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동포인 데넥샬의 정보마저 연방에 팔았다. 그리고 그 결과 라출노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차장의 자리에 오른 마커스는 요근래 이노우에 국장을 따라 위은쓸납학 쪽 자료를 훑어보면서 예전에는 알 수 없었던 과거 작전들의 더러운 뒷면을 볼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연방이 슈홀루와 교섭을 계속했던 것은 사실 데넥샬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라출노그의 선두 종족이었던 데넥샬은 연방의 고급기술을 들여와 발전해나가는 슈홀루를 보며 위기감을 느꼈고, 연방은 또 연방 대로 라출노그 내부에 이간질을 하고 더러운 공작을 했다.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된 마커스는 허탈해했다. 자신이 정의라 믿고 몸담고 있는 조직이 전쟁을 막는 작전은 거부하면서 전쟁을 일으키는 작전은 승인하는 것이다.

괴로운 마음의 마커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걱정 마라. 이번 일은 데넥샬이 자체적으로 벌인 것이고, 또 빈우가 비밀리에 처리했으니 밖으로 드러나진 않을 거다. 오히려 이번 일로 데넥샬을 간접적으로 억누를 수 있게 됐으니까 전쟁으로 번질 일은 없을 거야.

-…그래, 그렇다면 내 부하들도 억울하진 않겠군.

아앤아의 부하는 모두 빈우와 태스크 포스 373의 손에 죽었다. 생존자와 증인이 남아서는 안 되는 임무이기에 항복도 못 하고 모조리 ‘청소’ 당했다.

자신의 처지보다는 국가와 종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친구를 보며 빈우와 마커스는 발걸음을 돌렸다.

말없이 걷던 두 사람 중에서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빈우였다.

“마커스, 넌 앞으로 어쩔 거냐?”

“글쎄다. 마음 같아선 너랑 밥이나 한 끼하고 아나스타샤도 만나보고 싶은데, 국장님이 목적만 달성하고 도망칠 거 같단 말이야.”

호랑이 코털을 뽑은 다샤 쿠사키나 국장이 벼락을 맞으면 그 옆의 군사정보국도 세트로 두들겨 맞는다. 그러니 이노우에 국장으로선 잽싸게 보안국장만 꺼내서 도망치고 싶을 심정일 테다. 뭐 도망친다 해도 이미 두 고양이의 목에는 방울이 달렸으니 빈우는 아쉬울 게 없다.

“차장이 힘도 없구나.”

“3차장이야.”

“그러냐, 그럼 조용한데 가서 잠깐 얘기나 좀 하자.”

여기서 얘기라고 하면 백업 관계의 이야기다. 작년 마카로니에서 둘만이 아는 암호로 대화를 나눈 뒤 성립된 협력 관계는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그럴까. 잠시만, 국장님한테서 연락이다.”

군사정보국장으로부터 통신을 받은 마커스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빈우를 돌아보았다.

“야, 국장님이 널 좀 보자는데?”

“나를?”

그냥 볼일만 보고 튈 양반이 빈우를 보자고 한다면 또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보안국장과 비밀리에 이야기를 한 다음이라 타이밍이 수상쩍다.

대체 쿠사키나 보안국장은 무슨 이유로 빈우를 긴급체포하려 한 것이고, 이노우에 군사정보국장은 그녀에게서 어떤 정보를 얻었기에 빈우와 만나려는 것일까.

“그리고 말이다….”

그답지 않게 한숨을 쉰 마커스의 입에서 골치 아픈 이야기가 나왔다.

“조지 레드우드 사령관님과도 만나고 싶다고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데?”

그냥 자기가 만나자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빈우를 엮어서 들어가는 데는 아마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 자리에서 꺼낼 안건이 레드우드 사령관에게 맞아 죽기 딱 좋은 얘기라 방패막이가 필요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거기서 꺼낼 이야기에 빈우와 레드우드, 즉 태스크 포스 373이 연관되었다는 뜻이다.

“우리 사령관 폭발하면 나 못 말릴 수도 있다. 국장님은 네가 지켜라.”

빈우의 엄살에 마커스는 그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이렇게 해서 이노우에 고토와 마커스 타이를 비롯한 군사정보국 사람들과 김빈우, 조지 레드우드의 특수전 사령부 사람들의 살기등등한 다과회가 사령관실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 * *

“다시금 취임 축하드립니다. 각하.”

“고맙소.”

레드우드 사령관과 이노우에 군사정보국장의 인사는 무난한 편이었다.

특수전 사령부와 군사정보국은 합동작전을 자주 하기에 나름 사이가 좋은 편이고, 빈우처럼 파견 나가는 요원들이 좀 된다.

“헌데, 쿠사키나 국장을 빼가려 했다면서?”

레드우드가 다짜고짜 던진 돌직구에 이노우에 국장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네, 쿠사키나 국장이 직접 수사 지휘를 맡은 사건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 부득이하게 이런 실례를 무릅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대체 뭐길래?”

퉁명스레 사과를 받은 레드우드는 이어지는 이노우에 국장의 다음 말에 얼굴을 굳혔다.

“워프 비스트입니다.”

고토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좌중을 둘러보며 반응을 살펴봤다.

“인간이 괴물로 변하는 워프 비스트 현상. 이곳 특수전 사령부도 얼마 전 놈들에게 침공을 받았지요. 방어법은커녕 정확한 발현조건조차 밝혀지지 않은 이 괴현상은 현재 연방에게 심각한 위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정보를 보안국 요원이던 피에르 라캉 중령이 무단으로 탈취해 태스크 포스 373으로 가려고 했고, 슬프게도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전사하고 말았지요.”

거기서 라캉 중령의 죽음을 직접 본 레드우드 사령관이 나섰다.

“원래 그 정보는 라캉 중령이 우리 팀에 주기로 한 것이었어. 하지만 그만이 알 수 있는 곳에 은닉해 놓은 것이라 아직까지 우리도 못 찾고 있는 상황이야.”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사령관 각하, 보안국 말로는 ‘무단 탈취’랍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이런 무리수를 두게 되었답니다.”

이쯤에서 빈우가 대신 나섰다.

“자료가 필요하다면 정식으로 요청하면 되잖습니까? 무슨 꿍꿍이가 있기에 말도 제대로 못 붙이다가 갑자기 쳐들어온답니까? 그것도 작전 중인 팀에. 보안국이 고작 그 이유만으로 나를 잡으러 온 겁니까?”

“김 팀장, 자네도 짐작하겠지만 보안국은 자네를 의심하고 있다네. 그리고 자네 역시도 보안국을 낚으려고 떡밥을 뿌리지 않았나?”

그걸 누가 곧이곧대로 믿을까. 보안국에 꿍꿍이가 있다는 것은 이쪽도 짐작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몰아치지 않는 것은 보안국에 아직 이용가치가 있고, 그쪽의 조직체계를 무너트리면 오히려 배후세력에 대한 조사가 힘들기 때문에 확실한 증거를 모으기 전까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보안국이 폭주한 원인을 따지고 보면 고토 본인도 책임이 있긴 했지만 그건 쏙 빼놓고 얘기하고 있다. 헌데 빈우도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토를 보는 모습이, 그도 뭔가 낌새를 챈 듯하다.

“의심이라, 보안국이 의심하지 않는 게 이 우주에 있기나 합니까?”

“허허, 이 사람아. 그게 보안국 일 아닌가?”

사실 보안국은 군 내부의 정보 보안을 담당하는 부서다 보니 일단은 의심하고 여기저기 집적거리는 게 주된 업무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보안국이 거꾸로 이쪽의 의심 대상이다. 움직이는 행동이 하도 수상한 것이다. 오다 의원과 빈우는 지금 보안국이 비밀 세력에게 넘어갔을지, 그게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그쪽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빈우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워프 비스트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면 보안국에도 넘겨드리도록 하지요.”

“오오, 그래 주면야 고맙지.”

함박웃음을 짓는 이노우에 국장에게 빈우는 다시 쏘아붙였다.

“그리고 우리 팀이 일할 때 두 부서에서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하이구, 당연한 말씀을. 태스크 포스 373은 샤다이 대응 전문팀이 아닌가. 부름이 없어도 우리가 응당 도와야지.”

이노우에 국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빈우의 도와달라, 는 의미가 어느 정도의 것인지 짐작은 하지만 일단 위기를 넘기고 살아만 남는다면 나중에 어떻게든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자 생존론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까?”

빈우의 날카로운 시선이 이노우에를 찌른다.

“이 정도 얘기라면 굳이 이런 자리를 마련하지 않아도 될법한데요?”

“여기까지 왔으니 얼굴을 비추는 건 예의 아닌가. 실은 자네가 예상한 대로 지금부터 꺼낼 얘기도 만만치 않다네.”

그러면서 이노우에 국장이 자료화면을 몇 가지 준비했다.

“보안국이 극비리에 조사한 자료들이라는군.”

그 말에 빈우가 헛웃음을 짓는다. 지금 살려달라고 무릎 꿇고 싹싹 빌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되려 보안국과 결탁해서 수작을 부리려고 하니 기도 안 찬다. 이노우에 고토다운 짓이다.

게다가 뒤쪽에 서 있는 마커스를 보니 녀석도 상관의 황당한 행동에 얼이 나가버린 것 같다.

하지만 이노우에 고토는 잘 알고 있다. 빈우는 이번 제안을 결코 거절하지 못하리란 것을.

한 번만 조작하면 그의 눈 앞에 마카로니에서 사망한 마리 라캉의 시신, 그리고 리처드 허드슨과 엘리자베트 허드슨의 시신의 영상이 뜬다. 그중 한 명은 빈우 자신과 티격태격 악연이 있었던 자의 아내이고, 다른 두 사람은 그와 안면은 없지만 엄마 없이 둘이서만 살고 있던 부녀였다.

냉혹한 정보국 요원인 빈우는 유독 이런 면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 피차 약점을 잡은 상황이라면 흐름을 잡는 쪽이 이기는 법.

이노우에 고토는 과거의 빈우든 현재의 빈우든 물 수밖에 없는 미끼를 던지려 했다.

“참, 그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

화면을 켜기 전 문득 생각났다는 듯 이노우에 국장이 빈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판 깔아놓고 잘하십니다. 뭡니까?”

“질투의 마음은?”

뜬금없는 이노우에 국장의 말에 빈우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버지의 마음.”

“음, 자네도 잘 아는구먼.”

그때 싱글벙글 웃는 이노우에 고토의 목 쪽으로 빈우의 손이 올라갔다. 이건 누가 봐도 멱살을 잡는 각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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