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자신의 멱살을 잡으러 서서히 올라오는 빈우의 손을 본 고토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고민을 했다.
그대로 잡힐까? 피할까? 반격할까? 하지만 빈우의 눈을 본 고토는 무의식적으로 반응했다. 손을 들어 막으려는 순간, 빈우의 손이 멱살 대신 고토의 그 손을 잡아채 끌어당겼다. 그리고 반대편 손으로 고토의 얼굴을 덮었다.
“이노우에 국장님.”
지금 빈우는 군사정보국장의 안면을 손으로 잡아 조이며 그를 위로 들어 올렸다. 고토가 저항하려 했으나 경험도, 출력도 빈우 쪽이 위다. 헛된 반항이자 무용한 몸부림이다.
“지금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을 하시는지 알고 계십니까?”
차가운 빈우의 다그침. 그러나 입이 틀어 막힌 고토는 대답할 수 없었다. 머리로 혀를 찰 뿐이다.
‘나도 참 안일했군.’
고토도 빈우가 이렇게까지 반응할 줄은 몰랐다. 기껏해야 구시렁대거나 욕 좀 할 거라 생각했었다. 손을 써도 이 정도로 제대로 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고토의 두뇌 칩이 경고를 울릴 정도면 꽤 심각한 정도다.
물론 강화 군인의 악력이 강하다 해도 같은 강화 군인의 두개골을 으스러뜨리진 못한다. 설사 목을 졸라 경동맥 혈류의 흐름을 막아도 개조된 뇌와 두뇌 칩은 질식하지 않기에 고토는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빈우는 자기 손바닥의 신경계를 피부 바깥으로 뽑아내 고토의 몸 안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피부와 방탄 섬유의 빈틈을 파고든 빈우의 신경망이 고토의 턱을 통해 치아 신경계 쪽으로 들어가고 있다.
‘망했다.’
고토는 혹시나 해서 통각차단을 해봤지만, OS에서 명령이 먹히지 않는다. 이미 빈우가 신경망 접촉으로 먼저 손을 쓴 듯싶다.
‘이제 신경끼리 얽혀 버렸으니 그대로 잡아당긴다면… 상상하기도 싫군.’
얌전해진 고토에게 빈우의 질책이 쏟아진다.
“무슨 자료를 저한테 보여주시려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상황부터 보셔야죠. 지금 우리가 간을 달라면 국장님을 간을 주셔야 하고, 쓸개를 달라면 쓸개를 주셔야 합니다. 국장님에겐 선택할 권리가 없어요.”
그러면서 빈우는 눈동자를 흘깃흘깃 자신의 등 뒤쪽으로 움직였다. 그의 눈동자가 향한 방향에는 레드우드 사령관이 있다. 턱을 괴고 자리에 앉아있는 그 모습이 기분 탓인지 조금 언짢아 보인다.
‘조지 레드우드 사령관인가….’
고토는 납득했다.
빈우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이노우에의 행동에 분노한 레드우드가 시켰거나, 아니면 그가 폭발하기 전에 빈우가 먼저 선수 친 것일 수 있다.
-미쳤습니까. 닥치고 숙이세요.
신경계의 접속으로 빈우의 메시지가 고토에게 직접 들어온다.
맞는 말이다. 일단 고개를 숙이고 보안국을 살려달라고 한 건 이쪽이니 빈우가 부탁을 하면 설령 그것이 무리한 것이라 해도 들어주어야 한다. 만약 거절한다면? 조지 레드우드를 위시한 특수전 사령부의 뒤끝이 작렬할 것이다. 아니면 빈우가 간신히 달래놓은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이 다시 폭발할지도 모른다.
“김 팀장, 그쯤 하게. 이노우에 국장도 나름 이유가 있겠지.”
레드우드 사령관의 나직한 목소리에 빈우가 다시 신경계를 집어넣곤 고토를 내려놓았다.
“실례했습니다, 국장님. 국장님도 잘 아시다시피 빡 돌면 눈에 뵈는 게 없어서 말입니다.”
빡도는 게 빈우인지 레드우드인지 주어를 생략한, 그리고 불량스러움과 정중함이 혼재된 사과를 받으며 이노우에 국장은 레드우드에게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각하, 제가 결례를 범했으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닐세. 이쪽도 너무 감정적이었던 것 같군. 이제 더 이야기하긴 힘들 것 같으니 이만 자릴 접도록 하지.”
집주인의 축객령에 이노우에 고토와 마커스 타이는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왔다. 어차피 군사정보국으로선 다샤 쿠사키나 보안국장의 구출이 목적이었으니 이 자리를 잃는다 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
두 사람이 나가자 레드우드 사령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야 인마, 너 근데 왜 그리 빡친 거냐?”
“마지막에 저와 이노우에 국장이 주고받은 대화 기억하십니까?”
그러고 보니 뜬금없는 대화 다음에 빈우가 바로 무력행사에 나섰다.
“질투의 마음 뭐시기 하는 거?”
“네, 그건 군사정보국에서 파견 나간 요원들끼리 상대방을 확인할 때 쓰는 겁니다. 같은 문화권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거죠.”
레드우드는 이해했다. 과거 내전 중에 상대방을 구분할 수 없게 되면 저런 문답으로 피아를 가렸었다. 또 변장하고 잠입한 적을 잡아낼 때도 유용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렇군, 알겠어. 헌데 그런 걸 갑자기 왜 물어보는 거지?”
“글쎄요, 제가 너무 바깥으로 돌아서 그런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하지만 군사정보국 요원인지 확인했으니 다음엔 높은 확률로 그쪽에 관련된 일이 나왔을 겁니다. 그래서 이야기 흐름이 저쪽으로 넘어가기 전에 제가 먼저 선수 쳤습니다. 그 와중에 시켜서 하는 짓이라고 사령관님 이름 좀 팔았고요. 죄송합니다.”
“사과할 필요 없다. 속이 다 시원하더군.”
사실 방금 레드우드 사령관은 꽤 역정이 난 상태였다. 사과하러 인사차 들렸다는 놈이 사과는커녕 말을 돌리다가 이상한 얘기를 꺼내니, 이전부터 잘 알던 군사정보국이 아니었다면 호통을 쳤을 거다.
“근데 꼭 멱살 잡고 그럴 필요가 있었나? 네 상관이잖아? 안 돌아갈 거냐?”
어차피 레드우드는 이번 일을 빈우에게 맡기기로 했다. 같은 식구이기도 하고 이런 일에 빠삭한 빈우였기에 일임한 것이다. 그래서 빈우가 오버해서 행동을 해도 그러려니 하고 맞장구를 쳐준다. 그래도 오버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허이구, 모르시는 말씀이에요. 그 양반이 얼마나 음흉한데. 자칫하면 우리가 되려 저쪽에 말려 들어갈 뻔했습니다. 이노우에 국장이 이런 상황에서도 말을 꺼냈다는 것은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호오.”
군사정보국이라면 그럴 법도 하다. 음습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울 놈들이니 자신이 무릎을 꿇은 상황에서도 상대방이 흥미를 가지고 눈높이를 낮출 자료야 하나둘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중요한 정보일 텐데 이렇게 차버려도 되는 거냐?”
“아마도 이런 자리에서 꺼내려고 했던 일이니만큼 저쪽에서 다시 올 겁니다. 하지만 기다릴 필요는 없죠. 여차하면 오다 의원님을 통해서 움직이면 됩니다.“
“하긴. 상원에서 너와 팀을 조사한다고 했으니 네가 원래 있던 곳에서의 관련 자료를 내놓으라고 한다면 답 없겠지.”
원래 조지는 자신의 팀에게 시비를 건 보안국을 이번 기회에 털어버리려고 했다. 분명 자신의 취임 연설 때 깝죽대면 썰어버린다고 못 박았는데, 채 한 달이 되기도 전에 놈들이 제대로 먹칠을 한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빈우와 오다 의원이 나서서 이번 일을 무마해 주십사 하고 부탁해 왔다.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갔다. 상원까지 연결된, 의외로 커진 스케일에 레드우드 사령관은 납득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절감했다. 새삼 전임 사령관 캐서린 시슬의 빈자리가 더욱 커지게 느껴지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참모가 필요해.’
지금 특수전 사령부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싸움을 하기엔 전문적이지 않으며 또 신용과 신뢰는 또 다른 문제다. 때문에 지금의 조지에겐 눈앞의 빈우 같은 인재가 더욱 탐나는 것이다.
“좋아, 보안국 건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지. 하지만 방심하지 말게. 저쪽이 고개를 숙였다고 해도 칼까지 놓은 건 아니니까.”
“아유, 오히려 각하께서 조심하셔야죠.”
“새끼가. 가봐 인마.”
사령관실을 나온 빈우는 블랙 랜스로 향했다. 오래간만에 마커스와 만나 이야기나 해볼까 했더니 그럴 틈은커녕 제대로 된 정보교환을 나눌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그건 나중에도 가능한 일이다.
지금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이노우에 국장의 행동이었다. 그는 아까 사령관실에서 빈우에게 진짜 본인인지 확인하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노우에 고토는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예전에 마카로니에서 십계면에 대해 물은 것은 이해가 간다. 잠수 후에 첫 만남이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할 수도 있다. 빈우가 피자 타이거의 덱스터에게 같은 질문을 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그것은 옆에 아룹이 있었기에 서로 믿을 만하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방금은 무슨 이유일까. 위은쓸납학의 본성에 갔다 온 이노우에 고토는 내게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마커스는 작년에 울토르 중대의 소탕 작전 때 쓰였던 탈출 포드를 찾았다고 했는데 혹시 그것과 연관이 있을까?’
그렇다 해도 이상하다. 울토르 중대에 관련된 일이라면 군사정보국이 스스로 하거나 아니면 이런 일에 전문인 보안국에게 맡기면 된다. 게다가 보안국은 같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니 더욱 빠삭할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현재 프로젝트에서 제외된 외부 파견 요원인 빈우에게 시킬 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잠잠해지면 마커스와 얘기를 좀 해봐야겠네.’
빈우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모니카에게서 연락이 왔다.
-팀장님, 지금 혹시 시간 되세요?
-아이구, 네가 부르면 없는 시간을 만들어야지. 뭐 새로운 것 있어?
지금 모니카는 샤다이의 기술을 열심히 조사하고 있는 중이다. 발 가르단 하스에선 대파된 리퍼 함선의 자재와 데이터를 얻은 데다, 이번 작전에서는 전열함을 상처 없이 통째로 얻었으니 그녀로서는 연구복이 터진 셈이다.
때문에 모니카는 얼마 뒤면 과학기술국으로 넘어갈 전열함에서 떠날 생각 않고 연구와 조사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혹시나 그녀가 연구를 위해 과학기술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떠봤지만, 오히려 모니카 쪽에서 태스크 포스 373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할 지경이었다. 첫 만남 때 겁에 질려 울고불고하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샤다이와 리퍼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낸 게 있어요.
-호오.
현재 인류 연방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적을 꼽으라면 바로 샤다이다. 놈들은 몇 세대나 우위에 있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연방을 압도하는 위험한 종족이다. 게다가 샤다이는 자체적으로 점프를 하는 엄청난 기동성으로 주로 연방의 외곽부 쪽에 출몰해 공격을 하는데 이상하게도 오직 인간만 공격하지 다른 종족들에겐 별 관심이 없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섭의 여지가 일절 없는 족속들이라 아주 골치가 아프다. 단지 사용하는 쪽의 실력이 영 아니라서 어떻게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그중에서 리퍼라고 명명된 놈들은 대단히 위험한데 그 이유는 바로 이놈들이 싸우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리퍼의 첫 출현 때 빈우와 울토르 중대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울토르 클론들이 뱅가드 연대를 벤치마킹 했고 뱅가드 연대가 연방 최강의 장갑 보병부대 중 하나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치명적이다. 실제로 발 가르단 하스에서 아차 하는 사이 리퍼 하나에게 아룹, 파트리샤, 위르겐 세 명의 베테랑 요원들이 당했다. 만약 놈이 이케가미 상원의원을 데려가려는 목적만 아니었다면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좋아 모니카, 어디서 만날까? 내가 그쪽으로 넘어갈까?
-아니에요, 제가 자료를 가지고 팀장님 쪽으로 갈게요. 근데 말이에요. 부탁이 하나 있는데….
-부탁? 뭔데? 고생한 모니카를 위해서라면 내 뭐든 들어주지.
실제로 모니카는 지금까지 샤다이 함선의 조사와 연구에 밤낮없이 매달렸다. 거기다 처음 봤을 때는 겁에 질려 우물쭈물하던 그녀가 지금은 자기가 할 말을 제대로 하니 빈우는 그게 대견해서라도 무슨 부탁이라도 들어주고 싶었다.
-정말요? 그럼 저 맛있는 거 먹고 싶어요. 아나스타샤나 아를르캥한테 멋진 요리 만들어 달라고 해주세요.
-응? 뭐야, 그 정도로 되겠어? 뭐 보너스라던가 휴가 이런 거 필요 없어?
-헤헤, 아니에요. 저번에 발 가르단 하스로 갈 때 팀장님하고 밥 먹었잖아요. 그런 게 더 먹고 싶어서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