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발 가르단 하스에 갈 때 먹었던 것이라면 아를르캥이 만들었던 정찬이다. 빈우는 라캉 중령이 숨긴 워프 비스트의 데이터를 찾기 위해, 그의 허수아비인 아를르캥에게 주인의 레시피를 재현하라고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함 내 중력 변화 때문에 메인디쉬가 공중분해가 되는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때 모니카의 아쉬워하던 표정이 다시 떠올랐다.
‘아를르캥에게 시키면 되긴 하는데.’
솔직히 아를르캥이 만든 음식은 맛있다. 그런데 그건 임무 때문에 겸사겸사 먹는 것이라, 부하의 노고를 칭찬할 때 대접하기엔 조금 꺼림칙하다.
이럴 때는 전문가를 불러야 한다.
-아나스타샤.
-네, 주인님.
-모니카가 그동안 고생해서 식사 한 번 제대로 대접해 주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어머 어머, 모니카 대위님이랑요? 어머나아-
통신 너머로 뭔가 착각하고 호들갑을 떠는 아나스타샤. 하지만 빈우는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달리 정정하고 싶진 않았다.
-제가 마련해둔 메뉴가 있어요. 어서 방으로 오세요. 옷부터 갈아입으시고요.
-야, 옷은 왜….
채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통신은 끊겼다. 빈우는 한숨을 쉬며 방으로 갔다.
* * *
모니카는 또 모니카대로 기대에 들떠 빈우의 방으로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있어 식사란 에너지 보충에 불과했다. 철들 때부터 공학 쪽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대학에 가면서 식사는 연구실 안에서 대충 처리했다. 그런 생활은 군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벌레인 동료들조차도 영양만 충분할 뿐, 음식이라고 하기엔 부실하고 조악한 것들을 입안으로 넣는 모니카를 보며 쓴웃음을 짓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랬던 모니카의 혀가 태스크 포스 373에 와서 제대로 된 식사를-생성기가 아닌 진짜 손으로 만든 식사를-먹게 되자 깨어난 것이다. ‘음식을 먹는 낙’이란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생성기로 인상 깊었던 메뉴를 재현해 보려고 했지만, 어딘가 모자랐다. 뭔가 어설펐다. 자신이 직접 생성기를 만들어 구현해 보려 했으나 데이터가 부족해 원본을 만들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를르캥과 아나스타샤에게 밥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기엔 조금 어려웠다. 아무리 안드로이드들이라고 해도 그것들은 상관인 빈우의 소유물인 데다, 하나는 기밀이 들어있고 하나는 주인과 거의 가족관계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모니카는 들떠서 팀장의 방으로 가고 있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조사 보고를 빌미로 빈우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게 해 달랬는데 흔쾌히 허락한 것이다. 맛있는 식사를 앞에 두고 기대에 찬 모니카가 빈우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코가 맡은 것은 기대를 뛰어넘는 맛있는 음식 냄새다. 그리고 눈이 본 것은 근사하게 차려진 식탁과 식기들, 또 주인의 멱살을 잡은 메이드와 도망치려는 주인 간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이었다.
“거봐, 모니카는 그냥 작업복 입고 왔잖아. 여기서 밥 먹는데 무슨 연회복까지 입느냐고.”
“에잇, 주인님이 입으시면 대위님도 갈아입힐 수 있다고요.”
아나스타샤는 빈우의 어깨를 세게 후려친 다음 생글생글 웃은 표정으로 모니카에게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대위님.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죠? 오늘은 제가 맛있는 요리를 대접할 테니 부디 즐겨주세요.”
“고마워, 아나스타샤. 근데, 옷… 나도 연회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거야?”
“아니에요. 편하신 대로 있으시면 돼요.”
모니카는 아나스타샤가 마련해 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펼쳐지는 진미의 연속에 눈과 코와 혀가 행복해졌다.
“맛있어~. 이전부터 이런 거 먹고 싶었거든요.”
생성기완 비교도 안 되는 음식들의 향연에 모니카는 기쁘게 식사를 이어갔다.
“어머나, 저한테 말씀하시면 될 텐데.”
“그래, 아나스타샤한테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잖아?”
“에이, 아무리 그래도 아나스타샤는 팀장님 직속이잖아요. 또 업무도 보고.”
“흐음-.”
고개를 갸웃거리던 빈우는 몇 가지 메모를 해서 모니카에게 넘겨주었다.
“이건 오브리가도에 있는 레스토랑들이다. 정 말하는 게 부담스럽거든 여기로 가봐. 제법 잘하는 곳들이야.”
“앗, 정말요? 고맙습니다. 다음엔 저 혼자 가면 되겠네요.”
모니카가 신나서 메모를 챙기는 데 누군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안됩니다.”
“응?”
모니카의 옆에는 어느새 아나스타샤가 다가와 냉철한 목소리로 꾸짖고 있었다.
“절대 혼자 가지 마세요. 안됩니다. 에티켓에 어긋납니다.”
“그래? 아, 식당 회전율에 실례인가?”
“하다못해 눈 앞의 사람이라도 데려가세요. 저기 저 사람이요.”
아나스타샤는 모니카의 고개를 자신의 주인 쪽으로 돌렸다. 거기엔 정말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주인이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곧바로 안드로이드 메이드는 망했다는 신경 신호를 느꼈다.
“뭐, 나? 나 바쁜데?”
뭐라고 항변하려던 빈우는 아나스타샤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노려보자 허겁지겁 고개를 숙였다.
“아니, 밥 먹는데 왜 그래에-.”
“어어? 아나스타샤, 팀장님이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하아- 아뇨, 아닙니다. 디저트 내올게요.”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어리바리하는 인간 둘을 놔두고 안드로이드는 한숨을 내쉬며 디저트를 준비하러 갔다.
그리고 아나스타샤가 내온 차를 마시면서 모니카는 자신의 조사결과를 보고했다.
“일단 장비 쪽의 차이가 흥미롭습니다. 샤다이들의 데이터 구조를 살펴본 결과 리퍼와 일반 샤다이들의 장비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역시 그런가.”
이건 빈우도 짐작했던 바였다. 그는 스팸과는 질리도록 싸워봤고 리퍼와도 싸워봤다. 직접 총질 칼질 다 해봤던 터라 놈들의 스펙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하고는 있었다. 리퍼가 스팸에 비해 고성능이긴 하지만, 둘 사이의 월등한 전투력 차이는 장비에서 오는 게 아니다. 아마도 입고 있는 착용자에서 그 차이가 나는 것이라 추측했다.
“팀장님도 거기까진 알고 계시는군요. 네, 스팸과 리퍼들의 장갑복은 동일한 재료와 동일한 구동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저 리퍼들 쪽이 좀 더 전투에 적합하게 보강되고 개조되었다뿐이지 아주 다른 계통이나 세대의 장비들은 아닙니다.”
“즉 고양이와 호랑이의 차이는 아니란 얘기군.”
“네. 비유하자면 개와 늑대 정도죠.”
“치와와?”
“푸훗, 아뇨. 셰퍼드쯤?”
그렇다면 생각보다 둘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전투에 들어서면 스팸과 리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연방보다 몇 세대 위의 기술력을 가진 스팸들은 전투에 들어서면 아군의 지상 병력을 압도한다. 전차급의 공방 능력에 스텔스 능력을 가진 놈들이라 한번 기습당하면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다만 샤다이와 직접 싸워본 군인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샤다이들은 싸우는 방법을 영 몰랐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쪽이 맨손의 성인이라면 샤다이는 사용법을 모르는 무기로 중무장한 유치원생들 같달까. 그래서 연방군은 어떻게든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이기려고 기를 쓴다.
그래도 대 샤다이 전술과 경험이 발달한 요즘은 스팸의 우위도 빛이 바랬다. 뱅가드 연대쯤 되는 최신 정예 부대라면 아군이 유리하고, 태스크 포스 373 같은 최정예라면 오히려 이쪽이 놈들을 가지고 논다.
하지만 리퍼는 다르다. 놈들은 장갑복 뿐만이 아니라 착용자가 제대로 싸울 줄 아는 놈들이었다. 사격이나 격투 등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전술도 수박 겉핥기로나마 배운 놈들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연방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가장 먼저 출동하는 뱅가드 연대는 특수전 사령부의 직할인 만큼, 전투력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뱅가드 연대를 벤치마킹한 클론 부대인 울토르 중대는 리퍼의 기습에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하고 전멸했다.
더구나 태스크 포스 373조차도 리퍼에게 몇 번 당했다.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위르겐은 유효한 반격도 못 한 채 날아가 버렸고 빈우도 컨커러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것이다.
발 가르단 하스에서는 리퍼 하나의 기습에 위르겐과 파트리샤, 모니카가 순식간에 무력화 당했다. 만일 놈의 목표가 이케가미 의원의 탈취가 아니었다면 안에 있던 파트리샤와 모니카는 죽었을 것이다.
“스팸의 착용자와 리퍼의 착용자엔 어떤 차이가 있지? 전문적인 전투용 개조를 했나?”
“그게 말이죠.”
모니카가 띄운 자료화면에는 여러 샤다이들의 해부도가 뜬다. 인간과는 다른 골격과 장기구조들. 인간과 겉모습은 비슷하나 수렴진화를 한 다른 종이란 것을 알려주는 증거다.
“보다시피 샤다이의 완력은 아군의 보병보다 약합니다. 스팸과 어벤져도 그렇고요. 그러나 스피드라면 단시간이나마 아군에 필적할 속도로 낼 수 있습니다.”
일단 육체적인 면에서는 연방의 승리지만 그 외의 것은 샤다이의 압승이다.
다음 화면에 스팸과 일반 샤다이가 한쪽 그리고 다른 쪽엔 리퍼에 속하는 샤다이의 해부도가 나타났다.
“일단 육체적인 면을 보자면 스팸과 리퍼 착용자들에겐 큰 차이가 없어요. 다만 리퍼 쪽이 훈련을 했는지 좀 더 단련된 육체를 하고 있습니다.”
빈우도 알 수 있었다. 저 정도라면 일반인과 강화 군인의 차이는 아니다. 그냥 일반인과 운동을 조금 더한 사람의 차이다.
“그리고 리퍼들의 뇌에는 이런 칩이 박혀 있습니다.”
화면 속엔 인간과 약간 다른 구조를 한 샤다이의 뇌 안에 든 칩의 모습이 보인다.
“두뇌 칩은 아닌 모양인데….”
“네, 두뇌 칩이라면 있을 뇌 내 신경망 형성이 되어있지 않아요. 아마 우리 인류가 제국 설립 이전에 썼었던 데이터 저장용 칩 종류로 추정됩니다. 다만 인간과 다른 종족이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좀 더 조사를 해봐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일반 샤다이와 리퍼의 차이는 훈련도와 주입된 전투지식이란 말이겠군.”
“네.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다음은 수집한 각종 자료들에 대한 세부 분석결과다. 샤다이의 장갑 재질과 기기들의 분해도, 항법 자료와 메뉴얼 같은 고급 정보들인데,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자료들이다. 이 정도만 해도 앞으로의 전투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샤다이의 자료들을 살펴보다가 조금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는데요.”
모니카가 보여주는 것은 샤다이쪽에서 인류연방을 분석한 자료들이다. 빼곡한 문자와 많은 도표들이 있는데 몇몇 개는 다른 종족의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샤다이들은 자신들의 기술력을 8등급, 우리 인류연방을 7등급 후반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 외 다른 종족들은 대부분 6등급 후반이나 7등급 초반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 분류 기준은 뭐지? 에너지 사용량이야 아니면 데이터 보유량이야?”
“사용하는 소재와 행동반경인 것 같습니다. 샤다이는 자신들은 성계 간 이동이 가능한 반면 우리 인류는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 으음.”
빈우는 버릇대로 손을 들어 턱을 만지작거렸다. 인류는 이미 점프 항법을 통해 다른 성계로 이동이 가능하다. 다만 점프 공간을 통해 이동하기 위해선, 일단 게이트가 있는 곳을 찾아 그곳에 점프 포인터를 설치해야 한다. 그 때문에 샤다이만큼 자유롭지는 않다.
문득 빈우는 발 가르단 하스에서 샤다이 호민관인 알탄훼아나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녀는 어벤져를 3급 일상복, 컨커러를 5등급 일상복이라고 했으며 자신들의 리퍼를 15등급 전투복이라고 말했다. 거기엔 또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모양인데 둘 사이의 어마어마한 격차를 보면 납득은 된다.
“그리고 이건 우리 쪽에서도 검토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전투에 관한 것 같아요.”
“흐음. 전투 등급이라고?”
빈우 역시 군인이라서 그런지 흥미가 돋는 항목이다.
고개를 끄덕인 모니카는 조금 꺼림칙한 표정으로 다음 화면을 틀었다. 거기엔 우주 종족들의 각종 병기와 군인들의 모습이 들어있었다.
“잠깐만.”
띄워진 자료를 살피던 빈우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분명 조금 전 나온 자료에 따르면 샤다이는 인류의 기술력을 7등급으로, 자신들은 8등급으로 본다고 했다. 헌데 여기 전투 등급란에선 자기들을 5등급으로, 인류를 19등급으로 적어놓은 것이다.
“19라? 야, 이거 자릿수가 다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