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10화 (110/301)

110화

“네. 몇 번이고 확인해 봤는데 그들은 인류의 전투 등급을 19 등급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한두 단계도 아니고 앞자리부터 다르다.

“이상하잖아? 과학 기술은 무기체계에도 영향을 줘. 설마 샤다이는 자기들 기술로 무기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놈들인 건가?”

5등급 일상복과 15등급 전투복의 차이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아뇨, 그게 아닙니다. 샤다이는 전투 등급의 판별 기준에 무기의 기술력도 포함시키지만, 사회구성원의 전투원 전환비율이나 사회적 자본의 군사적 사용비율, 그리고 전략 전술에 관한 연구 등을 더 중요하게 따지는 것 같습니다.”

모니카의 설명을 들으니 지금까지의 흐름이 조금 납득이 되는 것 같다.

8의 기술 등급과 5의 전투 등급을 가진 샤다이. 7의 기술 등급과 19의 전투 등급을 가진 인류 연방.

기술 등급의 하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구시대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군대와 2차 세계 대전의 군대 간의 기술력 격차다. 개인 화기는 둘째 치고 전차와 비행기 같은 신무기의 앞에선 낮은 기술 등급의 군대는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수 없다.

허나 인류는 이 간극을 전투 등급의 차이로 메꿔 어떻게든 싸워오고 있었다. 인류가 높은 건지 샤다이가 낮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제 생각엔 총 든 인간과 맹수의 싸움처럼 보입니다.”

“그거 그럴듯하군.”

모니카의 말에 빈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총 든 일반인은 맹수를 손쉽게 사냥한다. 다만 일단 접근한 맹수는 인간이 총을 쏘기도 전에 사냥할 수 있다. 여기서 사람은 샤다이고, 맹수는 연방이다.

“그런데 말이야, 다른 종족들도 전투 등급이 상당히 낮은데?”

“네. 10을 넘는 종족이 없어요.”

빈우는 샤다이가 분류한 전투 등급란을 다시금 살펴봤다. 대부분 5에서 9사이. 어느 종족도 10을 넘지 못한다. 다만 인간만이 저 멀리, 10자리대를 비우며 홀로 19를 찍고 있다.

“이거 이상한데? 주변에 비교 대상이 아예 없잖아? 뭔가 절댓값으로 매기는 건가? 아니 그렇다면 라출노그와 스퀵테르는 어떻게 되냐고?”

“네, 저도 그게 이상하긴 한데…. 아무래도 샤다이의 전투 등급 산출 기준은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라출노그의 기술 등급은 6등급 후반, 전투 등급은 8등급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라출노그는 연방과의 우주전에선 나름 잘 싸웠다. 그들은 떨어지는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어류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을 연상케 하는 함대 운용능력으로 연방과 대등하게 싸웠다. 괜히 최강의 함대를 가진 종족이란 칭호를 가진 게 아닌 것이다.

또한 암석으로 이뤄진 종족인 스퀵테르는 연방의 장기인 ‘장갑 보병에 의한 지상전’에 대해 맞싸움이 가능했던 유일한 종족이었다. 그래서 동맹이 맺어진 후 요청이 있으면 지상군 파병을 해주었고 그때마다 혁혁한 전과를 이룬 연방의 우방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역시 기술 등급은 6등급, 전투 등급 또한 7등급이다.

다만 두 종족 다 연방과 전면전을 한 적이 없다.

라출노그는 슈홀루 분파가 연방과 교섭을 하던 중에 불안감을 느낀 데넥샬 분파가 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연방은 어떻게든 휴전을 제의해봤지만 협상은 결렬, 결국 해당 방면군 지방 함대와 중앙 함대의 일부가 파견이 나가 진압전을 했다. 그러나 예의 신들린 조함술에 연방 함대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스퀵테르의 경우는 이미 연방과 조약을 맺은 상태였는데, 변경에서 저항하는 세력이 문제였다. 당시 연방은 스퀵테르의 동족 반란군 진압을 도와달라는 요구에 응해 항성계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 중에서 소규모 지상 병력을 차출해서 해당 지역으로 강하시켰다. 연방의 장갑 보병 1개 중대는 원시적인 근접전을 하는 스퀵테르 반란군을 상대로 치열한 소탕전을 했지만, 상대가 기술력이 떨어지는 데다 장거리 무기가 없는 적이라고 방심했던 대가는 컸다. 결국 뱅가드 연대가 투입되어 반란군을 전멸시키는 것으로 사태는 진정되었다.

따지고 보면 연방을 나름 고전시켰던 저 두 종족은 연방과 제대로 싸운 적이 없었다. 각자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연방을 괴롭혔을 뿐이다. 또 연방도 제한을 받고 포장마차 뗀 상태로 싸웠었다.

라출노그의 경우 슈홀루가 물밑 작업을 하지만 않았어도 제대로 된 규모의 중앙 함대가 출동해 압도적인 화력으로 놈들을 밀어붙였을 것이다.

스퀵테르에선 반란군에게 잡힌 인질들만 아니었어도 애꿎은 지상 병력 투입 없이 궤도포격으로 손쉽게 처리했을 일이다.

아니 비단 저 두 종족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연방과 싸웠던 어느 종족도 인류 연방군의 힘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다. 전부 연방의 규모에 비해 작은 전쟁이고 총력전이나 전면전은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군이 어디로 파병을 가서 어떤 전투를 하든 간에 그것이 연방 민간 사회에 영향을 준 적은 없을 정도다.

“하긴 스퀵테르와 라출노그 둘 다 전쟁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하지.”

빈우의 말에 모니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듣는 당사자는 열불이 터질 말이지만 연방이 투입한 병력의 규모에 비하면 그렇다. 목타하와 위은쓸납학 정도는 되어야 그나마 전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 둘은 중앙 함대들이 출격했기에 규모가 꽤 컸고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될 정도였으니까.

자료를 보던 빈우는 자기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샤다이가 전투 등급 산정에 전투원 전환비율이나 사회적 자본의 군사적 투입이란 측면을 보았다면, 이 등급은 아마도 총력전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종족 그 자체가 내재하고 있는 전쟁 수행 능력을 평가한 것이겠지.”

“그렇군요. 아직 이 부분은 중요도가 떨어져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팀장님의 말씀이 맞을 것 같아요.”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기술 등급 8에 전투 등급 5인 샤다이는 과학 기술력에 비해 공업력이나 생산력이 상당히 떨어질 것이야. 즉 사회적 인프라가 빈약하단 뜻이지. 뭔가 기형적인 사회 구조인데?”

“아! 그러고 보니!”

모니카가 뭔가 떠오른 듯 자료 화면을 넘겼다.

“팀장님 말씀을 듣고 생각이 났는데, 샤다이의 기록들을 살펴보던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빈우는 모니카가 지적한 부분을 읽어보았다.

“기술 등급… 9?”

샤다이는 과거 자신들의 기술을, 그러니까 선조들의 기술을 9등급이라고 기록해 놓고 있었다. 지금보다 1등급이 높은 것이다.

“네, 제대로 된 역사 기록은 아니고 개인이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놓은 부분인데, 여기에요. ‘씸’에 발을 디딘 우리 조상 부분….”

“씸? 무슨 뜻이지? 처음 보는 샤다이어인데.”

“아직 이 단어의 뜻이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른 곳에선 쓰이지 않고 오직 여기서만 쓰인 단어라 그 뜻을 추측하기 힘듭니다.”

빈우가 알고 있는 샤다이어 사전에도 ‘씸’이란 단어는 없었다.

“어디 보자. 씸에 발을 디딘 우리 조상들의 기술, 물려받지 못했다. 이거 정관사가 왜 이래?”

“아마 오래전의 문건이라 옛 문법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만년 이상이에요.”

“그렇군, ‘우리는 조상의 기술들을 물려받지 못했다. 무려 9등급에 달하는 그분들의 기술은 별 심장의 불길을 넘어 그들과 교감한다.’ 라… 그래, 여기서도 조상의 기술을 9등급이라고 하는군. 샤다이 기준으로 9등급이면 어느 정도지?”

“아마도 성계 간 여행을 넘어 차원 여행, 혹은 다른 우주로 이동이 가능한 정도라고 추측됩니다.”

빈우는 커피를 마시며 생각을 곱씹었다. 과거 9등급에 달하는 기술력을 가진 샤다이. 이 기록이 맞다면 그들은 모종의 이유로 기술력을 잃어버려 8등급으로 후퇴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것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세대 간의 단절은 어찌 보면 인류와도 흡사하다.

인류도 과거 지구제국 당시에는 엄청난, 그야말로 폭발적인 과학기술 발전을 이뤘었다. 24년 이란 짧은 시간 동안 인류는 유례없는 발전을 이뤘고, 그에 비례해 우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 영광도 잠시. 인류를 이끌고 다스리던 황제가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고, 우주를 호령하던 비홀더 전대들마저 태양계를 떠나 루비콘 라인으로 향했다.

그날 지도자를 잃은 인류는 당황했다. 창과 방패를 잃은 인류는 공포에 떨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안개 속에서 헤맸다.

그러나 인류는 다시 일어섰다. 연방을 창설하여 모이고, 과거의 지식을 끌어모아 군을 결성했다. 그리고 권력을 한사람에게 집중시키지 않고 연방의 모든 이들에게 분배하기 위해, 시민 전원으로 의회를 만들어 두뇌 칩을 사용해 의정활동을 했다.

하지만 당시의 지구제국이 과연 9등급, 아니 8등급까지 갔을지는 의문이다. 과거의 기록을 봐도 현재의 인류 연방과 비교해 일장일단은 있을지언정 제국이 확실한 기술적 우위를 보이진 못하고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제국의 군대랄 수 있는 비홀더 전대는 비정상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발 가르단 하스에서의 리퍼조차도 비홀더 전대의 단 세 명에게 제대로 된 저항 한번 못하고 몰살당했을 정도다. 아직도 지구제국의 군사 관련 기술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고, 연방군은 이를 복원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그런데 왜 샤다이들은 이제껏 조용하다가 연방이 생기고 나서야 나대기 시작한 걸까? 만 년 전에 이미 9등급 기술력이었다면, 그때 인류는 고작 신석기 시대잖아. 왜 그때는 공격하지 않았던 거지? 만약 인류가 우주로 진출한 게, 그러니까 점프 항법으로 성계 간 이동을 시작한 게 문제라면 제국 시절에 눈에 띄지 않았던 이유도 궁금하고 말이야.”

아직 샤다이가 어디서 왔는지,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아는 것이라곤 인류를 뛰어넘는 과학기술에 자유자재로 점프 항법을 쓴다는 것. 그리고 연방에 맹목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공격한다는 것 정도다. 그 외에는 박살 난 샤다이의 함선이나 장비, 시신에서 조금씩 끌어모으거나 비공식적인 접촉을 통해 얻은 것이 전부다.

빈우의 말에 모니카가 뭔가 생각난 듯 케이크를 자르던 포크를 살짝 들었다.

“건들면 대가리 터질까 봐 쭈그리고 있었다?”

첫 만남에서 대성통곡해서 빈우의 애간장을 태우던 모니카는 이젠 동료들의 말투를 잘 배워 쓰고 있다.

“그래, 그 당시의 제국군을 건드렸으면 샤다이는 쓸려나갔겠지. 그리고 또?”

“그 외엔… 아마 문건에 나오는 그 사건, 조상의 기술을 잃어버린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우리도 제국 해체 후 연방이 설립될 때까지 꽤 혼란스러웠잖아요.”

“그때가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있나?”

“그에 관해선 아직 정확한 자료가 없어서 좀 더 조사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래도 발 가르단 하스와 라출노그에서 상당한 양의 장비를 입수한 덕분에 연구에 훨씬 가속이 붙게 되었습니다. 이 자료와 장비들이 과학기술국으로 넘어가면 헤헤, 팀원들이 놀라 자빠지겠죠? 안 그래도 제 동료들이 자료 좀 복사해달라고 성화던데 전부 일급 기밀이라 함부로 보내줄 순 없었어요.”

하긴 과학기술국은 지구제국의 기술이나 샤다이의 장비를 보면 눈이 뒤집어진다.

“그러고 보니 과학기술국에서 오는 게 꽤 늦네?”

“저번에 항구에서 워프 비스트가 발생한 적이 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검역절차가 조금 더 까다로워진 모양이에요.”

정보 사령본부 산하 과학기술국은 기밀 자료와 기술을 다루는 만큼 연구원들의 보안과 경호에 철저하다. 아직 워프 비스트에 대해 정확한 것이 밝혀지지 않은 지금으로선, 이곳으로 오는 것이 좀 조심스러울 것이다.

“참, 그러고 보니 과학기술국에서 워프 비스트에 대해선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고?”

“인간의 신체 조직이 변화된 것이긴 한데 아직 그 원인과 메커니즘에 대해선 불명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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