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놀랬잖아요. 지금 이거 일부러 그러신 거죠?”
억울한 표정으로 울먹이는 오다 의원의 얼굴을 본 빈우는 그 자신도 몹시 억울해 졌다. 아까 누굴 속인 게 한두 번이냐는 모니카의 말에 이어 그의 가슴을 후벼 파는 2연타다.
“설마 제가 그럴 리 있겠습니까.”
“정말 저 겁주는 거 아니지요?”
소리에 놀라서 그런지 아니면 총을 든 빈우에게 겁을 먹어서 그런지 오다 의원의 눈가엔 눈물이 조금 맺혀 있었다. 그걸 본 빈우는 간담이 서늘해져 서둘러 해명을 했다.
“제가 의원님을 겁줘서 뭐하겠습니까. 의원님이야말로 저를 겁주지 마십시오.”
어찌어찌 오다 의원이 청각을 되찾은 것 같자 빈우가 총을 들고 은근슬쩍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이번엔 제가 옆에서 도와드릴 테니 한번 쏴보시겠습니까? 익숙해지시면 놀랐던 것도 조금….”
빈우의 제안에 오다 의원은 말없이 고개를 맹렬히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알겠습니다. 사격 연습은 다음에 하도록 하죠.”
오다 히토미는 빈우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잠시 앉아 숨을 골랐다. 자신이 쏘는 총도 소리가 꽤 크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총의 사격음은 상상을 초월했다. 영화나 기타 미디어에서 보던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조금 진정한 그녀가 눈을 돌리자 거기엔 강화 육체를 가진 용맹무쌍한 연방의 군인이 총을 들고 멋쩍게 서 있었다. 쩔쩔매는 그 모습이 마치 선생에게 꾸지람을 들은 학생 같아 오다 의원은 풋, 하고 웃어버렸다.
“저기, 김 팀장님?”
빈우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상원의원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더 이상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다짐을 하며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의원님.”
그러나 오다 의원은 바로 말하지 않았다. 그저 빈우와 눈을 마주치고 있을 뿐이다. 마치 사람을 꿰뚫어 살펴보는 듯한, 아버지 이케가미 소이치로가 보였던 눈빛이다. 침묵은 잠깐이었다. 오다 의원은 바로 눈가에 부드럽게 미소를 띠며 말을 꺼냈다.
“지금의 김 팀장님은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군요.”
“예전과 다르다고요?”
빈우와 오다 의원은 이번 조사 건으로 처음 만났다. 만약 두 사람이 만나고 빈우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트리니티 패턴이나 군사정보국에 의해 잠긴 기록 당시의 일일 것이다.
“네, 사실 오기 전에 동료 의원들에게서 들은 바가 있었어요.”
아쉽게도 빈우의 예상은 틀렸다.
“동료분들께서 저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군사정보국인 빈우는 상원과 몇 번의 직접적인 접촉이 있었다. 군의 여러 가지 비밀 작전, 그리고 울토르 프로젝트다.
“음. 냉철한 학살 기계이자 잔혹한 군인, 그리고 음험한 아군이라고 하던걸요.”
대놓고 나오는 독설에 빈우는 빙긋이 웃을 뿐이다. 어차피 연방의 군인이 상대할 적은 인간이 아니라 외계종족이기에 냉철이든 잔혹이든 다 칭찬이다. 또한 그것은 발 가르단 하스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죽이고자 했던 빈우이기도 하다.
“지금의 김 팀장님과는 다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네요.”
‘어울렸으면 댁 아버님께 죽었을 겁니다.’
빈우는 생각은 그렇게 해도 말은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런가요? 작전 중엔 충분히 그런 단어에 맞춰 행동하지 싶습니다만.”
“작전 때는 그렇겠죠. 하지만 일상생활에선 그러지 않더군요.”
“평시에도 냉철하고 잔혹하고 음험하면 그게 사람입니까.”
너스레를 떠는 빈우지만 그는 일상에서도 그러는 종자를 하나 안다. 바로 가족인 아나스타샤를 매몰차게 대하고 무시했던 과거의 자기 자신이다. 이유는 모른다. 단지 기록에는 그런 영상만 있을 뿐이고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잠겨있으니까.
“팀장님은 당시의 기록이 잠겨서 모르시겠지만, 제가 태스크 포스 373의 조사를 맡으려고 했을 때 제법 많은 분들이 팀장님의 무용담을 들려주더라고요.”
“네네, 저 알 것 같습니다. 24시간 냉철, 잔혹, 음험하단 얘기겠죠.”
빈우의 대답에 오다 의원이 킥킥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그래서 잔뜩 긴장하고 왔는데, 생각보단 부드럽고 친절하신 분이라 다행이에요.”
“그때도 대충 말씀드렸지만 성격 형성의 원인이 되는 부분의 기록이 잠기거나, 제대로 된 잠수가 아닌 경우 이런 부작용이 드물게 일어나곤 합니다.”
그 말에 오다 의원이 미소를 지우며 찬찬히 빈우를 살펴봤다. 그 사실에 대해선 빈우가 미리 얘기해준 적이 있다. 기억을 못 하는 군사정보국 요원들, 자신의 인격을 감추는 잠수, 자신을 복제하고 인격을 심은 클론들.
‘그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자신을 이렇게까지 혹사해 가며 이루려는 목적이 무엇일까?’
마음속의 의문과 달리 히토미의 질문은 다른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되는 부분의 기록이 풀리거나 부작용이 낫는다면, 팀장님은 다시 예전 성격이 되신단 말씀인가요?”
“아마도 그렇겠죠.”
“아쉽네요. 저는 지금의 팀장님이 마음에 드는데.”
“저런, 조사 도중에 성격이 돌아오지 않게 되길 빌어야겠군요.”
빈우의 농담에 빙긋 웃은 오다 의원이 이번엔 살벌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보안국의 사건에 대해 일단은 보고를 했습니다.”
그 말에 천하의 빈우도 마른 침을 삼켰다. 오다 의원이 보고를 한 곳은 연방 의회의 상원, 그중에서도 그녀가 속한 파벌이다.
보안국이 저지른 사건은 상원의원이 조사차 나온 팀을 무단으로 가로채고 체포하려 한 일이다. 그 와중에 상원의원이 탄 배를 무력으로 나포한 것은 덤이다. 이게 제대로 알려지면 세상 무서울 게 없던 보안국이 공중분해 되는 기막힌 광경이 연출될 것이다. 다행히 오다 의원과 미리 얘기를 해놨기에 그런 일은 없을 것이지만, 만약 저쪽 파벌 윗선에서 거부한다면 답이 없다.
“뭐라고 하시던가요?”
“팀장님의 의견에 찬성하더군요. 아직 보안국을 치는 것은 시기상조이고 조금 더 반응을 지켜보자는 얘기로 결론지었습니다.”
상대의 혐의가 드러나도 바로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은 정보전 세계에선 흔한 일이다. 행동에 나서는 것은 결정적일 때, 또는 이해득실과 사건의 여파로 일어날 도미노 사건들을 철저히 계산하고 난 뒤다. 경거망동했다가는 손에 깃털만 남을 뿐, 몸통은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리고 군사정보국에 대해선 필요 이상으로 접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원래 빈우와 오다 의원은 보안국을 구해달라는 군사정보국의 부탁을 들어주며 이번 기회에 빚을 채워 두려고 했다. 그리고 그걸 빌미로 군사정보국을 이리저리 이용해보려는 게 빈우의 계획이었는데, 오다 의원 쪽 파벌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군사정보국과 거래해서 보안국을 구해주는 것까진 좋지만, 그 이상 교섭을 하는 것은 본격적인 감사단이 오고 나서 하라는군요.”
그녀의 말에 일리는 있다. 현재 특수전 사령부에 정보전을 할 만한 인재는 없고, 그렇다고 빈우와 오다 히토미 둘이서 군사정보국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빈우는 다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를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뭐, 당연한가.’
현재 오다 의원이 속한 파벌은, 연방 내부에 스며든 비밀세력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놈들이 적대하는 태스크 포스 373에 접근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사정보국에서 파견되어 특수전 사령부에 와 있는 빈우에게 칼자루의 많은 부분을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아, 팀장님을 의심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팀장님이 제게 알려주신 내용들이 정식 보고서와 비교해서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고, 또 보고서에 제대로 적혀있지 않은 내용들을 자세히 알려주셔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군요. 그 결과 우리는 팀장님을 믿고 함께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단지 현재 조사대상인 팀장님에게 필요 이상의 권한을 주면, 저쪽에서 우리가 손잡은 것을 눈치챌까 봐 그런 거예요.”
하긴 조사대상이 마구 나대면 이상할 테니 나름 일리 있는 말이다. 어찌 되었든 주도권은 상원의 오다 의원 파벌에 있기 때문에 지금은 따를 수밖에 없다.
“배려 감사합니다. 오다 의원님.”
빈우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들자 오다 의원이 묘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다.
“저어기, 팀장님?”
약간 조심스러운 목소리. 이럴 경우는 상원의원으로서가 아니라 때는 개인적으로서의 오다 히토미다.
“네, 의원님.”
“이제 좀… 우리 서로 친하게 지내도 되지 않을까요?”
“친하게요? 혹시 저와 의원님이요?”
의아해하며 질문하는 빈우에게 오다 의원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약간의 홍조는 덤이다.
“허어, 조사대상과 친하게 지내시려는 겁니까? 빨간 망토를 키우는 늑대 같군요.”
“흥, 그러면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알아두세요.”
오다 의원은 자신의 농담에 빈우가 웃자 그녀도 같이 웃었다.
“앞으로 편하게 히토미라고 불러주세요. 아, 물론 사석에서 만요.”
빈우는 상원의원의 이름을 툭툭 부르는 자신의 모습이 잘 상상이 가질 않는다. 차라리 고양이가 호랑이 보고 ‘야 이 돼지야.’ 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머뭇거리는 빈우에게 오다 의원이 장난스레 덧붙인다.
“아니면 히토미 누나도 괜찮아요.”
“…히도이.”
“네? 뭐라고 하셨죠?”
“아, 시험 삼아 작게 ‘히토미’라고 불러봤습니다.”
“아하하.”
“뭐랄까, 당장은 힘들지만 앞으로 천천히 시도해 보겠습니다. 히토미… 의원님?”
“뭐에요, 그게.”
한 단락 마무리 짓고 긴장이 조금 풀리자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그녀의 뇌리에 갑자기 떠올랐다.
“저기, 김 팀장님.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의원님.”
잔뜩 긴장한 빈우에게 히토미가 한 말은 영 엉뚱한 것이었다.
“저 혹시 장갑복을 입어볼 수 있을까요?”
“장갑복을요? 의원님께서요?”
의아해하는 빈우에게 히토미의 부탁하는 눈빛이 따라붙는다.
“역시 안되나요?”
“아뇨, 안될 건 없습니다만.”
그렇게 대답한 빈우는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의 육체 정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녀는 태스크 포스 373을 조사하기 위해 육체를 강화하고 왔다. 조사대상이 특수부대다 보니 갈 곳 못 갈 곳 가리지 않고 쳐들어가서 족치기 위해서이리라. 족쳐지고 있는 건 그녀였지만.
‘이 정도면 문제없겠는데? 사고 나도 죽지는 않겠어.’
히토미의 육체 강화 단계는 위험 환경에서 작업하는 엔지니어 정도고 군용 설비와 호환되는 규격이다. 즉, 장갑복의 능력을 100% 끌어내긴 무리여도 입고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다.
가장 중요한 생존력 부분이 보증되자 빈우는 히토미에게 빙긋 웃어 보였다.
“이쪽으로 오시죠.”
빈우가 히토미를 데려간 곳은 바로 옆의 장갑복 거치대였다. 이곳엔 태스크 포스 373 팀원들의 개인 장갑복과 여분의 어벤져들이 있다.
“일단 그럼 어벤져를 입어볼까요. 참고로 우리 팀이 쓰고 있는 것은 전부 지휘관용입니다. 무인기만 사병용이지요.”
호기심과 기대감이 섞인 시선으로 장갑복을 둘러보던 오다 의원이 돌아보며 질문한다.
“지휘관용은 뭔가 다른 점이 있나요?”
“일단 통신 시스템을 상위의 것으로 씁니다. 또 지휘관의 전사는 전투에 차질이 크기 때문에 장갑, 동력, 뭐 모든 부분에서 강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뱅가드 연대는 전원 지휘관용 어벤져를 쓰지요.”
“그럼 지휘관용 어벤져가 그만큼 성능이 뛰어나다는 얘긴데, 왜 모든 어벤져를 그렇게 만들지 않지요?”
순진한 그녀의 질문에 빈우는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거야 상원에서 예산안을 빠꾸, 아니 나가리, 어흠. 실례.”
빈우는 친절하게 개떡 같은 소리를 뱉었지만 다행히 히토미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아, 기억나요. 장갑 보병 강화계획 말씀이죠? 차기 장갑복 개발에 밀려 예산안 통과가 안 되었죠.”
히토미는 말실수 때문에 민망해하는 빈우의 모습을 재밌어라 쳐다보다가 다시 장갑복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겉보기엔 똑같은데요?”
히토미의 말대로 빈우와 위르겐의 어벤져와 무인기 어벤져는 같은 모습,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