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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13화 (113/301)

113화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바로 한 빈우가 다시 설명했다.

“똑같아야죠. 다르면 큰일 납니다. 저게 지휘관이다, 하면 당연히 집중공격을 받으니까요. 뭐 우리야 알아보는 방법이 있지만 말입니다.”

“어떤 건데요?”

“일단 걸을 때 무게 이동이 다릅니다.”

빈우의 말에 히토미가 장갑복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장갑복은 미동도 없이 정지해 있다.

“지금은 서 있잖아요?”

빈우는 다시 헛기침을 했다.

“그렇죠. 이럴 땐 반사음로 구분합니다. 두 기종은 장갑의 재질이 다른 부위가 있어 반사음이 다릅니다.”

빈우는 혀를 입천장에 붙였다 떼며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리곤 싱긋 웃으며 히토미를 돌아보았다.

“어떻습니까? 돌아오는 소리에 확실히 차이가 나지요?”

“…죄송하지만 전 아무런 차이를 못 느끼겠어요.”

“…그렇습니까. 하긴 이건 연습이 좀 필요하겠죠.”

‘미안 아나스타샤. 나 의원님이랑은 좀 안 맞는 것 같아.’

쓸데없는 지식을 자랑하다 헛다리를 짚은 빈우는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물론 손은 장갑복을 기동시키기 위해 메뉴를 켜고 있었다.

“그럼 이제 한번 일단 입어보실까요?”

빈우가 명령을 내리자 대기 중이던 어벤져 하나가 부팅되어 무인 상태로 걸어오기 시작한다. 그걸 본 오다 의원이 놀라서 펄쩍 뛴다.

“왓! 누구예요! 누가 저기 숨어있는 거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히토미는 이것도 빈우의 숨겨진 계획인가 싶어서 기겁한 것이다. 의심에 찬 눈초리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상원의원의 모습에 빈우는 염통이 쫄깃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일도 한두 번이지, 자꾸 그녀를 놀라게 하거나 겁을 먹게 만들면 그게 고의든 아니든 좋은 꼴 못 본다. 일차로는 레드우드가 대노해서 빈우의 모가지를 자르려 할 것이고, 이차로는 그녀의 동료 상원의원들이 잘린 빈우의 머리통으로 피구를 할 거다.

“그냥 무인 기동입니다. 진정하시죠.”

빈우는 이번에도 마음에 상처를 입으며 상원의원을 안심시켰고 제풀에 호들갑을 떤 히토미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빈우는 아주 조심스럽게 절차를 진행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단 착용자 등록부터 하겠습니다. 의원님, 두뇌 칩의 회선을 열어주십시오.”

“열었습니다.”

히토미가 두뇌 칩을 열자 빈우는 그녀의 정보를 어벤져에 입력시켰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역시나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예상대로 명령체계에 약간 문제가 있군요.”

“어머, 군용 장비라 저 같은 민간인은 못 입는 건가요?”

궁금해진 히토미가 빈우의 어깨너머로 화면을 살펴본다.

“그 문제가 아닙니다. 원래 군인들은 상위 지휘체계의 명령에 따르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의원님께선 상원의원이신 데다 조사관의 신분이시다 보니, 지금 제 명령권 밑으로 안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그 항목만 지우면 입으시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빈우는 항목 중 몇 가지를 삭제하고 다시 착용자 등록을 했다. 그리고 히토미의 두뇌 칩에서 운동 신경계를 뽑아내 장갑복의 구동계와 연결시켰다.

히토미는 자신의 두뇌 칩에 누가 접속한다는 경고를 보면서 빈우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아까 말씀하셨던 명령에는 어떤 게 있나요?

“예를 들어 장갑복은 무인 기동을 하거나 착용자의 신체 부위가 심각하게 손상되었을 경우 해당 부위를 폐쇄하는 기능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착용자가 의식을 잃었거나, 명령을 내릴 수 없는 경우에는 이를 지휘관이 대신 실행할 수 있습니다.”

“무인 기동과 폐쇄요.”

히토미도 들은 적이 있다. 또 영화에서도 본 적이 있다. 우주 공간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장갑복이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팔다리를 자르는 모습을.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이 악당의 장갑복에 접속해 놈의 목을 뎅겅 하는 모습들을.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얼굴에 다 나옵니다. 에헤이, 겁먹지 마시라니깐요. 그거 작업복에도 있는 거예요. 또 말씀드렸잖습니까. 의원님은 이 명령체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요.”

빈우가 이렇게 안심을 시켜줘도 히토미는 불안했다. 그래서 차라리 입지 말까, 하고 고민을 할 때쯤 빈우의 작업이 완료되었다.

“이제 의원님과 장갑복의 운동 신경계를 연동시켰습니다. 자, 오른팔을 천천히 들어보십시오.”

“어머, 입지 않아도 되나요?”

“예. 입기 전에 해보는 테스트라서 굳이 착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해보십시오.”

빈우의 말에 따라 히토미가 오른팔을 들자 어벤져의 오른팔도 같이 올라갔다.

“와아아.”

장갑복의 움직임에 감탄한 히토미가 이리저리 움직이자 장갑복도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인다. 신나서 몸을 움직여보는 그녀의 모습에선 아까의 불안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하, 잘하시는군요. 그럼 다음 단계로 가보죠. 자 바로 서보십시오.”

상원의원과 장갑복 둘 다 몸을 곧게 세우자 빈우가 그녀의 앞에 다가섰다.

“잠시 실례.”

그리고는 공구 박스에서 토치를 꺼내 히토미의 코앞에서 점화시켰다.

“꺄아!”

갑자기 눈앞에서 불길이 일자 히토미는 놀라서 자빠졌고 장갑복도 같이 널뛴다.

“자, 됐습니다. 신경 반응 상한선 체크 오케이. 어라? 의원님?”

장갑복의 신경계와 구동계 항목의 점검을 마무리한 빈우는 바닥에 쓰러진 히토미를 보고 당황해했다.

“거짓말쟁이, 겁주지 않는다 해놓고선. 으으으.”

주저앉아 칭얼대는 히토미의 모습에선 보안국장을 탈탈 털던 냉철한 상원의원의 그림자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죄송합니다. 필요한 절차라 부득이하게 했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그러면서 빈우는 히토미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벌써 몇 번째 부축인 지 모르겠다. 히토미가 담이 작은 것인지, 아니면 빈우가 좀 세게 나가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다음부턴 이런 거 할 때 꼭 미리 말씀해주세요.”

“그럼 의미가 없죠. 이번엔 의원님을 놀라게 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그 말에 히토미가 샐쭉해져서 빈우의 팔을 장난스레 뿌리친다.

“에잇! 무슨 필요인데요?”

“직접 보시죠.”

빈우가 메뉴를 조작하자 장갑복이 방금 히토미가 했던 것처럼 놀라서 자빠진다.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제3자의 시선으로 보게 된 히토미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빈우를 쳐다봤지만, 의외로 그는 진지했다.

“장갑복을 움직이는 데는 여러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것이 착용자의 움직임을 내부 센서로 감지해서 움직이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방법은 중간에 센서의 물리적인 반응시간이 있어 속도에 약간 지연이 생깁니다.”

언제 펄쩍 뛰었냐는 양 멈춰있는 장갑복을 향해 빈우가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다음은 방금 의원님이 하셨던 것처럼 두뇌 칩에서 신경 신호를 직접 빼내 장갑복에 동기화시키는 것인데, 이것은 착용자의 이성과 본능적 반응 사이에 충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방금 보셨다시피 매복을 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착용자가 놀라게 되면 장갑복은 날뛰게 되지요.”

빈우의 설명에 히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갑복은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여야 하긴 하지만, 불필요한 행동까지 따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 두 가지 방법을 조합하면서 한 번 더 보강했습니다. 신경 신호를 필터에 거치는 거죠. 먼저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이렇게 반응을 끄는 겁니다.”

그리고 빈우는 방금 히토미가 놀랐을 때의 신경 신호 반응을 다시 재생했다. 그러나 눈앞의 어벤져는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어머. 그러니까 본인이 놀라도 장갑복은 불필요하게 움직이지 않는군요.”

“맞습니다. 거기서 발전하면 이런 응용도 있지요.”

빈우는 다시 메뉴를 조작했다. 같은 신경 신호지만 이번에는 어벤져의 제트팩이 갑자기 켜진다. 실제로 분사는 안 했지만 노즐이 작동한 것이다.

“이번엔 이 놀라는 신호를 적의 기습으로 해석해 자동으로 회피기동을 하는 겁니다.”

“이번 기능은 좋은데요? 착용자의 반응에 장갑복이 스스로 움직여주네요.”

“네, 실제로 많은 신병들이 이런 자동반응 덕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죠. 이외에도 이런 것도 있습니다.”

빈우의 조작에 따라 어벤져는 방패를 들어 올리거나 엄폐 행동을 취하는 등 다양한 행동을 선보였다.

“어차피 베테랑이 되면 안 쓰긴 합니다만, 중요한 기능이란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거기까지 설명한 빈우는 어벤져를 앉히고 후방부를 열어 오다 의원이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히토미는 장갑복 안을 한 번 살펴보더니 빈우에게 질문했다.

“여기 이것들은 뭐죠?”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는 뭔가 동그란 판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은 장갑복 안쪽 군데군데에 있었다.

“장갑복과 착용자를 연결하는 접속 단자입니다. 여기와 연결하죠.”

빈우는 자신의 팔을 걷어 접속구를 보여주었다.

“착용자의 신경계와 구동계를 장갑복에 연동시켜, 보다 더 안정적인 움직임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렇게요.”

그리고 접속 단자에서 뾰족한 침들이 나오게 해서 접속 방식을 보여주었다. 즉 저 살벌한 침들이 몸 안으로 박힌다는 이야기다.

“으와아. 아프겠네요. 그래도 하나 정도면 참을 수 있을지도….”

“아뇨, 딱 맞는 구멍에 맞춰 들어가니까 아프진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가 아닙니다. 보시죠.”

그러면서 빈우는 장갑복 내부의 여러 곳의 접속용 침을 동시에 뽑아내 보였다. 팔, 다리, 가슴, 목 등등 여러 군데에서 뾰족한 침들이 솟아 나왔다.

“원래는 착용자의 신체에 맞춰 단자 위치들 조절합니다만, 의원님은 단자 시술을 받지 않으셨으니 이건 생략하죠.”

하지만 안쪽으로 삐죽삐죽 솟아난 침들을 본 불쌍한 상원의원은 다시 겁에 질렸다.

“이거 안 찌르는 거죠?”

“네? 의원님은 군용 강화를 안 하셨잖습니까? 아쉽지만 사용 못 하십니다.”

이번에도 핀트가 안 맞는 빈우의 말에 히토미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그게 아니라 저거 혹시 튀어나오면 어떻게 하냐구요. 저 찔리잖아욧!”

상원의원의 고함에 특수전 사령부의 소령이 찔끔한다.

“아니, 켜지도 않았는데 단자가 왜 작동합니까. 구멍도 없는데 엄하게 단자가 튀어나올 리는 없잖습니까. 그리고 저거 약해요. 박히긴커녕 잘못하면 휩니다.”

그래도 히토미는 미심쩍은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진짜 작동 안 하죠? 그리고 안 찔리는 거 맞죠? 분명 휜다고 하셨어요.”

“속고만 사셨나. 왜 그리 의심이 많으십니까.”

빈우가 툴툴대자 히토미가 드물게 발끈하더니 확 쏘아붙였다.

“의심? 저한테 군용 마카롱 먹이시고, 함 내 주의 사항에 대해 띄엄띄엄 알려주셔서 공포 분위기 조성하시고, 또 보안국을 만났을 때는….”

반은 살기 위해, 반은 장난으로 쏘아붙이는 히토미의 기세에 빈우가 밀려 쩔쩔맨다.

“거 육체 강화도 하신 분이 엄살은.”

사태를 수습하고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뒤로 빠진 빈우는 메뉴를 다시 점검했다. 그리고 히토미의 강화 항목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우리 피부에 방탄 처리를 해서 단자 침이 안 박힐 건데, 의원님은….”

“제가 뭘요? 무슨 처리요?”

숨을 고르느라 빈우의 마지막 말을 잘 듣지 못한 히토미가 질문한다.

“아닙니다. 이제 이걸 입으시면 됩니다.”

하지만 빈우는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넘어가기로 했다.

“말씀하신 게 뭐죠? 뭐에요, 그게 뭐냐구요.”

따라붙는 히토미에게 빈우는 뭔가 시커먼 재질의 천을 꺼내 들었다.

“내복입니다. 장갑복을 입을 때 안에 입는 옷이죠. 저희야 입을 필요가 없지만, 의원님께선 이걸 입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히토미가 받아든 장갑복용 내복은 무광의 검은색 쫄쫄이였다. 옷 여기저기엔 금속 링이 있었는데 그 위치가 가지는 의미는 히토미도 알 것 같았다.

“여기 있는 금속 링들이 말씀하신 접속 단자용 구멍인가요?”

“맞습니다. 거길 통해 장갑복의 단자가 신체에 접속되죠. 하지만 지금은 잠겨있고 내복엔 가벼운 방호기동이 있으니, 단자 침에 찔릴 걱정을 안 하셔도 됩니다.”

그제야 안심한 히토미는 옷을 갈아입으려 했다.

“팀장님, 근데 탈의실은 어디죠?”

“탈의실요?”

“네, 내복으로 갈아입어야죠.”

“…아차.”

빈우의 나지막한 탄성에 히토미는 다시 눈이 동그래졌다. 이럴 때는 꼭 트러블이 생긴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저흰 원래 여기서 훌렁훌렁 갈아입습니다만… 의원님은 그러시면 안 되죠. 저쪽 컨테이너 뒤쪽에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그 말에 히토미는 내복을 들고 뽀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컨테이너 뒤로 가려다가 잠시 멈춰 서더니 빈우 쪽을 돌아보았다.

“이쪽 보시면 안 돼요.”

그리고는 다시 컨테이너 뒤로 들어갔다.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몸에 착 달라붙는 장갑복용 내복을 입은 히토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모습이 좀 이상하다. 특히나 가슴이.

“가슴이… 좀 답답하네요.”

히토미의 거대한 가슴이 탄력 있는 장갑복에 압박되어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가슴이 불편한지 심호흡을 하고 어깨를 굽혔다 펴는 등 옷에 익숙해지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빈우의 잘못이다.

분명 빈우는 히토미의 가슴둘레를 알고 있기에 그에 맞는 사이즈의 내복을 그녀에게 주었다. 하지만 가슴둘레와 컵 사이즈가 다르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빈우는 이럴 때의 해결방법을 잘 알고 있다.

“원래 그렇습니다. 조금 지나면 익숙해집니다.”

웃는 낯으로 히토미를 안심시킨 빈우는 장갑복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자아 힘 빼시고, 들어갑니다. 들어가요.”

빈우는 히토미의 어깨를 잡고 어벤져 속으로 슬슬 집어넣었다.

“아야야, 아파요. 차라리 제가 할게요. 억지로 밀어 넣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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