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연방의 행성 분류는 관리에 따라 크게 직할령과 자치령의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직할령은 말 그대로 해당 행성을 연방 중앙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곳이다. 이곳의 주민들은 모두 하원의원이며 사회 인프라 수준은 연방의 그것이다.
다음 자치령은 과거 연방이 창설될 당시부터 합류를 거부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떨어져 나간 행성들이다. 이들은 이름 그대로 중앙정부로부터 직접적인 통치를 받지 않는다. 또한 연방에 세금을 납부하고 정해진 가이드 라인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행성 안에서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중앙정부는 간섭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들 자치 행성의 총독은 자기가 다스리는 행성에서는 황제나 다름없으며 실제 몇몇 자치령에서는 총독이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기도 한다. 물론 공문서에는 얄짤 없이 총독으로 기록되지만.
이런 자치령의 문제는 정치, 사회, 과학, 공업들의 여러 분야에서 편차가 너무나도 크다는 점이다. 어떤 친 연방 자치령은 연방에 근소하게 쳐지는 과학기술력을 보이는가 하면, 어떤 자치령은 아직도 화약식 병기를 제식 화기로 쓴다.
허나 그중에서 드물게 연방과는 아주 동떨어진 기술체계를 가지는 자치 행성도 있다. 그리고 이 경우는 대부분 외계종족의 기술과 관련이 있다.
바로 이곳 디안머처럼.
“디안머의 지상군이 방어전에서 꽤 귀찮다면서?”
전함 아프사라스의 함장 은카우 니카우 대령의 말이다. 그는 지금 발아래에 펼쳐진 자치 행성 디안머를 보며 혼잣말하듯 질문했다. 그 혼잣말을 받은 것은 부장 바바라다. 인공지능의 홀로그램인 그녀도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심심했는지, 함장을 따라 아래쪽 화면을 보고 있다.
“아마도요. 디안머의 개척민들은 예전부터 디안머의 원주민들을 길들여 병기로 쓰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곳은 디안머의 체납된 세금을 징수하러 온 징수 함대, 그중에서도 기함인 아프사라스의 전투정보실이다. 이 징수 함대는 전함 아프사라스를 위시해서 순양함 2척, 구축함 7척, 호위 항모 1척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행성 압박용 함대다.
“그리고 이 원주민, 이라고 하기엔 뭐한데… 한번 보시죠.”
바바라 부장이 자신의 홀로그램 화면 한쪽에 디안머인의 자료를 띄운다.
“목 없는 타조 같구만.”
니카우 함장의 솔직한 감상대로 디안머인은 조류형태의 긴 다리에 짤막한 팔을 가지고 있었다.
“네, 일종의 기계 생명체라고 합니다. 개척민들은 신경 연결을 통해 이것들을 움직이고 개조해서 무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무장이라고 해봐야 개척민의 기술력이라면 볼 것도 없다. 하지만 외계의 기술을 응용한 것이라면 조금 골치 아플 수 있다.
“저게 지상군에게 위험한가? 아, 다른 뜻은 없어.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당당한 함장의 질문에 부장이 한숨을 쉰다.
“참 일찍도 물어보시네요. 제가 몇 번이나 자료를 드렸는데 말이죠.”
“미안해. 근데 볼 필요가 없잖아.”
니카우 함장의 뻔뻔한 태도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어차피 발아래의 땅개들이 이쪽으로 대공 공격을 해오지 않는 이상, 그리고 이쪽이 궤도포격을 하지 않는 이상, 전함의 함장인 그가 지상 병력에 대해서 굳이 알 필요가 없다.
“일단 개체별 차이가 있지만, 전고는 대개 10에서 12미터 정도고 중량은 70톤에서 80톤가량입니다. 무장과 장갑이라고 해봐야 개척민들이 나중에 붙인 것이라 기술력도 딱히 별 볼 일 없습니다.”
영상에는 10미터 크기의 목 없는 타조가 장갑을 둘둘 두르고선 짤막한 양쪽 팔에 화약식 대포를 달고 있는 게 보였다.
“뭐야, 걸어 다니는 보행 전차야? 전고가 너무 높잖아. 아군 중화기에 노출되면 녹겠는데.”
“아뇨. 골치 아픈 건 디안머의 무장보다는 수리와 보급 메커니즘입니다. 놈들은 일단 행성 내에서는 연료 보급이 필요 없이 자체적으로 충전이 되고, 어지간한 부상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 수리… 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치유된다고 하네요.”
보급도 수리도 자체적이라니. 니카우 함장은 저 디안머제 보행 병기들이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야, 그거 멋진데? 저거 수출 안 하려나.”
바바라는 부장으로서 니카우 함장을 오랜 기간 모셨다. 그렇기에 저 말이 ‘어떻게 현지 징발할 수 없을까?’라는 뜻을 가졌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아쉽게도 그 메커니즘이 행성계 안에서만 활성화되는 거라,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냥 손이 많이 가는 깡통이 된답니다.”
“그거 정말 아까운데.”
순식간에 흥미를 잃은 니카우 함장은 시선을 자료화면에서 다시 발아래로 돌렸다.
그들이 압박해야 할 디안머는 과거 지구제국 시절 보호령으로 지정된 곳이다. 그러나 제국이 해체될 무렵 이곳의 기록은 삭제되었고-그래서 높은 확률로 군사 관계 행성으로 추정되었고-연방이 창설될 당시 이 사실을 모르는 이주민들이 디안머에 정착했다. 이후 제국에서 연방으로 넘어가던 혼란기에 개척민들은 독립을 선언했고, 오랜 기간이 지나서야 인류연방의 자치령으로 편입되었다. 이름만이라도 연방에 올려두어야 점프 게이트의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회의가 길어지는군요.”
바바라 부장이 말한 회의는 이 징수 함대의 함대 지휘관과 연방 국세청의 징수팀장 간의 회의를 말한다. 이 징수 함대의 지휘관은 모두 두 명이다. 한 명은 함대 지휘관인 라일라 무스후리 소장,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연방 국세청의 파견 징수팀장인 조나단 맥아더다. 함대의 운용에 관해서는 무스후리 소장의 관할이지만, 전체적인 스케줄과 작전에 관해서는 맥아더 팀장의 지휘에 따라야 한다.
“이건 좋지 않은데.”
“안 좋죠.”
니카우 함장의 투덜거림에 바바라가 동의한다.
전체 지휘관들이 모이는 작전 회의라면 모를까, 최선임자 둘만의 독대가 길어진다는 것은 두 지휘체계 간의 대립이 심하다는 의미다.
“세금은 트집이겠죠?”
“그럴걸.”
이번엔 부장의 투덜거림에 함장이 맞장구를 쳤다.
디안머 자치령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방과 큰 문제 없이 지내왔다. 디안머는 꼬박꼬박 세금을 납부했고, 연방이 정한 가이드 라인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벗어난 게 드러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얼마 전 마카로니의 독립소요에 녹색연맹의 스콜피온 전차가 투입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부터다. 물론 스콜피온 전차가 있다 해도 트집거리는 아니다. 그것은 단지 도구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이 스콜피온 전차에는 이상한 외계기술이 들어가 있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연방은 생산지인 글림을 조졌고, 그 기술의 출처가 바로 이 디안머라는 걸 알아냈다. 그리고 문제는 첩첩산중으로 터졌다. 게 중 가장 큰 건은 디안머의 자치주민들이 과거부터 디안머의 토착 원주민들과 공생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조사에 투입되었던 수사관들은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연방이 정한 가이드 라인 중에는 외계종족과의 접촉은 반드시 중앙정부를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이건 꽤 심각한 문제라서 잘못하면 반역죄가 적용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뱅가드 연대가 출동할 수도 있다.
“아 참, 레드우드 중장이 취임연설 때 길길이 날뛰지 않았나?”
“네. 디안머의 집 앞에 전차 풀겠다고 협박을 했죠.”
“뜬금없이 자치 행성을 치겠다고 해서 놀랐는데 다 이유가 있었군.”
지구제국이 눈여겨볼 정도의 외계종족과 이전부터 내통했고, 그 기술과 자재가 유출되어 반 연방 자치세력의 무장으로 흘러 들어갔다면, 디안머엔 즉시 진압부대가 투입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현재는 디안머의 체납된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함대가 와있을 뿐이다.
“우리가 그쪽들보단 부드럽게 치는 편이지?”
그쪽이라고 하면 당연히 특수전 사령부다.
“아예 때리지도 않죠.”
함장의 질문에 홀로그램 속의 인공지능 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연방은 자치 행성이 세금만 내고 지킬 것만 지키면 건드리지 않는다. 다만 안 지키면 바로 건드린다. 특히 이번처럼 세금 건이 그렇다.
자치 행성의 세금은 개인이 내는 것이 아니라 행성 총독이 영토 전체의 것을 내는 것이라 꽤나 액수가 크다. 그래서 밀리면, 그리고 낼 수 있는데 안 낸다면 이렇게 보시다시피 함대가 출동한다. 물론 직접적인 무력행사는 없다. 다만 궤도 상에 놓고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고 무력시위를 해서 기를 꺾는 것이다.
그리고 국세청은 함대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납부가 빨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군 쪽에 조금 규모를 키워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군은 튕겼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에이, 뭔 자치 행성 삥뜯, 아니 세금징수에 순양함까지 끌고 간답니까? 걔네들 움직이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데. 그냥 구축함 몇 척 붙여서 함대 하나 만들어드릴게.”
그러면 국세청 징수팀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역서 뽑아 주세요. 그것도 같이 징수할게요.”
“…감사합니다. 전함은 필요 없으십니까?”
“혹시 항모도 있나요?”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징수 함대는 자치 행성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시위다. 국세청이 요구하면 군은 꽁돈으로 기동훈련하는 셈 치고 전단 하나 꾸려서 보낸다. 그리고 행성 궤도에 갖다 박는다.
“여러분, 성실한 납세자가 됩시다. 걱정 마십시오. 이걸로 여러분들 대가리를 터트리진 않습니다. 대신 너희들 주머니가 터집니다.”
보통 이러면 자치 총독은 냉큼 납부한다. 보통은. 액수가 어마무시하게 커지더라도 낸다.다만 지금의 디안머 같이 세금과 외계종족 접촉 두 가지 다 어긴 경우는 보통의 경우가 아니라 일이 좀 커진다. 협박해서 세금징수 하는 게 아니라 실력행사를 해야 될 수도 있다.
니카우 함장은 아까 부장이 보여준 자료를 기반으로 아군 기갑 병력이 투입되었을 때를 시뮬레이션해서 돌려보았다.
“야, 이거 귀찮네.”
보통 연방은 귀찮은 행성에는 궤도포격으로 쑥과 대나무를 좀 심은 다음 지상 병력을 투입한다. 그런데 디안머는 아직까진 연방의 자치 행성이다. 일단은 함부로 무력행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장갑 보병 같은 지상 병력을 강하시키는 수밖에 없다.
“잠깐. 우린 땅개 없는데. 왜 없지?”
애초에 징수 부대는 세금이 체납된 자치 행성을 협박하는 용도라 지상 병력이 없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묘하게 돌아가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얼마 전 개척 행성 마카로니에서 지상군이 사고를 쳤답니다. 독립을 요구하는 개척민들이 샤다이 물건을 쓴다고 진압부대 지상팀이 싹 쓸어버렸다는데요. 그래서 이번에 국세청에서 요구할 때 사령부에서 거부했다고 합니다.”
“뭐? 생존자 없어?”
“연방 시민들은 예전에 다 퇴거했고, 남아있는 개척민들은 모두 사망이랍니다.”
“에잉. 도대체 어떤 놈들이 일을 그딴 식으로 처리한 거야?”
니카우 함장은 부장이 보여주는 당시의 상황 정리보고서를 보고선 혀를 찼다. 홀로그램 인공지는 부장은 진짜 인간처럼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게 좀 구린 데가 있어요. 진압함대는 2선급인데 지상 병력을 태운 함이 솔리드 베타입니다. 얘네들 정보 사령본부의 실험 타격부대라는데 조금 수상하죠?”
마카로니 소요 진압함대의 편성과 무장을 살펴본 니카우 함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거 대 샤다이 전술이잖아? 처음부터 알고 쳐들어간 거네.”
“네, 그래서 우리 지휘관님께서 징수팀장과 얘기가 길어지나 봅니다. 우리 작전에도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웃고 넘길 얘기가 아닌 게, 지금 디안머는 전과가 화려해서 위태위태하다. 오히려 지상팀이 없다는 게 불안할 지경이다. 아주 궤도포격만으로 끝장을 보겠다는 말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 아까 레드우드 사령관 하니까 생각났는데, 거기 외계기술 수집부대 하나 만들지 않았나? 특수전 사령부에서 엘리트들 모아서 만들었다고 했잖아. 한번 보여줘 봐.”
“태스크 포스 373 말씀입니까. 그 팀은 대 샤다이 전문팀입니다. 이곳 디안머 쪽은 글쎄요…. 게다가 팀 구성원들이 모두 극비라 자세한 건 모릅니다.”
“허, 샤다이 전문이라. 그 팀원들 퍽퍽 죽어 나가겠네.”
샤다이는 연방의 주적이고 가장 위험한 상대다. 그래서 놈들의 기술을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때문에 숱한 인력들이 현장에서 갈려 나간다. 그 사실을 잘 아는 니카우 함장은 태스크 포스 373 팀원들에게 짧은 애도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