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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16화 (116/301)

116화

아프사라스의 함장과 부장의 만담은 인공지능 부장 바바라의 경고로 끝을 맺었다.

“점프 반응. 뭔가가 디안머 궤도로 점프해 들어옵니다.”

게이트 없이 점프한다면 연방의 순양함이거나 샤다이 함선, 혹은 지구제국의 비홀더 전대다. 그러나 연방의 함이라면 바바라가 뭔가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고, 비홀더 전대는 루비콘 라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함대에 경고, 대 샤다이 대형으로 전환해.”

현재 함대 지휘관인 무스후리 소장이 부재중이면 기함의 함장인 은카우 니카우 대령이 함대의 최선임이다. 니카우 함장은 급히 명령을 내렸지만, 다행히도 그 명령이 쓸모 있는 상황이 되진 않았다.

“함장님, 그리폰입니다. 점프해 온 것은 그리폰입니다.”

바바라가 급히 상세화면을 띄운다. 인류 연방의 징수 함대 근처로 점프해 온 것은 지구제국의 비홀더 전대였다. 그중 그리폰이라면 그리폰급 돌격 순양함의 1번 함이다. 바로 최초이자 최강 최악의 비홀더 1전대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제국의 돌격 순양함은 아프사라스보다 월등히 큰 크기를 뽐내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비홀더가 왜 여기에?”

니카우 함장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제국이 해체된 후 비홀더 전대는 루비콘 라인으로 떠났으며, 그 후에 결성된 인류 연방에 대해선 ‘인정은 하나 복종하지는 않겠다.’고 선언했다.

즉 현재 인류 연방군과 구 지구제국 군은 불편한 동맹 관계라 할 수 있다. 이쪽이 요청을 하면 어느 정도 협조는 해주지만 무시할 때도 많고, 연방군이 무력으로 흡수하려고 시도하면 가차 없이 반격해서 박살 내 버린다. 그 정도로 둘 사이의 전투력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저 그리폰급 돌격 순양함 한 척만으로도 임시로 구성된 이 징수 함대 따위는 상처 하나 없이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함대의 모든 배와 승무원들은 긴장하고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그때 그리폰급 돌격 순양함에서 통신이 들어왔다.

-만나서 반갑소. 본관은 비홀더 1전대의 전대장 이 섬 준위라 하오. 그쪽의 지휘관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소만, 가능하겠소?

때마침 징수 함대의 지휘관인 라일라 무스후리 소장이 전투지휘실로 급하게 달려 들어왔고, 그 뒤를 따라 연방 국세청의 파견 징수의 조나단 맥아더 팀장이 들어왔다.

무스후리 사령관은 숨도 채 고르지 않고 급히 대답했다.

“나는 연방의 디안머 방면 징수 함대 지휘관 라일라 무스후리 소장이오. 여긴 어쩐 일이오. 이곳 디안머는 루비콘 라인에서 꽤 멀지 않소?”

무스후리 사령관의 말은 준위를 대하는 것 치곤 꽤나 정중했다. 그럴 법도 한 게 상대방이 준위라 해도 백 년 전의 인물에다 소속 자체가 연방군과 구 제국 군으로 아예 다르다. 게다가 이 섬은 전대장이기도 했으니, 임시로 구성된 소규모 징수 함대의 지휘관인 무스후리 소장과 비슷한 선에 놓인다.

그리고 이곳에서 무스후리 사령관만이 알고 있는 사실은 이 섬이 지구제국 황제의 기수였다는 것이다. 그는 황제의 첫 번째 검이자 대리자로서, 제국의 확장기 때 황제를 대신해 선두에 서서 무수한 외계 종족을 갈아 인류 번영의 거름으로 썼다.

그 황제의 검이 지금은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다. 어울리지 않는 미소다.

-필요하면 규정에 따라 벗어날 수도 있소. 그래서, 대화를 할 수 있겠소이까?

구 지구제국군과의 접촉은 귀중한 기회다. 자치 행성을 압박하기만 할 뿐인 이번 작전이라면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서 만나야 한다. 무스후리 소장의 결정은 빨랐다.

“맥아더 팀장. 괜찮겠지요?”

함대 지휘관은 무스후리 소장이지만 이번 작전의 지휘관은 국세청의 맥아더 팀장이다.

“네, 괜찮습니다.”

국세청도 이번 만남의 중요성을 알기에 즉시 동의했다. 맥아더 팀장의 대답을 들은 무스후리 소장이 고개를 돌려 이 전대장 쪽을 보았다.

“좋소, 어디 대화를 해봅시다.”

무스후리 사령관의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리폰의 부포에서 무언가 발사되었다. 질량은 낮으나 고속의 탄체다. 예상 탄착지점은 기함 아프사라스.

경악한 니카우 함장이 명령을 내리기 전, 함대의 구축함들과 아프사라스의 대공포들이 자체적으로 대응 사격을 하기 전, 함대 사령관 무스후리의 명령이 내려졌다.

“놀라지 마라. 손님이다.”

그녀의 말대로 그리폰이 쏜 것은 장갑복이었다. 제국제의 장갑복을 입은 제국 군인이 고속으로 날아오고 있는 것이다. 연방의 군인이었다면 아무리 강화를 해도 버티지 못할 속도다.

“맙소사.”

누가 한지도 모를 탄성이 전투지휘실 안에 들려온다. 날아온 장갑복은 곧 아프사라스의 관성방어막에 충돌했다.

“엇, 바바라. 방어막을 내리고 즉시 구조대를 편성해서 출동시켜.”

손님이 방어막에 충돌하는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니카우 함장이 놀라서 부장을 불렀다. 그러나 바바라 부장은 대답보다 화면을 먼저 띄워주었다.

“함장님, 구조대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충돌지점에는 멀쩡한 장갑복이 있었다. 함포의 속도로 날아와 전함의 방어막에 부딪히고도 저 장갑복은 멀쩡했다. 니카우 함장은 그제야 깨달았다. 저 제국의 군인은 스스로 감속하지 않았다. 그저 멈추기 위해 방어막에 부딪힌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금은 전함의 역장 제어를 힘으로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세상에….”

두 번째 탄성 역시 누가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첫 번째완 다른 사람이 했다는 것이다.

“함장, 방어막을 내리고 손님을 맞이하게.”

무스후리 사령관의 명령에 니카우 함장은 부랴부랴 방어막을 끄고 격납고를 연 다음 해병대를 보내 손님을 안내했다.

얼마 있지 않아 마중을 나간 해병대로부터 난처한 보고가 올라왔다.

-함장님, 이 섬 전대장이 장갑복을 벗지 않습니다.

장갑복을 입고 날아온 것은 바로 비홀더 1 전대장인 이 섬 본인이었다. 그는 대화를 하자고 하더니 직접 날아온 것이다.

제국 어설트급 장갑복의 위용은 참으로 대단해서, 그 주변으로 모인 연방의 어벤져들이 왜소해 보일 지경이다. 보다 못한 니카우 함장이 나섰다.

“이 전대장, 나는 이 아프라사스의 함장인 은카우 니카우 대령이오. 대화를 하기 위해 오셨으면 장갑복은 벗어주시오. 귀관의 안전은 확실하게 보장하겠소.”

우주복이라면 모를까 장갑복은 엄연히 무장의 하나다. 전투지휘실 같은 함 내 중요시설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당연히 벗어야 한다.

-규정상 선 외에선 장갑복을 벗을 수 없소. 양해 바라오.

이 섬 전대장의 말이 통신을 타고 돌아온다.

말이야 바른 말이다. 선 외에선 당연히 우주복이나 장갑복을 입어야 한다. 허나 지금 그는 정중한 말투로 무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손님으로서 아프사라스에 승함했음에도, 또한 함대 지휘관을 만나기 위해 전투지휘실로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갑복을 입고 있겠다는 것은 이쪽을 못 믿겠다는 뜻이다.

이 전대장은 그렇게 말함으로써 서로 간의 거리를 확실히 긋고 있었다.

“니카우 함장, 그를 그대로 들여보내 주게.”

무스후리 사령관의 말에 함장이 곤란해한다.

“하지만….”

“이미 저 자가 안으로 들어온 이상 우리에겐 막을 방법이 없다네.”

그녀의 말에선 왠지 이 섬이나 비홀더 전대를 잘 아는 것 같은 분위기가 묻어나왔다. 결국 함장의 허락하에 이 전대장은 장갑복을 입은 채로 전투지휘실까지 왔다. 그는 함대 지휘관에서 시선을 한 번 보낸 다음 말을 시작했다.

“이것도 인연이군. 다시 한번 소개하겠소. 본관은 지구제국 비홀더 제1 전대장 이 섬 준위요. 만나서 반갑소.”

지금까지 연방군과 수차례 협력과 마찰이 있었던 비홀더 전대지만, 지금으로선 딱히 적대적인 감정은 없어 보였다.

“함대 사령관인 라일라 무스후리요. 이쪽은 본 함의 함장 은카우 니카우 대령이오.”

무스후리 소장은 일부러 징세 팀장을 빼놓고 얘기했다. 이쪽의 작전에 대해선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섬도 다른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바로 본론을 꺼냈다.

“지난 한 달간 이곳 디안머 항성계를 오고 간 연방군 함선들에 대해 알고 싶소. 정확히는 게이트를 지난 연방군의 군함 목록이오.”

무스후리 소장이 의아해서 반문한다,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보는 거요.”

비록 제국군과 연방군이 몇 번 무력마찰이 있었다 하지만 같은 종족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약간의 교류 정돈 있었고 몇몇 작전은 협동해서 펼치기도 한다. 즉 이 정도 정보는 함대 사령부나 영토 관리국에 요청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정보란 뜻이었다.

“연방군 사령부에 요청하면 언제나 조건을 붙이며 이야기가 길어지더군. 그렇다고 점프 포인터에 직접 접속하려니 연방의 법에 위배되고 말이요.”

점프 게이트를 관리하는 위성인 점프 포인터에 관한 범죄는 중죄다.

예전에 한 자치 행성에서 점프 포인터를 무단으로 나포하려다가 즉시 출동한 뱅가드에게 짓밟히고 직할령으로 종속된 적이 있다.

허나 연방에 비해 압도적인 전력을 지닌 제국군이 단지 싸우기 무서워 건드리진 않을 테고 그들의 말대로 존중해주는 것일 것이다.

아니면 귀찮아서 안 건드리는 것일지도.

“항로 기록이라… 곤란하군. 내 선에서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겠소만.”

무스후리 사령관은 곤혹한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연방 함선들의 항법 자료는, 특히 군의 것은 당연히 기밀이다. 함부로 외부에 유출할 수는 없다.

허나 비홀더 측은 이미 알고 온 모양인지 이 전대장은 거리낌 없이 말을 꺼냈다.

“당신 같은 지휘관급이면 점프 포인터에 이동했던 함선들의 목록을 열람할 수 있지 않소이까?”

그의 말대로 함대 사령관 정도 되면 자기 작전을 위하여 작전 반경 내 함선들의 위치와 이동 경로를 열람할 수 있다.

“물론 무단으로 자료를 노출하라는 것이 아니오. 우리 쪽도 성의를 보일 거외다.”

그 이 섬이, 비홀더 1전대의 전대장이 성의를 보인다고 한다. 그 성의란 것이 돈 일리는 없고 제국군의 장비나 기술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렇다면 거래를 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저쪽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지금으로선 함부로 가르쳐줄 수 없는 노릇이다. 만약 저들이 어떤 연방군 함선을 노리는 목적으로 항로자료를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흠,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오.”

“아쉽게도 줄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소.”

“급하시긴. 아무리 나라 해도 그런 기밀을 넙죽넙죽 넘길 순 없지 않겠소이까.”

“내가 급한 게 아니라오.”

전대장이 급한 게 아니면 그리폰의 함장일 수도 있다. 어쨌든 무스후리 소장은 저쪽이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를 이용하기엔 위험하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나 물어보지. 디안머 항성계를 오고 간 배들의 정보를 원하는 이유가 대체 뭐요?”

목적이라도 알아 놓으면 이쪽에서 거래에 응할지 말지를 정할 수 있다.

“미안하오. 알려드릴 수 없소. 다만 알아낸 정보로 연방 측에 어떠한 위해도 끼치지 않으리란 점은 황제 폐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리다.”

“그렇다면 비홀더 전대 측에서 제공하는 보상이 뭔지라도 알려주시오.”

“글쎄. 그것은 지휘관의 판단에 달렸소. 정보의 질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겠지.”

이 섬의 애매모호한 대답. 그것이 무스후리 사령관을 불안케 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그리폰 1 전대장 이 섬은 거칠 것이 없는 폭군이다. 기다린다거나 불분명한 대답과는 거리가 멀다. 무스후리는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제국 제일가는 학살자이신 이 전대장의 입에서 그런 무른 말이 나올 줄은 몰랐소.”

무스후리 소장의 말에 전투지휘실에 있던 자들은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는 착각을 느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 전대장은 자신에 대한 비난을 태연히 받았다.

“학살자라, 그건 좀 억울하군. 사실 본관은 다른 대원들에 비해 그다지 죽이지 않는 편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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