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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18화 (118/301)

118화

경악해서 태세를 다잡는 징수 함대의 근처로 샤다이 군함이 2차로 점프해 들어왔다.

그런데 놈들의 배는 방금처럼 포들로 도배를 한 전열함이나 기형적으로 거대한 주포를 단 모니터함이 아니었다. 무장들의 배치를 적절히 바꾸어, 보다 전투적인 형태를 띤 배였다.

“함장님, 적은 일반 샤다이가 아닙니다. 리퍼입니다.”

바바라가 경고하는 내용은 니카우 함장도 들은 바 있다. 리퍼, 신형 샤다이라고 불리는 놈들이다. 보고에 의하면 놈들의 전투력은 기존의 샤다이와는 비교가 불가하다고 했다.

“적이 너무 많습니다.”

통상공간으로 들어오는 리퍼 전투함은 벌써 7척. 마치 징수 함대를 포위하든 빙 둘러서 점프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정밀한 포격이 연방의 함대를 향해 쏟아졌다.

구축함들이 항모와 순양함을 지키기 위해 방어대형으로 나섰지만, 리퍼를 상대로는 효과가 없었다. 연이은 명중탄에 전열에 있던 구축함의 충각이 금방 소진되었고, 교대해 나선 후열의 구축함 충각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 그러자 척력장이 없는 구축함 대열에 플라스마 포격이 쏟아져 연방의 함선들을 증발시키고 녹이기 시작했다.

“리퍼, 계속해서 점프해 들어옵니다.”

리퍼는 징수 함대를 사방팔방으로 포위한 다음 중앙으로 포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원래 이런 대형은 빗나간 사격에 아군이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절대 피해야 한다.

하지만 샤다이의 경우에는 예외였다. 이들은 주 무기가 플라스마임과 동시에 자신들의 무기인 플라스마에 대해서 뛰어난 방어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거세어지는 샤다이의 공격에 아프사라스의 곳곳에서 경고음이 들려왔고, 피해가 축적되자 함 내 관성 제어에도 무리가 가는지 폭발의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프리티 선과 샤이닝 게일을 아프사라스 뒤로 이동. 중력 충각이 충전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라. 함재기는 귀환하는 대로 입자 가속 포를 달고 출격, 목표지정은 기함이 하겠다. 디안머에 대피령을 내려.”

무스후리 사령관은 필사적으로 함대를 지휘해 반격의 기회를 잡으려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가 않다.

“바바라, 선체 관성계는 포기해. 남는 동력은 모두 함포로 돌려. 아프사라스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

니카우 함장도 연달아 명령을 내렸지만,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적의 수는 마지막으로 점프해 들어온 것까지 총 47척, 그것도 모두 리퍼의 전투함이다.

그에 반해 연방군은 대 샤다이 함대가 아닌 일반 함대인 데다 다 합쳐서 11척에 불과하다.

샤다이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연방군을 압도하고 있었다. 원래 이런 상황이면 연방군은 도주를 택하거나, 굳이 싸워야 한다면 치고 빠지는 전술을 쓴다. 허나 연방의 행성 궤도에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징수 함대가 후퇴한다면 샤다이는 궤도포격으로 디안머의 인간들을 태워버릴 게 분명하다. 지금으로선 함대가 행성의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대피하도록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

“샤다이가 행성에 접근하게 두지 마라. 죽으려면 그 자리에서 죽어라. 한 치도 물러서선 안 된다.”

그런데 지금 급박하게 흘러가는 아프사라스의 전투지휘실에서 영 기운 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곤란하군. 이래서 내가 서두르라고 했건만.”

비홀더 1 전대장인 이 섬 준위는 지금 일어나는 사태가 마치 다른 사람들의 일 인양 한발 물러서서 보고만 있었다. 전투지휘실마저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말이다.

“뭐 하는 거요. 비홀더 전대도 도우시오.”

무스후리 사령관이 소리쳤지만, 이 전대장은 그저 심드렁하게 대답할 뿐이다.

“내 말 하지 않았소. 줄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고.”

아까 분명 이 섬은 그렇게 말했었다. 아프사라스에 타서 항로자료를 달라고 했을 때, 무스후리가 조금 생각할 시간을 필요하다고 하자 그는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급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고 했었다.

이제야 무스후리 사령관은 알 수 있었다. 급한 것은 바로 징수 함대와 디안머였다. 그리고 그가 성의라고 했던 것은 아마도 비홀더 1전대의 조력일 것이다.

“설마 도망치겠다는 거요! 인류의 적 앞에서? 지켜야 할 시민들을 두고서? ”

함대 사령관의 일갈에도 이 섬은 그저 심드렁하게 대답할 뿐이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소만, 저 낙오자의 사생아들은 당연히 죽일 것이오. 다만 내가 주겠다고 한 보상은 당신들과 저 행성에 사는 것들의 생존이외다.”

순간 사태 파악이 안 된 무스후리 소장을 무시한 이 섬이 명령을 내렸다.

“함장님, 공격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폰의 함장 샹 메이화의 대답이 들린 후, 지금까지 쏟아지는 샤다이의 공격에도 꿈쩍 않던 그리폰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이 섬의 시선에 그리폰의 조준이 느껴진다. 그리폰이 겨누는 타키온 감속기의 운명이 보인다.

마침내 지구제국 돌격 순양함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사냥을 시작하려다 뜬금없이 사자를 발견하고 경악한 들개들의 무리 속으로 포효가 쏟아져 들어갔다.

타키온 감속기는 뭔가를 쏘는 것이 아니다. 이름 그대로 좌표상의 타키온을 잡아 속도를 늦추는 무기다. 그리폰이 공격을 시작하자 우주를 광속 이상으로 날아가는 허수 질량의 입자가 갑자기 빛의 속도까지 감속되었다. 그러자 타키온이 가진 에너지가 급증하면서, 원래대로라면 마주칠 일이 없던 이 우주의 입자와 충돌했다. 막대한 에너지양을 가진 허수 질량과 실수 질량이 반응하자 음중력대가 형성되었고, 중력이 붕괴하자 공간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공간의 붕괴에서 3차원에 존재하는 물질이 버텨낼 도리는 없다. 리퍼 함선들이 차례로 붕괴되며 소멸해 간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악하는 리퍼들의 반격이 그리폰에 집중된다. 하지만 놈들의 자랑스러운 플라스마 공격은 그리폰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렇게 무스후리 사령관의 눈앞에 일방적인 학살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맙소사….”

그러나 그녀는 이 광경을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연속되는 중력붕괴의 여파로 함대 전체가 뒤흔들렸기에 이를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급기야 역장 방어대 가장자리에 있던 구축함 한 척이 거대한 중력파를 맞고 구겨지고 찌그러지다가 결국엔 폭발했다.

하지만 그리폰은 연방군의 피해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을 뿐이다. 타키온 감속기뿐만이 아니다. 그리폰에서 반물질 어뢰가 발사되어 날아가 리퍼 함선의 방어막에 부딪힌다. 리퍼 전투함의 방어막이 버티는 것도 잠시, 억지로 비집고 안쪽까지 파고든 반물질 어뢰는 폭발 대신 외부 격벽을 열었다. 바깥으로 노출된 반물질은 접촉한 물질과 맹렬하게 반응해 빛과 에너지를 발산했다. 물론 반응의 대가는 쌍소멸이다. 반물질 어뢰는 명중된 곳을 지워버리고 그 주변을 격렬한 폭발로 쓸어버렸다.

“함장님, 디안머가 위험합니다.”

바바라의 경고에 눈길을 돌린 니카우와 무스후리는 경악했다.

중력붕괴에서 뿜어져 나온 중력파가 행성을 지켜주는 자기장 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대기권 또한 산산이 흩어버린 것이다. 뒤이어 반물질 어뢰의 폭발에서 발생한 엄청난 양의 전자파와 방사선이 벌거벗은 디안머로 쏟아져 내려가고 있었다.

징수 함대 같은 우주 함선 안이라면 모를까, 자치 행성 디안머의 기술력으론 저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방사선 방어는 불가능하다. 하필이면 전장이 행성 궤도였기에 행성표면의 생명체들은 손쓸 틈도 없이 산 채로 구워질 운명이다.

그리폰은 리퍼들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도 여유롭게 반격을 하고 있다. 그 짧은 시간 이미 절반에 가까운 리퍼 전투함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문제는 그 여파로 연방 함대와 자치 행성 디안머에 심각한 피해가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공격을 멈추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전대장. 적어도 행성 지표에 있는 사람들만은, 그들을 조금이라도 신경 써주시오.”

무스후리 함대사령관은 디안머 지상에 있던 자치 정부민을 생각해서 꺼낸 말이다. 그러나 이 전대장의 안중에 그들이 있을 리가 없다.

“본관이?”

전투장면을 한가하게 쳐다보던 이 섬이 무스후리 소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얼굴에는 명확한 불쾌함이 서려 있었다. 그걸 보고 기가 찬 무스후리가 고함을 질렀다.

“당신은 지구제국의 군인 아니오. 같은 인류를 구해야 하지 않소!”

“저 외계종족과 들러붙은 잡종들이? 입에 담기도 더러운 저것들이 같은 인류라고?”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엔 불쾌함을 넘어 분노마저 서려 있었다. 이 전대장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무스후리에게 다가와 다시 말을 꺼냈다. 낮게 가라앉은 그의 음성은 소란스러운 경고음 속에서도 똑똑히 들린다.

“방금 분명히 말하지 않았소? 항로기록을 주면 우리도 성의를 보이겠다고. 그러면 내 조금 번잡해도 귀 함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싸웠을 거요. 나아가 불명예스러운 일이라 할지언정 당신네가 소중히 여기는 저 잡종들조차도 구했겠지. 허나 호의를 가지고 온 본관이 시간이 없다고 누차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질질 끌다가 시기를 놓친 건 당신이오.”

“그걸 말이라고!”

가증스러운 그의 말에 무스후리는 이를 악물었다. 비홀더 전대는 리퍼들을 개미 짓이기듯 학살할 능력이 있다. 그리고 아마도 연방 쪽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싸울 능력 또한 되리라. 허나 지금의 비홀더 전대는 연방의 함대와 자치 행성에 피해가 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난동을 부리고 있으니, 그때의 제안이 지금은 협박이 되었다.

“주겠소. 자료를 주겠으니 행성 시민들을 구해주시오.”

“인제 와서? 사령관께선 꽤나 일을 서두르는 분이시군. 좋소. 자료를 본 다음 이 나약한 함대만을 구할지 나아가 저 행성의 버러지들도 덤으로 구할지 정하겠소.”

다시 충격이 아프사라스를 덮치자 중력과 관성 제어가 끊긴 전투지휘실에서 사람들이 날아간다. 주변 기기를 잡고 간신히 몸을 추스른 무스후리가 소리쳤다.

“먼저 구하시오. 원하는 자료는 나중에 줄 터이니!”

그 말에 이 전대장은 함대사령관을 무심하게 쳐다볼 뿐이다.

“급한 건 시간만이 아니라오. 굳이 본관이 그 조건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는 없지. 음? 이제야 오는 건가.”

갑자기 이 섬의 등 뒤로 공간이 일렁인다. 마치 일그러진 거울처럼 상이 맺히더니 일렁임이 잦아들자 그곳엔 아프사라스의 전투지휘실이 아닌 다른 장소가 보인다. 은빛 광택이 나는 소재, 곡선이 주가 된 내부 공간. 무스후리 사령관은 저런 모습을 한 물건들을 안다.

“샤다이….”

힘없는 그녀의 말대로 지금 이 섬의 뒤로 리퍼 함선 내부로 연결된 차원 통로가 열린 것이다.

“네놈들이 생각하는 게 뻔하지.”

비홀더 1 전대장은 뒤돌아서서 걸어갔다. 그가 당황하는 리퍼 하나를 잡아채자 놈의 흉갑이 으스러졌고 반대 손으로 주먹을 갈기자 그 리퍼는 숫제 터져버렸다.

이 전대장은 리퍼의 남은 조각을 내던지며 외쳤다.

“알탄훼아나 호민관은 어디 있나. 알려주는 자에겐 자비를 베풀어 고통 없는 죽음을 하사하겠다.”

대답 대신 리퍼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무수한 플라스마 사격이 날아들어 제국제 어설트 급 장갑복에 적중한다. 아니, 적중한 것처럼 보였다. 이미 이 섬은 그 자리에 없었다. 앞으로 달려나가 학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목표를 잃은 플라스마들은 계속해서 날아와 아프사라스의 전투지휘실 안을 휩쓸었다. 기기들이 녹아 폭발하고 승조원들은 타고 증발한다.

허공에 둥실 떠오른 라일라 무스후리의 눈에 붉은색 피보라와 푸른색 피보라가 보인다. 니카우 함장은 허리 아래가 사라진 채 죽어있다. 그 옆으로 반으로 쪼개진 리퍼의 시체가 흘러간다.

-바바라.

말할 힘도 없는 무스후리 사령관이 두뇌 통신으로 아프사라스의 부장을 호출했다.

-네, 사령관 각하.

-너를 임시 함대사령관으로 임명한다. 함대를 수습해 최대한 디안머를 지켜라. 그리고 사건이 진정된 다음 생존자 중에서 최선임 장교를 찾아 함대사령관 직위를 이양해라.

-알겠습니다. 무스후리 소장님. 작동 가능한 의무 로봇을 찾아 최대한 빨리 이쪽으로 보내겠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주십시오.

플라스마에 맞아 몸은 다 증발하고 고급지휘관용 보안 두개골 덕에 머리만 간신히 살아남은 라일라 무스후리였지만, 그것도 손상 정도가 너무 심각했다. 뇌의 생존을 위한 모듈마저 플라스마에 녹아 얼마 버티지 못한다.

-고마워. 바바라. 뒷일을 부탁해.

라일라 무스후리는 자신의 마지막 지시사항들을 정리해서 인공지능 부장에게 보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닫히는 차원 통로 너머에서 서 있는 이 섬의 모습이었다. 그는 아래로는 리퍼의 시신을 짓밟고, 위로는 뒤집어쓴 채 망연히 서 있었다.

그는 정말 따분해 보였다. 백여 년간 계속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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