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지금 빈우는 케트쿤 4 행성에 와 있었다.
케트쿤은 연방의 동맹인 곤충형 종족이다. 하지만 같은 곤충형인 목타하와는 또 다른 계열의 종족이라, 연방이 이들에게 목타하 보여주자, 케트쿤은 그들을 아예 외계인 취급을 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인간이 포유류라고 해도 사자와는 많이 차이가 있지 않은가.
빈우의 앞으로 노예 계급의 케트쿤이 지나간다. 노예 계급은 알에서부터 신경계 성장에 제한을 두어 지능은 낮지만, 시킨 일에는 절대복종한다. 연방으로 말하자면 살아있는 로봇이나 안드로이드인 셈이다. 녀석은 바로 앞에 있는 빈우를 눈치채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쳤다.
-대장님, 괜찮으십니까?
통신으로 찰리하나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번에 녀석은 후방에서 빈우의 백업을 맡기로 했다.
“그래, 아까 한 놈 잡으면서 확인했잖아.”
빈우는 대답하면서 다음 모퉁이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연방의 군사정보국에선 외계종족에 대한 첩보전이나 정보전에 대한 지식을 아주 광범위하게 가르친다. 빈우는 그 지식들을 십분 활용해 이곳 케트쿤 행성에 세워진 연방의 비밀 공장에 잠입하고 있는 중이다.
케트쿤의 감각기관 중에서 주변을 파악하는 것은 겹눈의 시각, 발의 촉각, 더듬이의 후각이다. 이미 빈우는 노예 계급 케트쿤을 하나 잡아 그 체액을 몸에 발라 놓았다. 이제 인간의 냄새는 사라지고 그 대신 이 기지에서 북적대는 노예의 냄새가 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어깨에는 케트쿤 겹눈에 간섭하는 파장의 적색광 램프를 달아놓았다. 이렇게 하면 케트쿤들에겐 빈우의 모습이 빛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된다.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눈이 부시거나 어두워서 안 보이는 것과 유사하다.
물론 이것들은 상위 계급에겐 통하지 않고 신경계가 제대로 발달되지 않는 노예 계급에게만 통하는 조악한 속임수지만 지금으로선 이 정도로 충분했다.
“이 방향이 맞겠지?”
-네, 그쪽만 동력 반응이 있습니다.
빈우는 케트쿤의 복합 밀랍으로 만들어진 복도를 경계하면서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쪽 구역은 조금 이상했다. 3차원적으로 복잡하게 경사를 만들어 꼬아놓은 케트쿤식 내부 둥지 구조가 아니라, 층이 있고 그것들을 겹겹이 쌓아놓은 인간식 건축 구조다.
결정적으로 복도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문이 연방식 재질로 만들어진 연방 방식의 문이다. 이곳부터는 연방의 구역이란 의미일 것이다.
“찰리하나팔, 열 수 있겠나?”
-그런 거 저한텐 무립니다. 오히려 대장님 전문 아닙니까?
녀석의 투덜거림에 빈우는 한숨을 내쉬곤 문 옆의 보안 계기판에 다가갔다. 그리고 품에서 전자기기 침투용 툴을 꺼내 계기판과 벽 사이의 틈으로 크래킹 카드를 밀어 넣었다. 그 사이로 들어간 카드는 잘게 갈라져 저마다 자기에게 맞는 회로를 찾아 달라붙었고, 거기서 추출한 입출력 신호를 빈우에게 보냈다.
그는 외계종족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군사정보국 요원이지만 기본적인 침투기술에 대해서는 교육받았고, 닉스 요원 훈련과정에선 연방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무기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광범위하게 배웠다.
보안 신호를 알아낸 빈우는 관리자 권한으로 들어가 접속기록을 남기지 않고 문을 열었다.
-역시 대장님. 쉽게도 여십니다.
문이 열리자 찰리하나팔이 감탄한다. 이 문의 보안체계는 실로 조잡했다. 오죽했으면 열고 있던 빈우가 혹시 함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나 참, 연방의 최고레벨 기밀이 이따위일 줄이야.’
그의 마음속 푸념을 읽은 듯 찰리하나팔의 통신이 들려온다.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게 다 그렇죠.
“그래, 또 우리는 안의 도둑놈 아니냐.
통신으로 녀석의 킬킬거림이 들려온다.
밖에서 들어오는 도둑 백 명을 막아도 안에서 들고 나가는 도둑 한 명은 못 잡는다는 말이다. 현재 빈우는 연방의 보안체계에 대해 통달해 있는 데다가, 한때 이 프로젝트의 현장 책임자였던 사람이다. 적어도 울토르 프로젝트에 관해선 앞의 큰길이나 뒤의 샛길도 빠삭할뿐더러, 만일을 대비해 프로젝트 내부에 비밀통로마저 만들어 놓은 상황이다.
울토르 프로젝트가 포말하우트 게이트에서 기습을 받고, 마카로니에서 사고를 쳤다고 해도 모든 곳을 바꿀 순 없다. 보안체계의 겉을 바꾼다고 해도 시스템의 전체적인 흐름은 바꿀 수 없기에 빈우는 그 점을 이용한 것이다.
-실제로 들어오는 건 처음이군요.
찰리하나팔의 말대로 빈우가 공장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현장에서 작전을 지휘했고 클론들을 훈련시키기만 했지 이런 클론 제조 공장까지 온 적은 없었다.
“찰리하나팔, 내부구조가 이상하다고 했었지?”
-네, 케트쿤 4의 공장엔 훈련시설이 없었습니다. 원래 클론들의 생성들이 완료되면 기초훈련은 받는데도 말이지요.
빈우가 울토르 클론들에게 가르치는 훈련은 두뇌 칩을 통한 전투지식 주입과 그것을 몸으로 익히게 하는 실전 교육이고, 이 과정은 모두 울토르 중대의 모함인 솔리드 베타에서 이뤄진다. 그전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아 형성과 운동계 관리를 위한 훈련, 또 기초 군사훈련은 해당 공장에서 맡기로 되어있다.
“대신 병동이 크더군.”
-그러고 보니… 병동이 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클론들은 생성 중에 기본적인 군사용 강화 시술을 받는다. 그러면 어지간한 부상은 자체 치유가 된다. 또 장기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부상이라면 아예 예비신체로 교환하면 되는 일이다. 만약 그보다 더 심한 중상의 경우엔 해당 클론은 아예 폐기하고 해체해서 예비신체용으로 재활용하게 된다.
훈련실이 없고 그 자리만큼 병동이 자리한 클론 제조시설이라면 의심이 간다. 그래서 빈우는 여러 후보지 중에서 이곳 케트쿤 4에 있는 제조시설을 먼저 조사하기로 한 것이다.
공장 내부는 노예 계급 케트쿤과 작업용 로봇들만이 있을 뿐 인간은 없었다. 들리는 것은 기계의 가동음이고, 보이는 것은 최소한의 어두컴컴한 조명이다. 빈우는 보안 카메라의 위치와 가동범위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기에 사각과 비는 시간을 이용해 은밀히 이동했다.
-어떻게 보면 보안이 철저하기도 한데 말이죠.
찰리하나팔의 말대로 이런 기밀시설에선 눈과 입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노예 케트쿤과 인공지능조차 없는 단순한 로봇이라면 기밀이 새어나갈 일도 없다. 케트쿤 4에 위치한 울토르 클론 제조공장의 최고책임자는 인공지능과 인간 관리자 한 명뿐이다.
그 인간 관리자도 이 역할을 위해 잠수한 군사정보국의 요원이라 자신의 원래 정체를 모를뿐더러 역할이 끝나면 본래의 인격으로 돌아간다. 게다가 여기 있었던 동안의 두뇌 칩 기록은 잠기기 때문에 기밀은 철저하게 지켜진다.
클론 배양조 구역에 접근한 빈우는 수상한 것을 느꼈다. 성장 중인 클론이 담겨 있어야 할 인공 자궁, 배양조들이 하나도 작동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마카로니의 사건 여파가 컸나 봅니다. 생산을 안 하는데요?
물론 찰리하나팔의 말대로 클론 생산을 중단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배양조 내부를 살펴보던 빈우는 수상한 점을 몇 가지 발견했다.
“이건… 구속구인가?”
배양조 내부에는 클론의 관리 작업과 수술을 하기 위한 로봇팔이 있다. 그런데 지금 빈우가 보는 배양조의 로봇팔 중 몇몇에는 대상을 묶어놓기 위한 구속구가 달려있었다. 원래는 없던 장비다.
“이런 게 왜 있지? 클론을 잡아놓으려고? 그 정도 강도는 안 나올 텐데.”
-성장 중인 녀석을 잡아놓을 수도 있죠.
어차피 클론들의 강화 수술도 뇌에 조작을 가해 가사상태로 빠트려놓고 한다. 난동을 피우거나 움직이면 그 방법을 쓰면 될 텐데 굳이 이런 게 왜 필요할까 빈우는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다른 배양조들도 마찬가지로 구속구가 있었으며 어떤 것은 헤져서 너덜거리고 있었다. 탄소섬유로 만들어 엔간한 몸부림이 아니고서야 끄떡하지 않았을 텐데 저런 것을 보면 미쳐 날뛴 모양이었다.
-와, 이건 제법 날뛴 모양인데요.
중얼거리는 찰리하나팔의 목소리를 들으며 빈우는 투명창이 깨진 배양조의 기록을 조회해 보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것이 있다. 여기 배양조들에 쓰였던 클론 수정란은 빈우의 것이 아니었다.
-실험체 034. 대장님 것이 아닌데요, 여기서 만든 건 울토르 시리즈가 아니군요.
빈우는 정답을 잡은 것 같다. 배양조들의 기록을 자세히 조회하자 새로운 것들을 알 수 있었다. 기록상 여기의 클론들은 제조 중 태아 단계를 벗어나 유아기로 들어가면 그때부터 구속구를 사용한 것으로 나왔다. 그리고 배양조에서 꺼내는 것도 상당히 빨라서 신체나이 7~8세 정도가 되면 바깥으로 꺼내고 있었다.
완전히 완성된 다음 꺼내는 울토르 시리즈와는 달랐다. 왜 어린 육체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조사하면 밝혀질 일이다.
“그다음 자세한 것은 병동에 있겠지.”
-병동이 많은 이유가 이거였군요.
034란 실험체의 클론을 대량생산하고 7세 정도의 어린 나이가 되면 옮겼다. 그렇다면 병동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빈우는 이곳 생산시설에서 병동까지의 이동 경로를 떠올려 보았다.
-여기서 병동은 원래 훈련소가 있던 위치긴 한데, 꽤 의심스럽네요.
찰리하나팔이 알려주는 대로 병동 쪽의 감시는 이상할 정도로 삼엄했다. 다른 공장에선 요충지마다 형식적으로 존재하던 경비 로봇들의 수가 훨씬 많았다.
그런데 경비용 로봇들의 배치가 조금 이상했다. 정확히는 바깥의 침입을 막으려는 것보다는 안을 진압하려는 목적이 더 커 보였다.
-아마 클론의 난동을 염두에 둔 것 같은데요.
“내 생각도 그래.”
빈우는 클론 공장의 바깥 외벽을 천천히 기어가다가 외부 환기구를 통해 덕트로 들어가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조심하십쇼.
“그래, 덕트 안에 감지기가 깔렸지.”
-그게 아니라 저 경비 로봇들 말입니다. 저것들 진압용이 아닙니다. 전투용이에요.
병동의 경비 로봇들은 연방군의 지원 전차 라이노의 새끼처럼 보이는 사족보행 로봇이다. 녀석들의 등 위에는 레이저 건이 장비되어 있었다. 장갑복을 입은 상태라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겠지만, 가벼운 무장을 한 지금은-장갑복에 비해 맨몸에 가까운 상태론-꽤나 위험하다. 아차 하는 순간에 팔다리는 증발할 것이다.
빈우는 천천히 덕트를 침입해 보안지대의 사각으로 들어가 병동 구역으로 들어갔다. 경비 로봇이 지나간 틈을 타 병실 문을 열어보았다. 역시나 잠겨있지만 아까 획득한 관리자 보안키로 열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빈우가 알게 된 것은 이 병실엔 침대가 없다는 사실이다. 다만 장갑복용 거치대들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거치대에는 장갑복 대신 7, 8세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장갑복을 고정하는 금속 구속구에 묶여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상태가 이상해 보인다. 아이들의 팔다리는 뒤틀려 있고 손톱이 길게 자라나 있다. 이빨도 날카롭게 솟아있고 그 위의 눈은 허옇게 변해있다.
-대장님, 이거 설마하니….
“그래. 워프 비스트다.”
워프 비스트로 변한 아이들의 몸 곳곳에는 케이블과 관이 꽂혀있었다. 영양 투입과 데이터 수집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병실에는 8개의 워프 비스트가 있고 병동의 방 개수는 총 30개다. 그러면 얼추 200개 이상의 워프 비스트가 있단 말이다.
-이것들 밖에서 침투하다가 잡혀 온 것은 아닐 테고 말입니다.
“여기서 태어난 놈들이겠지.”
이 아이들의 나이와 아까 배양조의 기록이 얼추 맞아떨어진다. 빈우는 꿈틀거리는 워프 비스트들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며 거치대로 다가가 조사를 했다. 거치대의 데이터 패드에는 해당 워프 비스트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들어있었다, 거기엔 클론의 제조일과 원본명이 적혀있었다.
“모두 실험체 034의 클론이군.”
놀랍게도 케트쿤 4의 클론 제조 공장에서는 울토르 클론이 아니라 워프 비스트를 클론으로 찍어내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