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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20화 (120/301)

120화

병실을 나온 빈우는 다른 병실도 찬찬히 훑어보았다. 대부분의 워프 비스트들은 가만히 숨만 쉬고 있었으나 몇몇은 가끔 발악하듯 꿈틀거렸다. 하지만 구속구는 꿈쩍도 않았다.

그렇게 조사를 계속하다가 들어간 어떤 병실 구석에서 빈우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보았다. 빈우의 시선이 박힌 곳에선 아직 멀쩡해 보이는 남자애가 울면서 열심히 손을 비비고 있었다.

“손 씻을게요. 손 잘 씻을게요. 그러니까 제 병 낫게 해주세요.”

아이는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울고 있었다. 워프 비스트로 변한 클론 속에서 아직 인간인 형태로 있는 클론이다. 정보를 알아낼 필요가 있다.

방안의 감시 카메라를 찾아낸 빈우는 그 사각으로 들어가 해킹 툴을 꺼내 카메라에 붙였다. 잠시 후 카메라가 촬영한 방안 상황을 훔쳐본 해킹 툴이 그것들을 다시 조합해 가짜 영상을 카메라에 보내기 시작했다. 이제 방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들킬 염려는 없다.

빈우는 천천히 아이에게로 걸어갔다. 그 아이는 아직도 손을 문지르고 있었다. 열심히, 란 정도가 아니다. 아주 광적이었다. 볼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의 손은 피부가 벗겨져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가까이 온 빈우를 눈치챈 아이는 흠칫 놀래더니 겁에 질려 빈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굳은 표정을 한 빈우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저 낫게 해주세요. 제… 흑, 벼, 병을 치료해 주세요. 손 잘 씻을게요. 진짜요. 으흑, 그러니까 저 좀 안 아프게 해주세요.”

채 울음을 멈추지 못한 아이는 헐떡이며 빈우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빈우는 그 아이 옆의 데이터 패드를 살펴봤다. 역시 실험체 034번의 클론이고 173번째로 생산된 클론이다.

“그래. 내가 낫게 해주마.”

빈우는 품 안에 있는 진동 나이프를 다시금 확인하며 아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나 치료하기 전에 할 일이 있다.

“그런데 꼬마야, 너 왜 이러고 있니?”

“몰라요, 왜 이런지 몰라요. 엄마가 손 안 씻으면 병에 걸린댔어요. 그래서 흑, 제가 손을 안 씻어서 병에 걸린 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안 와요.”

“그렇구나. 아저씨가 엄마를 불러올까?”

“네,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아아아.”

마침내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이것이 들킬 염려는 없다. 전부 해킹 툴이 중간에서 차단할 테니까.

“자자, 꼬마야. 울지 마. 아저씨가 엄마 찾아올게. 엄마 이름이 뭐니?”

아이는 울음을 멈추려고 노력했다. 피투성이 손으로 얼굴을 닦자 눈코입 할 것 없이 피범벅이 된다. 앙다문 입술 사이론 침과 울음소리 참는 소리가 꺽꺽 새어 나온다.

빈우가 손에서 칼을 놓고 대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 아이는 조금 진정했다.

“어어, 엄마는, 엄마 이름은 마리 라캉이에요. 우리 엄마는 마리 라캉이에요.”

역시 그렇다. 빈우는 이 아이가 자크 라캉의 모습 클론임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자크 라캉으로 알고 있는 이 클론은 빈우를 알아보지 못했다. 마카로니 때와 마찬가지로.

쓰다듬던 빈우의 손이 멈춘 것도 모르고 아이는 계속 말했다.

“아빠는 피에르 라캉, 군인이에요. 아빠한테 미안하다고 해주세요. 집에 늦게 온다고 화내서 미안하다고 해주세요. 그리고 아를르캥한테도 때려서 미안하다고 해주세요. 제발요. 저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요. 제발 엄마 아빠한테 데려다주세요. 저 여기 싫어요. 너무 무서워요. 아프기 싫어요. 안 아프게 해주세요. 엄마, 엄마, 엄마아아아.”

다시 울음을 터트린 클론을 빈우가 자세히 조사해보았다. 두뇌 칩이 있다. 그러나 외부와 통신이 가능한 일반 두뇌 칩이 아니라 단순한 기록 저장과 육체 관리용 칩이다.

보통 연방의 사람들은 15세가 되어야 두뇌 칩 시술을 받는데 이 클론은 육체 연령이 7세에 불과한데도 벌써 칩이 박혀있다. 이유는 뻔하다. 지식을 두뇌에 바로 주입시키기 위해서다.

-대장님, 마리 라캉은….

더듬더듬 찰리하나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마카로니에서 내가 죽였지.”

-그럼, 이 아이는 설마.

“아니, 자크 라캉 본인은 아니야. 클론일 거다. 아마 자크 라캉 본인이 실험체 034겠지.”

빈우는 클론의 두뇌 칩에 접속해 기록을 살펴보았다. 별다른 것은 없었다. 클론 자신을 자크 라캉이라고 믿도록 조작된 기록이다. 그 외에도 세뇌를 위한 프로그램들도 들어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클론이라면 바로 속아버리고 자기 자신을 자크 라캉이라고 굳게 믿을 것이다. 이런 건 요원들의 뇌를 잠수와 부상, 트리니티 패턴으로 주무르는 군사정보국의 특기다.

저 클론은 자신을 자크 라캉이라고 알고 있다. 낳아주지 않은 엄마를 찾고, 주입된 기록 속의 아빠를 찾는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에 울고 있다. 두뇌 칩으로 주입받은 거짓 기록을 자신의 기억이라 믿고 거기에 매달려 있다.

장갑복 거치대에 묶여 울고 있는 자크 라캉의 클론을 본 빈우는 문득 이상한 생각을 떠올렸다.

‘자신이 클론이고, 기억과 기록이 주입된 가짜라면 저 슬픔과 눈물도 가짜일까? 고래기름 마가린, 견과류 분말로 만든 빵, 식물 뿌리를 태워 볶은 커피, 옥수수로 만든 감미료….’

-저 대장님, 생각 중에 죄송합니다만….

“그렇지.”

빈우는 두뇌 칩을 조작해 클론을 재운 다음 좀 더 조사를 했다. 그러나 여기서 더 이상 나올 것은 없어 보였다. 빈우는 다른 클론들도 살펴보았다. 주변의 워프 비스트로 변한 클론들의 뇌에도 자크 라캉으로 세뇌시키기 위한 기록들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조금 다른 기록들도 있었다.

“워프 비스트로 변할 당시의 신체 변화기록이다.”

-그러면 워프 비스트의 발생 원리에 대해서도 알아낸 겁니까?

칩에는 신체변화뿐만이 아니라 체내 신경 신호와 화학전달물질들의 변화에 대한 기록들도 있었다. 그걸로 보아 여기 울고 있던 클론은 아직 워프 비스트로 변한 적이 없었다.

“우리야 모르지. 하지만 이곳 공장에선 알아냈을지도 모른다. 또 클론들의 두뇌 칩에 이 이상의 고급 정보는 없다.”

빈우가 클론과의 두뇌 칩 접속을 풀 때쯤 찰리하나팔이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왜 치료대상자인 자크 라캉이 이렇게 복제되어있고, 그 클론들은 또 왜 워프 비스트로 변해 있을까요?

“워프 비스트 변이는 연방에서도 드문 일이다. 아마 동일한 육체 정보를 가진 클론을 만든 다음 그것들을 워프 비스트로 만든 게 아닐까? 그래서 이렇게 늘어난 실험체를 연구해 치료방법을 찾으려 했을 수도 있지.”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감염을 시켰단 말입니까? 아직 연방은 워프 비스트의 발생 원리에 대해서도 모르는 눈치던데.

“알아냈으니까 이렇게 감염을 시켰겠지.”

워프 비스트의 원리에 대해선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그래서 연방은 이런 방법을 썼을 것이다. 같은 조건을 가진 환자를 계속 만들어 발병과 감염 원리를 알아낸 다음 치료방법을 찾아내는 것 말이다.

그렇다 해도 이건 심했다. 빈우 스스로가 지원한 군용 프로젝트인 울토르 프로젝트라면 모를까, 아직 어린아이를 상대로 클론을 만들다니. 너무나도 잔혹한 처사다.

-그런데 클론에 굳이 이런 세뇌용 프로그램까지 넣을 필요가 있습니까? 치료라면 그냥 육체만 만들면 될 텐데요.

“그러게 말이다. 또 왜 하필 자크 라캉의 자아일까. 어째서 자크 라캉과 똑같은 육체에 똑같은 자아가 있는 클론이 필요한 것이지? 치료에 그런 것도 필요한 걸까?”

찰리하나팔도 골똘히 생각하는 듯 보였지만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마카로니에서 마리 라캉은 로봇에 자기 아들의 허수아비를 넣고 진짜 아이처럼 대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었지. 거기는 허수아비가 들어간 로봇이고, 여기는 허수아비가 들어간 클론이라.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군.”

마카로니에서 빈우의 손에 죽은 마리 라캉은 아들의 허수아비가 든 로봇을 정말로 자식처럼 대했었다. 그래서 처음에 빈우는 그것이 감염된 자크 라캉을 숨기려는 방편으로 생각했었다. 워프 비스트로 변이한 육체를 감추기 위한 사이버 신체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빈우가 그 방에 나타났을 때, 마리는 빈우를 알아보았지만 그 로봇은 빈우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저씨, 누구세요?’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자크 라캉의 허수아비는 김빈우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빈우는 그 로봇을 인질 삼아 마음껏 고문할 수 있었다. 울토르 프로젝트의 기획자인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비서이자 보안국 요원이며, 동시에 연방의 탈주자인 마리 라캉을 말이다.

“흐흠, 시나리오 한 번 써보자.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자크 라캉을 치료하기 위해선, 연방에서 금지하고 있는 클론으로의 뇌 이식밖에 답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클론 생성 동안 자크의 뇌를 로봇에 옮겼다고 마리를 속인 것일까? 그게 아니면 치료 기간을 벌기 위한 눈속임? 그러니까 연구를 위해 원본인 아들은 치료 명목으로 빼돌리고 그동안 허수아비를 심은 로봇을 어머니인 마리 라캉에게 던져준다는 얘기지.”

-혹은 이 클론들을 진짜 그녀의 아들로 위장해서 보내주는 방법일 수도 있지요.

“이거든 저거든 정확하게 들어맞는 게 없군. 답을 알려면 좀 더 정보가 필요해.

방을 나선 빈우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찰리하나팔을 불렀다.

“너 엘리자베트 허드슨을 기억하나?”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네, 정보분석국 리처드 허드슨의 딸이죠.

머뭇거리는 찰리하나팔의 대답이다. 당시 녀석은 엘리자베트 허드슨을 죽이는 데 반대했었으니 좋은 기억은 없을 것이다.

“그래, 워프 비스트로 변하던 중 치료를 받았다고 했지. 하지만 완전히 치료되진 않았어.

-그래서 대장님이 죽이셨고요.

녀석의 말에 비난의 기운이 있었지만 빈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은 하비에르 부뉴엘이다.”

자신의 눈앞에서 가족이 죽어갈 때도 철없이 웃던 아기의 미소가 떠오른다.

-네. 아기를 뺀 모든 가족이 떼 몰살당했죠. 우린 거기서 얻은 정보로 몇 다리 거쳐서 여기 케트쿤까지 오게 되었고 말입니다.

“그래, 하비에르 부뉴엘은 엘리자베트와는 달리 완전히 치료되었다. 적어도 겉보기엔.”

그래서 빈우는 아기인 하비에르는 죽이지 않고 그냥 놔뒀었다.

-설마… 순서입니까?

그제서야 찰리하나팔도 뭔가 깨달은 것 같다.

“그래. 치료 대기자 목록에는 자크 라캉, 엘리자베트 허드슨, 응우옌 반쭝, 하비에르 부뉴엘. 이 네 명이 있었다. 시간대 순서지. 그중 엘리자베트 허드슨은 아직 치료가 완전치 않았고 하비에르 부뉴엘은 완치된 것처럼 보였어.

-응우옌 반쭝은 소재지 파악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자크 라캉은 마카로니에서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허수아비였고 사실은 여기에 클론이 생산 중이었죠. 대장님 말씀대로 시간대 순서라면… 정말 자크 라캉을 실험체로 삼아 치료법을 찾아낸 걸까요? 초기에 발병한 자크 라캉은 치료가 힘들었고, 후에 발병, 이걸 병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워프 비스트가 되어가는 엘리자베트 허드슨은 어떻게든 진행을 늦추고 치료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200개 이상의 클론이다. 2개 중대에 달하는 클론을 갈아댔으니 치료법을 찾아냈을 수도 있지.”

연방의 무식한 치료방법에 둘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런데 이건 전부 다 우리들의 추측에 불과하진 않습니까? 보다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이 이상 정보를 알아내려면 이곳의 데이터베이스에 직접 접속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현재 빈우가 가진 장비로는 이곳 서버를 관리하는 인공지능을 조종할 방법이 없다.

고민하던 빈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러시안 티를 한 잔. 잼도 마멀레이드도….”

-설마하니 여기 관리자 인공지능에 백도어 심어놓으신 겁니까?

찰리하나팔은 빈우가 읊는 고전 명작의 명대사에서 빈우가 뭘 할지 금방 눈치챘다.

“아쉽게도 아니야. 그래도 직접 접촉해봐야지.”

-관리자에게 접속하는 것은 너무 위험부담이 큽니다. 들키면 지금처럼 숨어서 행동도 못 합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멈출 순 없어. 이런 불확실한 추측만으로 안 돼. 나에겐 확실한 정보가 필요해.”

클론을 뒤로하고 병동을 나선 빈우는 즉시 가까운 통신 터미널로 달려갔다. 그리고 아까 만들어놓은 관리자용 보안키를 사용해 메인 서버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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