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22화 (122/301)

122화

빈우는 쿠키 반죽을 하고 있었다.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초코 쿠키다. 어린 손으로 힘들게 반죽을 하는 빈우의 옆으로 한 여자아이가 살금살금 다가와 기웃거린다.

“뭘 만들어?”

빈우 또래의 여자아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어본다.

“초코 쿠키.”

대답하는 빈우의 목소리엔 힘이 없다. 엄마와 만들 때는 그렇게나 재미있고 즐거웠는데 지금은 지루하고 따분하고, 재미가 없었다. 반면 여자아이는 방긋 웃으며 계속 말을 걸어왔다.

“나도 초코 쿠키 좋아해.”

그래도 우울한 빈우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그저 반죽만 계속 휘저을 뿐이다. 너무 반죽하면 쿠키가 딱딱해진다고 엄마가 말했던 기억이 났지만, 손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난 엘리자베트라고 해. 엘리자베트 허드슨이야. 네 이름은 뭐니?”

한 걸음 다가서며 묻는 엘리자베트의 물음에 빈우는 못 이겨서 대답했다.

“김빈우.”

그러자 왠지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반죽을 치대는 손에도 서서히 활기가 돌아왔고 우울함도 약간 가셨다.

“그런데 빈우야, 혹시 우리 아빠 어디 있는지 못 봤니?”

“아빠? 네 아빠 이름이 뭔데?”

“리처드 허드슨이야.”

그 말을 듣고 뭔가가 생각난 빈우가 고개를 돌렸다. 저쪽 마당 한편에 리처드 허드슨이라 적힌 비료부대가 있다. 빈우는 얼른 엘리자베트의 시선을 쿠키 반죽으로 돌렸다.

“반죽 다 됐다. 이제 우리 담아서 구울까? 굽다 보면 엘리자베트, 네 아빠도 돌아오실 거야.”

“응, 좋아.”

빈우는 쿠키 반죽을 조물조물 반죽해 오븐 트레이에 차근차근 담았다. 옆에서 엘리자베트도 도와주었다. 반죽을 다 담자 빈우는 팔을 있는 힘껏 벌려 트레이를 잡은 다음 예열된 오븐에 집어넣었다. 아나스타샤 누나라면 한 손으로 가볍게 했을 일이다. 이럴 때마다 빈우는 빨리 크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 쿠키 말고도 여러 가지 다른 요리도 혼자서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나스타샤가 임시로 맡고 있는 농장의 주인이 되어, 인간 사업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동생들도 더 행복해질 것이다. 또 엄마를 찾는 동생들이 울어도, 자신은 안 울면서 어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엄마가 누워서 자는 곳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나스타샤가 약속했으니까. 아나스타샤 누나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마지막으로 좀 더 크면, 좀 더 커서 아주 어른이 되면 빈우는 아나스타샤 누나와 결혼하고 싶었다. 빈우가 커서 ‘나 아샤랑 결혼할래.’라고 했을 때, 엄마와 아나스타샤는 다들 웃었더랬다. 그게 안 될 거라고 생각해 웃은 것이라 생각한 빈우는 화를 냈지만, 두 사람은 이번에도 이런 말을 했다.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것이라고.

“야호, 쿠키 다 됐다.”

엘리자베트의 목소리에 빈우는 오븐 문을 열고 조심조심 쿠키를 꺼냈다. 잠시 식힐 겸 빈우가 트레이를 식탁 위에 올려놨을 때, 엘리자베트가 뭔가를 찾았다.

“빈우야, 너희 집에도 이게 있었구나.”

엘리자베트가 신나서 들어 올린 것은 ‘특제 토핑’이었다.

‘그건….’

빈우는 그게 뭔지 알고 있다. 특제 칵테일 토핑이다. 저걸 쿠키에 뿌려 먹으면 안 된다.

‘잠들게 될 거야.’

목소리가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저것을 먹으면 잠들게 될 거야, 영원히. 쿠키 위에 토핑을 듬뿍 뿌리는 엘리자베트에게 말해야 하는데 빈우는 말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잠이 오는 것은 자신이다. 빈우는 초코 쿠키를 입으로 가져가 양껏 씹어 삼키는 엘리자베트를 말리고 싶었다. 달려가서 빼앗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잠이 몰려온다. 몸이 점점 가라앉는다.

‘일어나, 일어나. 잠들면 안 돼.’

쿠키를 다 먹은 엘리자베트가 눈을 비빈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배 속의 것을 토하게 하면 된다. 이를 악물며 수마에 저항하던 빈우는 긴급메시지에 잠에서 깨어났다.

-김 팀장.

“말씀하십시오. 사령관님.”

깨자마자 본 화면 속의 조지 레드우드는 긴장해 있었다.

-디안머가 샤다이에게 공격당했다.

그 말에 빈우도 덩달아 긴장했다. 디안머는 연방의 자치 행성이며 태스크 포스 373의 지난번 작전 때 이동했던 경유지다. 그리고 특수전 사령부가 있는 오브리가도와 점프 게이트가 직접 연결된 곳이기도 하다.

곧이어 특수전 사령부에 경계령이 떨어졌다는 정보가 빈우의 두뇌 칩으로 들어왔다. 이곳 오브리가도는 지난번 샤다이의 공격으로 워프 비스트의 기습을 받았고, 포로까지 탈출한 전적이 있으니, 이번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일단 대기해라. 자세한 것은 나중에 다시 연락주마.

“알겠습니다.”

통신이 닫힌 다음 빈우는 레드우드가 자신에게 굳이 연락을 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샤다이 함대의 등장을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인 자신에게 알린 이유를.

특수전 사령부는 연방 최정예 대원으로 기밀 작전을 하는 부대다. 때문에 소규모 지상 작전이나 침투 임무에 특화되어있지, 함대전이나 대규모 전면전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전력 낭비기도 하고. 또한 태스크 포스 373은 그런 특수전 사령부 직할팀인 데다가 샤다이의 기술을 수집하는 팀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규모도 매우 작은 편이라, 다른 작전에 투입되기 위해선 재편성을 해야 한다.

하지만 팀원 하나하나가 연방 최고의 대원이고 지금까지의 작전만으로도 리퍼 생포, 리퍼 함선의 잔해 회수, 온전한 샤다이 전열함 나포 등등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리퍼와 전투를 하고 생존했다는 것만으로 태스크 포스 373 팀원들의 가치는 엄청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마 373을 중심으로 새로운 대응팀을 꾸릴 셈인가.’

태스크 포스 373은 지금까지 연방에 암약하고 있는 세력들의 방해로 인해 여태껏 제대로 된 팀 구성을 갖추지 못했다. 허나 샤다이가 오브리가도를 노릴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샤다이전 경험이 풍부한 태스크 포스 373을 핵심멤버로 해서 적의 약점을 노릴 타격팀을 만들려는 작정일 수도 있다.

“전원 집합.”

일단 빈우는 팀원들 모두를 집합시켰다. 잠시 후 빈우는 회의실로 모인 팀원들에게 자기가 들은 내용을 알려주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팀원들은 굳은 얼굴이 되었다. 그중에서 아룹이 먼저 질문을 시작했다.

“적의 규모는 어떻게 됩니까?”

중요한 사항이지만 아쉽게도 빈우도 그에 대해선 들은 게 없다. 빈우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면 아직 제대로 된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의미다. 대규모 샤다이 함대이니 디안머는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으리라.

“아직은 모릅니다. 조만간 사령관 각하께서 알려주시겠죠. 현재 오브리가도와 연결된 디안머 게이트에 샤다이가 나타난 상황이니, 조만간 우리가 쳐들어가든 저쪽이 쳐들어오든 결판이 날 겁니다.”

아쉽게 입맛을 다시는 부팀장 옆에서 이번엔 위르겐이 질문한다.

“팀장님, 잠시만요. 저번 워프 비스트 기습 때 우주 엘프 새끼들이 점프해 와서 우리가 사로잡은 리퍼를 탈출시켰지 않았습니까?”

녀석이 말한 ‘사로잡은 리퍼’는 알탄훼아나일 것이다. 그녀는 373 팀원들에게 잡혀 이곳 오브리가도에 감금되어 있다가, 워프 비스트의 대규모 발생을 틈타 도망쳤다. 타이밍은 절묘하게도 태스크 포스 373이 발 가르단 하스로 떠난 바로 직후였다.

“그때 놈들은 오브리가도로 바로 점프해왔습니다. 좌표를 안다는 얘기겠죠. 그런데 이번엔 왜 오브리가도로 오지 않고 디안머 항성계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겁니까?”

타당한 질문이다. 놈들은 연방과는 달리 게이트를 쓰지 않고 자유자재로 점프한다. 만약 오브리가도의 위치를 안다면 디안머에서 미적댈 게 아니라 이곳을 바로 치면 되는 일이다.

“이건 모니카의 조사결과인데, 샤다이는 대부분 도시국가에 가까운 형태의 점조직으로 모여 살고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전투가 벌어져도 서로 간에 협조만 있지, 통일된 지휘체계나 파벌이 없다더군. 그렇다면 이번에 디안머에 모인 놈들은 다른 분파 놈일 가능성도 있다. 최악의 경우 놈들이 게이트로 위치를 역연산해 이쪽으로 올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음은 파트리샤가 질문했다.

“그런데 우리 팀은 왜 불렀을까요?”

그녀도 나름 짐작은 하고 있겠지만 팀장인 빈우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것 같았다.

“이건 내 예상인데, 아마도 우리 373을 주축으로 해서 함 내 침투나 요인 암살 같은 후방 타격팀을 만들 것 같다.”

빈우의 말을 들은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스크 포스 373은 철저하게 샤다이를 상대하기 위한 팀이며 리퍼와 전투경험이 있다. 이를 살려 전문팀을 키워내면 샤다이에게 크게 한 방 먹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373 팀원들이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열심히 의견을 한창 나누고 있을 때, 블랙 랜스의 회의실에 레드우드의 통신이 들어왔다. 빈우에게만이 아닌 팀원 전원에게로.

-뭐야, 회의 중이었나?

팀원들이 일어나 경례하려는 것을 레드우드가 말린다.

-치워 새끼들아. 그냥 쉬어. 그래, 무슨 회의냐?

“태스크 포스 373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였습니다.”

이어지는 빈우의 설명을 들은 레드우드 사령관이 심드렁하게 말한다.

-…이 집 김칫국 잘하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레드우드의 홀로그램 화상으로 먹던 피자와 씹던 닭 다리가 날아간다. 그리고 레드우드는 373 팀원들이 그러든가 말든가 자기가 할 말을 했다.

-시끄럽다. 본론부터 들어가자. 세 시간 전 자치 행성 디안머의 궤도에 대규모 샤다이 함대가 출동했다.

그러면서 레드우드는 화면을 띄워 보여주었다. 2218년 연방표준시 2월 8일 22시 15분. 디안머로 출동한 징수 함대의 기록이다. 세금을 내지 않은 자치 행성을 압박하러 간 징수 함대는, 원활하고 성실한 납부를 위해 전함과 항모까지 끌고 간 상황이다. 그때 갑자기 지구제국의 비홀더 1전대가 점프해 들어왔다. 그리고 징수 함대사령관과 비홀더 전대장 간의 대화가 이어지다, 이 섬이 징수함대로 직접 날아와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한 달간 이곳 디안머 항성계를 오고 간 연방군 함선들에 대해 알고 싶소. 정확히는 게이트를 지난 연방군의 군함 목록이오.

이 대목에서 빈우를 비롯한 팀원들의 얼굴이 한층 굳어졌다. 태스크 포스 373이 라출노그로 가기 위해 디안머를 경유한 것이 1월 26일의 일이다. 어쩌면 비홀더 전대는 태스크 포스 373을 추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팀의 첫 작전지역이었던 발 가르단 하스는 지구제국의 군사 데이터베이스에 있던 행성 생명체였고, 또한 비홀더 1전대의 손길이 닿은 곳이기도 했으니까.

-김 팀장. 자네 디안머에 갔을 때 별다른 이상 징후는 없었나?

레드우드의 질문에 빈우는 자신의 기록과 기억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았다.

“없었습니다.”

물론 게이트에서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보안국 함대를 보고 그 입에 폭탄을 쑤셔 박은 적은 있지만, 레드우드가 그걸 묻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단 말이지.

팔짱을 낀 레드우드는 지난 한 달간 디안머 게이트를 지난 연방 군함들의 목록을 나열했다.

-봐도 별다른 건 없다. 연방 중앙정보국이 가지고 있는 라출노그 게이트도 아니고, 디안머 게이트라기에 신경 써서 찾아봤지만 이 중에서 373과 보안국 외엔 특별한 것은 없었어.

그리고 사령관은 다시 영상을 재생시켰다. 함대사령관과 비홀더 전대장 간의 대화 도중 갑자기 샤다이가 점프해왔다. 전열함 1척에 모니터함 1척. 비홀더 전대의 등장에 경계하고 있던 징수 함대는 즉시 대 샤다이 진형으로 대응했다. 정석적이고 교과서적인 함대 운용이다. 라일라 무스후리 사령관은 실로 훌륭한 함대사령관이었다.

아무런 피해 없이 샤다이 전함 두 척을 장사지낸 모습에 위르겐이 휘파람을 불었다. 하지만 그 감탄의 휘파람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징수 함대의 인공지능이 경고를 울렸다.

-점프 반응, 샤다이입니다. 반응 다수. 3, 4, 5. 적함 계속해서 통상공간에 안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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