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25화 (125/301)

125화

-의원님, 오해십니다. 이번 일은 제 독단이 아닙니다. 엄연히 함대사령본부와 합동참모본부에서 온 요청입니다.

이노우에 국장이 서둘러 문서를 보여준다. 분명 42 전단의 장갑 보병 부대 육성을 위해 태스크 포스 373의 인원들을 배치해달라는 협조 요청이다. 같은 사령부끼리의 요청이긴 하지만 이번 것은 함대 사령본부의 요청이 아니라, 통합작전사령부로부터 42 전단을 창설하라는 명령을 받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절하기엔 모양새가 좋지 않다.

-군사정보국은 요청과 명령을 구분하지 못하는가. 설령 명령이라 한들, 댁들의 명령에 나보고 고개를 숙이란 거요? 또 그걸 굳이 당신이 가져오는 이유는 뭐죠?

오다 의원은 이노우에 국장의 비공식적인 약점을 무기 삼아 매섭게 몰아친다.

지난 작전에서 돌아오는 태스크 포스 373을 보안국이 덮치고, 그걸 오다 의원이 뒤엎었으며, 궁지에 빠진 보안국을 이노우에 국장이 살려달라고 빈 게 불과 며칠 전이다. 그 대가로 군사정보국은 오다 의원에게 협조하기로 했었는데 지금 하는 꼬락서니는 도리어 등에 칼을 꽂는 격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노우에 국장은 공식적인 요청을 방패 삼아 어떻게든 흘려내려 한다.

-물론 군사정보국으로서도 의원님과 태스크 포스 373에게 협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 허나 이것은 함대 사령본부의 요청으로 373의 팀원들이 42 전단으로 가게 되는 겁니다. 제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되면 앞으로 김빈우 소령이 공중에 뜨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파견 요원이었던 그를 다시 불러들여 정보국의 중책을 맡기겠다는 겁니다.

-중책 같은 헛소리를 하네. 군사정보국에선 소령씩이나 돼서 현장에서 구르는 게 중책이란 말인가!

연방군에서 영관급 장교는 참모 장교다. 아니면 구축함의 소령이나 전투기 편대장 정도 같은 지휘관급이 된다. 태생 자체가 특수전 사령부 소속이 아니고서야, 빈우처럼 현장에서 총질하는 경우는 없다.

더더구나 군사정보국처럼 요원 하나하나의 가치가 전략자원인 곳에서 소령씩이나 단 인물이 외부파견 요원이 된다는 건 그가 버림 패란 것을 뜻한다.

-그것은 기밀이라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김 소령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엄청난 가치가 있습니다. 저희 군사정보국에서는 그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노우에 국장은 어떻게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적어도 그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빈우보다는 그의 머릿속에 있는 트리니티로 잠긴 정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게 진심이 아닐리 없었다.

이어서 유순한-정확히는 유순해 보였던-오다 의원의 입에서 막말이 쏟아져 나온다.

-사고 친 윗대가리가 모가지 돼서 그 자리를 꿰찼으면 잘해보려고 노력을 해야지, 일을 더 크게 벌이면 어쩌잔 거요!

오다 의원이 언급하는 것은 전임 군사정보국장에 관한 일이다. 당시 군사정보국의 유령회사인 피자 타이거와 연방 중앙정보국의 둠 치킨은 성대한 삽질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여파가 조금 골치 아파서 상원에서 감사가 나와 전임자들을 잘라버렸다.

-의원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그리고 일의 경중을 파악하셔야 합니다. 태스크 포스 373이 중요한 팀이긴 하지만 결국은 일개 작전팀입니다. 42 전단은 샤다이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 작전단이고요.

-파악을 못 하는 건 당신이겠지.

이번엔 오다 의원이 문서를 꺼냈다. 그런데 문서 양식 자체가 심상치 않았다.

-통합작전 사령본부의 명령서요.

통합작전사령부는 함대 사령본부나 특수전 사령부 등의 위에 있는, 문자 그대로 모든 사령부를 통합해서 그에 대한 군사적 명령권을 가지는 최상위 사령부이다.

연방군의 최상위 본부 중에서 합동참모본부가 국방부와 의회, 대통령에게 군에 관한 행정적인 조언을 한하는 곳이라면, 통합작전사령부는 실질적인 명령체계 최상위에 위치한 사령부다. 물론 통수권자는 대통령과 상원의장이지만.

-또 이것은 상원의장의 명령서요.

이번에 나오는 문서 양식은 상급 장교라면 한 번씩은 받아보는 문서 양식이다. 통수권자인 대통령이나 그 권한대행을 하는 상원의장이 장교 임명을 할 때 쓰는 문서다.

빈우는 소령으로 임관할 때 처음 받아보았고, 울토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또 한 번 받았다. 이번 명령서는 의장의 요청에 대통령의 승인이 있는 명령서다.

-태스크 포스 373은 감사가 끝날 때까지 그 어떤 방법으로도 구성원에 변경이 있어선 안 된다는 명령이오.

오다 의원이 못 박듯이 말했다. 물론 상원의 감사 대상이라면 해당 부서는 해산이나 변경을 할 수 없다. 다만 42 전단 같은 특수상황이라면, 그리고 실제 감사가 아니라 선행 조사 중이라면 약간의 꼼수를 발휘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길이 아주 막혀버린 것이다.

-으음!

이노우에 국장은 드물게 당황했다. 자신이 함대 사령본부와 합동참모본부의 요청에 의해 움직인 것이라면, 오다 의원은 통합작전 사령본부와 상원의장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청과 명령은 격이 다를뿐더러, 부서의 끗발도 끗발이다.

빈우는 자기 전 상사의 멘탈이 깨강정 되는 장면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좆됐네.’

지금 그의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은 절대 좋은 상황이 아니다. 군의 상위부서끼리 손발이 안 맞아서 티격태격하고 있는 지금의 꼬라지에 비하면, 과거 군사정보국과 연방 중앙정보국이 틱틱거린 것은 귀여운 옹알이다.

‘시슬 대장이 합동참모본부로 갔었을 텐데.’

혹시 빈우는 캐서린 시슬이 저쪽으로 넘어갔을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럴 리는 없어 보였다. 그녀는 순수하게 샤다이를 막기 위해 42 전단을 재결성하는 쪽에 힘을 실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태스크 포스 373에 어떤 영향이 올는지 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도와주지 못한다 해도 이해가 간다. 합참으로 간지 얼마나 되었다고 힘을 쓴단 말인가.

빈우는 다시 시선을 군사정보국장 쪽으로 옮겼다.

‘이번에 이노우에 국장이 온 것은 태스크 포스 373의 해산, 그리고 나를 수사 임무에 투입하는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이 진짜 목적일까. 둘 다 목적일 수도 있지.’

연방 내에 암약 중인 비밀세력은 태스크 포스 373이 생기기 전부터 방해를 해왔었고, 생긴 후에도 이런저런 훼방이 들어왔다. 그 대미는 보안국의 깜짝쇼. 보안국이 그 세력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이용당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군사정보국이 보안국을 구하러 왔으며, 빈우와 히토미는 놈들의 꼬리를 잡기 위해 보안국을 풀어주었다.

‘설마 군사정보국마저 그쪽으로 넘어간 것일까?’

빈우는 그 가능성에 대해 다시 한번 점쳐봤지만, 역시 희박했다. 이노우에 고토 개인이 넘어간 것이라면 모를까, 군사정보국이란 시스템 자체는 넘어가기 힘들다.

‘샤다이, 리퍼, 울토르 프로젝트, 워프 비스트.’

머릿속에서 추들이 만들어진다.

42 전단으로 가게 될 태스크 포스 373의 베테랑들. 분명히 샤다이와 싸울 장갑 보병들에게 있어 373팀의 전투경험은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그리고 빈우가 맡아야 할 수사. 울트로 프로젝트와 워프 비스트의 연관성. 연방의 큰 위험들이다.

‘마리 라캉의 죽음. 그리고 워프 비스트로 변하던 중 멈춘 엘리자베트 허드슨.’

빈우는 마음속의 저울에 만들어 놓은 추를 한 가지씩 올려보았다. 마지막 추까지 올리고 기울기를 확인한 빈우는 살벌한 대화 속에 끼어들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시는군요. 이건 어떨까요?”

사냥감의 발언에 사냥꾼들의 시선이 모인다. 그러나 빈우는 기죽지 않고 말을 꺼냈다.

“이노우에 국장님의 목적은 태스크 포스 373의 전투경험을 42 전단에게도 가르쳐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에게 새로운 수사 임무를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다 의원님의 목적은 감사 대상인 태스크 포스 373에 어떠한 구성 변화도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죠.”

빈우는 통신화면 속의 좌중들을 한번 둘러보았다. 군사정보국의 국장인 이노우에 고토준장, 연방의회의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 특수전 사령부의 사령관인 조지 레드우드 중장. 세 사람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빈우를 향했다.

“답 나왔네요. 저를 포함한 태스크 포스 373 전원이 42 전단으로 파견 가는 겁니다.”

그 말에 이노우에 국장은 움찔했고, 레드우드 사령관은 히죽 웃었으며, 오다 의원은 눈썹을 찌푸렸다.

“42 전단은 샤다이의 본성에 쳐들어가는 공격함대입니다. 당연히 샤다이의 본거지에서 전투를 하겠죠. 그렇다면 태스크 포스 373이 적임입니다. 처음부터 샤다이를 기습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대인데 물 만난 고기 아니겠습니까? 또한 373팀으로서도 넘쳐나는 샤다이 기술과 장비를 수거할 수 있는 상황이니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빈우는 잠시 말을 쉬며 좌중들의 시선을 살폈다. 이노우에 국장과 오다 의원은 조금 못마땅한 눈치지만 뭐라고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저와 팀원들은 지금까지 호흡을 잘 맞춰 왔습니다. 제 지휘하에서라면 373 팀원들은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고, 저 또한 42 전단의 신설 장갑 보병부대의 교육에 큰 도움이 되리라 자부합니다. 문제는 이노우에 국장님께 말씀하신 수사 건인데….”

빈우는 군사정보국장이 보여주었던 자료를 다시 한번 나열한다.

“2217년 12월 25일 마리 라캉의 사망. 2218년 1월 1일 글림에서 현지인 사망 사건. 2218년 1월 16일 리처드 허드슨과 엘리자베트 허드슨 사망 사건. 범인은 군사정보국 출신일 가능성이 높거나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동시에 울토르 프로젝트와 워프 비스트에 대한 정보에 접근 중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 사건도 꽤 중요하다. 드러난 게 이 정도라면 파헤쳤을 때는 어디까지 나올지 알 수 없다.

“이 사건도 제가 맡기로 하지요. 42 전단에서 태스크 포스 373을 이끄는 동시에 말입니다.”

-김 소령, 그게 가능할 성싶은가.

이노우에 국장이 반박한다.

“안될 게 뭐 있습니까? 세 사건 모두 일어난 지 오래입니다. 서둘러 현장에 갈 필요가 없지요. 이미 보안국이나 군사정보국에서 증거와 자료들은 다 입수하셨잖습니까? 자료만 넘겨주시면 제가 수사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42 전단이 작전 시작하기 전이나, 혹은 시간이 나면 제가 직접 현장에도 가보도록 하지요.”

-나는 찬성이오.

레드우드 사령관이 손을 들어 찬성을 표한다. 어차피 그는 태스크 포스 373이 존속되어 빈우의 지휘를 받으면 그만이다.

-태스크 포스 373이 42전대로 가서 장갑 보병들을 훈련시키고, 김 팀장이 해당 사건을 수사한다고 했으니 그쪽 바람대로 아니오?

-흠, 저도 감사 대상인 태스크 포스 373이 해체되거나 변경만 되지 않는다면 달리 문제는 없습니다.

다음으론 오다 의원도 빈우의 의견에 찬성했다. 남은 한 사람은 이노우에 국장이다.

-그런가요? 뭐 저로서도 김 팀장이 사건을 맡아주면 되긴 하지만… 42 전단에 있으면서 수사가 제대로 될는지 걱정입니다.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그보다 더한 일도 제게 맡겼으면서 무슨 약한 소리십니까.

이노우에 국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빈우의 호언장담을 들으며, 절충안을 받아들였다. 일단 함대 사령본부와 합동참모본부로부터의 요청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자신이 요청한 수사 건도 빈우가 받아들인다고 했다. 게다가 레드우드 사령관과 오다 의원이 이렇게 압박을 하니, 그로서도 겉으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억지로 납득하는 척했다. 물론 속으론 다른 꿍꿍이를 숨기면서.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뒷마무리가 끝난 다음 이노우에 국장이 먼저 회선에서 나갔다.

-저도 가보지요. 참, 김 팀장은 나중에 제 방으로 오세요.

오다 의원도 회선을 나가며 빈우를 한 번 흘겨보고 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레드우드와 빈우 두 사람뿐이다.

-욕본다.

피식 웃는 레드우드. 그런 그를 보며 빈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다 의원님은 어떻게 된 겁니까?”

처음에 레드우드는 태스크 포스 373 팀원들에게 373팀의 해산을 알렸고, 빈우에겐 새로운 임무를 맡기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다 의원이 회선에 난입해 들어오더니 일이 이렇게 흘러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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