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27화 (127/301)

127화

“그래서 김 팀장의 그런 점을 알고 있는 이노우에 국장이 그렇게 밀어붙였단 말이지요?”

“조건이 맞는 절호의 기회니까요. 적임자 중 한 사람에게 거절할 수 없는 사건이었니 주저 없이 저를 골랐을 겁니다.”

히토미는 취기가 좀 과하게 도는지 잔을 내려놓고 의자에 푹 기대었다.

“그렇다면 태스크 포스 해체 건은 군사정보국이나 보안국은 관련이 없을까요?”

“두 부서의 연관성에 대해선 좀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역시나 배후엔 의원님께서 경계하시던 그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으음, 역시 그렇겠죠.”

맥주 대신 찬물을 한 모금 마신 히토미가 얼굴에 열이 오르는지 차가운 잔을 볼에 대었다. 그러면서 빈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빈우가 질문했다.

“하실 말씀이라도?”

“군사정보국의 수사 제안, 정말 받아들이실 건가요?”

분명 히토미는 아까의 4자 대면 통신회의에서, 자신의 감사대상인 태스크 포스 373에 변경만 없다면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게 본심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랬으니 빈우를 이렇게 따로 불렀겠지.

게다가 그녀가 말하는 자세를 보면 이건 질문이 아니라 경고이자 만류였다. 분명 히토미가 속했던 파벌이 군사정보국에 대해선 필요 이상으로 접촉하지 말라고 했었다. 아직은 시기상조이고, 태스크 포스 373의 역량으론 역부족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감사단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하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빈우에게 의문은 있었지만, 지금은 질문보단 대답을 할 때다.

“말씀하시는 바는 알지만, 발상을 달리하면 좋은 기회입니다. 애초에 태스크 포스 373은 샤다이 기술을 수집하기 위한 팀 아닙니까. 놈들의 새로운 공격인 워프 비스트와 연관된 것이라면 조사하는 게 좋지요. 또 제가 몸담았던 울토르 프로젝트에 대해 알아낼 기회이기도 합니다.”

“팀장이 잡은 기회가 아니에요. 저쪽에서 주는 기회입니다. 함정일 수도 있어요.”

그것도 빈우를 잘 파악하고 있는 전 상관인 이노우에 고토가 내건 기회다. 빈우라면 거절하지 않을 기회. 아니 거절하지 못할 기회다.

“그렇겠죠. 보안국과 군사정보국은 이미 수사를 하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연방 중앙정보국도 움직이고 있겠죠. 이노우에 국장이 저를 부른 것은 범인을 특정하기 위한 사냥개 역할을 해달라는 겁니다.”

빈우의 말인즉슨, 뻔히 함정인 것을 알면서도 들어가겠다는 의미다. 취기 때문인지 빈우의 말 때문인지, 히토미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김 팀장,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팀장님이 이번 수사를 받아들이는 이유, 팀장님의 약점을 이노우에 국장이 쥐었기 때문인가요? 정말 그 이유인가요?”

그녀의 질문에 빈우는 잠시 자신을 한 번 곰곰이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없진 않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뭔가요?”

잠시 호흡을 고르던 빈우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돌아가신 이케가미 상원의원께선 과거에 저와 함께 울토르 프로젝트를 주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발 가르단 하스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울토르 프로젝트가 틀렸다고 하면서 워프 비스트에 매달리고 계셨죠.”

빈우는 중간에 히토미의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그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제 앞에서 그분은 죽어가면서도 인류와 연방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그 목적을 이루셨죠. 바로 제 눈앞에서 타 죽어가는 순간에도 말이지요. 그리고 저는 울토르 프로젝트의 지휘관이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머릿속의 정보를 감추고 클론으로 위장까지 했습니다. 제 모든 것을 바쳤던 일을 빼앗겼단 말입니다.”

잠시 말을 쉰 빈우는 감정을 다스리며 말을 이었다.

“이런 제가 그분의 유지를 잇겠다고 하면 이상할까요? 제가 잃어버렸던 비밀을 되찾는 게 이상한 것일까요?”

“천만에요. 김 팀장에겐 충분히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아서 위험하다고 말하는 겁니다.”

히토미의 그 말 다음으로 두 사람의 사이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정적을 깬 것은 히토미였다.

“이번엔 제가 묻지요. 제가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 울었던 것 기억하나요?”

물론 빈우는 기억한다. 그때 태스크 포스 373을 출동시켰다가 후폭풍이 조금 있었던 것도.

“네, 대단히 슬퍼하셨습니다.”

“저도 명색이 상원의원이에요. 자신의 감정은 컨트롤할 줄 알죠.”

“와아.”

빈우의 평탄한 감탄사에 히토미가 발끈했다.

“에잇, 조용히 하세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빈우가 풀어놓자, 히토미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설령 그때 아버지가 죽는 모습을 봤어도 저는 울지 않을 수 있었어요. 특히나 조사대상 앞에서는 말이지요. 그런데 제가 왜 울었을까요?”

대답이 궁해 가만히 있던 빈우에게 히토미는 손가락을 들어 그를 가리켰다.

“김 팀장입니다.”

“제가요?”

의아해하는 빈우 앞에서 히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당시 팀장의 시선으로 아버지의 마지막을 보았죠. 김 팀장은 아버지를 구하려고 할 때 확고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정보를 보호하자거나 과거의 상관을 살리자는 생각은 없었어요. 오직 순수하게 눈앞의 사람을 살리자는 마음뿐이었죠. 헌신과 자기희생.”

맥주잔을 흘긋 본 히토미는 잔을 잡는 대신 냉수를 마셔 목을 축였다.

“그래요. 마치 지금 김 팀장이 이노우에 국장의 함정인 줄 뻔히 알면서도, 죽어간 라캉 일가와 허드슨 일가의 사건을 밝히기 위해 함정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말이지요.”

자신의 성향에 대한 타인의 판단을 듣는 것은 언제나 익숙지 않다. 하지만 익숙한 것도 있다.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딸 오다 히토미, 사자의 딸은 역시 사자였다.

“당신 같은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어요. 제 쪽에서 먼저 협력관계를 원한다고 한 이상, 굳이 가식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지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려 한 사람 앞에서는 더더욱.”

거기까지 말한 히토미는 이번엔 물 대신 맥주를 홀짝였다.

“그거 영광이군요. 감사합니다.”

빈우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자 히토미의 얼굴이 다가왔다.

“저는 상원의원으로 살면서 연방에게 옳은 길을, 그리고 이득이 되는 길을 찾도록 노력했습니다. 지금 김 팀장이 가려는 길은 옳은 길일지는 몰라도 이득이 되는 길은 아니에요.”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다시 뒤로 푹 기대어 발을 동동 굴렀다.

“아아, 하긴 뭐 이 두 가지가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었죠.”

“명분과 실리의 딜레마는 언제나 좆같… 어흠, 어려운 문제지요.”

헛기침을 하는 빈우에게 히토미가 잔을 내밀었다.

“이번엔 저에게도 솔직해질 기회를 주세요.”

빈우가 도수 높은 히토미 특제 맥주를 따라주자, 그녀는 한 번에 그것을 비웠다.

“일단 태스크 포스 373이 해체되는 것은 막았어요. 좋아요. 감사엔 지장이 없으니까. 이걸로 잘 마무리된 거예요. 저쪽에 한 방 먹이기도 했고. 하지만 김 팀장이 군사정보국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아요. 제 동료들이 군사정보국과 깊이 연관되는 것은 피하라고 했고 무엇보다.”

잠시 말을 멈춘 히토미는 빈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제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던진 사람. 그리고 연방과 인류를 위해 순수하게 헌신하는 사람이 그런 모략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보고 싶진 않아요.”

그녀의 칭찬에 빈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칭찬 감사합니다만, 동료분들이 말씀하셨던 옛날의 저였다면 의원님은 기겁하셨을 겁니다. 저는 군인입니다. 제가 연방과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방법은 몇 가지 없죠. 그리고 그 방법들이, 제가 걸어왔던 길이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으실 겁니다.”

“말 돌리지 말아요. 물론 알지요. 군인 장병 여러분의 임무는 적대적 외계인을 죽이는 거란 것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여러분들이 연방의 안녕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는 겁니다. 무엇을 해도 그 가치는 훼손되지 않아요. 설령 잘못된다 한들 그 죄는 잘못된 명령을 내린 우리에게 있는 겁니다.”

히토미가 다시 잔을 내밀었지만 오락가락하는 그녀의 손을 본 빈우가 만류했다.

“에잇, 쫌생이 같으니.”

술기운에 더불어 빈우가 말을 안 듣고 고집까지 부리자 히토미는 잔뜩 열이 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술기운이 올라있던 그녀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흥, 그렇게 덜컥 수사를 맡았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제 조사에 차질이 생긴단 말이에요.”

“술이 안 들어가서 솔직함이 떨어진 겁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히토미가 바락 쏘아보자 빈우는 냉큼 시선을 돌렸다.

“좋아요. 그럼 김 팀장이 군사정보국의 수사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을 허락할게요.”

“감사합니다.”

“모든 자료는 저에게 보고해야 되는 거. 아시죠?”

“여부 있겠습니까.”

히토미는 자신의 날 선 말에 넙죽넙죽 대답하는 빈우를 보고 마음이 풀렸는지, 미간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한층 부드러워진 말투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휴우, 태스크 포스 373을 조사하러 왔다가 42 전단까지 가게 되는군요. 이게 무슨 팔자인지.”

“그러십니까, 아니 잠깐. 뭐라고요?”

빈우가 놀래서 질문한다.

“응? 뭐냐니요. 제가 42 전단으로 가는 것 말이지요.”

“아니, 의원님은 태스크 포스 373을 조사하기 위해 오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42 전단으로 가시냔 말입니다.”

“373이 42 전단으로 가니까 저도 당연히 따라가야죠.”

이번엔 빈우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누차 말씀드렸습니다만, 상원의원씩이나 되시는 분이 왜 굳이 작전지역까지 따라오시려는 겁니까? 저희 373팀이야 이해합니다. 기밀팀이니까 한층 투명한 조사를 위해 동행하실 수도 있지요. 하지만 42 전단은 정규 함대입니다. 후방에서 보고서만 받으셔도 될 일 아닙니까?”

“이번 이야기를 하기 전에 동료들과 대충 말을 맞춰놨습니다. 상원의원이 42 전단에 동행함으로써 선전효과도 있을 것이고, 제가 상원의 참관인 역할도 하기로 되어있습니다.”

빈우가 끙끙대며 빈 맥주잔을 내려다보았다. 이걸 마셔서 취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히토미는 그런 빈우를 고소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잔을 채워주었다.

“그건 그렇고 김 팀장은 42 전단의 전술 교관 역을 맡으면서 군사정보국에서 맡긴 수사를 하기엔 지장이 없나요?”

“지장 말입니까….”

중얼거리는 빈우의 앞에 히토미의 잔이 다가왔고, 둘은 다시 한번 건배를 했다.

“어차피 제가 할 것은 범인의 추적과 조사입니다. 비는 시간에 해도 충분할 겁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참 군사정보국에 대한 보복에 대해선 달리 생각이 있나요?”

“보복. 그렇죠, 갚아줘야죠.”

저번 보안국 사건으로 군사정보국은 히토미와 태스크 포스 373, 그리고 조지 레드우드에게 빚을 졌다. 그리고 협력하기로 약속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다시 쳐들어 왔으니 호의를 배반한 것이다.

“태스크 포스 373이 해체되면 상원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걸 알면서도 일을 진행했지요. 일단 명분상으론 함대 사령본부의 요청을 전달하고 저를 구제하겠다, 고 합니다만.”

“그걸 누가 믿나요. 이제 본때를 보여줘야죠. 히힛.”

이제 히토미는 알딸딸해져서 해롱해롱한다. 그걸 본 빈우는 절로 걱정이 일었다. 만취되어 머리를 못 가누는 경우는 종종 봤지만, 자기 가슴 무게를 못 이겨 사람이 휘청이는 것은 정말 오래간만에 본다.

“저, 의원님 지금이라도 술에서 깨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효소 드릴까요?”

“아뇨, 취하려고 마신 건데 왜 깨요. 어차피 중요한 이야기는 끝났고, 지금 이렇게 얘기 조금만 더하다 자려고요.”

중요한 이야기가 그녀의 정신줄을 잡고 있었는지 그게 끝나니까 히토미의 취기가 확 올라오고 있었다. 그걸 본 빈우의 걱정은 점점 커져만 갔다.

“취하시려면 다른 술도 있는데 왜 굳이 맥주를 마십니까. 그 도수를 그렇게 벌컥벌컥 마시니 사람이 그렇게 되잖습니까.”

“에헤헤, 팀장님 뭘 모르시네. 씻고 나선 맥주죠. 근데 맥주를 마시면은요. 취하기 전에 배가 불러요. 배가 불러서 잠이 잘 오는데, 화장실에 가야 해요.”

이젠 술기운이 완전히 머리 꼭대기까지 올랐는지 사람이 오락가락한다. 그 모습을 본 빈우는 더럭 겁이 났다.

‘왜지? 내가 왜 이러지? 상원의원이 취했기로서니 내가 불안해할 이유는 없잖아.’

그때 의자에 푹 기댄 히토미가 흡후, 흡후 하면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라마즈 호흡은 아닌데.’

뻘생각을 하던 빈우의 머릿속에 몇 가지 정보가 떠올라 퍼즐이 맞춰진다.

‘블랙 랜스, 첫 만남, 마카롱, 아나스타샤, 훈련실, 실전 훈련. 피범벅, 아나스타샤.’

퍼즐을 맞춘 빈우는 솟구치는 불안감에 해결사를 불렀다.

“아나스타샤! 지금 빨리 의원님 방으로 와.”

-주인님!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예요!

안드로이드 메이드는 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주인의 의중을 눈치챘다. 그리고 앙칼진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오다 의원님이 술이 떡이 됐다.”

다 큰 어른이 만취했다고 자신을 부를 리 없다는 것을 안 아나스타샤가 다시 소리를 빽 지른다.

-야아아아! 왜 술을 그렇게 먹여요.

“난 가만히 있었어.”

-가만히? 아아, 우리 주인님은 손이 무거워서 상원의원님께 술 한잔 안 따라주시는구나.

“조금은 줬지만, 아니 난 말렸다고.”

-토하셨어요? 벌써 토하신 거예요?

“몰라, 빨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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