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30화 (295/301)

130화

‘마리 라캉은 보안국 훈련을 받았을 텐데, 그것 때문에 정보유출을 막으려고 자살했나? 두뇌 칩이 없으니 그럴 법도하고. 아니면 범인이 자신을 어떻게 할지 알았기 때문에 그 고통으로부터 자살해 도망치려 한 것일까?’

자료와 증거를 조합하는 빈우에게 위르겐의 말이 들려온다.

“와, 팀장님. 이 새끼 이거, 부서진 로봇을 다시 꺼내서 해체했습니다.”

위르겐은 보고서를 읽으며 혀를 내둘렀다. 범인은 마리를 죽인 다음 파괴된 로봇을 꺼내어 조사했다.

“뭘 그 정도 가지고 호들갑이냐. 만약 마리에게 두뇌 칩이 있었으면 그것도 뽑아서 조사했겠지. 위르겐, 보고서에 있는 로봇의 상태를 다시 한번 살펴봐라. 달리 이상한 점 모르겠나?”

팀장의 말에 군사정보국에서 제공한 가사 도우미 로봇의 정보를 본 위르겐이 고개를 갸웃했다.

“범인은 해체해서 무슨 정보를 얻으려고 했을까요. 그런데 음? 이거 로봇 손질에 꽤 정성을 들였는지 무지 반질반질합니다?”

“로봇용 세척제가 아니라 아동용 목욕 비누를 썼다고 나온다.”

지금 빈우는 위르겐을 단순히 조수로 쓰는 게 아니라 이런 세계의 기술을 가르쳐 주고 있다. 뱅가드 출신인 위르겐은 용감무쌍하게 돌진하는 법은 알았으나, 이런 쪽으론 젬병이었다. 때문에 그는 지금 연신 감탄사를 뱉는 중이었다.

“허어.”

아무리 생활방수가 된다지만 사람 비누로 씻겼다고 하면 어지간히 공을 들인, 아니 애정을 들인 로봇이다. 이정도면 거의 애완동물처럼 키운 것으로 보인다.

“고인께는 죄송합니다만, 대체 왜 이랬을까요?”

“흐음.”

빈우는 대답 대신 턱을 쓰다듬었다. 그것이 생각을 정리하는 버릇이라는 것을 배운 위르겐은 잠시 기다렸다. 팀장이 답을 내놓을 때까지.

‘가게를 나와 마리와 로봇이 만났을 때의 반응, 사람에게 일부러 부탁해가며 직접 마중을 나가는 로봇, 그리고 집에 와서 화장실을 간다. 손을 씻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던 빈우는 곧 답을 냈다.

“이 로봇, 허수아비군.”

“네? 이게요?”

허수아비라면 대상의 행동을 그대로 모방해서 만든 인공지능을 말한다. 이는 본인의 부재 시 사용하는 일종의 대역 같은 것으로, 태스크 포스 373에 있는 아를르캥의 경우는 죽은 피에르 라캉의 가정용 허수아비였다.

하지만 그런 허수아비라면 대상과 같은 모습의 홀로그램을 쓰거나, 대상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안드로이드를 쓴다. 이런 로봇 형태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누구의 허수아비입니까?”

위르겐의 물음에 빈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답을 알고는 있지만, 미처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다시 정보국의 자료를 살펴보았다. 부서진 로봇의 잔해. 그리고 로봇의 원형. 타미룩스 사의 보급형 가사 도우미 로봇.

“호랑이 힘이 솟아요, 피자 피자.”

화면 속의 로봇이 춤추며 노래를 부른다. 자크의 목소리다.

“팀장님?”

의아해하는 위르겐의 부름에 빈우는 정신을 차렸다.

“아마도 아들인 자크 라캉의 허수아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자크 라캉 본인은 어떻게 된 겁니까? 설마하니….”

아무래도 어린아이가 엮인 일이라 위르겐도 마지막까지 말하진 못했다. 어머니가 죽은 상황에 어린 아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적으니까.

“군사정보국의 데이터베이스에도 딱히 다른 건 없어. 마리 라캉은 두뇌 칩을 뺀 다음 아들인 자크 라캉과 함께 도주 중이었다. 도주 이유는 불명. 남편인 피에르 라캉 중령은 아내와 아들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부상한 나에게 찾아왔지. 뭐, 내가 마카로니에서 작전을 했기 때문이겠지만.”

그리고 빈우와 위르겐은 재차 자료를 수집했다. 이미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에서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은 싸그리 훑어갔지만 그래도 나름의 수확이 있었다.

“좀 더 조사해봐야겠지만 범인과 마리는 서로 아는 사이였던 것 같다.”

“면식범이란 말씀입니까.”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지. 여기 쓰인 수법은 군사정보국의 방식이 맞다.”

군사정보국 요원인 빈우가 그렇게 말하면 틀림이 없는 것이다. 빈우가 밝힌 두 가지 정보에 위르겐이 화색을 띠었다.

“팀장님 말씀대로 범인이 마리 라캉을 아는 군사정보국 소속 인물이라면, 용의 선상을 꽤 좁힐 수 있겠는데요?”

“으음, 그게 말이다. 마리 라캉은 보안국 소속이지만 예전에 상원의장의 비서이기도 했고, 남편이었던 피에르 라캉을 따라 자주 왕래를 한 터라 아는 사람이 꽤 돼. 게다가 잠수시킨 다음 점조직으로 뿌려놓은 군사정보국 요원에 대한 정보는 열람하기 힘들어. 그쪽에서 수사를 맡긴 마당이라 요구하면 주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라.”

“그런가요.”

약간 풀이 죽는 위르겐을 보며 빈우는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야 인마, 수사 시작한 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울고 웃냐. 아직 한참 멀었어.”

“하지만 우리 팀은 곧 42 전단으로 가야 하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이런 조사를 할 시간이 있을까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조사 기록은 다 했겠지?”

빈우의 말에 위르겐이 스캐너를 들어 보인다.

“네. 확실하게 했습니다.”

저 스캐너에 들어있는 것은 군사정보국과는 별도로 태스크 포스 373이 조사한 마카로니의 자료다.

“좋아, 위르겐. 너는 그걸 가지고 파트리샤와 먼저 귀환해. 난 조금 있다가 올라가겠다.”

“넷, 팀장님.”

이건 짧고 간결한 위르겐의 대답.

-엑, 저도 돌아가요? 팀장님 여기 혼자 놔두고? 경호는 누가 하는데요?

이건 늘어지는 파트리샤의 대답이다.

“볼일만 보고 바로 올라갈 테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파트리샤, 네가 보기에 주변에 위험한 것이 있었어?”

-딱히 없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팀장님 혼자 지상에 계신다니 너무나도 걱정되어….

“닥치고 너도 블랙 랜스로 올라가 있어.”

-니예에.

통신으로 파트리샤의 축 늘어지는 대답이 들려온다. 그런데 눈앞의 위르겐은 방금 전 자신이 했던 칼 같은 대답과 달리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걸 본 빈우가 퉁명스레 묻는다.

“뭐 인마.”

“저, 팀장님. 실례가 안 된다면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뱅가드 연대에서도 손에 꼽힐 최정예 대원이 우물쭈물하는 모습은 참 진귀한 광경이다.

“별거 아냐. 내 손에 죽은 개척민들에게 사과를 좀 하려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위르겐은 우렁찬 대답과 함께 쏜살같이 달려나가 5층에서 뛰어내렸다. 절로 헛웃음이 나오는 광경이다. 물끄러미 위르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빈우는 계단을 내려간 다음,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항복입니다! 항보옥!

-항복한다고 했잖아요! 쏘지 마세요! 제발, 아악!

클론들에게 개척민들이 죽어간다. 부하들에게 인간이 죽어간다. 그러나 빈우는 비명 속을 그저 걸어갈 뿐이다. 거리로 나간 사람들에게 코일건이 쏟아진다. 건물 안으로 도망간 사람들에게 소이탄이 따라간다. 덤비는 개척민을 나이프로 찌르고, 항복하는 인간을 짓밟아 죽인다.

그렇게 비명을 지르는 시신들 사이로 한참을 걸어간 빈우는 마침내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파괴된 지하 주차장의 입구다. 빈우가 쏴 터트린 스콜피온 전차는 이미 수거했는지 불탄 자국만 남아있다. 그 자국 속에는 사람이 타죽어 가며 만든 흔적도 있을 것이다.

-모든 적 세력 말살.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메아리친다. 주차장 입구로 들어가자 코일건의 연사에 엉망이 된 내부가 보인다. 투항을 거부한 흔적들이다.

그리고 빈우의 시각정보에 군사정보국에서 보낸 자료가 겹쳐진다. 주차장 한곳에서 샤다이의 무기를 발견했다고 나온다. 시즐러, 샤다이의 플라스마 발사기.

빈우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듣고 싶지 않았던 소음이 나왔던 장소다. 엄마를 찾던 여동생의 울음소리였다. 아무리 재밌게 놀아주고, 아무리 맛있는 간식을 줘도 잠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여동생은 울었다. 힘들게 한 명 달래놓으면 다른 한 명이 또 운다.

-엄마, 엄마 어딨어? 엄마 왜 안 와?

-오빠 싫어. 나 오빠랑 안 놀 거야, 재미없어. 엄마한테 갈래.

빈우와 아나스타샤는 힘들게 여동생들을 달랬다. 빈우는 자신도 울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나스타샤가 부드럽게 안아주면서 여기선 울어도 된다고 했지만 빈우는 울지 않았다.

-오빠 거짓말쟁이, 거기 엄마 없잖아. 뒤쪽 공터에 엄마 없잖아.

다음날 여동생들이 엄마를 찾다가 길을 잃어버렸다. 아나스타샤가 했던 말, 마님은 저기 누워서 주무시고 계세요, 동생들을 달래던 빈우가 무심코 그것을 말했던 게 화근이었다. 여동생들은 피스메이커를 안고, 엄마를 줄 꽃다발을 들고 길을 나섰었다. 그리고 어두운 저녁에 길을 잃었다.

동생들을 찾으러 나간 빈우도 결국 울었다. 찾았을 때는 그냥 오빠답게 안아주고 달랬어야 했다. 화가 나서 아끼던 피스메이커 인형을 던지자 여동생이 울면서 도망갔다. 벽장에 들어가 울었다.

-엄마아아아.

막힌 곳에서 나는 여동생의 울음소리다. 화가 난 빈우는 울면서 벽장을 발로 찼다. 다시는 나오지 말라고, 거기서 그냥 죽으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놀란 아이는 입을 막고 울었다. 엄마는 없고, 오빠는 화를 낸다. 겁에 질린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입을 막고 울음을 참으려 한다.

그러다가 달려온 아나스타샤에게 빈우는 호되게 따귀를 맞았고, 셋은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잊을 수 없는 울음소리였다. 그리고 이십 년이 넘어서 빈우는 그 꺽꺽거리는, 애써 울음을 삼키는 소리를 다시 들었다.

마카로니 4의 주차장 한쪽 구석에서.

빈우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문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엄마를 찾으며 울음을 찾는 여자아이도 없다.

-가지마.

-안아줘.

-도와줘.

어느 것 하나 빈우가 들을 말이 아니다. 그 아이의 부모가 들어야 했을 말이다. 하지만 그 부모들은 빈우가 죽였다.

“팀장님, 잠시 스톱.”

뒤에서 파트리샤가 빈우를 불렀다. 빈우는 피식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 년 이거 이럴 줄 알았어. 올라가는 척하고는 팀장 뒤를 밟네.”

“나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 팀장님 얼굴 어떤지 알아요? 사람이 아주 그냥 훅 가는데?”

인필트레이터를 입은 채 몸을 숨기고 있던 파트리샤가 빈우의 상태를 보고 나온 것이다.

“그래? 그렇게 썩었냐?”

빈우는 대수롭지 않게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근데 넌 왜 따라온 거야? 부팀장이 시켜서냐, 아니면 아나스타샤?”

하지만 파트리샤는 대답 없이 빈우를 쳐다볼 뿐이다.

“하아, 인필트레이터를 입고 온 게 한이네요. 이것만 아니었어도 팀장님을 꼭 안아주는 건데.”

실리콘 나이트의 인필트레이터는 다른 장갑복과 궤를 달리하는 물건이라 입는 것도 벗는 것도 상당히 까다로워서 전용 장비가 있어야 한다.

“내가 보기엔 그걸 입으나 벗으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만.”

“나 팀장님 같은 얼굴 한 동료들 몇 번 봤어요. 하지만 말이죠. 팀장님 같은 분이, 닉스 레벨 3이나 되는 사람이 그렇게 되려면 대체 무슨 일을 겪어야 하는 거예요?”

닉스 레벨 3이면 거의 전략 병기 취급이다. 살육과 파괴에 최적화된 인간 형태를 한 무언가로 본다.

“무슨 일이라….”

한숨을 쉬던 빈우가 대답을 이었다.

“여섯 살 여자아이를 코일건으로 쏴 죽이면 그렇게 돼.”

장갑복의 헬멧 너머로 파트리샤가 동요하는 게 느껴진다. 두뇌 통신을 연결하지 않아도, 인필트레이터의 장갑으로 가려도 알 수 있었다.

“잠시만요, 그때 쏜 건 클론이었다면서요. 군사정보국 자료 보니까 팀장님은 어떻게든 그 아이를 구하려고 했고, 뒤따라온 클론이 쐈잖아요.”

물론 사실은 그렇다. 하지만 빈우에겐 그렇지 않다. 클론끼리의 두뇌 통신은 인간의 그것보다 훨씬 밀접하다. 형제가 봤던 시선으로 빈우가 보았고, 형제가 느낀 살의를 빈우는 공감했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당긴 방아쇠의 감촉을 기억한다.

더구나 혼란스럽던 당시의 빈우에게 그 감각은 혼재되어 그를 침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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