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아니, 내가 쏜 거야.”
메마른 목소리에 파트리샤는 빈우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말씀해 보세요.”
그녀가 빈우의 앞에 있는 기둥 조각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제가 들어드릴게요.”
“밑도 끝도 없이 뭘 말하라고.”
기가 찬다는 듯이 반문하는 빈우에게 인필트레이터가 양옆으로 팔을 쫙 벌린다.
“말하고 싶은 거 뭐든지요. 그렇게 토하고 나면 괴로운 게 좀 사라지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뭘 알아야 힘들어하는 팀장님을 돕든지 말든지 하죠.”
“하이구, 그래서 내가 말하면 뭘 어떻게 돕겠다는 건데?”
“음, 안아준다?”
연방의 특수잠입용 장갑복이 저렇게 말을 하며 귀여운 척 고개를 모로 꺾으니 꽤나 흉악하다.
“야, 살려줘.”
“나 참, 팀장님 지휘를 받는 우리도 생각해 주셔야죠. 그렇게 엉망인 상태로 우리를 잘도 이끌겠습니다.”
부하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데 더 빼기도 힘들다. 빈우는 그녀가 앉은 근처의 부서진 자동차에 걸터앉았다.
“좋아, 그날 난 여기 이 주차장에 클론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때 이미 클론들이 인간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입을 다물었어. 내 안에 있던 군사정보국 요원의 본능과 잔재가 돌출행동을 하지 말고 보다 많은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거지.”
“잠깐만요. 그때 팀장님은 제정신 아니었다면서요? 자신을 일개 클론으로 알고 있었다면서, 불가항력으로 일어난 일에 필요 이상으로 괴로워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마카로니로 강하하기 전 나는 이미 클론의 제약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뭐, 그것 때문에 잠수에서 부상할 계기가 생긴 거기도 하지. 아마 내가 거기서 좀 더 강경하게 나섰더라면 학살은 중지될 수 있었어.”
“그러니까 애당초 막을 수도 없던 일을 못 막았다고 자책하는 거잖습니까. 참 성실하게 사십니다요. 뭐 나도 입장 바꿔보면 기분 더럽긴 매한가지겠지만. 근데 샤다이와의 연결성이 나온 시점에서 개척민들이 그렇게 저항한다면, 다른 부대가 왔어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게 말한 인필트레이터의 헬멧이 빈우를 주욱 주시한다.
“그리고? 더 말해보세요.”
감이 좋은 파트리샤가 바짝 따라붙자 빈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저 불었다.
“주차장 안쪽에서 숨어있던 여자아이를 발견했어.”
“네네, 여섯 살쯤 되어 보인다고 했죠.”
“울면서 안아달라고 하더라.”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노력하셨잖아요.”
“쐈어.”
“또 또, 자꾸 그런다. 클론이 쐈다면서요.”
파트리샤의 말에 빈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클론들은 말이야, 인간보다 두뇌 통신이 빠르고 깊고, 넓다. 회선 연결에 시간 잡아먹는 인간들과는 달리 순식간에 두뇌 칩끼리 연결하거나, 중대 단위 통신을 하는 게 가능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빈우는 자신의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재수 없으면 감각 동기화가 일어난다.”
그 말에 파트리샤는 그날 빈우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보통은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데, 하필 그때 여러 가지 일이 겹치는 바람에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어. 클론들의 살인, 또 나의 살인. 울토르 중대의 대량학살 때문에 꽤 혼란스러웠거든.”
빈우는 고개를 돌려 그 아이가 있던 장소를 보았다.
“바로 저기, 저 안에서 그 애가 울고 있었어. 그 아이의 부모들은 딸만은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숨겼겠지. 그리고 내 손가락질 한 번에 모두 고기 조각이 되어 바닥에 퍼졌다.”
군사정보국의 자료와 현장의 구조를 겹치자, 두 사람의 시각에 당시의 참상이 그대로 펼쳐진다.
“개척민들, 그 부모들을 난 제압할 수 있었어. 모두 생포할 수 있었다고. 그런데 시즐러를 보자마자 나는 방아쇠를 당겨버린 거다.”
파트리샤는 이해한다. 다른 무기라면 빈우는 그렇게까지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즐러는 다르다. 샤다이 무기의 위험성은 연방의 장갑 보병이라면 익히 알고 있다.
“총소리에 아이는 놀랐을 거야. 엄마 아빠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겁에 질렸겠지. 그리고 울음을 터트렸겠지만, 엄마가 말한 대로 꾹 참았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걸 놓치지 않고 기어이 그 아이를 찾아냈지.”
창고 문이 열리던 순간, 아이가 터트렸던 울음소리가 아직도 빈우의 눈과 귀에 선하다.
“솔직히 그때의 난 어찌할 바를 몰랐어. 아이를 구해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어떻게 구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던 거지. 아직 클론으로서의 사고 제재를 받고 있었거든. 그리고 엉망이 된 내 정신 상태를 느낀 클론들이 나를 걱정해서 구하러 들어온 거야.”
빈우는 머릿속에 울리던 인공 본능 ‘모든 적 세력 말살.’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때 클론들이 빈우의 위기를 감지하고 주차장으로 돌입했다.
어서 쏴-아니다 내가 겨눈 게 아니다 조준하고 있는 것은 브라보둘아홉이다-쏘지마 안돼-찰리하나팔 괜찮아?-난 괜찮아 오지마-찰리하나팔의 상태가 이상하다-난 정상이야-적 발견-아냐 적이 아냐 쏘지마-서둘러 찰리하나팔이 위험하다-쏘지마 안돼 쏘지마 쏘지마.
빈우의 눈에 그 당시의 참극이 다시 보인다. 브라보둘아홉은 순전히 형제인 찰리하나팔을 구하기 위해 총을 들었을 뿐이다. 형제가 혼란에 빠져있고, 그 앞에는 적이 있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브라보둘아홉의 조준이 빈우에게도 공유된다.
-쏘지마아아아!
소리치던 빈우의 손가락에 방아쇠를 당기던 감촉이 느껴진다. 브라보둘아홉이 쏜 것이다.
“내가 쏘지 않았다고? 난 내가 그 아이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까지 느꼈어. 왜? 내가 그때 클론들을 말리지 않았기 때문이야. 내가 직접 나서서 막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죽었어. 이 아이가 죽었어.”
빈우의 말은 낮고, 거칠고, 슬픈 울림을 담고 있었다.
“내가 쏜 거야. 내가 죽였어.”
“팀장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한층 가까이 다가온다. 파트리샤가 빈우의 앞으로 다가와 그의 머리를 조심스레 안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빈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작 말씀하시잖고서. 아나스타샤도 이걸 아나요?”
“아니, 그 애한테는 무리야. 더 이상은.”
빈우의 머리를 쓰다듬던 파트리샤의 손이 잠깐 멈췄다. ‘더 이상은’이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빈우와 아나스타샤는 아마도 이런 일들을 수차례 겪어왔을 것이다.
파트리샤가 속한 실리콘 나이트는 적 후방에 침투해 게릴라전을 하는 부대다. 그렇기에 그녀는 연방의 어두운 면들을 숱하게 봐왔으며, 특수전 사령부와 단짝인 군사정보국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있어선 안 될 곳에서 해서는 안 되는 짓.
일단 그녀는 가볍게 말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내 가슴 어때요? 부드럽죠?”
“응, 네 진짜 가슴보다 인필트레이터 가슴이 더 부드러워.”
빈우의 농담에 파트리샤는 그의 머리를 우악스럽게 껴안았다. 그리고 그의 파닥거림을 조금 음미한 다음 놓아주었다.
“미친년이 사람 잡네.”
바닥에 널브러진 빈우는 헥헥대고 있었다. 머릿속에 경고가 울려 퍼질 즈음이 되어서야 파트리샤가 놓아준 것이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누운 빈우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상담받아보시는 건 어때요? 아니면 치료라도?”
“나 스스로 하고 있어. 그리고 나 같은 놈한테는 정신 치료 같은 건 안 통해. 그렇게 교육받았으니까.”
“흐음-. 아직 다 말한 것 같진 않은데.”
예리한 파트리샤. 하지만 빈우는 그 아이와 자신의 여동생을 겹쳐봤다는 이야기까진 꺼내기 싫었다. 그런 것은 아나스타샤와 할 이야기다.
“아주 신났네. 뭐 고맙다. 덕분에 조금 후련해졌어.”
빈우가 옷자락을 털며 일어났을 때, 파트리샤는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저도 잊히지 않는 광경이 하나 있어요.”
돌아가려던 빈우는 잠시 멈춰 서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파트리샤는 말을 어떻게 꺼낼까 고민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러다가 양손으로 자신의 양 가슴을 살짝 들어 올려 보았다.
“저 가슴, 제법 이쁘지 않나요?”
인필트레이터의 흉부 장갑이 출렁하며 위로 흔들려 올라갔다.
“네 가슴? 그야 이쁘긴 하지.”
같이 부대끼면서 본적이 있지만, 파트리샤 피아프의 가슴은 참 예뻤다. 다른 군인들처럼 강화를 했지만 완전히 군용 사양으로 바꾼 것은 아니었다. 유선조직도 남아있고, 형태도 자신의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그럴싸하게 잡혀있다.
“좀 불편해서 개조를 해보려고 했는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헬멧 너머, 그 안쪽에 있는 파트리샤는 쓰게 웃고 있었다.
“소위 달고 얼마 안 되었을 때에요. 위은쓸납학의 군항에 침입해서 작전을 수행하는 거였는데, 뭐 목적은 잘 달성했어요. 다만 아군 피해가 좀 컸죠.”
그 시절이라면 아직 인필트레이터가 없을 때다. 파트리샤는 오른손을 들더니 그것을 자신의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까지 죽 그었다.
“동기 하나가 이렇게 되었어요. 아차 하는 순간에 하마 새끼들 허리 낫에 걸렸는데, 어쩔 틈도 없이 싹뚝, 되었죠.”
위은쓸납학의 허리 낫은 위력적이다. 전기 방전과 함께 폭발로 조이는 그 칼날에 걸리면 설령 어벤져라 해도 두 동강이 난다. 그리고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까지 잘려나간 부상이라면, 아무리 강화 병사라 해도 치료를 서둘러야 한다.
“귀환하는 배에서 우린 해볼 수 있는 건 다해봤어요. 근데 말이에요. 처음엔 어떻게 살아보겠다고 바둥대던 놈이 점점 축 처지데요. 치료팩은 예전에 다 썼고, 그놈 몸은 영양을 원하고. 그래서 급한 대로 마카롱을 물에 개어서 입에 넣어줬는데 하, 이 새끼. 그걸 먹지도 못하고 그냥 줄줄 흘리더라고요.”
파트리샤가 말한 대로라면 그녀의 동기는 죽어가는 중이었을 것이다. 체내의 마이크로 머신들이 다른 장기들을 분해해 중요장기를 수복하려 했겠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그랬는데 말이에요, 어디서 들은 가락이 있어서 이걸 젖꼭지에 발라주니까 그건 또 잘 빨아먹더라고요? 눈은 퀭해서 초점은 없는데 입은 어떻게 오물오물 빨아요.”
아마도 본능일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젖 먹던 힘을 낸 것이다.
“난 아직도 기억해요. 제 젖꼭지를 빨던 입술이 점점 느려지고, 식어가고, 마침내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을 말이에요.”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노력했지만, 그 동료는 자신의 품 안에서 죽어간다. 익숙해질지언정 결코 잊히지 않는 광경이다.
“그래서 강화를 거기서 멈춘 거야?”
빈우의 물음에 파트리샤가 자기 가슴을 살짝 모아 부비부비한다. 굉장히 짓궂고 야해 보여야 할 행동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아마 그녀 가슴에 난 상처 때문일 것이다.
“뭐, 그런 거죠. 호옥~시 나중에 또 쓸 일이 있을까 해서 이렇게 놔두는 중이랍니다. 바꾸려니까 마음에 걸려서 말이지요. 어때요, 죽어가는 사람도 도로 살리는 저의 가슴 테크닉이? 팀장님도 저의 테크닉에 파묻혀 보시겠어요?”
그녀의 말에 빈우는 콧방귀를 뀌었다.
“말이 좋아 테크닉이지, 그딴 건 다 잡기술이야. 진짜는 피지컬이라고. 피지컬. 크기로 조져버리는데 다른 게 뭐 필요하니?”
인필트레이터가 가슴 마사지를 멈추고 빈우 쪽으로 서서히 다가온다. 그걸 본 빈우는 뒤돌아서서 걸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나 그 걸음이 빨라지고, 달리기가 된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뒤에서 장갑복이 맹렬하게 쫓아오면 당연히 그렇게 된다.
“말하라고 해서 말했잖아!”
빈우로서도 억울한 것이, 솔직하게 말하라고 해서 말한 것뿐이다. 다만 파트리샤도 솔직하게 반응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안아준다고요!”
“2위에서 3위가 된 그 방탄 가슴으로?”
“이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