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한창 조사 중이셨군요. 제가 방해됐나요?”
방에 들어온 히토미는 빈우가 보고 있던 자료를 대충 둘러보았다.
“아뇨, 이제 잠시 끝내려고 정리 중이었습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까?”
그러면서 빈우는 조사 자료를 보여주었다. 물론 보여줄 수 있는 것만. 히토미는 자료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묘한 눈빛으로 빈우를 쳐다보았다.
“이게 전부인가요?”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그래도 히토미는 시선을 치우지 않았다. 숱하게 빈우에게 데어본 자의 경험이다. 그래서 빈우는 다시 설명을 덧붙였다.
“의원님께 정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자료로는 말이죠. 지금 보시면 혹할 자료들이 몇몇 있긴 하지만 확실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제대로 판별이 되면 그때 다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제야 상원의원의 눈이 둥글게 휘어지며 자료 쪽으로 돌아갔다.
“음, 팀장님은 마카로니의 범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범인에 대해서 말씀입니까….”
빈우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말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는 만큼만 대답했다.
“일단은 군사정보국 요원이나 그에 준하는 훈련을 받은 자입니다. 신체 강화는 군용 2레벨 정도이고, 경험 많은 장갑 보병입니다. 신장은 180cm 초반, 체중은 100kg 정도. 만약 이것이 연방군의 정규 강화 시술일 경우 장갑복과 한정적인 교전이 가능할 정도의 신체 능력 수치가 나옵니다.”
잠시 목을 가다듬은 빈우는 말을 이어나갔다.
“굉장히 위험하단 의밉니다. 두뇌 칩에 들어있는 OS는 특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전문 첩보용은 아닙니다. 이렇게 행동했다가는 바로 경고가 뜨지요. 아마 전투용 OS에 스스로 습득한 정보전 기술을 응용하는 것 같습니다.”
히토미는 빈우가 줄줄 읊는 정보를 듣고선 눈이 동그래졌다.
“대단하군요. 신체 정보에 대한 것은 저도 군사정보국 자료에서 봤지만 이렇게 자세하게는 아니었어요. 게다가 OS에 관한 것까지. 그 정도로 추적이 가능한가요?”
“행동 반응을 보고 추측하는 거라 아직은 대략적인 겁니다. 자세한 것은 조사하면 더 나오겠지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히토미는 문득 자기 앞에 있는 빈우의 몸을 조심스레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런데 키 180cm에 체중 100kg이라면 꽤나 거구의 근육질이겠네요.”
의외의 말에 빈우는 의아하다는 눈을 하며 정정해주었다.
“네? 아뇨, 제가 지금 102kg입니다. 범인은 저와 체구가 비슷할 겁니다.”
“엣? 팀장님이요?”
뜻밖의 대답에 히토미의 눈이 다시 동그래졌다. 눈앞의 사내는 탄탄한 체구이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세 자릿수 체중은 안돼 보이는 것이다. 그런 히토미를 보며 빈우는 다시 설명을 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키 183에 체중 102입니다. 제 신체 정보는 두뇌 칩으로 조회가 가능할 텐데요. 아차, 의원님은 군용 OS가 없으시죠. 무슨 생각하시는 줄 대강 알겠는데, 군인들은 강화 때문에 겉보기보다 꽤 무겁습니다. 물론 의원님께서 하신 강화는 민간용이라 강화 비율이 신장 178에….”
“와와와!”
빈우가 자신의 체중을 얘기하려는 대목에서 히토미는 비명을 질렀다. 놀란 빈우는 최대한 온화하게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시도했다.
“저기, 의원님? 혹시 체중 때문에 그러십니까? 하지만 일단 군함에 타는 승무원들의 체중에 대해서는 정확히 측정하고 계산해야 합니다. 여긴 군대입니다.”
“어어, 그러면 팀장님은 어떻게 제 체중을 아시나요? 저 조사원이라서 개인정보는 조회가 안 된다면서요?”
체중에 대해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대개 민간인들의 경우라 빈우에겐 오래간만의, 그리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상처를 받지 않게 단어를 잘 조율해서 설명했다.
“물론 저는 조회가 안 됩니다. 하지만 탑승자의 체중은 배에 타고 내릴 때 다 계산합니다. 이거 의외로 중요합니다. 의원님께서 손님으로 오셨다면 모를까, 아예 숙식을 하시겠다고 하셨으니 이 정도는 감안하셨어야죠.”
“아니 신체 정보 체크하는 건 알지만 시스템 AI가 관리하는 줄 알았지, 설마 팀장님까지 아실 줄이야. 알겠어요. 후읍, 다만 막 말하고 다니지만 마세요. 부탁할게요.”
설명을 들은 히토미는 가까스로 진정한 뒤 빈우에게 입단속을 부탁했지만, 어째 빈우의 표정이 불안하다. 더럭 겁이 난 히토미가 빈우를 추궁했다.
“잠시만요, 팀장님.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거죠? 설마 벌써 다 말했나요?”
빈우는 흔들리는 히토미의 눈동자를 차분히 마주 보며 천천히 대답했다.
“아뇨. 제가 그런 것을 굳이 말하고 다닐 리 없잖습니까.”
그리고 안도하는 그녀의 모습에 미안해하면서도 잔인하게 덧붙였다.
“…공개되어서 팀원 누구나 열람 가능한데 말이지요.”
이어서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은 어쩔 줄 몰라 팔짝팔짝 뛰는 상원의원을 진정시키기 위해 진땀을 빼야 했다.
“자, 여기 선내 승무원 자료를 보십시오. 의원님의 신체 정보를 열람한 사람은 저와 아나스타샤, 오르 함장님뿐입니다. 다른 팀원들은 신경 쓰지도 않아요.”
히토미는 씩씩거리면서도 빈우의 말을 들으며 화면을 보았다. 그녀 자신, 오다 히토미에 대한 신체 및 건강 정보다. 열람 이유도 납득이 된다. 함장인 오르는 자신의 배에 타는 사람의 정보라서, 팀장인 빈우는 팀장이었기에, 그리고 아나스타샤는 히토미의 시중을 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다른 정보는 둘째치고 왜 체중만 이렇게 자주 체크하죠?”
“그야 선체 중량은 연료나 추진 부분과도 관계가 있는 부분이고, 승무원의 체중 변화는 건강과도 연관되기 때문에 항상 살펴봐야 합니다.”
이어서 다음 아래의 항목들을 살펴보던 히토미는 어느 항목에서 멈칫했고, 빈우는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의원님, 아무리 궁금하셔도 굳이 이런 데서 용변 항목까지 열람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오다 히토미의 얼굴은 아까보다 세 배는 더 빨개졌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연 게 아니에요. 내리다가 보니 떴어요! 근데 왜 대소변에 대해서 조사까지 하는 거냐고요오!”
“말씀드렸다시피 승무원의 건강 체크를 위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순양함 같은 경우는 재활용을 해야 하므로 면밀히 살펴봅니다. 저희 블랙 랜스야 기밀함이다 보니, 수거해서 보관하다가 기지에 돌아오면 처리하지만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상원의원과 그녀를 달래는 연방군 소령.
“…정 뭐하시다면 비공개로 할까요?”
빈우는 폭발 직전의 지뢰에서 뇌관을 도려내듯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그래도 되나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히토미는 지친 듯이 대답한다.
“네, 물론입니다. 당장 체중 부분만은 비공개로 해두겠습니다.”
“아, 그러면 더 이상하… 아니에요. 그냥 공개로 해두세요.”
기가 빠져 의자에 기대앉은 히토미에게 빈우는 차가운 커피를 한잔 내왔다. 별 시답잖은 이유로 심력을 소비한 상원의원은 커피를 마시고는 조금 감탄했다.
“하아, 어찌 되었건 팀장님의 커피는 정말 맛있어요. 식당이나 제 방의 것보다 더요.”
“당연하죠. 머신이 사제거든요.”
“아하.”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히토미에게 빈우는 몇 가지 다과를 내왔다. 간단한 쿠키와 빵으로 모두 민간인 용이다. 카페인과 당분이 들어가자 히토미는 조금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팀장님은 블랙커피에 빵을 즐겨 드시네요?”
“이거 말씀입니까? 별거 아닙니다. 사관학교 시절부터 자주 먹다 보니 버릇이 되어서 말이죠.”
지금까지 히토미가 본 바로는 빈우의 간식은 블랙커피와 빵, 거기에다 발라먹을 꿀과 버터였다. 물론 다른 것도 먹긴 하지만 주된 간식은 저것들이었다.
“그렇군요. 사관학교라…. 다음에 장교분들을 만날 기회가 오면 이렇게 대접하면 되겠네요.”
히토미로서는 순수한 호의로 한 말이겠지만, 빈우는 딱 굳어버렸다. 아니 굳었다기보다는 표정이 경직되고 커피잔을 든 손이 움찔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군인의 그런 반응을 본 상원의원은 잽싸게 커피잔을 내려놓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어서 히토미의 표정을 본 빈우는 좀 억울해졌다.
“의원님, 제 말 하나하나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 커피와 빵, 그리고 발라먹을 것들은 전부 정상적인 민간인용입니다. 아무런 이상도 없습니다.”
그런 빈우의 설명이 무색하게 히토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빈우를 바라보고 있다.
“아, 조금 트라우마가 생겨서 말이지요.”
첫 만남에서 군용 마카롱을 먹이고 사람들 앞에서 토하게 만들었으니 트라우마가 생길 법도 하다.
“설명하겠습니다. 블랙커피와 빵은 말입니다. 연방군 사관학교의 징벌식입니다.”
“징벌… 식이요?”
생소한 단어에 히토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네. 성적이 부진하거나 사고를 친 생도에게 벌로써 주어지는 겁니다. 징벌 기간 동안엔 오직 커피와 빵만 먹을 수 있죠. 삼시 세끼 말입니다.”
“어마, 그러면 생도들의 영양섭취에는 문제없나요?”
“군용이니까요. 맛과 향은 장식이고 강화 신체의 연료용으로 만든 것이라 하나만 먹어도 충분합니다.”
납득한 히토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든 생각에 질문했다.
“잠깐만요, 즐겨 드셨다면서요?”
“네. 동기인 마커스와 자주 먹었습니다. 익숙해질 정도로요.”
빈우의 대답에 히토미는 실소했다. 젊은 나이에 소령 계급장을 달고 닉스 레벨 3에 달하는 엘리트가 사관학교 시절에는 사고뭉치였다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간 그녀가 봐왔던 빈우의 행동을 보면 이해가 간다. 무슨 짓을 저질러서 커피와 빵을 먹게 되었는지 절로 상상이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엘리트인 김 소령도 결국 군사정보국에서 겉도는구나.’
히토미가 파악한 바로 빈우는 좋게 봐야 외부파견 요원이고, 나쁘게 보면 버림 패다. 오직 닉스 레벨 3이란 간판이 이 믿을 사람 없는 망망대해에서 그의 유일한 구명정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속 생각과 달리 웃으면서 농담을 꺼냈다.
“그랬군요. 그렇다면 장교분들께는 이렇게 대접하면 안 되겠네요.”
“안될 건 없지요. 에라, 처먹어라 하면서 준 다음에 상대의 표정을 커피 향과 함께 감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어머나, 짓궂으셔라.”
그러면서 히토미는 빈우의 잔에 커피를 잔뜩 따라주고, 접시에도 빵을 수북이 담아주었다.
“분에 넘치는 사랑, 잘 먹겠습니다.”
빈우는 또 좋다고 그걸 쏙쏙 먹었고 히토미는 깔깔 웃었다. 분위기가 부드럽게 되었을 때 빈우는 화제를 전환했다.
“참, 의원님. 예전에 말씀하셨던 의정활동에 대한 두뇌 칩 정보 동기화 말씀입니다만.”
블랙 랜스는 기밀작전 함이라 탑승 중에는 의원들의 두뇌 칩 동기화를 할 수 없다고 했었고, 그걸로 히토미는 조금 실망한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달리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런 정보가 들어와 있지 않아서 처음엔 조금 적응하기 힘들었지만,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또 필요한 것은 사령부로 가서 유선으로 동기화하면 되니까요.”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아무튼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빈우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런데 42 전단으로 간 다음이 문제입니다. 의원님께서 가셨을 때 과연 그곳에서 동기화 회선을 줄지 말입니다.”
“아, 설마 42 전단에서도 동기화를 막을까요?”
“그건 전단장의 재량이라 저도 확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혹시 의원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어떻게 말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빈우의 말에 히토미가 놀라서 손사래를 쳤다.
“어머, 아니에요. 굳이 그런 일로 김 팀장님에게 폐를 끼칠 순 없죠. 전단장에게 물어본 다음에 허락받으면 쓰고, 안되면 못 쓰는 거죠. 뭐.”
빈우는 히토미의 두뇌 칩 회선 동기화를 핑계로 점프 게이트의 회선을 조사해보려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시간이 걸리고 돌아가서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