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34화 (132/301)

134화

“어머, 내 정신 좀 봐. 말씀드릴 게 있어서 온 건데 깜빡했네요.”

오자마자 얼굴 붉힐 일이 조금 있어 본래의 용건을 까먹었던 히토미가 자세를 바로 하고 말을 꺼냈다.

“다름이 아니라, 혹시 팀장님께서 42 전단으로 가게 되면 작전참모를 맡아 주실 수 있나 해서요.”

“제가 작전참모를요? 혹시 그거 의원님이 속한 파벌의 의견입니까?”

갑작스러운 권유에 반문하는 빈우에게 히토미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작전참모란 직책은 누가 되고 싶어서 되는 자리가 아니다.

“네. 김 팀장님은 리퍼와 교전 경험도 많고, 함도 지휘해 보셨으며, 국방대학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셨잖아요. 우리 쪽에서 보기엔 우수한 재원이신데. 아 물론 결정된 건 아니에요. 일단 당사자의 의견부터 물어보라고 해서요. 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그녀 말대로 빈우에게 조건은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닉스 레벨 3의 인재가 참모로 붙는다면 여러모로 든든할 것이다.

“그거야 결정권은 전단장에게 있습니다만, 글쎄요. 참모진은 지휘관의 최측근들이고 작전참모라면 그중에서도 오른팔입니다. 아마 전단장 될 양반이 자신과 같이 지내던 인물이나 호흡이 맞는 사람을 지명하겠죠. 저 같은 외부인사는 안 쓸 겁니다.”

42 전단이 연방 최고의 인재들로 꾸려진다지만 사람들 간의 손발이 맞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나 참모진 같은 경우는 더더욱.

“게다가 전 태스크 포스 373으로 42 전단의 장갑 보병을 교육시켜야 하니까, 그리 좋은 인선은 아닙니다. 아마 지상전에 대해 조언 정도는 구하겠지요.”

“그런가요.”

히토미는 아쉽다는 듯이 포기했다. 쉽게 포기한 것을 보면 그녀로서도 크게 밀어붙일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나저나 의원님. 42 전단을 놓고 이렇게 파벌싸움을 해도 될까요?”

샤다이에게 반격을 하기 위한 42 전단. 그러나 채 만들어지기도 전에 잡음이 생긴다. 그것도 빈우와 태스크 포스 373을 둘러싸고. 다른 함대에서 경험을 쌓은 자라면 모를까, 지상전과 정보전의 베테랑을 전단 작전참모로 추천하려고 하는 건 좋은 생각은 아니다.

“아니에요. 이번 건은 팀장님이 우리 쪽 사람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팀장님이 그만큼 경험이 많은 분이라서 추천하려는 거예요.”

하긴 빈우만큼 외계종족을 많이 죽이고 다닌 자는 연방에서도 드물다. 울토르 중대의 지휘관으로 정말로 쉴 새 없이 싸워왔으니까.

“하지만 아직 42 전단의 구성이 어찌 될지 모르는 판국이잖습니까. 너무 서두르는 감이 없잖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아, 그거에 관해서 새로운 정보가 있어요. 국방위원회를 통해 들어온 것인데, 42 전단은 1함대와 3함대에서 병력을 차출한다더군요.”

“1함대와 3함대를요?”

빈우가 놀라서 반문한다. 중앙함대에서 병력을 차출한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이 정도일 줄 몰랐다. 1과 3함대는 둘 다 태양계와 화성을 지키는 인류 연방의 최강 전력이다. 또한 연방군의 모든 함대 중에서 가장 강력한 함대이자 전략 예비대이기도 하다. 이들은 태양계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필요에 따라 파견을 나가거나 분함대를 만들어 필요한 곳에 투입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연방 최강의 함대란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그리고 장갑 보병은 뱅가드에서 차출하고, 전투기 파일럿들은 각지의 에이스들을 모아서 운용할 거라네요.”

“역시 42 전단이란 건가. 그렇다면 전단장은 1함대 사령관인 이반 이바노프 대장입니까?”

“아직 정확한 규모는 미정이고 함대기함까지 갔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앞날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을 무렵, 모니카가 빈우에게 통신을 보내왔다.

-팀장님, 지금 혹시 격납고로 오실 수 있으세요? 컨커러 조정이 다 끝났어요.

모니카가 부르는 것은 좋은데 용건이 컨커러라고 하니 빈우는 기운이 쭉 빠졌다.

“잠시 기다려, 지금 좀 바빠서.”

“아니에요, 제 용건은 끝났어요. 어서 가보세요. 제가 먼저 일어날게요.”

히토미와의 대화가 끝난 빈우는 그녀와 헤어져 격납고 쪽으로 갔다. 격납고에 도착하자 마침 그곳엔 파트리샤도 와서 자신의 장갑복을 점검하고 있었다.

“와오, 팀장님. 어서 오세요. 근데 어쩐 일이시래요?”

솔직담백한 그녀는 아까 자신이 짓이겼던 두개골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모니카가 불러서. 근데 얘는 사람 불러놓고 어디 갔냐?”

“조정실에 들어갔어요. 곧 올걸요?”

빈우는 싱글벙글 웃는 파트리샤를 자세히 살펴봤다. 전용 장비에 인필트레이터를 넣고 점검하던 그녀는 마카롱을 먹고 있었다. 두뇌 칩 정보를 조회하면 체중 같은 신체 정보는 당연히 나온다.

“너 지금 체중 얼마야?”

불쑥 들어오는 빈우의 질문에 파트리샤가 움찔 놀란다.

“예? 에? 어, 요즘은 63kg에서 오락가락할걸요.”

이런 게 빈우가 아는 정상적인 반응이다. 바로 알 수 있는 체중을 굳이 물어보는 팀장의 모습에 파트리샤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설마 아까의 보복을 위해 시동을 거나, 싶은 것이다.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빈우는 그녀 앞에 놓인 마카롱을 보며 한층 거세게 쏘아붙였다.

“너 하루에 몇 칼로리 먹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파트리샤는 마카롱을 후다닥 입에 집어넣고선, 채 씹지도 않고 꿀꺽 삼켰다.

“에헤헷, 어찌어찌 2만 칼로리?”

“흐으음?”

빈우의 콧김 소리에 파트리샤가 쩔쩔맨다.

“잠깐만요, 나 원사님 다음으로 강화 비율 높잖아요. 또 저는 먹어도 증량 안 돼요. 특수 강화라고요오오. 하루 이틀 산 것도 아닌데 오늘 왜 이래요.”

군인의 신체는, 특히 특수전 사령부 소속 군인의 신체는 연방 최고의 전투 장비에 속한다. 어영부영 먹고 자고 했다간 관리 소홀로 곤욕을 치르는 것이다. 상사가 합법적으로 부하 털기에 최적의 시빗거리다.

“그래? 흠. 뭐 그럼 됐고.”

볼일 다 봤다는 듯이 돌아서는 빈우의 모습에 파트리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헌데 그게 좀 거슬렸는지 빈우가 도로 홱 돌아보며 추궁했다.

“하나 물어보자.”

“아이, 내 심장. 뭔데요?”

빈우는 바로 질문하지 않고 약간 뜸을 들였다.

“아까 내 바에서 의원님 체중 얘기로 약간 트러블이 있었는데 말이지. 좀 심각하냐?”

“체중이 왜요? 설마 물어보셨어요? 아니 그걸 왜 물어봐요. 어차피 상원의원이라 우리 쪽에선 조회도 안 되잖아요.”

애가 타서 혀를 차는 파트리샤에게 빈우가 떨떠름하게 말을 덧붙였다.

“아니, 그래도 탑승 시에 체중 계량하잖아.”

“아, 맞다. 하지요.”

맞장구를 치던 파트리샤는 여기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설마 그거 우리들처럼 공개로 해놓은 거예요? 체중까지?”

“상식이잖아.”

“에티켓은 배가 고파 쳐 잡수셨나.”

한심하다는 듯이 쏘아붙이는 파트리샤의 시선에 빈우는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야. 그래서 비공개하려는데, 의원님은 또 공개해 놓으랍신다.”

“에혀. 내가 말을 말아야지.”

파트리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자신의 장갑복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난 또 체중 물어보길래 뭔가 했네. 민간인을 대할 때는 좀 조심하라고요.”

말이 궁해진 빈우가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마침 모니카가 장갑복 컨테이너를 밀며 나타났다.

“팀장님, 늦어서 죄송해요. 하지만 기뻐해 주세요. 컨커러의 동력이 강화되었어요. 이제 XPS를 두 개 동시에 들 수 있다고요. 두 개를 들면 빈틈이 없겠죠?”

빈우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기뻐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힘들 것 같다.

“그래서, 그 귀한 XPS가 지금 두 개씩이나 있긴 하냐?”

컨커러의 동력을 강화했다는 것은 확실히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XPS는 부품문제로 더 이상 만들기 어렵다고 했다. 두 개를 들 수 있어도 들 게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네, 여기요.”

하지만 모니카는 환한 미소와 함께 XPS 두 정을 꺼내 보였다. 그걸 본 빈우의 표정이 썩는다.

“그리고 놀라지 마세요. 이젠 XPS가 아니라 가변형 플라스마 병기로 코드 네임은 스핑크스라고 해요. 정식 코드 네임이 떴다고요.”

하지만 빈우는 저 결함 병기가 코드 네임까지 따냈다는 사실이 놀랍다.

스핑크스라면 인간의 머리에 사자의 몸과 날개가 달린 전설 속의 동물이다. 그리고 변화에 대한 수수께끼를 낸다는 점에서 어울리는 코드 네임이기도 하다.

“여기요, 이거요. 이게 기존의 XPS와 스핑크스와의 차이점이에요.”

모니카가 신이 나서 데이터 패드를 보여주고, 뒤에서 파트리샤가 신이 나서 다가와 붙는다. 하긴 타인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이 되는 경우는 많지만, 그 불행의 당사자가 되면 그 불행은 더더욱 가속된다.

“차이점? 아니 어디가, 뭐가 바뀐 건데.”

빈우는 툴툴거리며 스핑크스의 자료를 살펴보았다. 달라진 거라곤 에너지 효율이나 변형속도뿐이고 본질적인 문제는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역시나 총으로 쓸 때 방패로 쓰지 못한다.

“에이, 그래서 두 개를 쓰시란 거예요. 또 이건 컨커러의 개량 점들이고요. 대단하죠?”

이번 것은 좀 볼만했다. 동력도 동력이지만 가장 큰 문제인 방어막 작동 시에 움직임이 제한되는 점을 고쳤다고 한다. 그런데 기록을 보니 테스트가 실험실에서만 이뤄졌고, 실제 시험기동은 없다.

“야, 이거 나보고 테스트해보라는 거 아냐. 미쳤냐?”

“에헤헤, 그게 이거 만든다고 시간과 예산이 조금….”

모니카가 멋쩍게 웃으며 두 정의 스핑크스를 가리키자 빈우는 그냥 눈을 감고 턱을 쓰다듬었다. 하긴 대량의 샤다이 자재와 정보가 들어간 마당이니, 이미 만들어진 장비의 개량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 과학기술국이라면.

“하지만 잘 보세요, 팀장님. 컨커러를 입고 스핑크스 두 정을 동시에 쓰는 모습을요.”

모니카가 거치대에 서 있는 컨커러의 양손에 스핑크스를 한 정씩 들려줬다. 그리고 패드로 조작해 변형과정 보여준다. 확실히 변형속도는 빨라졌다.

“이렇게 오른쪽이 발사 모드면 왼쪽은 방패 모드로. 반대로 왼쪽이 총이면 오른쪽이 방패로. 어때요. 빈틈이 없죠? 또 동력도 넉넉하다고요.”

오른쪽으로 비비고, 왼쪽으로 비비고. 눈앞에서 지랄을 비비는 광경에 빈우는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스핑크스 저거 하나의 가격은 어벤져 열대는 한다. 도합 스무대의 어벤져, 분대로 따지면 5개 분대가 양쪽에서 팔랑거리는 광경은 참으로 돈 지랄이었다.

분명히 이전 기록에, 그러니까 XPS의 이전 버전은 총과 방패가 따로였다고 했었다. 위력도 지금의 가변형보다 좋고, 에너지 효율도 좋고, 결정적으로 가격도 싸다. 덧붙여 고장이 적고 정비가 편하다는 점은 안 봐도 뻔하다.

빈우는 남녀 평등주의자다. 빡치면 남자도 패고, 여자도 팬다. 상관도 까고 부하도 깐다. 눈앞의 모니카 보르자 대위가 전투용 강화만 받았더라도, 지금의 스핑크스 마냥 접었다 폈을 것이다.

물론 모니카가 속한 부서는 컨커러 개발을 맡은 부서고, 스핑크스는 다른 부서에서 개발, 제작했다. 그러나 중간에서 모니카가 어떻게 정보 전달을 했는지 최종 결과물이 이딴 식으로 나와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고 참으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오! 이거 두 개를 동시에 운용할 전력이면 차라리 저기 저 입자가속포를 쓰고 말지.”

답답해서 이를 갈던 빈우의 눈에 들어온 것은 블랙 랜스에서 쓰이는 부포인 입자가속포였다. 스핑크스 두 개 분량의 에너지라면 저 함포를 어찌저찌 쓸 수 있을 정도다.

“응? 잠깐만?”

말이 씨가 된다고. 빈우는 자신의 머릿속에 뿌려진 씨앗에서 불길한 싹이 움트는 것을 느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