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36화 (134/301)

136화

현재 태스크 포스 373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연방 내 살인사건의 범인 추적. 다른 하나는 42 전단으로 합류하는 것. 일단 42 전단에 합류하면 시간을 내기 힘들기 때문에 빈우는 그전에 최대한 수사를 진행해 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빈우에겐 그것 말고도 할 일이 꽤 많았다.

“맥주라….”

저녁 시간, 블랙 랜스의 식당에서 빈우는 자신의 앞에 놓인 맥주잔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를르캥.”

그의 부름에 맥주를 따르던 안드로이드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이건 제가 직접 만든 게 아니라 생성기로 만든 겁니다. 시간이 되면 팀장님 고향의 보리로 맥주를 빚어보려고 했습니다만.”

“아니 그거야 보면 아는데, 메뉴 말이다. 이것도 네 주인의 것이겠지?”

오늘 저녁 메뉴는 맥주와 닭튀김, 감자튀김 등이 차려진 풀코스다. 식사라기보다는 마치 술안주 같다. 팀원들이야 좋아서 낄낄대지만, 메뉴에 의미를 두는 빈우에겐 조금 곤란했다.

“네, 라캉 중령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겁니다.”

빈우는 아를르캥에게 되도록 라캉 중령의 레시피를 재현하라고 했었다. 워프 비스트와 관련된 자료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찾기 위해.

‘내가 맥주에 관해서 라캉 중령에게 말한 적이 있을 텐데.’

빈우의 고향은 보리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농업 행성이고, 그의 어머니는 맥주 공장을 만들다가 사고로 죽었다. 그래서 빈우는 맥주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있으면 마시지만, 굳이 찾아서 마실 정도는 아니다.

피에르 라캉은 요리라던가 에티켓에 일가견이 있어, 대접하는 사람에 따라 메뉴에 세세한 신경을 쓴다. 때문에 상대방이 꺼리는 음식을 내놓거나 할 사람은 아닐뿐더러, 자신의 허수아비에게도 이런 주의사항을 단단히 일러둘 게 분명한 성정이었다.

‘설마, 라캉 중령은 내 트리니티 패턴에 대해서 조사를 했나? 그리고 강제로 풀기 위해 스트레스를 주는 것인가?’

생각의 가지가 끊임없이 뻗어 나간다. 오죽하면 피에르 라캉 중령이 숨긴 워프 비스트에 관한 정보가 실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고, 그것을 풀 방법으로 메뉴로 스트레스를 주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문득 저쪽을 보니 아나스타샤가 이쪽의 눈치를 보고 있다. 아마 맥주가 나온 것 때문에 그러겠지. 빈우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싱긋 웃으며 맥주잔을 들어 보인다. 그러자 아나스타샤도 마주 웃어주곤 다른 사람들에게로 갔다.

시선을 다시 맥주잔으로 돌리니 불현듯 떠오르는 말이 있다.

‘양심하고 타협하지 마.’

피에르 라캉 중령이 자신의 허수아비인 아를르캥에게 남긴 유언이다. 당시 빈우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기억하지도 못했고, 기록에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기록에서 잠겼다면 아마 군사정보국에 들어간 다음에 라캉 중령에게 한 말일 것이다. 또한 높은 확률로 울토르 프로젝트가 관련되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 말고도 기억이 나는 게 또 있다. 군사정보국에 들어가기 전, 위은쓸납학에서 작전을 할 때다. 능구렁이 이노우에 국장이 닉스 레벨 요원들의 심사를 하면서 양심 팔이를 했을 때였다. 그때 빈우는 이노우에 국장을 밀어붙이며 그 말을 했었다. 그 당시 작전의 본질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보육원으로 들어간 팀원들의 목적은 단순한 후방교란이 아니었다. 그들을 격노시킴으로써, 항복이란 선택권을 빼앗고 전투의 종식을 막는 것이었다.

그때 빈우는 철저하게 임무를 완수하려 했다. 그것은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인류와 전쟁 중인 위은쓸납학에 맞서 훌륭하게 싸웠다.

하지만 위은쓸납학으로부터 항복을 빼앗기 위해 해야 할 행위들이 조금 문제였다. 아무리 적대종족이라고 해도 죄가 없는 위은쓸납학의 유생들에게 지구 제국의 종족 말살 병기인 쉬바를 주사해야 하자, 사태는 다르게 흘러갔다.

자신들의 작전이 적과의 전투에서 생명의 학살로 넘어가자, 팀원들은 그때까지 교육받았고 같이 커왔던 양심에게 손가락이 붙잡히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감독관으로 침투해있던 이노우에 고토는 팀원들의 이런 부분을 교묘하게 부추겼다.

-이건 옳지 않아, 잘못된 거라고, 해선 안 되는 짓이야.

당시 고토는 선뜻 나서지 못하는 팀원들 앞에서 생명의 가치에 고뇌하는 양심가를 연기했었고, 실제로 많은 팀원들이 동요했었다.

물론 군인들도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 해당 명령이 불법적이고 연방에 명확히 해가 된다 판단이 내려지면 항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위은쓸납학의 유생에게 쉬바를 주사하는 것은 그 어디에도 해당이 안 되었다. 오직 자신의 양심만이 뒤에서 불편한 시선을 보낼 뿐이다.

-같은 군인끼리 싸우면 되잖아. 민간인을, 어린아이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다고! 그것도 이런 식으로!

고토의 그 말이 결정타였다. 지금까지 자신과 같은 방향을 향해 봤었던 가치가 현재의 의무와 다른 길에 섰을 때, 대다수의 팀원들은 거부감을 느꼈다.

하지만 빈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잔혹하고 철저하게 명령을 수행했다. 분위기를 조성하는 이노우에를 밀치며 앞장섰다. 그리고 자신의 의무와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양심하고 타협하지 마.

빈우는 그렇게 고토를 윽박지르고 무차별적인 살육을 행했다. 유생을 무기로 삼고, 알을 방패로 삼아 싸웠다.

물론 자신의 적이 인간이었다면 설령 명령이라 해도 빈우는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생명이라도 거리낌 없이 학살할 수 있었던 건 외계종족이기 때문이었다. 인간과 외계 종 사이에 선을 그어놓은 빈우는 선 너머로는 양심을 가져오지 않았고, 그 덕에 거리낌 없이 살생을 할 수 있었다. 빈우는 인간이 아닌 것을 죽이는 데에 일체의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인간이라….’

그러고 보면 클론들은 마카로니에서 인간을, 개척민들을 몰살했다. 이유는 그들의 기준으로 개척민들이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생각을.’

그런 생각을 하는 빈우의 앞에 여러 양념을 해 다종다양한 닭튀김들이 푸짐하게 쌓인다. 둠치킨의 맹공에 반격하기 위해 피자 타이거와 스파게티 드래곤에서 손님 끌기 용 사이드 메뉴를 개발할 때, 양사에서 파견된 김빈우 과장과 피에르 라캉 부장이 개발하고 시식했던 요리들이다. 라캉 부장은 요리에 일가견이 있어서, 김 과장은 전투 강화를 해서 칼로리 소비가 많다는 이유로 둘은 팀이 되었다.

그런데 접시를 내려놓은 아나스타샤의 눈에서 약간 걱정스러운 기운이 보인다. 빈우는 자기가 표정 관리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키워 온 아나스타샤에게까진 숨길 수 없었던 것 같다.

“으아, 또 이거야. 또 먹어야 해? 입에서 닭똥 냄새날 때까지?”

빈우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투덜거렸다. 마치 과거의 악몽에 고통받는 것처럼. 그러자 아나스타샤는 빈우의 표정이 이것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입에 안 맞으시는 거라도 있습니까?”

저기서 음식을 준비하던 아를르캥이 빈우의 낮은 푸념에 놀라서 돌아본다.

“그건 아니고, 예전에 질리도록 먹은 거라서 그래. 그때도 일이라고 생각하며 먹었거든.”

힘없는 눈을 한 채 닭 다리를 잡고 뜯는 빈우였지만 머릿속은 맹렬하게 회전 중이었다.

‘그렇다면 아를르캥은, 아니 피에르 라캉 중령은 왜 내게 그런 말을 전했을까. 내가 라캉 중령에게 그 말을 했다면, 아마도 위은쓸납학과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다. 스스로의 도덕적 가치와 명령 사이에서 갈등할 때, 그는 망설였고 나는 그 말을 하며 밀어붙였다. 그리고 갈등을 하게 된 일은 높은 확률로 울토르 프로젝트.’

울토르 프로젝트 자체가 상당히 비인도적이며 불법적인 프로젝트다. 자아가 있는 전신 클론을 만들어 군용병기로 사용한다는 발상은 연방을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라캉 중령은 죽은 다음 나에게 그 말을 돌려주었다. 워프 비스트의 정보를 찾는 게 그날의 일과 관계가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내가 정보를 찾으려 할 때, 나 또한 그런 갈림길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의미일까? 군사정보국에서 어지간한 기록은 풀었지만, 이것만큼은 잠겨있으니 알 도리가 없군.’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빈우는 아앤아의 말을 떠올렸다. 위은쓸납학과 연관된 일 중 가장 최근에 관련된 생각이다.

-너희들의 그 삼진아웃제는 무엇을 의미할까? 전쟁을 막기 위한 구실? 아니 그보다는 종전을 막기 위한 구실이 아닐까? 연방은 이미 세 번이나 기회를 주었음에도 저놈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쳐들어온다. 저 호전적인 종족을 내버려 둬선 우리 인류가 위험하다. 이렇게 받아들이지 않나? 그리고 일단 전쟁을 일으킨 너희들은 결코 멈추지 않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위은쓸납학과 라출노그는 상황이 다르다. 위은쓸납학은 결사 항전을 하다가-연방에 의해 강요받다가-전쟁에서 패배해 멸종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후자는 종족 간의 내분 덕에 전쟁을 멈추고 동맹으로 남을 수 있었다. 허나 라출노그와의 전쟁은 처음부터 연방이 의도한 것이었고, 그 이후로도 공작은 계속되고 있다.

‘삼진아웃제의 의미. 연방이 세 번이나 참으면서 교섭을 시도하는 이유. 외계종족의 공격을 보여주어 연방의 시민들에게 전쟁 의지를 고취시키는 것… 이라.’

연방의 군인인 빈우가 보기에 상층부의 뜨뜻미지근한 대처는 오히려 무력충돌을 야기하는 것처럼 보였었다. 그래서 자신이 속한 군사정보국이 조금만 손을 더럽힌다면 전쟁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안타까워했었다.

그러나 연방에서 유학을 하고, 라출노그에서 장성까지 한 아앤아의 시선은 달랐다. 그는 연방의 미온적인 대처가 외계종족의 침략행위를 유도하고, 그것을 세 번이나 반복해 연방 내부의 여론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끈다고 생각했다. ‘저들은 세 번이나 기회를 거부한 자들이다. 더 이상의 자비와 평화는 없다.’ 라는 식으로.

‘무엇이 정답일까.’

빈우는 맥주를 마셔 입안의 닭고기를 삼켰다. 고작해야 영관급 장교에 불과한 그로서는 군의 장기적 전략방침에 관해 잘 파악하고 있을 순 있어도, 연방 전체의 독트린에 대해선 제한적인 시야를 가질 수밖에 없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히토미가 여러 종류의 닭튀김을 재밌게 맛보고 있다. 오히려 그녀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상원의원인 오다 히토미라면 연방이 나아갈 길에 대해, 그리고 외계종족을 대하는 방향성에 대해 빈우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은 당연하다.

“일단 접어둘까.”

당장은 필요 없는 일이라 빈우는 혼잣말과 함께 양념치킨을 들었다. 고추장 비율로 라캉 중령과 옥신각신했던 최종 버전이다.

“팀장님. 통신입니다.”

그때 옆에서 오르 함장이 말한다. 재생되는 신경 신호로 맥주의 맛을 음미하던 그가 블랙 랜스로 들어온 기밀통신을 받아 빈우에게 전달한다. 통신 내용을 살펴본 빈우는 양념치킨을 내려놓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태스크 포스 373에게 42 전단으로 합류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런데 위치가 애매하다. 빈우가 다음 목적지로 생각한 자치 행성 뉴 소노라가 중간 합류 지점이다. 여기서 태스크 포스 373은 일단의 함대들과 합류한 다음 다시 이동하게 된다.

뉴 소노라. 빈우가 다음으로 조사해야 할 도시인 글림이 있는 행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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