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모두 먹으면서 들어.”
맥주잔을 드는 빈우의 말에 팀원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인다. 그러나 달리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다. 그저 팀장의 말에 보는 것뿐이다.
“태스크 포스 373의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 42 전단으로 합류하란 명령이다.”
닭고기를 씹던 팀원들의 눈빛이 조금 날카로워진다.
“목적지는 뉴 소노라다. 이곳 마카로니에서 점프 한 번이면 바로 닿는 곳이지.”
이어진 말에 히토미가 멈칫하더니 조용히 빈우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빈우는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의원님,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네. 뉴 소노라라면 팀장님의 다음 수사지역인 글림이 있는 곳이잖아요.”
그제야 팀원들도 뭔가 수상한 점을 눈치챘다.
“맞습니다. 42 전단의 중간 합류 지점에 제가 수사해야 할 도시가 있습니다.”
“저기요, 팀장님.”
파트리샤가 먹던 닭 다리를 들곤 질문한다.
“팀장님이 다음 수사해야 할 곳이 중간 합류 지점과 겹친다면 시간 절약이라고 좋아해야 하나요. 아니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다고 의심해야 하나요?”
그녀 역시 실리콘 나이트에서 이런저런 작전을 해왔기에 여러 가지 냄새를 잘 맡는다.
“나도 되도록 좋게 생각하고 싶다. 일단 뉴 소노라 게이트는 수많은 게이트들과 연결된 허브 게이트다. 그래서 이쪽 방면에서 모이는 42 전단 대원들의 중앙 합류 지점으로 안성맞춤이지. 같은 이유로 범인이 이곳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어. 뉴 소노라 게이트만 거치면 어지간한 곳은 직통으로 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빈우는 피클 하나를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하지만 다른 관점도 있지. 뉴 소노라에 있는 녹색 연맹이 목적일 수도 있다는 점.”
뉴 소노라는 연방의 공식 명칭이다. 그러나 그곳의 도시 연합체들은 자신들의 연합체 이름인 녹색 연맹으로 불리길 더 좋아한다. 녹색 연맹이란 이름 자체가 인류 연방보다 역사가 길다는 이유 하나로.
인류 연방은 지구 제국의 붕괴 이후 인류들의 거주지를 모아서 결성한 정부다. 당연히 기존의 행성 정부 중에는 연방의 통치를 달가워하지 않는 정부도 많다. 그래서 연방은 이런 곳을 자치 정부로 두어 관할권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놓고 있다.
연방은 자치 정부들이 세금만 잘 내고 하지 말란 것만 하지 않으면, 달리 터치를 안 하고 점프 게이트도 사용하게 해준다. 연방이 금지하고 있는 것은 외계종족과의 접촉, 그리고 점프 게이트의 단독사용, 연방으로부터의 분리독립 등이다. 이런 가이드 라인만 준수한다면 자치 정부가 행성 안에서 무엇을 하든지 연방은 일체의 관여를 하지 않는다.
다만 이를 어긴다면 그때는 철권제재가 들어간다. 자치 정부들로선 영 탐탁지 않은 일이겠지만 점프 게이트는 연방이 독점하고 있고, 과학력, 생산력, 군사력 어느 것 하나 자치 정부 측이 앞서는 게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뿐이다.
“녹색 연맹은 마카로니 독립의 배후세력이기도 하지요.”
히토미는 그 말을 하면서도 떨떠름한 표정이다. 그녀의 말대로 녹색 연맹이 개척 행성 마카로니에 침투해 사보타지를 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알고서도 막지를 않고 오히려 부추긴 곳은 연방의 정보조직들이다. 그들로서는 샤다이와의 연관점도 있고 하니 일을 키워 녹색 연맹을 쳐내려 한 것이겠지만 일이 너무나도 커져 버렸다.
“네, 그래서 일부로 이곳을 중간 합류 지점으로 삼았을 수도 있습니다.”
팀원들은 빈우의 말이 의미하는 게 뭔지 바로 알아차렸다. 바로 무력시위다. 반 연방 세력이 다수파를 차지한 녹색 연맹의 행성 뉴 소노라. 그곳에 42 전단으로 합류하는 함선과 전투기들이 모이며 그 존재만으로 녹색 연맹을 압박하는 것이다.
“게다가 42 전단은 샤다이 공격 함대입니다. 마카로니에 샤다이가 있었던 만큼 녹색 연맹을 의심스럽게 볼 수도, 아니 그렇게 보려고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잠시만요, 팀장님 말씀은 설마.”
걱정이 묻어나는 히토미의 말에 빈우는 덤덤하게 대답한다.
“네. 어쩌면 조금 더 강도 높은 무력시위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치킨과 맥주로 들떴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는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방의 군인이다. 반 연방 자치 정부들에 대해 고깝게 보는 이도 있고, 아예 무시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군인이고, 저들은 민간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할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무력시위, 즉 민간인을 협박하라는 명령이 내려올지도 모른다고 하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게다가 태스크 포스 373은 장갑 보병 위주의 팀이다. 지상 작전이 있으면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만큼 불려 나가게 된다. 외계종족이라면 거리낌 없이 떼몰살시키지만, 인간 민간인 상대로는 영 꺼림칙하다.
“표정들 왜 그래? 강도 높은 무력시위라고 해도 우리가 나설 일은 없다. 끽해야 전함들로 대기권 순찰시키면서 충격파로 지상에 위압을 주거나 하는 정도겠지. 게다가 우리 같은 비밀작전팀을 모습을 드러내는 지상 임무에 투입하는 건, 그야말로 닭 잡는 칼로 소 잡는 거야.”
빈우의 그 말에 팀원들은 조금 안심했다.
“자, 이제 우린 다른 부대들보다 먼저 가서 미리 지상에 강하해 수사를 한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다시 불안해졌다. 파트리샤가 재빨리 질문한다.
“잠시만요, 팀장님. 무력시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모른다고 했지. 아직 정식 명령이 내려온 것은 없어. 하지만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니 그 전에 빨리 우리 할 일 먼저 하자는 거 아니냐.”
빈우는 팀원들의 걱정에도 아랑곳 않고 그저 닭 다리를 뜯을 뿐이다. 그의 태연한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다시 저녁 식사의 느긋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빈우는 닭고기와 맥주를 번갈아 먹으며 오르 함장에게 말했다.
“함장님, 뉴 소노라로 서둘러 갑시다.”
느긋함은 개뿔.
* * *
뉴 소노라는 오래전 개척 완료가 된 행성이다. 또한 기술력도 상당해서 스콜피온 같은 전차 비슷한 장비를 만들어 자치 정부들에 팔고 있을 정도다. 행성 궤도의 블랙 랜스에서 내려다보는 뉴 소노라는 평화로워 보였다.
“글림은 딱히 반 연방파가 아니었군요.”
히토미가 뉴 소노라의 자료를 보면서 말했다.
“네, 뉴 소노라의 개척은 지구 제국 말기에 시행되었습니다. 허나 개척 사업은 각기 다른 회사들에 의해 행성의 여러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진행되었다는군요. 그래서 개척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에는 각 도시들끼리 꽤 마찰이 있었답니다.”
빈우가 뉴 소노라의 역사에 따른 개척상황도를 보여줬다. 점이 면이 되고 면이 마주치는 선이 시시각각 급변한다. 교섭과 거래에 의한 변화도 있겠지만, 무력과 강제에 의한 변화가 더 많다.
“그러다가 지구 제국이 와해되고 인류 연방이 탄생한 다음, 연방은 이들과 접촉했습니다. 우주에 흩어진 인류들을 규합하는 과정에서죠. 그러나 자신들을 얽매던 기업이 사라지고 제국마저 없어졌다는 말에 녹색 연맹은 저울질을 했지요.”
빈우가 자신의 양손을 들고 저울질하는 시늉을 한다.
“자신들보다 뒤에 생긴 연방의 아래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독립하여 인류의 종주가 될 것인가.”
팀장의 간략한 설명에 팀원들의 입가엔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과거 그들 선조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꼬리보단 머리가 되고 싶어 하니까.
“그렇게 녹색 연맹이란 도시 연합체가 탄생했습니다. 어제까지 아웅다웅하던 적들은 하나의 세력으로 뭉쳐 인류를 선도하겠다는 몽상을 꾸었겠죠. 하지만 복권은 꽝이었고, 쌍방 간의 기술격차를 파악하지 못한 채 블러핑으로 일관했던 외교는 망했지요. 그리고 그다음이 문제입니다.”
빈우가 보여주는 것은 녹색 연맹에서 주로 쓰이는 교과서다. 그는 한 부분을 뽑아내 보여주었다.
“어랍쇼?”
그 항목을 읽은 위르겐이 고개를 갸웃한다.
“연방의 강제와 억압에 의해 녹색 연맹은 우주로 진출할 기회를 잃었다고오?”
위르겐이 콧방귀를 뀌는 대목은 녹색 연맹 측의 역사 왜곡 부분이다. 이들의 역사 교과서엔 녹색 연맹이 연방의 억압 때문에 개발이 제한되고 발전이 지체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 당시 뉴 소노라는 자신과 연방 간의 국력 차이를 잘 알지도 못한 채 몸값만 비싸게 굴었다. 그러다가 협상은 파토 났고, 연방과는 게이트의 소유권을 놓고 수차례 분쟁을 벌였다. 결과는 지금 눈앞에 있는 대로. 소꼬리를 버리고 닭대가리를 원했던 놈들은 결국 대가리가 되기는 했다. 다만 꼬리 밑에서 놀고 있지.”
“아니, 이런 거 수정하라고 요청해야 하지 않습니까?”
위르겐의 말에 빈우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자치 정부잖아, 우리가 무슨 권리로? 지네들 맘대로 하라 그래.”
하긴 자치 정부 사람들이 연방과 접촉하게 되면 간혹 이런 문화 충격을 겪는다고 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사실이 연방 쪽의 진실과는 다를 때 오는 충격.
“그런데 팀장님. 녹색 연맹에 반연방파가 득세한다면 연방이 무슨 조치를 취해야 되는 건 아닙니까? 아니, 무력조치 말고요.”
우지가 질문한다. 녀석이 살았던 자치 행성 쉥훠는 친 연방 세력이어서 반 연방 세력을 그다지 좋게 보지 않고 있었다.
“그게 애매해. 녹색 연맹의 도시들은 친 연방, 반 연방, 중립 등의 여러 세력이 얽혀있다. 처음엔 대부분 반영 방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현실을 파악하면서, 또 자기네들끼리의 경쟁으로 인해 세력도는 많이 바뀌었어.”
아까 빈우가 보여줬던 영상에서 도시 간의 지도가 자주 바뀐 걸 보면, 그간의 세력변화가 극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이 도시들이 서로 아웅다웅하면서도 행성 내의 공동체란 인식 또한 강하단 점이야. 때문에 외부 세력인 우리 연방이 섣불리 간섭하다가는 역으로 반 연방 세력이 이를 기회로 삼아 득세할 수도 있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우지를 보며 빈우는 피식 웃었다.
“그래서 이럴 때는 돌아서 공격해야 해. 글림은 애초에 연방에 중립적인 곳이었다. 그러나 공업 위주의 도시였던 탓에 반대파에서 식량 공격을 해오자 항복할 수밖에 없었지. 지금은 완전히 반연방파로 돌아섰다고 하지만… 글쎄, 연방이 몰래 식량이나 생산 시설들을 지원해준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지.”
거기까지 말한 빈우는 히토미 쪽을 본다.
“물론 여기서부터는 의원님의 영역이겠지만 말입니다.”
확실히 이런 뒷공작은 군인의 영역이 아니다. 정치가나 연방 행정부서, 혹은 연방 중앙정보국 쪽이 할 일이다.
“그렇지요. 원래는 자치 정부의 행동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지만, 개척 행성의 독립을 뒤에서 조작하고, 샤다이와의 의혹이 있다고 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이번에는 히토미가 빈우에게 물었다.
“그러면 김 팀장님,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실 건가요?”
“조용히 들어가서, 조용히 수사하고, 조용히 빠져나와야지요.”
“그렇죠. 그렇게 되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