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그럼 지상으로 갈 수사팀을 정하죠.”
그렇게 말한 빈우는 팀원들을 한번 둘러보았다.
“일단 부팀장과 파트리샤는 제외합니다.”
“엑, 난 왜요.”
고개를 끄덕이는 아룹과 달리 파트리샤는 발딱 일어났다.
“단검뿔 토끼와 실리콘 나이트는 허락 없이 자치 행성에 들어갈 수 없어.”
“어? 그런가요?”
빈우의 핀잔 어린 대답에 파트리샤는 계면쩍어하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저 두 부대는 연방의 최정예이자 걸어 다니는 전략 병기이기 때문에 작전 상황이나 별도의 허가 없이는 자치 행성에 내려갈 수 없다. 공식적으로는.
“그럼 이번에도 접니까?”
위르겐은 마카로니에 이어 뉴 소노라까지 팀장을 따라갈 거라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마카로니에 처음 갔을 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군사정보국에서의 고급정보들을 바로 앞에서 배우게 되자 흥미가 생긴 것이다.
“너는 말이다….”
그런데 말끝을 흐린 빈우의 표정은 좀 탐탁잖다는 표정이었다.
“제가 뭘요.”
영문을 몰라 되묻는 위르겐에게 빈우가 홀로그램 영상 하나를 띄운다. 글림의 환락가에 있는 남성과 여성의 모습이다.
“이게 우리가 가야 할 수사 지점에 있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위르겐, 네 대처법을 한번 보여봐라.”
빈우가 영상을 조작하자, 신체 곳곳에 강화 부품이 삽입된 남자가 위르겐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며 눈을 부라린다. 그러자 위르겐 역시 질세라 한 걸음 다가가 눈싸움을 시작한다.
“스톱, 이 새끼야. 거기서 시비를 받아주면 어쩌자고.”
팀장의 핀잔에 위르겐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는다. 이어서 요란한 복장을 한 여자가 가슴골을 드러내며 뱅가드 대원의 곁으로 다가간다. 그러면서 슬쩍 자신의 옷자락을 내려 가슴골을 강조한다. 그러자 위르겐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좋댄다.”
빈우의 한숨과 함께 홀로그램이 꺼졌다.
“아니, 팀장님. 잠시만요.”
“장시간 있을 거라면 그런 반응도 나쁘지 않겠지만, 이번엔 짧게 치고 빠져야 해. 있어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흐리멍덩하게 말이야.”
위르겐이 허둥지둥 변명을 시작하지만 빈우는 들은 척 만 척이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팀원들의 자료를 살펴보다가 앓는 소리와 함께 창을 닫았다.
“이번 수사는 나 혼자 간다.”
빈우가 결론을 내리자 다른 팀원들이 쪼르르 달려와 붙는다. 맨 먼저 나선 건 우지였다.
“자치 행성이라면 같은 자치 행성 출신인 저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갈 뉴 소노라하고 네 고향 쉥훠하고 공통점이 뭐가 있냐. 말부터 다르잖아. 그냥 롱소드 타고 상공에서 대기해.”
드물게 나섰던 우지가 먼저 퇴짜를 맞고 물러서자 이번엔 모니카가 얼굴을 들이민다.
“팀장님, 저는 어때요? 스캐너 같은 조사 기기 다루는 데는 팀 내에서 제가 최고잖아요.”
확실히 기술 장교인 그녀가 따라온다면 조사의 질은 더 높아질 수 있다.
“그런 건 블랙 랜스에서도 원격으로 할 수 있는데 굳이 내려올 필요는 없지.”
빈우가 재차 이번엔 혼자 가겠다 말하려는데 저기서 히토미의 엉덩이가 들썩들썩한다.
“녹색연맹 같은 애매한 곳에 상원 의원께서 가셨다간 좋은 영향이 있을 리 없죠. 그냥 여기서 구경하고 계십시오.”
빈우에게 선수를 뺏긴 히토미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자, 그러면 뉴 소노라에 출입절차를 밟아야겠지.”
연방은 행성에 들어가고 나갈 때 간단한 절차가 필요하다. 직할령에서는 그냥 두뇌 칩의 정보를 조회하면 그만이지만, 자치 행성의 경우는 각 정부마다 제각각 다른 양식이 있어 조금 복잡하다. 그래서 아까 빈우는 미리 녹색연맹 쪽에 해당하는 서류를 보내 놨었다. 이제 허가만 떨어지면 궤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된다.
“어, 이거 왜 이래.”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빈우가 뉴 소노라에 내려가기 위해 신청했던 서류가 반려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입성 허가가 안 떨어진다.
빈우는 서둘러 뭐가 문제인지 알아보려 했다. 그러나 반려 사유는 적혀있지 않았다. 그냥 거부당한 것이다. 이럴 때는 가장 빨리 알아볼 방법이 있다.
“마커스, 지금 대화 가능하냐?”
-지금 괜찮아. 무슨 일인데?
빈우는 자신의 친구이자 군사정보국의 차장인 마커스를 불렀다. 녀석 정도 되면 상당히 든든한 빽이다. 빈우는 자신의 사정과 서류를 마커스에게 보여주었다.
“뉴 소노라에 내려가 수사하려고 입성 허가 신청서 냈는데 빠꾸 먹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잠시 기다려 봐.
이번 수사는 군사정보국이 의뢰한 것인 만큼 공식적으로 지원해주기로 되어있다. 물론 마커스가 주는 도움은 비공식적인 영역에서 이뤄지는 지원이었다.
마커스는 잠시 뭔가를 알아보더니 굳은 표정으로 빈우와 다시 통신을 했다.
-빈우야, 골치 아프게 됐다. 녹색연맹의 살인 사건으로 연방수사국이 나섰다가 현지 경찰하고 마찰이 있었다나 봐. 그래서 그 사건에 관련해서는 입성 허가를 안 한다는데.
“자세히 얘기 해봐.”
회선 너머 마커스의 표정으로 보니 귀찮은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보안국을 통해 들은 이야기인데, 연방수사국이 글림에서의 살인 사건을 수사한답시고 여기저기 들추고 다녔단다. 이게 문제가 된 거야. 현지 경찰이 보기에도 조금 수상한 사건인데, 갑자기 연방수사국이 오니까 글림 측에선 이걸 왜 연방수사국에서 하느냐, 연방에서 무슨 공작을 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꼬투리를 잡은 거야.
일단 이번 사건의 수사는 먼저 보안국에서 비밀리에 시작했고, 연방수사국 쪽에 협조를 요청한 사건이라 외부적으로는 연방수사국의 담당 사건이다. 그런데 이 연방수사국이 폭주한 모양이다.
연방수사국은 연방 전 행성 영토에서 활동하는 수사기관으로써, 직할령은 물론이고 자치령도 담당 대상이다. 다만 자치 행성 내의 사건은 각 행성의 경찰조직이 맡고, 다른 행성 간의 일이 엮인 사건이어야만 연방수사국이 나선다.
그리고 같은 자치 행성이라 해도 친 연방 분위기가 강한 곳이라면 공조수사를 하거나 상호 간의 대우를 하지만, 이곳 녹색 연맹같은 반 연방 파벌이 득세한 곳에서는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 서로 소 닭 보듯 대하는 것이다.
-연방수사국도 연방수사국이다. 이번 사건으로 보안국에 시비를 거는가 하면, 사건을 조사한답시고 현지의 반 연방 세력을 건드렸다는군. 중간에 다샤 국장이 나서서 우리 쪽까지 이야기가 오는 것은 막았는데, 현지 사정은 상당히 안 좋은 모양이다. 자식들 일을 이렇게 벌였는데도 감추고 있었다나 봐.
“야 인마, 그런 거 있으면 미리미리 알려달라고.”
당장 현지 조사를 나가야 할 판에 빈우는 속이 터질 지경이다.
-나도 방금 안 거야. 이 자식들, 사고 쳐놓고 입 싹 닫고 있더라.
입성할 길이 없다면 수사도 할 수 없다.
“어쩌죠, 그냥 몰래 내려가서 수사하고 올까요?”
파트리샤가 나름 해결책을 내놓는다. 태스크 포스 373의 성격상 그리 꺼릴 일은 아니다.
“나도 그러고 싶다만….”
그러면서 빈우는 히토미 쪽을 슬쩍 보았다. 상원 의원이 있는 곳에서 그런 불법적인 행위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커스, 나 부탁 하나 하자.”
-얼마든지.
“나하고 아나스타샤, 위장 신분 좀 만들어주라.”
-알았어. 뭐 원하는 것 있어?
“나는 일반 군인으로, 아나스타샤는 민간 메이드로.”
-잠깐 기다려 봐.
그러더니 뚝딱하고 빈우와 아나스타샤의 위장 신분증이 탄생한다. 아마 부하들을 시켜서 만들게 했겠지. 참 무서운 친구다.
-늘 쓰던 거로 했는데 일단 훑어봐라.
“고마워.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통신이 닫힌 화면의 한쪽에는 군사정보국에서 만든 위조 전자서류가 떠 있다. 그 신분증을 보고선 팀원들의 시선이 상원 의원인 히토미에게로 향했다. 방금 벌어진 일은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고, 오다 히토미 상원 의원은 태스크 포스 373의 조사역으로 온 상황이다. 당연히 눈치를 볼 수밖에. 갑자기 몰린 시선에 히토미는 허둥지둥 설명한다.
“다들 왜 그래요? 저 이 정도 융통성은 있다고요.”
“이걸로 다시 해보자.”
빈우는 위조 신분으로 다시 입성서류를 작성해 신청을 넣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네요.”
히토미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빈우의 옆으로 다가왔는데 어찌 보면 장난기마저 보인다.
“아뇨. 방금 브로커 쪽으로 뒷돈 좀 넣었습니다. 빨리 서둘러 달라고.”
“아하.”
태연하게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팀장과 그것에 맞장구를 치는 상원 의원을 보며 팀원들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기다리는 사이 아나스타샤가 커피를 내왔고, 그것을 반 정도 마셨을 때 뉴 소노라의 관리소에서 연락이 왔다.
-이노우에 고토 씨,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
“네, 네. 말씀하시죠.”
관리소에서 부른 빈우의 가명에 팀원들은 하마터면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분명 빈우의 친구이자 정보국 차장인 마커스가 ‘늘 쓰던 거’라고 했던 이름이 지나치게 낯익었던 탓이다.
-보내주신 서류 잘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여행 목적은 관광이시라고요?
“네, 관광이죠. 글림하면 화끈함 아니겠습니까? 하하.”
화면 너머의 직원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빈우와 서류를 조심스레 번갈아 보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연방수사국이 수사하고 있다는 살인 사건이 조금 걸리는 것이다.
-행선지는 글림이시고, 숙식도 전부 글림이시라고 하셨는데. 따로 정해 놓으신 숙박 시설은 있으십니까?
“재미없으시긴. 글림에서 뭘 그런 것을 정한답니까? 그날그날 새끈한 파트너 만나면 거기 누우면 되는 거지.”
빈우의 대답에 직원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직원의 화면에는 시시덕거리는 ‘이노우에 고토’와 그의 뒤에 무표정하게 서 있는 안드로이드 메이드만 보인다.
-그런데 관광이 목적이신데 공업지역 출입허가는 또 뭡니까?
글림은 공업지역과 유흥가가 뒤섞인 곳이다. 유흥가 쪽은 출입에 별다른 제한은 없지만, 공업도시인 글림은 다른 도시들의 스파이 행위에 대비해 공업지역 방문에 별도의 허가가 필요했다.
“아아, 그것 말입니까?”
빈우의 능글맞은 웃음이 팀원들과 직원의 화면에 비친다.
“이거, 혹시 모르십니까?”
빈우, 가명 이노우에 고토가 턱짓으로 자신의 뒤에 선 안드로이드 메이드를 가리킨다. 그러나 직원도, 팀원들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른다.
“거 알면서도 모른 척하시긴. 구멍 말이요, 구멍. 글림에 가서 내 안드로이드에게 구멍 좀 달려고 합니다. 듣자 하니 연방 직할령 것보다 여기 글림의 게 훨씬 품질이 좋다던데?”
그 말에 직원의 입에는 떨떠름한 미소가 걸리고, 팀원들의 얼굴에는 경악이 떠오른다.
-어흠, 그러셨습니까? 실례했습니다. 하긴 글림 쪽 물건이 품질이 좋단 얘기는 들었습니다. 기술력도 기술력이고, 모델들도 좋다나. 하하.
직원은 즉시 허가를 내주었다. 은연중에 연방을 낮추고 녹색연맹 쪽의 기술력을 높게 쳐주니,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시면 됩니다. 좋은 여행 되십시오. 이노우에 고토 씨.
“고맙습니다.”
한 건 해결해서 숨 좀 돌리게 된 빈우가 환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뒤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어두운 표정이다.
“뭐야, 왜 그래?”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팀원들은 빈우와 아나스타샤와의 관계를 안다. 어릴 적부터 키워준 누나이자 엄마를 저렇게 팔아먹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면 누구라도 저런 표정을 짓는다.
“팀장님. 변태.”
모니카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빈우는 상처하나 없이 태연하다.
“뭔 소리야. 이건 일이라고. 일. 안 그래 아샤?”
“네, 한두 번도 아니고 말이죠.”
공장 초기화라도 당한 듯한 무표정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는 안드로이드 메이드를 보며 팀원들은 그녀에게 애도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