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자리에서 일어나는 빈우에게 깡패들의 시선이 모인다. 빈우의 머릿속에 퍼즐들이 얽힌다. 트리니티의 조건들이 하나씩 끼워 맞춰진다. 자신이 도주한 클론을 추격하고 있을 때, 그것을 자각했을 때, 열쇠들이 자물쇠에 끼워 맞춰져 간다.
‘아직은 아닌가….’
그러나 열쇠가 돌아가지 않는다. 빈우 혼자서, 짧은 시간에 했던 잠수와 트리니티 패턴이라 불안한 것 같다. 좀 더 시간이 흘러야 하거나 다른 조건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이곳에 있었던 클론은 내가 보낸 것인가? 클론의 명령자가 나인가? 아니면 울토르 클론 중에서 빼돌려진 게 있는 것을 알고, 직접 추격을 하기 위해 이런 트리니티 패턴을 건 것일까? 그렇다면 왜 조건 중의 하나가 클론 추격을 자각할 때일까.’
의문은 많지만 밝혀지는 것은 없다. 포말하우트 게이트 안에서 있었던 일은 아직도 계란 껍질 속에 있다. 다만 지금은 그 계란을 밝은 불빛에 비춰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쥐고 있는 것이 그냥 계란인지, 막 부화하려는 병아리가 들어있는지는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다.
“너 뭐냐고오.”
빈우의 코앞에서 을러대는 깡패 두목. 빈우에겐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
‘폭력.’
처음으로 떠오르는 선택지에 빈우는 움찔했다. 원래 그는 이런 사태에 처했을 때 대화와 교섭으로 푸는 것을 선호한다. 게다가 이 깡패들은 엄연한 연방의 시민이다. 자치령의 범죄자라고 해도 군인인 빈우가 보호해야 하는 민간인인 것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결코 폭력을 휘둘러선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이 특별한 경우지.’
빈우는 자기 안의 충동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마치 마카로니의 주차장에서의 민간인 학살 같다. 개척민들에게 투항을 권유하다 시즐러를 보고 갑자기 방아쇠를 당겨 버린 그때.
군인의 신분으로서 민간인에게 손을 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물론 폭력은 사태 해결에 가장 빠른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쌍방 간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폭력은 교섭수단 중 가장 하책이며, 가장 최후로 미룬다.
‘일단 내가 가진 카드 중에서….’
빈우는 생각했다. 그러나 머릿속의 계란 껍질이 점점 더 얇아진다, 안의 내용물이 비쳐 보인다. 상황이 긴급하다. 인류에게 미증유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이상, 다소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마치 응급실에 환자들이 몰려들 때, 시간과 자원이 많이 필요한 중환자의 치료는 미루는 것과 같다.
빈우는 희생양들에게 자신의 명확한 목적과 의지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주먹질 한 방에 사람이 날아가고, 발길질 한 번에 사람이 반으로 접힌다. 어느 누구도 빈우보다 힘이 세지 못했고, 빠르지 못했다. 기껏해야 총칼로 치고받았던 폭력배들과 전문적인 군사훈련을 받은 군인과의 차이는 명확했다.
그렇게 폭력을 동반한 대화는 순식간에 끝났다.
정보상은 지금까지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아니, 잘못 알고 있었다. 명색이 정보를 사고판다는 작자가 연방의 군인에 대해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글림의 갱들은 전부 사이보그 개조를 해서 근력이나 반응속도가 일반인을 초월한다. 그런 놈들이 이만큼 모였다면 아무리 연방의 군인이라 해도 버텨내지 못하리라 여긴 것이다.
‘군인, 연방의 군용인간.’
새삼 깨달은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압도적인 폭력의 향연에 정보상은 굳어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마치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차를 보고 멈춘 사슴처럼.
애초에 격이 다르다. 글림의 갱들이 자동차에 방탄판을 달고 소총을 쏘는 수준이라면 저 연방의 군인은 전차였다. 전투기였다.
맨몸으로도 저럴진대 장갑복을 입으면 어떻게 될까.
“으아아악!”
한쪽 발로 절뚝이며 다가간 두목이 비명 같은 기합을 지른다. 그리고 그 주먹을 빈우가 잡았다. 다음 쥐어 으깼다.
“아아악!”
이제 두목은 비명과 거품을 토하며 땅바닥을 뒹군다. 부하들의 피와 오줌이 흥건한 바닥에 얼굴을 비빈다.
빈우는 흘깃 바를 보았다. 아나스탸샤의 표정이 왠지 슬퍼 보인다. 빈우가 지켜야 하는 가치이자 이상 중의 하나다. 주인이 싸우는 모습을 숱하게 봤을 텐데 왜 저런 표정을 지을까. 예전이라면 웃으면서 응원을 했을 것이다.
고개를 돌린 빈우는 이번엔 정보상 옆으로 걸어가 앉았다.
“허억.”
그는 짧은 숨을 내뱉는다. 갑자기 이런 것을 봤으니 놀랄 법도 하다. 빈우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말했다.
“이걸로 대가가 될까?”
무덤덤한 빈우의 말은 여러 가지를 함축하고 있었다. 당신을 위협하고 있는 것과 피해를 주는 것을 치웠다, 충분한가. 또한 새로운 협박의 제공이다.
정보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것이 그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거래는 될 모양이다.
“그럼 이전의 피해는 이것으로 보상이 된 셈 치고, 새로운 거래를 하지.”
빈우는 품에서 지폐 다발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테이블 가운데, 정보상과 자신 사이에 놓았다.
“신년 축제 때, 나와 했던 거래내용을 그대로 다시 말해. 똑같이.”
빈우의 질문은 이상하게 들리지만 정보상에겐 드문 것이 아니다. 정보란 시시각각 가치가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고객들도 종종 있다. 그러나 대개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정보를 원하지 같은 정보를 원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정보상은 조심스레 물었다.
“뭔가 불만이라도 있었나?”
“아니. 그냥 다시 듣고 싶을 뿐이야.”
고객이 저렇다면 정보상은 원하는 것을 팔 뿐이다. 그전에 한 번 더 확인한다.
“같은 정보를? 하나도 변함없이?”
“그날 그대로.”
정보상은 지폐를 빈우 쪽으로 밀었다.
“이건 됐어. 에프터 서비스로 해주지.”
그리곤 식은 커피로 입술을 축이며 그날 이야기를 다시 했다. 마카로니와의 스콜피온 거래, 거래를 하게 된 배경과 진상, 연방과 자치정부 간의 알력다툼, 녹색 연맹의 개척민 선동 등등. 별달리 중요한 것은 없었다. 다만 마지막에 하나 걸리는 게 있었다.
“그리고 자네는 거래한 연방의 물건 중에 그 물건들이 있냐며 물었지.”
“그 물건?”
“그래, 자네가 보여준 그림말이야. 외계의 물건이던데, 샤다이와 뭔가의 사체 같은 것들이었어.”
뭔가의 사체란 말에 잠시 생각하던 빈우는 홀로그램을 띄워 그에게 보여주었다. 샤다이의 사체, 목타하의 사체, 여러 외계 종족의 사체들이 화면에 나타난다.
“맞아, 이거였어.”
정보상이 지목한 홀로그램에는 워프 비스트의 사체가 떠 있다. 화면을 닫은 빈우는 정보상에게 상체를 숙이며 물었다.
“정말 거래 물품에 없었나?”
조용한 빈우의 위압감에 정보상은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정말로 없었어. 마카로니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래 물품 중에는 없었어. 진짜야.”
자신이 아는 한, 그리고 거래 물품 중에서는 없었겠지. 하지만 마카로니에서 시즐러가 발견되었고 샤다이도 발견되었다.
다시 바로 앉은 빈우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클론은 1월 1일에 글림에서 워프 비스트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빈우가 워프 비스트에 대해 안 것은 역시 1월 1일 오스카 스테이션에서다.
‘클론은 어디서 그 정보를 얻었을까? 혹시 라캉 중령이 말한 워프 비스트에 대한 자료는 클론이 가지고 있는 것일까?’
정확한 증거 없이 뻗어 나간 추리는 망상이란 결과를 나오게 한다.
‘왜 클론은 샤다이와 워프 비스트의 자료를 같이 보여주었을까. 뭔가의 연관성이 있나?’
그러나 현재 빈우가 가진 정보로썬 더 이상 진척이 되지 않았다.
‘더 많은 증거, 더 자세한 자료가 필요하다.’
빈우는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마카로니에서 범인은 클론은 마리 라캉을 죽이고, 자크 라캉의 허수아비로 추정되는 로봇을 부쉈다. 목적이나 동기는 불명. 무슨 정보를 가져갔는지도 불명이다.
글림에서 클론은 폭력배 세 명을 죽였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자신의 행동에 방해가 되어서 제거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클론이 여기서 얻은 정보는 마카로니의 독립소요 배경과 그 배후에 녹색 연맹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샤다이와 워프 비스트가 연관되었는지에 대한 확인이다.
독립소요가 일어난 마카로니, 그 배후인 녹색 연맹. 클론은 여기까지 수사했다. 그리고 마카로니엔 샤다이가 있었고, 글림에서도 샤다이에 대해 물어보았다. 또한 워프 비스트에 대해서도.
하지만 다음 수사해야 할 허드슨 가를 보면 워프 비스트가 연관되어 있다. 딸 엘리자베트 허드슨은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과정이었다.
‘만약 마카로니에도 워프 비스트란 단서를 도입한다면?’
마카로니 어디에 워프 비스트가 들어갈까. 변신하는 개척민? 그날 죽은 개척민 중에 변이한 사람은 없었다. 채 변이하기도 전에 죽었을 수도 있다.
빈우는 좀 더 본질적인 부분에 대입해 보았다. 클론의 손에 죽은 마리 라캉, 그리고.
‘자크… 라캉.’
굳이 대입하자면 자크 라캉의 허수아비다. 자신을 곧잘 따랐던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자 빈우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자크가 워프 비스트로 변했다면, 그리고 치료나 대처를 하지 못하고 제거되었다면? 그래서 허수아비를 만들고 아이 대신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인간형이 아닌 로봇으로 했지?’
“주인님.”
복잡한 생각에 잠긴 빈우를 깨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앞을 보자 아나스타샤가 몸을 숙여 자신의 주인을 마주 보고 있었다.
“아샤.”
빈우는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슬프고 무서워하는 표정을 한 자신의 메이드를 부른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그녀가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지금 빈우가 상당히 안 괜찮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심해?”
반문하는 빈우에게 아나스타샤는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좀 심각한 이야기라서 그래. 걱정하게 해서 미안.”
빈우는 웃으며, 아니 웃으려고 노력하며 아나스타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녀도 웃었다. 마찬가지로 밝게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그날의 정보는 이게 다인가?”
빈우는 시선은 아나스타샤에게 고정한 채 질문했다. 정보상에게로.
“그래. 이게 전부다.”
그 말이 끝나자 빈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아나스타샤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아나스타샤는 주인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같이 걸어갔다. 평상시라면 애교를 떨며 폭 안기거나, 자신도 주인의 몸 여기저기를 더듬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서워서, 너무 무서워서 그럴 수 없었다. 방금의 폭력은 무섭지 않다. 그보다 더한 사투를 벌였던 빈우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 또한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깡패들이, 인간들이 피곤죽이 되어도 그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빈우는 보통 그런 상황에선 말로 해결을 한다. 상대의 원하는 것과 약점, 강점을 파악해 절묘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간다. 하지만 그 표정이 떠오른 다음, 빈우는 폭력을 휘둘렀다.
‘그 얼굴.’
안드로이드의 육체를 가진 그녀지만, AI의 정신을 가진 그녀지만, 공포를 느꼈다. 옛날에 빈우가 지었던 표정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자신을 물건으로 대하고 밀어냈던 날의 표정이, 사랑스러운 도련님의 얼굴에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되돌아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연방의 냉혹한 살상 병기로 살아가던 시절의 빈우로.
그리고 아나스타샤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