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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42화 (140/301)

142화

“쮸인님, 쮸인님.”

혀 짧은소리로 애교를 떠는 아나스타샤를 보며 빈우는 실소를 지었다.

“왜 그래? 이제 폭력을 휘두를 일 없어.”

안심시켜주려는 빈우의 말에 아나스타샤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부비부비한다.

“네, 그러면 일은 끝난 거죠?”

기대감에 부풀어 올려다보는 아나스타샤의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현장조사는 충분히 했고, 뜻하지 않게 클론의 행적에 대해 알게 되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빈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렇지.”

“그럼 우리 데이트해요. 데이트.”

빈우는 갑자기 들뜬 그녀의 텐션이 이해가 간다. 아마도 트리니티의 영향으로 흔들리는 주인을 걱정하고 있는 것일 터다.

“데이트? 뭐 짧게는 괜찮지. 근데 어디로 갈까?”

“저 업그레이드 하러 가요.”

“뭐? 너를 업그레이드?”

아나스타샤는 연방의 안드로이드 중에서도 상당한 고급 기술이 들어간 안드로이드다. 이곳 글림에서 어떻게 해볼 수준이 아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빈우를 보며 아나스타샤가 방긋 웃는다.

“네, 구멍 뚫으러요.”

“풉.”

빈우는 헛웃음을 지었다. 업그레이드라더니 귀걸이란다. 아니면 피어싱이겠지. 그 정도라면 괜찮다. 그녀의 귀에 무슨 귀걸이가 어울릴까 생각하던 빈우에게 아나스타샤의 손가락이 다가온다. 그리고 빈우의 코를 꽉 잡았다.

“어머머, 왜 그래요. 입성할 때 주인님이 말했던 그 구멍 말이에요.”

그러면서 아나스타샤가 손바닥이 밑으로 내려가 자신의 아랫배를 토닥토닥 두들긴다.

빈우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무슨 뜻인지 깨닫고 기겁했다.

“야야야야야, 뭄무슨 소리냐.”

“무슨 소리긴. 어른의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죠.”

물론 빈우가 먼저 꺼낸 얘기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장용도였다.

“계단에서 자빠지는 소리 한다. 갑자기 왜 그런 걸 사려고. 너 또 이상한 거 봤지?”

“어어? 어? 은근슬쩍 나한테 덤터기 씌운다? 그런 걸 맨 처음에 산 건 주인님이잖아요. 그리고 오늘도 주인님이 저 구멍 때문에 온 거라고 하셨고요.”

맨 처음이란 말은 빈우가 아직 어릴 적, 혈중 남성호르몬 농도가 치사량에서 오락가락하고, 호기심과 성욕의 연합이 이성을 뭇매 놓을 무렵의 일이다. 그때 빈우는 조금 묘한 안드로이드 부착용 장난감을 산 적이 있다. 그리고 들켰다.

“야 그거 몇 번 우려먹냐. 그리고 그때 너 안 된다고 내 귀싸대기 날렸잖아!”

그때 빈우의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결코 따귀 한 번으로는 안 끝날 일이다.

“마님과의 약속이었어요. 그럼 오늘 일은?”

“당연히 구라지.”

그러자 아나스타샤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어요. 이제 주인님은 다 큰 성인이시니 제게 달아도 돼요.”

“얘가 미쳤나 뭘 달아, 그리고 너 쓸 줄 알기나 해?”

“물론이죠. 쿠델카 모델들끼리 동기화하면서 이것저것 배웠어요.”

방금 전 십수 명의 깡패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렸던 강화 군인이 여성형 안드로이드의 팔에 붙잡혀 휘청거리는 꼴이 장관이다.

“잠깐만 얘기 좀 하자.”

“네, 달고 난 다음 심도 있게 얘기해요.”

아나스타샤는 지금 이미 결론 내놓고 밀어붙이고 있다.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이다. 빈우는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

“순정! 난 순정 아니면 싫어. 정품으로 하자. 정품.”

“흐으음.”

아나스타샤가 가늘게 뜬 눈으로 째려보자 빈우가 움찔움찔한다. 그리고 그 앞에 아나스타샤의 새끼손가락이 다가온다.

“약속?”

“응, 약속.”

아나스타샤는 놓칠세라 주인의 새끼손가락을 자신의 것으로 옭아매고 휘휘 흔들었다.

“나를 누나라고 부르면서 약속해요. 다시 약속?”

아나스타샤를 누나라고 부르면서 하는 약속은 어린 시절 둘만의 약속이었다. 반드시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눈와 약속.”

“날이 더워서 말이 새는 거예요?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순정될 때까지 튜닝해 볼까요?”

“누나 약속.”

흔들기가 끝나고 얽혔던 손가락이 풀리자, 아나스타샤가 폴짝 뛰어 빈우의 품에 안겼다. 어느덧 입술은 뾰죽 내밀어져 있고 눈에는 다시금 물기가 차오르고 있다. 빈우는 자신의 품에 얼굴을 파묻은 아나스타샤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쉰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으이그, 나 정말 괜찮다니까.”

아나스타샤 흠칫 떨며 대답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주인님 얼굴이었어요.”

빈우는 말없이 그녀를 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저를 미워하고, 싫어하던 무서운 주인님의 얼굴이었어요.”

아마 트리니티가 풀려버리면 그렇게 될 것이다. 지금 빈우는 잠수와 트리니티의 영향으로 성격이 바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예전 초임 장교 시절의 성격으로 되돌아간 상태다. 아나스타샤가 말했던 빈우는 군사정보국에서 갈려 나가며 황폐해진 빈우일 것이다. 히토미와 이케가미 의장이 알고 있는 냉혹하고 잔인한 빈우 말이다.

성격이 그렇게 변했던 이유들은 짐작이 간다. 그러나 명확하게 뭐라고 집어낼 수는 없다. 하루하루의 일들, 하나하나의 작전들. 이런 것들이 모이고 쌓여서 된 것이 대위에서 소령 시절의 빈우였을 테지.

사람은 성장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그리고 변한다. 사람들을 만나고 환경과 부대끼며.

그랬던 경험과 기억, 영향을 준 것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자 빈우는 잠시 과거로 돌아갔다. 그러나 트리니티가 풀린다면 높은 확률로 예전의 성격으로 돌아갈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이를 상처 줬던 자로.

“난 안 변할 거야.”

빈우의 말에 아나스타샤가 올려다본다.

“난 그런 나로는 절대 안 돌아갈 거야.”

그러면서 빈우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샤, 날 도와줄 수 있겠어?”

“네, 주인님. 제가 도울게요. 제가 주인님을 도와드릴게요.”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이는 아나스타샤. 눈가의 눈물이 이리저리 번진다. 빈우는 쓰게 웃으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고마워, 아샤.”

방금 아나스타샤는 무리해서 활기찬 척하고, 장난치고, 주인에게 엉겨 붙었다. 어떻게든 주인의 기분을 돌려놓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도 지금의 빈우와 계속 만나기 위해.

빈우도 그것을 안다. 그리고 자신도 계속 지금의 자신 그대로 있고 싶다. 기록 속에서 보았던 과거 정보국에서의 자신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를 떠나서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아나스타샤는 빈우에게 젖을 먹인 유모에다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키워주었고, 남매들의 교육과 농장의 관리까지 맡아 주었다. 부모로서 가르치고 키웠고, 누나로서 같이 놀며 커왔다. 기록 속의 자신은 그런 그녀를 마치 물건처럼 대했고, 냉정하게 거리를 두었다.

물론 군사정보국 초기 시절의 빈우는 아나스타샤를 평상시처럼 대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빈우는 변했고, 잠긴 몇몇 기록 이후로는 사람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28년을 살아온 인간이 바뀌기에 1년의 시간이면 족했다.

그때 불현듯, 빈우는 어떤 상실감을 느꼈다. 뭔가가 머릿속에서, 몸 안에서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처음엔 그저 지금의 감정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품 안의 아나스타샤를 꽉 안아도,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아 어루만져도, 그녀의 머릿결에 얼굴을 파묻고 냄새를 맡아도 공허한 기분은 그대로였다.

“주인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아나스타샤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든다. 그때 통신이 들어왔다.

-팀장님, 들리십니까?

오르 함장의 통신이다. 그러나 이상한 것이 있다. 통신이 블랙 랜스에서 바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상공에 있는 롱소드를 거쳐서 전해지고 있다.

-네, 무슨 일입니까? 왜 통신이….

빈우는 블랙 랜스에 통신을 보냈지만 전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우지의 롱소드를 중계해 연락했다. 상황이 심상치가 않다.

-함장님, 적의 공격입니까?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방금 전부터 엄청난 범위의 전파 방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단 함으로 돌아오십시오. 셔틀을 보내겠습니다.

블랙 랜스는 특수작전함이기에 전파 방해는 물론이고 그것을 뚫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런 블랙 랜스의 함장인 오르가 뚫을 수 없고, 엄청난 범위라고 한다면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다.

-혹시 샤다이의 기척은 없습니까?

빈우는 첫 번째 용의자를 꼽았다. 현재 연방의 기술력을 확실하게 뛰어넘고 있는 종족은 샤다이 뿐이기 때문이다.

-점프 반응도 없고, 은신한 샤다이를 찾기 위해 드론들을 살포해 봤지만-

그것으로 통신이 끊겼다. 이어서 우지의 통신이 들어온다.

-팀장님, 블랙 랜스와의 통신이 두절되었습니다.

롱소드가 비행 허가도 받지 않고 뉴 소노라의 대기권을 내려와 있다. 그 옆의 셔틀도 마찬가지다. 뉴 소노라 측에서 알았다면 길길이 날뛸 일이지만 지금은 긴급상황이다.

-일단 뉴 소노라 쪽에 경고부터 해. 시민들을 대피시키라고.

-통신 방해가 들어왔을 때 이미 했습니다. 어서 블랙 랜스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아직 수사를 더 하고는 싶지만 상황이 이래서야 아무것도 못 한다. 빈우와 아나스타샤는 착륙한 셔틀에 서둘러 탑승했고, 롱소드와 셔틀은 대기권을 돌파해서 날아올랐다.

그리고 나서야 블랙 랜스와 통신이 재개되었다.

-팀장님, 현재 점프 게이트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오르 함장의 보고는 정말 불길했다. 점프 게이트는 수십만 광년 떨어진 거리를 단번에 이동하는 점프 항법에 필수적인 문이다. 그리고 그 문에는 점프 포인터라 불리는 게이트 관리용 인공위성이 있으며, 이것은 행성에서 뻗어 올라간 궤도 엘리베이터의 끝인 정지 궤도 상에 위치하고 있다.

만약 점프 게이트에 이상이 생겨 게이트가 닫혀 버리면 이곳 뉴 소노라는 고립된다. 오르 함장이 보여준 점프 게이트의 영상에는 현재 관리 위성인 점프 포인터의 상태도 같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 상태가 심상치 않다. 포인터는 엄청난 에너지 부하 때문에 터지기 일보 직전이고, 무언가가 점프 공간에서 이쪽으로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확실한 것은 연방의 함선은 아니다.

-함장님, 현 상황에 대해 알렸습니까?

점프 게이트에 관한 사태는 연방의 최중요 사항이다.

-일단 전파 방해가 시작되었을 때 했었고, 점프 포인터도 자체적으로 보고한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게이트 통신 마저 안 되고 있습니다.

게이트 통신은 점프 공간을 통한 통신으로, 게이트만 통해져 있다면 수십만 광년을 한 번에 연결시켜 준다. 현재 오르 함장은 지금 뉴 소노라가 연방의 다른 영토들과 통신두절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게이트에서 그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저게 대체 뭐지?

튀어나온 것을 보고 놀란 우지의 말에 태스크 포스 373의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게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생물체의 뼈와 근육을 짓이기고 으깨어 빚어낸 듯한 구조물들이었다. 크기는 블랙 랜스와 조금 크거나 작은, 함선 정도다. 그런 것들이 점프 게이트를 통해 이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함대처럼 조잡하나마 무리를 꾸려 뉴 소노라로 향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빈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축하한다. 너는 계단을 내려오는 자들보다 앞질러가게 되었어. 뭐, 길 가다가 뒤돌아서면 높은 확률로 워프 비스트가 있을 거다. 더 이상의 발현을 막았지만 이미 내려온 놈들은 어떻게 못 해.’

발 가르단 하스의 충고다. 그런데 이것이 왜 갑자기 지금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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