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44화 (142/301)

144화

-팀장님, 궤도 엘리베이터에서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부팀장 아룹의 질문은 정말 몰라서라기보다는 앞으로 벌어질 불길한 일을 짐작하고서 하는 말이다.

-일단 징발해야죠.

빈우의 대답에 아룹은 대강 짐작한 듯, 조용히 침묵했다. 그리고 빈우가 설명을 시작했다.

-모두 주목.

빈우가 팀원들에게 작전 영상을 공유한다. 그 가운데에 궤도 엘리베이터가 있다.

-우린 지금 뉴 소노라 궤도 엘리베이터의 3번 관리실로 가서 엘리베이터를 징발한다. 그리고 최고 출력으로 가속된 화물을 쏴서 적과 게이트를 공격한다.

팀장의 조리 있는, 그러나 어처구니없는 설명에 팀원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뉴 소노라의 궤도 엘리베이터는 정지궤도까지가 아니라 그 중간인 저궤도까지 올라가 있다. 다른 궤도 엘리베이터에 비하면 낮은 곳에 위치해 있긴 하지만 그 정도의 높이만 돼도 지상과 우주의 통행에 문제는 없다. 다만 ‘그 정도의 높이’라는 것이 꽤나 높은 고도라, 기존의 엘리베이터 구동 방식으로 올라가려면 한세월이 걸린다. 그래서 궤도 엘리베이터의 주 통로는 대개 자기 가속 방식을 쓴다.

즉, 지금 빈우는 궤도 엘리베이터를 레일건으로 쓰겠다고 한 것이다. 궤도 엘리베이터 곳곳에는 자세 제어용 추진기와 자이로들이 있기 때문에, 총신이 되는 엘리베이터를 휘어 탄의 방향을 트는 것도 할 수 있다.

물론 이 방법은 연방의 궤도 엘리베이터 전시 사용법에 엄연히 들어있는 방법이고, 실제로 몇 번 사용되어 제법 의미 있는 효과를 거두었다.

중요한 것은 이 방법들이 쓰였던 상황들이 모두 개막장이었다는 점이다.

-이후 상황을 봐서… 아니 잠깐, 함장님?

-팀장님, 이걸 보셔야겠습니다.

작전 회의 중 갑자기 오르 함장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뭔가의 자료를 빈우에게만 보여주었다. 팀원들에게는 보여주지 않고 팀장에게만 먼저 보여준 것이라면 분명 심각한 내용일 것이다. 게다가 오르 함장 역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보내준 자료였으니, 그 중요도를 짐작할 수 있다.

빈우는 그 자료를 보면서 잠시 고민을 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궤도 엘리베이터로 화물을 발사하는 것을 A 안으로 한다. 어차피 처음부터 포로 사용될 물건은 아니었으니 얼마 사용하지 못할 거다. 이후 B 안을 실행하고, 다음은 화력 팀 전원이 지상으로 후퇴해 기동방어를 한다.

-저기요 팀장님, 그 B 안은 뭔가요?

모니카가 질문한 이유는, 빈우가 B 안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그녀를 보았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불길한 시선이었다.

-좋은 질문이다.

질문은 좋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대답은 절대 좋은 것이 아니었다. 빈우가 띄우는 영상 속의 궤도 엘리베이터가 중간에서 뚝 끊어진다. 끊어지는 지점은 무게추가 있는 지점으로, 뉴 소노라의 중력과 궤도 엘리베이터의 원심력이 서로 상쇄되는 곳이다. 즉 여기를 끊어버리면 아랫부분은 그대로 서 있지만, 그 윗부분은 지금까지 돌았던 원심력으로 날아가 버린다.

-궤도 레일건의 포격이 적에게 유효한 피해를 주지 못했을 경우, 무게추의 상부 부분을 분리한다. 그래서 길이 200km의 빠따를 뽑아 게이트를 후려치는 거다. 다만 이때 엘리베이터 상부의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토크를 잡아줄 인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영상에서 뜨는 것이 상부의 4번 관리실이다. 상부 부분에 위치한 관리실이기에 분리된 이후에도 남은 부분을 조작할 수 있다.

-모니카와 위르겐이 이곳 4번 관리실에서 관성 제어장치와 자이로, 추진기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홈런을 날린다.

-개시발.

나직하게 울려 퍼지는 모니카의 욕지거리. 이제 그녀도 어엿한 태스크 포스 373의 팀원이라는 증거다. 하지만 그녀도 이런 쪽의 지식이 있어 금세 이해했다.

-하아, 뭐 그런 급기동에 견디려면 저나 위르겐 밖에 없겠네요.

모니카의 부머는 중력제어가 가능하고, 발사된 궤도 엘리베이터의 자세제어와 그 계산에 필요하다. 위르겐은 급강하를 밥 먹듯이 하는 뱅가드 연대라 높은 중력가속도에 견디도록 강화되어 있고, 중화기 사양의 어벤져는 만약에 있을 파괴 작업에 필요하다.

아무튼 이게 성공한다면 게이트는 확실히 닫힌다.

다음 질문은 파트리샤가 했다.

-그런데 기동방어는 갑자기 뭔가요? 설마하니 저놈들을 지상에서 상대하자는 겁니까?

기동방어는 거점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군 영역에 침투한 적을 찾아 제거하는 방어 전술이다. 보통 우주에선 소규모 전단이, 지상에선 기갑부대 혹은 공중병력이 적의 정면이 아닌 측면을 타격해, 적의 전투력을 경감시켜 아군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즉 장갑 보병인 화력 팀이 우주의 함대를 상대로 할 일은 없다.

-여길 봐라.

빈우가 가리킨 곳은 아군의 포화를 뚫고 날아오는 적들의 소형함선들이다. 이 함선은 날아오다 무역선 근처에서 갑자기 터졌다. 아니, 정확히는 스스로 분열했다. 그 분열된 하나하나가 괴생명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설마 라출노그 같은, 아니 군체인가?

위르겐이 떠올린 것은 모함과 도킹하는 라출노그의 전투함선이었다. 그러나 이놈들은 그것과는 달리 단일 개체들이 모여 함선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놈들의 형체를 보면 워프 비스트와 대단히 유사하다.

빈우의 말대로 저 괴수의 외견은 워프 비스트와 닮은 곳이 많았다. 뒤틀린 사지와 날카로운 발톱, 어긋나게 튀어나온 이빨들. 정말 빈우의 생각대로 어떤 외계 종족이 워프 비스트로 변이한 것 같다.

분열했음에도 인간보다 조금 큰 덩치를 지닌 워프 비스트들은 무역선 안으로 침입해 들어갔다.

-나와 함장님도 방금 알게 된 건데, 저 함선들은 이 괴물 놈들의 집합체다. 놈들은 플라스마 공격으로 무역선을 격침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작게 나뉘어 안으로 침입했다. 왜일까?

단순히 죽이기 위해서라면 밖에서 포격하는 게 낫다. 굳이 몸을 쪼개어 안으로 들어갔다면 목적은 하나다.

-인간을 노리는군요.

아룹의 대답에 빈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서 자신의 가설을 말했다.

-네. 놈들이 워프 비스트의 일종이라면, 자신들의 세를 늘리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불쾌한 한숨이 팀원들의 통신 회선으로 흐른다. 이들은 워프 비스트와 교전을 해본 적이 있고, 놈들이 덮친 특수전 사령부의 자료를 본 적이 있다. 당시 24함대의 대원들은 차례차례 워프 비스트로 변해 특수전 사령부를 기습했지만, 레드우드 사령관의 빠른 대처 덕에 사태가 확산되지는 않았었다.

-봐라. 아군 함대가 밀려나고 있다.

빈우의 말대로 아군 구축함들은 화력과 병력 모두에서 밀리고 있다. 무인 함대는 어떻게든 방어 대형으로 바꾸어 시간을 벌어보려 하고 있고, 블랙 랜스는 뒤로 빠져 뉴 소노라로 향하는 소형함선들을 요격하기 시작했다. 오르 함장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것이다.

저놈들이 뉴 소노라로 떨어져 시민들을 변이시킨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다. 녹색 연맹에는 연방의 지상 병력이 없고, 자치정부의 현지 경찰이 전부다. 그들로썬 워프 비스트에 대항하기 힘들다.

-블랙 랜스는 워프 비스트들이 뉴 소노라로 가는 것을 최대한 막는다. 그리고 우리는 지상으로 가서 저 잡것들을 최대한 조진다. 알겠나?

-네.

지금 상황에서 저 워프 비스트들을 다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궤도 바깥에서 최대한 수를 줄인 다음, 지상에서 지연전을 펼치는 게 이번 작전의 목적이다. 현재 뉴 소노라 항성계에서 놈들과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지상 병력은 태스크 포스 373이 유일하다.

태스크 포스 373을 태운 그라디우스는 궤도 엘리베이터에 접근해 모니카와 위르겐을 4번 관리실에 내려준 다음, 3번 관리실을 향해 날아갔다. 겁에 질린 관리직원들은 373의 긴급 징발에 동의했고, 이어서 지상으로 대피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게이트가 닫힌 마당에 쏟아지는 워프 비스트들을 상대로 도망칠 곳은 없겠지만, 그래도 앉아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 제길.

두뇌 통신으로 위르겐의 퉁명스러운 감정이 느껴진다.

-왜 인마, 거기서 모니카랑 같이 있는 게 그렇게 싫어?

빈우는 궤도 엘리베이터를 레일건으로 바꾸는 소프트웨어 작업을 하면서 녀석의 투정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발 가르단 하스에서도 위르겐은 모니카와 함께 리퍼 함선 내부에 있었다.

-아뇨, 우리 팀 작전은 할 때마다 틀어지니까 뭔가 징크스인가 싶어서 말입니다.

위르겐 말마따나 태스크 포스 373의 작전이 제대로 돌아간 적은 없었다. 발 가르단 하스에선 전 상원의장을 만나고 샤다이 무리들과 전투를 했으며, 라출노그에선 돌아오는 길에 보안국과 생쑈를 했다.

-징크스라, 확실히 재수는 없는 편이지.

조정을 다 끝낸 빈우의 말에 팀원들이 집중한다. 팀장마저 재수 없다고 인정하면 기분이 조금 그렇다.

-안 그래? 소방관에게 화재는 재수 좋은 일이 아니잖아.

빈우가 어깨를 으쓱하는 건 보이지 않지만, 왠지 그런 감정이 두뇌 통신을 통해 팀원들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그가 말한 의미를 알 것 같다,

-애초에 불 끄는 소방관이 가는 곳은 화재 현장이야. 그러다 보면 방화범과 마주칠 때도 있지. 거기에 우연은 없어.

즉 빈우의 말은 373은 샤다이를 조지기 위한 특수팀이고, 워프 비스트는 샤다이의 신형전술로 추정되는 병기다. 그러니 같은 곳에서 만나도 이상할 것은 없다는 의미다.

-그 말씀은 팀장님의 수사가 저놈들과도 어떤 관계가 있단 말씀입니까?

아룹의 지적은 날카롭다. 빈우도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클론이 저지른 범죄가 샤다이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또 발 가르단 하스가 말한 의미는 무엇일까 하고. 하지만 지금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글쎄요. 그건 좀 더 수사를 해봐야겠죠.

그 말과 함께 빈우는 발사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궤도 엘리베이터에서 엄청난 질량의 화물들이 위로 솟구쳤다. 화물들을 실어야 할 칸에 무거운 광물들과 금속자재들이 꽉꽉 채워져 게이트를 향해 발사된다.

-와오, 효과 좋네.

파트리샤의 감탄대로 출력이 출력이니만큼 위력이 엄청났다. 재수 없게 사선에 들어간 순양함 크기의 워프 비스트 집합체가 특제 레일건 한 방에 박살이 났다. 이어서 게이트 안으로도 화물들이 죽죽 쏟아져 들어갔고, 튀어나오는 놈들을 바로 통상공간에서 저승으로 점프시켜 주었다.

-젠장, 엘리베이터가 녹아서 눌어붙었다.

하지만 애초에 발사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금방 무리가 갔다. 몇 발 쏘지도 못하고 마모되던 케이블이 마찰열을 견디지 못하고 기어이 녹아서 막혀버린 것이다.

-모니카, 믿는다. 한 방 크게 날려.

-히~하!

들려오는 흥분된 위르겐의 환호성.

-닥쳐 위르겐.

이어서 으르렁거리는 모니카의 말 다음으로 궤도 엘리베이터의 상부가 분리되었다. 그리고 원심력에 의해 궤도 바깥으로 크게 회전하며 날아갔다. 동시에 상부 엘리베이터 곳곳에 설치된 자세제어 장비들이 미친 듯이 가동해 회전과 각도를 조절해나간다.

-어머 존나 멋져.

파트리샤가 솔직하게 감탄했다. 하긴 200km에 달하는 거대 구조물이 서서히 회전하며 날아가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명장면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블랙 랜스가 뒤에서 날아오는 궤도 엘리베이터의 상부를 피하더니, 그것을 방패 삼아 반격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궤도와 각도 계산 끝났습니다. 뭔 짓을 해도 명중! 우리 빠져나갑니다.

모니카의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이 있던 4번 관리실이 폭파하더니 부머와 그 등에 탄 어벤져가 빠져나왔다. 그 위로 잽싸게 우지의 롱소드가 날아와 엄호해 준다.

-잘했다, 모니카. 이제 블랙 랜스로 돌아가라. 우지, 모니카를 부탁한다. 위르겐, 그라디우스를 보냈다. 그걸 타고 이쪽으로 합류해.

빈우의 명령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였다.

-네, 팀장님.

-금방 갑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하나는 냉큼 부머로 접근하는 우지와 손을 흔드는 위르겐의 긍정적인 반응이었고,

-잠깐만요, 팀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다른 하나는 놀란 모니카의 부정적인 반응이다.

-모니카, 이제 화력 팀은 지상에서 워프 비스트를 상대로 방어전을 한다. 거기서 네가 뭘 할 수 있지? 필요 없으니까 블랙 랜스에서 다른 이들을 지키는 게 나아.

빈우의 설득은 잔인했다.

-하지만!

모니카는 보았다. 아군 함대의 방어선을 뚫은 수많은 워프 비스트들이 뉴 소노라로 향하는 것을. 블랙 랜스를 포함한 방어 함대가 필사적으로 요격하고는 있지만, 결국 상당수의 워프 비스트들이 뉴 소모라의 궤도를 장악하고 지상으로 침략해 내려올 것이다.

팀원들은 그리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워프 비스트들이 우글거리는 지상으로.

-죽을 거예요. 다들 죽을 거라고요.

어느새 모니카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까 기동방어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새까맣게 행성으로 내려가는 워프 비스트들을 보자 현실을 깨닫게 된다.

태스크 포스 373의 화력 팀이 연방 최정예란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인원은 고작해야 네 명, 다수를 상대로 한 방어전은 무모하다. 게다가 기습 같은 공격성 작전이라면 모를까, 이런 방어전에선 제아무리 특수부대원이라 하더라도 일반 장갑 보병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게 우리 일 아니냐.

대수롭지 않은 빈우의 대답에 모니카는 할 말을 잃었고, 다른 팀원들은 조용히 긍정했다. 외계 종족의 침입에 목숨을 바쳐 시민들을 지키는 것. 그것이 그들의 일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