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45화 (143/301)

145화

-헤헤, 지옥으로 꼬라박는 게 저희들 일이죠.

위르겐의 어벤져가 부머를 등 뒤에서 잡고 방향을 돌리더니 세차게 걷어찼다. 그렇게 튕겨 나간 부머는 롱소드가 견인 빔으로 잡아갔고, 그 반동으로 날아간 어벤져는 마중 나온 그라디우스에 안착했다.

-함장님. 최대한 지연전을 펼치십시오. 지상팀은 신경 쓰지 마시고 살아남는 걸 최우선으로 두셔야 합니다. 블랙 랜스가 떨어지면 지상팀도 끝장입니다.

지금 빈우는 상공의 엄호를 포기하면서까지 블랙 랜스의 생존을 당부했다. 궤도 상에서 모함의 포격 지원이 있고 없고는 천지 차이다. 그러나 이제 뉴 소노라에 남은 아군 함선은 블랙 랜스 단 한 척, 50여 척에 달하는 적들을 상대로 싸우다간 격침당할 뿐이다.

-뉴 소노라는 중요도가 높은 허브 게이트입니다. 정시 연락이 끊기면 뱅가드가 올 테니, 그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블랙 랜스야 치고 빠지며 어떻게든 버텨보겠지만, 지상의 화력 팀은 괜찮겠습니까?

-만약 놈들이 뉴 소노라를 공격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궤도 포격을 했겠지요. 그러나 저걸 보십시오.

빈우가 가리킨 곳은 순양함 크기였던 소형 워프 비스트 함선들이 분열해 뉴 소노라의 대기권을 돌입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단일 개체로 잘게 쪼개져 지상으로 낙하한다.

-놈들은 지상전으로 뉴 소노라를 접수하려는 겁니다. 아마도 시민들을 변이시키는 목표겠지요. 그렇다면 대량파괴가 일어날 적 함선의 궤도 포격은 없을 겁니다. 정 상황이 불리해지면 화력 팀은 그라디우스를 타고 철수하겠습니다. 블랙 랜스는 어쩌실 겁니까?

오르는 지금까지 싸워봐서 알아낸 사실들이 있다. 저 워프 비스트들은 플라스마를 쏘는 만큼 화력은 좋지만, 방어력은 볼품없었다. 플라스마나 광학병기는 샤다이처럼 무력화시켜도, 그 외의 공격에는 종잇장처럼 갈려나갔다. 게다가 기동성도 굼벵이 수준이라 블랙 랜스가 작정하고 도망치면 죽을 일은 없다.

-그럼 퇴각 때까지 히트 앤드 런으로 최대한 시간을 벌어 보겠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함장님이야말로. 인류가 제일 좆같을 때는 역시 지상전에서 아니겠습니까.

빈우의 말대로 인류가 외계종족들과 숱하게 전투를 벌이면서도 끝끝내 우위를 점할 수 있던 건 장갑 보병들에 의한 지상전 덕분이었다. 저 강력한 샤다이도 지상전에선 밀어붙였고, 생체 전차라 불리우는 스퀵테르도 인류의 표독스런 지상전을 본 다음부턴 고개를 흔들 정도다.

덧붙이자면 인류가 방어전으로 지상전을 하는 경우는 진짜 말아먹은 경우다.

-아차차, 빠질 사람은 빠지라고 먼저 말했어야 했나?

돌아보며 너스레를 떠는 빈우의 말에 팀원들이 키득거린다. 현재 밝혀진 사실로만 봐선 화력 팀의 승산은 썩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아래에 지켜야 할 시민들이 있는 이상, 승산 따윈 신경 쓰지 않고 뛰어내리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것은 제 특기가 아닙니다만, 이거 비슷한 일을 한번 겪어서요. 두 번씩이나 겪고 싶진 않습니다.

슬쩍 아룹이 운을 뗀다. 빈우의 시선이 향하자 나머지 고백이 이어진다.

-VIP 회수 작전이었습니다. 회수 목표 확보하니까 바로 철수하라더군요. 후발대가 있다곤 했는데, 속았죠.

빈우가 알기로 아룹이 맡았던 작전 중에 군사기술국의 연구소를 청소하는 것이 있었다. 주요 인원과 자료, 장비를 챙긴 다음에 철수하는 작전이었는데 나머지 인원은 상황이 여의치 않자 버려졌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룹이 레드우드의 부름에 냉큼 달려온 이유가 되었다.

이어 빈우의 시선이 파트리샤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헬멧 위로 머리를 긁적였다.

-엣? 나요? 음, 조금 뭐냐, 더러운 정찰 임무를 맡은 적이 있는데, 아군이랑 시민들 죽어 나가는 거 눈 뻔히 뜨고 본적이 있어요.

실리콘 나이트의 정찰은 장갑복을 입은 대원이 적진으로 침투해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며, 작전 중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체를 드러내선 안 된다. 궤도나 고고도 장거리 촬영으로 아군이 죽는 것을 본 군인들은 많지만, 그녀처럼 직접 눈앞에서 그 광경을 봐야 했다면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파트리샤가 더럽다고 한 것을 보면 빈우는 그녀가 가져온 자료들의 용도가 어떨지 짐작이 갔다.

-그러니까 나 빼기 없기.

-빨리도 말한다. 이제 빼지도 못해.

애교떠는 그녀를 피식 웃으며 걷어찬 빈우가 마지막으로 위르겐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뱅가드 대원은 어깨를 으쓱한다.

-제가 하던 일이 원래 이랬는데요 뭘. 새삼.

하긴 위르겐에게 이런 작전은 익숙할 것이다. 단검뿔 토끼와 실리콘 나이트가 몰래 담 넘고 숨어 들어가 깃발을 가져오는 부대라면, 뱅가드는 앞문 부수고 쳐들어가 깃발을 꽂는 부대다. 애초에 작전 교리에 철수는 있어도 후퇴는 없고, 본대가 올 때까지 최대한 개판 치는 게 뱅가드다.

-그래도 팀장님이 보시기에 해볼 만해서 하시는 거겠죠?

부팀장의 질문에 빈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는 거점을 사수하려고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는 아군이 올 때까지 최대한 시민들을 이동시키며 보호하고, 적의 수를 줄이는 겁니다.

그러면서 빈우는 지상팀을 점검했다. 컨커러, 그라인더, 인필트레이터, 중화기 어벤져가 4기. 여기에다 무인 어벤져가 기본사양으로 20기. 반면 워프 비스트는 대략-지상으로 가장 소형체로 내려갔다면-최소 8천 이상. 암담하다.

다음으로 간단한 상황설명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수집한 정보를 보아 플라스마 사용은 최소한 함선 급 군체가 되어야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보다시피 이런 소형이나 단체들은 레이저 요격에 당했지.

궤도에 있던 함선으로 들어간 놈들은 역시나 플라스마 공격 없이 손톱과 이빨로 사람들을 공격했다. 지상에 내려간 놈들이 저것들처럼 인간 크기에 근접전만을 하고 아군의 무기가 통한다면 해볼 만하다. 다만 완력이 장갑복 수준에 근접공격이 위험한 편이라, 아무리 장갑 보병이라 해도 다수에 둘러싸이면 위험하다.

-함선 급들은 전부 대기권에 있고, 지상의 단일 개체 워프 비스트들이 근접전만 한다면 우린 최대한 거리를 두며 싸우면 된다.

빈우의 작전 설명은 말로 하긴 쉽다. 실제 특수전 사령부에 침입했던 워프 비스트는 아군의 사격전에 달리 힘을 쓰지 못하고 쓰러졌다고 했었다.

-그런데 저것들. 새로운 워프 비스트일까요?

파트리샤가 놈들의 영상을 보면서 전력을 파악해 보려 한다. 이런 걸 알아내는 건 모니카가 전문이지만, 그녀는 이미 블랙 랜스로 떠나버렸다.

-기본이 되는 종족이 달라서 일수도 있지. 잡아 족쳐서 알아보자. 일단 지상의 시민들을 대피시켜야 하는데. 이게 제일 좆같네.

팀원들의 두뇌 통신으로 빈우의 짜증이 확 전달된다. 궤도 엘리베이터의 직원들이나 블랙 랜스에서 수차례 대피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뉴 소노라의, 아니 녹색 연맹의 사람들은 대피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빈우가 지상의 영상 중 하나를 잡아 띄웠다.

-이 땅은 우리의 땅이다. 누구도 우릴 몰아낼 순 없다.

한 도시국가의 시장이 열변을 토한다. 다른 도시들도 별반 다를 바 없다. 과거 친 연방 쪽에 속했었던 도시들은 느리게나마 대피를 하고 있지만, 그 외에는 사태파악을 못 하고 결사 항전을 하자는 분위기다. 겨우 녹색 연맹의 기술력으로, 그 워프 비스트를 상대하겠다는 것이다.

-하아, 저 양반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요?

위르겐이 툴툴댄다. 위르겐의 짜증은 빈우의 짜증과 결이 조금 달랐다. 아마 뱅가드 연대이니만큼 간혹 이런 임무를 맡아봤던 경험 때문일 터다.

-침공받은 소규모 개척지에 들어가 대피시키는 거는 몇 번 해봤습니다만, 그것도 빡센 마당에 도시 단위라고요. 허미 시벌.

-짜증 난다고 쟤네들 쪽수 까먹지 말고.

-옘병.

드디어 화력 팀을 태운 그라디우스가 뉴 소노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궤도 상에 대기하던 워프 비스트 함선이 플라스마 포를 쏘았지만, 명중률이 샤다이와 형님 동생 할 지경이다.

-워프 비스트들이 가장 많이 떨어지는 곳은 웨이블에 있는 궤도 엘리베이터 부근이다.

궤도 엘리베이터 터미널은 교통량이 많고 여러 가지 인프라가 풍부해서 인구가 많다.

-나와 파트리샤가 A팀, 부팀장과 위르겐이 B팀. 어벤져는 팀별로 10기씩 나눈다.

현재 화력이 강력한 것은 빈우의 컨커러와 위르겐의 중화기 어벤져다. 그리고 지휘계통대로 나누자면 팀장과 부팀장. 그래서 팀이 이렇게 나뉜 것이다.

-A팀은 상공에서 장갑복으로 강하. B팀은 그라디우스로 궤도 엘리베이터 터미널로 진입해서 관제실을 장악해.

아직 워프 비스트들이 본격적으로 침공을 시작하지 않은 지금이라면 지상의 소란이 적다. 그렇다면 한시라도 빨리 녹색 연맹 쪽의 지도부를 설득해 피난과 대피를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그 지도부께선 뉴 소노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궤도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중이시라 태스크 포스 373이 직접 찾아뵙는 중이다.

-참, 지금부터 의료용 마이크로 머신은 팀원들에게만 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빈우의 명령에 팀원들의 시선이 모인다.

-현재 상황에서 시민들 한둘 살려봐야 의미 없어. 우리가 살아남아서 워프 비스트를 하나라도 더 잡아야 한다. 그게 시민들을 구하는 길이야.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다. 모함과의 연결이 힘든 지금 의료용 마이크로 머신의 보급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을 살리느니 부상 당한 팀원들을 치료하는 게 방어에 더 효율적이다.

냉정한 빈우의 목소리에 위르겐은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방금 빈우의 명령은 발 가르단 하스에서 이케가미 의원을 구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몸을 던졌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강하!

빈우가 그라디우스에서 뛰어내리자 그 뒤를 따라 파트리샤와 어벤져들이 줄줄이 뛴다. 빈우는 낙하하는 도중에 등에 있던 입자 가속 포를 꺼냈다. 삼등분된 포신이 합쳐지고, 동체를 두른 가속 터널에서 가속이 시작된다. 다음 빈우는 스핑크스를 방패 모드로 해서 앞을 막은 다음에 입자 가속 포를 쐈다.

저 멀리서 강하하던 소형선 크기의 워프 비스트가 일격에 격침되었다. 구축함 부포 급의 열에너지와 운동에너지가 들이닥치자 분열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산산조각 난 것이다.

장갑 보병이 운용하는 화기에서 이 정도 위력이 나왔다면 군 상부에서는 침을 질질 흘릴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빈우는 입에서 다른 것을 흘리고 있었다.

-이 씨발.

한 척을 잡았는데 그 뒤로 다섯 척이 내려오고 있으니 욕이 나올 만도 하다.

-B조, 위치에 도착. 자리 잡았습니다.

아룹이 이끄는 B조는 착륙은 뛰어넘고 그라디우스에서 바로 강하한 모양이다. 위르겐은 높은 위치에 있는 관제실에서 레일건을 꺼내, 사거리 내에 보이는 워프 비스트를 저격하기 시작했다.

-웨이블 시의 시장과 시의원들을 찾았습니다. 말로는 결사 항전이라고 해놓고선 자기들은 튀려고 한 모양입니다.

아룹의 보고를 들은 빈우는 다음 명령을 내렸다.

-어서 시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리라고 하세요.

부팀장이 시장을 설득할 동안 그의 감정이 회선을 통해 퍼져나간다. 난처함과 곤란함. 시장 쪽이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짐작이 간다.

-…연방의 총칼에 무릎 꿇지 않겠다는데요.

-제대로 된 걸 못 봐서 그런 헛소리를 하는 겁니다. 진짜 총칼이 뭔지 똑바로 가르쳐 주세요.

이쯤 되면 태스크 포스 373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몰려 내려오는 워프 비스트가 아니라, 연방이라면 덮어놓고 어깃장을 놓는 녹색 연맹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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