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적, 워프 비스트입니다. 47마리가 4번 도로로 접근 중.
위르겐이 관제실 창을 깨고 레일건을 거치한 다음 도로를 따라 갈겼다. 터미널을 향해 달려오던 워프 비스트들이 순식간에 피떡이 된다.
-기다려, 위르겐. 좀 더 끌어당겨라.
팀장의 명령에 위르겐은 사격을 잠시 멈췄다. 그러자 화망에 막혀 주춤했던 워프 비스트들이 다시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빈우의 A조는 터미널에서 조금 떨어진 건물로 올라가고 있었다.
-위르겐, 내 신호에 맞춰 쏴라.
워프 비스트들이 로터리에서 확 퍼졌다가 다시 모이는 순간, 빈우가 신호를 내렸다. 그러자 좁은 길에 얽힌 놈들이 위르겐과 무인 어벤져, 빈우와 파트리샤의 교차 사격에 갈려나갔다.
-부팀장, 그 양반들 대피 명령 내린답니까?
하늘에서 워프 비스트들이 속속 내려온다. 대기권을 돌파한 소형 함선 크기의 워프 비스트들이 더 작은 형태가 되어 떨어진다. 높은 고도에서 분리한 어벙한 놈들은 땅바닥에 꽂혀 일손을 줄여주지만, 그래도 많은 수의 적들이 도시 곳곳에 안착한다.
-음, 치과 치료가 필요해 보입니다만, 말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이어서 웨이블 시장의 피난 방송이 시작되었다.
-히민 혀어분, 히금 헤이흘헤는….
조금 새는 발음이지만 알아듣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일단 한 건 해결 했군요. 이제 궤도 엘리베이터로 피난 가려는 사람들의 발길을 빨리 돌려야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점프 게이트의 소실, 방어 함대의 전멸 등의 소식이 알려지자 발 빠른 사람들은 궤도 엘리베이터로 모이기 시작했다. 상부가 날아갔어도 하부는 건재하니 올라만 가면 긴급 피난선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난선을 탄다 해도 게이트가 사라진 지금은 도망갈 곳도 없다.
-좆 됐는데 이거.
게다가 모든 워프 비스트들이 다 궤도 엘리베이터를 향해 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시가지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죽어! 이 괴물 새끼들아!”
“녹색 연맹은 승리한다.”
뉴 소노라의 경찰들과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저항을 시작하지만, 성과는 그리 좋지 못하다. 이들의 무장이라고 해봐야 화약식, 혹은 가스식 총이 고작이다. 먹히기야 하겠지만 여럿이서 집중 사격을 해야 한다. 시민들이 총을 갈기는 사이, 워프 비스트들은 빠르게 달려와 사람들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아아악!”
장갑복에 준하는 완력이면 사람쯤은 우습게 찢어발긴다. 야수 같은 놈들이지만 나름 지성은 있는지, 무장하고 공격을 하는 인간은 가차 없이 죽여 버리는 반면, 비무장의 시민들은 바닥에 패대기쳐 무력화시킨 다음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다. 어쩌면 저게 놈들의 본능일지도.
-부팀장, B조!
태스크 포스 373은 필사적으로 워프 비스트들을 죽이고는 있지만, 수가 너무 적다. 인간과 무인기 다 합쳐 24. 그에 반해 적은 속속들이 늘어나고 있고 전장은 너무 넓다.
-젠장, 통신 방해가 더 심해졌어. 이 정도 거리에서도 통신이 안 되다니.
빈우가 혀를 찼다. 조금 거리를 벌려 화력 거점을 마련하려 해도 통신이 안 되면 소용이 없다.
-다행히 도시 간 통신은 유선이군요.
파트리샤의 말대로 이건 천만다행이다. 뉴 소노라의 도시들은 서로 유선 통신망을 구축하고 있어서 지금 같은 통신 방해 속에서도 비상연락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개척 행성인 만큼 대피 시설도 잘되어 있어, 운석 낙하에서도 버틸 수 있는 지하 벙커들이 도시 곳곳에 있다. 일단 시민들이 대피만 한다면 지금의 워프 비스트들은 그 벙커를 뚫을 방법이 없다.
때마침 벙커의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내용이 이상하다.
-여러분 벙커로 가선 안 됩니다. 도망쳐선 안 됩니다. 우린 침략자들에게 맞서 싸워야 합니다.
-개씨바아알!
그러나 시민들에게 대피할 마음이 없다는 게 빈우의 복장을 터트리고 있었다. 고향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개척 행성 특유의 애향심과 침략자들에 대한 저항감도 있겠지만, 뉴 소노라의 사람들은-스스로 녹색 연맹이라 칭하는 자들은-자신들이 연방보다 역사가 길다는 점을 들어 언제나 연방을 아래로 놓고 무시해 왔다.
* * *
“영감님, 절 따라오세요. 일단 벙커까지 모실게요.”
얼굴을 보인 위르겐이 손을 친절하게 내밀지만, 노인은 되려 지팡이로 그를 후려갈겼다. 내민 장갑복의 손바닥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위르겐은 마치 자기가 맞은 것 마냥 우울했다.
“감히 누구 땅에서 그런 소릴, 옳거니, 연방 놈들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엄밀히 말하면 녹색 연맹은 인류 연방에 속해 있으며,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는 지방 행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주민들에겐 그렇지 않았다. 개척 행성의 주권을 지키는 정의의 녹색 연맹과 이를 침범하는 사악한 연방. 이것이 뉴 소노라 주민들 상당수의 인식이었다.
“아, 아빠. 뭐 하는 거야. 피난 방송하고 있잖아.”
하지만 그것도 세대가 지나가며 서서히 바뀌는 중이다. 옆에서 딸로 보이는 여인 한 명이 한쪽 팔에는 아기를, 다른 쪽 팔에는 노인을 이끌고 나아간다. 그녀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인 인사를 하고 지나가지만, 노인은 그러면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네가 뭘 안다고, 녹색 연맹은 우리 땅이야. 연방 놈들이 침략하고 있다고.”
그 모습을 보며 위르겐은 한숨을 내쉰다.
“하아, 썩을 윗대가리들은 받아 처먹을 거 다 받아 처먹고, 시민들한텐 정보 통제하고. 잘한다.”
-위르겐, 서둘러. 그쪽으로 또 한 무리 간다.
아룹의 경고에 고개를 돌리자 건너편 블록이 소란스럽다. 모퉁이에서 튀어나와 질주하던 스콜피온 전차가 워프 비스트를 짓밟고 지나간다. 그러다가 둘러싸이고, 뚜껑이 따이고, 승무원들이 잡혀 나와 장조림이 된다.
“모두 피해요! 벙커까지 달려요!”
헬멧을 닫은 위르겐이 어벤져들과 함께 난사하며 앞으로 나선다. 터미널을 나온 B조는 현재 3개분대로 재편해서 워프 비스트들의 침범 루트를 막아서고 있다. 2개 분대가 번갈아 타격하고, 남은 1개 분대는 후방에 대기하다가 지원을 하거나 교체를 한다. 시가전에서는 효과적인 전술이지만 손이 모자라 하늘까지는 커버할 수 없었다.
“썅!”
위르겐은 착지에 실패해 바닥에 조각나 꿈틀거리는 워프 비스트의 등에 나이프를 쑤셔 박았다.
-부팀장님. 슬슬 시간 다 돼갑니다.
-알았다.
지금 태스크 포스 373의 A조와 B조는 지역을 정해놓고 시간을 따라 이동하며, 시민들의 대피를 돕고 워프 비스트에 대한 반격을 하고 있었다.
* * *
빈우는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몰린 곳이지만 방어설비가 전혀 없어서, 워프 비스트들이 들이닥치면 순식간에 떼몰살 당할 곳이다. 한시라도 빨리 이들을 대피시켜야 한다. 그때 머리가 반들반들한 노승려 한 명이 목탁을 두들기며 걸어 나와 빈우의 앞을 가로막는다.
“나무아미타불. 물러서시오. 여긴 무기를 들고 올 곳--”
“니미애미씨발! 지금 대피령 떨어졌는데 뭐 하는 겁니까! 어서 피하세요. 벙커로 가셔야 합니다.”
애써 화를 참으며 설명하는 빈우를 보던 노승려는 차갑게 대답했다.
“물럿거라. 연방의 사악한 앞잡이야.”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살 난 목탁과 박살 난 뚝배기가 바닥을 뒹군다. 놀란 파트리샤가 달려와 승려 머리에 박힌 목탁 파편을 조심조심 뽑아냈다. 죽일 생각은 없었는지 다행히 승려는 아직 살아있다. 하지만 입에서 거품을 보골보골 무는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빈우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명령을 내렸다.
“파트리샤, 내 앞길에 지뢰 깔아라. 더도 덜도 말고 딱 일곱 개만.”
“아놔, 이 양반 또 지랄이네.”
그러나 파트리샤도 빈우의 격노를 보고 어련하다 싶었다. 구해주러 내려왔더니 요구조자들이 개트롤짓만 하고 있으니 빡치는 게 당연하다.
“모두 대피령에 따라 이동하세요. 빨리빨리!”
처음 보는 장갑복이 사원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서자 사람들이 동요한다. 그러던 중 한 중년 남자가 나와 빈우에게 말을 걸어온다.
“대, 댁이 무슨 권리로 우리한테 그런 명령을 내리는 거요.”
“권리?”
반문하던 빈우가 대답을 꺼냈다. 코일건이다.
“이거요, 이거!”
그리고 하늘을 향해 위협 사격을 하자 초음속 탄자의 발사음에 사람들이 자지러진다.
“꺄악, 갑자기 뭐에요!”
“뭐냐고? 폭력이요, 폭력! 여기 있으면 뒈지니까 튀시라고!”
위협 사격 몇 번에 신도들은 사원을 우르르 빠져나갔고, 무인 어벤져들이 사람들은 대피소로 인솔하기 시작했다.
-적 발견.
외곽을 탐지하던 무인 어벤져에게서 적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통신을 쓸 수 없는 현재 어벤져들은 서로를 중계하면서 연락망을 구성하고 있었다.
-37, 38, 42. 계속 모이고 있습니다.
어벤져의 보고에 따르면 워프 비스트들은 이쪽으로 향하며 세를 늘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수를 불린 다음 한꺼번에 들이닥치려는 생각이겠지.
-파트리샤. 피난민들 인솔해서 빠져나가.
빈우는 입자 가속 포를 충전하며 사원 위로 올라갔다. 무인기가 가리킨 곳엔 아직도 워프 비스트들이 모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항하던 사람들은 이미 시신이 되어 바닥에 들러붙어 있다. 여기 사원에서 실랑이만 하지 않았어도 구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놈들이 분주히 움직이지 않고 서서히 모이기만 하는 것을 보면, 주변에 생존자는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빈우는 입자 가속 포를 발사했다. 폭음과 섬광이 일며 그 일대가 날아간다. 뉴 소노라의 건물과 시민들의 시신. 그리고 침략자 워프 비스트들이 공평하게 사라진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 파트리샤. 무인 어벤져를 중계기로 써서 연락해.
빈우는 입자 가속 포를 접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놈들은, 워프 비스트들은 아직도 내려오고 있었다.
* * *
-지원군 오려면 몇 시간 남았죠?
파트리샤가 코일건을 난사하며 물어본다.
-41시간 정도.
-어머나 이 씨바랄!
빈우의 대답에 그녀는 욕을 한다. 지상에서 전투를 벌인지 고작 7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원래는 7시간씩이나, 라고 해야 되겠지만 지원 함대가 닫힌 게이트를 다시 열고 오려면 적어도 48시간은 걸린다.
-씻지도 자지도 못하고 벌써 7시간이네요. 야아 시간 잘 간다.
파트리샤가 툴툴거리며 코일건 탄창을 재장전한다.
-먹고 싸기는 하잖아.
빈우의 대답에 파트리샤가 피식 웃었다. 그다음 표정을 굳히며 말한다.
-문제는 탄약과 동력이에요. 보급 없이 48시간은 죽어도 못 버텨요.
위르겐의 어벤져라면 장착 후 기본 80시간은 너끈히 행동 가능하다. 문제는 다른 팀원들의 장갑복이다. 단검뿔 토끼는 특수작전 부대라 이런 장기간 전투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실리콘 나이트는 침투 작전을 하긴 해도 특별장비를 장착하고 나서야 가능하다. 지금처럼 전투 장비를 하고선 오래 버틸 순 없다.
-팀장님, 지금 계속 경고 뜨지 않나요?
-그러게 말이다.
이 중에서 가장 문제는 빈우의 컨커러다. 아직 테스트를 하고 있는 장갑복인지라 이런 장시간 전투는 무리다. 게다가 안정성은 엿 바꿔 먹은 스핑크스와 입자 가속 포가 있는 마당이니 위태위태하다.
-일단 어디서 날림이라도 정비하죠.
파트리샤의 건의에 빈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무인 어벤져 한 기가 꽤 많은 수의 시민들을 발견했다는 연락을 했다.
-지하 창고? 아, 거긴 또 왜 들어갔냐. 차라리 벙커를 가시지.
빈우는 다시 정보를 자세히 살펴봤다. 시민들의 생명 반응이 관찰된 곳은 대형 마트의 지하 창고다. 그 위로는 다수의 워프 비스트들이 돌아다니고 있어서 아차 하면 대량학살이 날 판이다.
-제발 가만히 있어 주면 좋겠는데.
파트리샤의 말에는 간절함 마저 스며들어 있었다. 태스크 포스 373이 갈 때까지 조용히 버텨만 준다면 좋겠다. 괜히 싸우겠다느니, 지키겠다느니 나서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만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