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빈우는 무인 어벤져들을 징검다리 삼아 아룹의 B조와 통신을 했다.
-부팀장, 지하 창고에 시민들이 다수 대피해있습니다. 좌표 확인하세요.
-확인했습니다만, 일단 급한 불은 끄고 가겠습니다.
B조는 대피시키던 시민들을 근처의 지하 벙커에 넣은 다음에야 합류하러 왔다.
-음, 이거 좀 골치 아프군요.
목적지에 도착해 주변 상황을 살피던 아룹이 혀를 찼다. 정찰을 하던 무인 어벤져가 시민들을 발견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숨어있는 지하 창고 위의 입구로 상당수의 워프 비스트가 진을 치고 있는 게 문제였다.
그때 빈우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거 이거 조금 불안한데?
창고로 내려가는 입구의 문이 열려있다. 그리고 그 입구의 바닥에는 핏자국들을 비롯한 사람이 억지로 끌려간 흔적들이 보였다. 지하에 있는 시민들, 바깥의 워프 비스트들, 그 사이의 핏자국. 불길함을 느낀 빈우가 바로 명령을 내렸다.
-전원 돌입! B조 엄호해, A조가 먼저 간다.
측면에서 B조가 사격을 시작하자 빈우와 A조가 거리를 좁혔다. 워프 비스트들은 옆에서 날아온 공격에 쓰러졌다. 반격하기 위해 뛰쳐나가려던 찰나, 이번엔 앞에서 달려가던 A조가 사격을 시작했다. 그 즉시 B조는 사격을 멈추고 접근을 시작했다. 좌우로 번갈아 쏟아지는 공격에 워프 비스트들이 쓸려나갔고, 빈우와 파트리샤는 거리가 좁아진 틈을 타 나이프를 들고 근접전을 걸었다.
-부팀장, 나머지 처리하고 입구를 지켜요.
입구까지 간 빈우는 남은 놈들을 마저 처리하지 않고 지하 창고로 내달렸다.
-알겠습니다.
이어서 B조가 제트팩을 쓰며 돌진해 부딪혔고, 지상에 있던 나머지 워프 비스트를 처리한 다음 주변을 경계했다.
-팀장님?
빈우를 뒤따르던 파트리샤가 그를 부른다. 구출할 시민들이 있다 해도 좀 더 살펴보고 신중히 행동해야 하는데, 빈우가 앞뒤 상황을 가리지 않고 돌격하자 의아하게 여긴 것이다.
그러나 빈우에게선 초조함의 감정만 느껴질 뿐, 별다른 대답은 없었다.
-들어간다.
창고의 안쪽 문에서 대강 안을 살핀 빈우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그 뒤로 파트리샤와 무인 어벤져들이 따른다.
-이런 씨바랄.
창고 안에 펼쳐진 광경을 본 파트리샤의 감상은 욕이었다. 돌입조 앞에는 부상을 입은 뉴 소노라 시민들이 쓰러져 있었다. 이들은 모두 겁에 질려 삼삼오오 모여있었고, 그 공포의 근원인 워프 비스트들은 창고 군데군데 서 있다.
-쏴.
빈우와 파트리샤는 서 있는 워프 비스트들을 쏴 갈겨 쓸어 버렸다. 코일건의 발사음에 사람들이 겁에 질려 버둥대지만, 빈우는 신경도 안 쓰고 워프 비스트의 사체를 향해 걸어갔다.
-파트리샤. 이것들의 형태를 봐라.
파트리샤는 빈우가 가리킨 워프 비스트들을 잘 살펴보았다. 그중에 몇몇 놈이 바깥의 놈들과 형태가 조금 다르다. 지금껏 많이 봐온, 인간이 변한 워프 비스트다.
-네, 그렇네요.
고개를 치켜든 파트리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지하 창고에는 상처 입은 인간들이 모여있고, 인간이 변한 워프 비스트가 있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 모인 게 아니에요. 워프 비스트들이 모은 거죠.
이게 바로 파트리샤가 욕을 뱉은 이유였다.
“연방군이죠? 우릴 구하러 온 거죠?”
그때 중년 여성 한 명이 절뚝거리며 다가온다.
“제발 구해주세요. 살려주세요. 괴물로, 사람이 괴물로 변해요.”
빈우는 자신에서 애원하며 매달리려는 그녀를 차갑게 밀어낸다. 발을 헛디딘 중년 여성은 짧은 비명과 함께 넘어졌다.
“썅! 저것 봐, 저거! 이거 다 연방이 꾸민 일이라고!”
사이버네틱스 사지를 잃은 청년이 바닥에 누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내 아들, 내 아들을 찾아주세요. 내 아아아….”
빈우에게 떠밀려 바닥에 쓰러진 채 버둥거리던 그녀가 꿈틀거린다. 그 순간 변화가 시작되었다. 갑작스레 뒤집어지는 눈. 솟구치는 손톱과 비집고 나오는 이빨. 그리고 그것들 모두를 갈아버리는 니켈강 탄환. 워프 비스트로 변하던 시민은, 아니 시민이 변한 워프 비스트는 빈우가 쏜 코일건에 죽었다.
“죽였어! 저 새끼가 사람을 죽였다고!”
“닥쳐 병신아. 괴물로 변한 거잖아.”
“사람 살려어.”
비명이 쏟아지고 창고 안이 소란스러워진다. 그리고 빈우의 머릿속도 혼란스럽다.
‘인간이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원인이 뭐지?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 아니면 워프 비스트에 의한 개조? 음파? 전파?’
어느 것 하나 명확한 것이 없다. 지금까지의 조사로 봐선 일단 감염의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오스카 스테이션에서도, 오브리가도의 특수전 사령부에서도 달리 발견된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없었다.
“으악! 여기도 괴물로 변한다.”
빈우는 외마디 소리가 내질러진 곳으로 달려갔다. 이번엔 노인 한 명이 워프 비스트로 변하고 있다. 부러진 팔다리가 다른 모습이 되어 일어서려 할 때, 진동 나이프가 그것들을 모조리 잘라버린다. 이어서 사지를 잃은 워프 비스트를 컨커러가 짓밟고, 그 몸에 치료용 마이크로 머신 주사가 박힌다.
‘제길.’
마이크로 머신의 상태를 보는 빈우가 혀를 찼다. 상황이 오스카 스테이션과 동일했던 것이다. 워프 비스트의 몸속으로 들어간 치료용 머신들이 별달리 힘을 쓰지 못하고 기능이 정지되고 있었다.
-팀장님, 놈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위를 지키던 아룹이 보고한다. 그가 보낸 영상에는 워프 비스트들의 무리가 이쪽으로 몰려오는 게 보인다. 막으려면 막을 수야 있겠지만, 제법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어진 전투로 무인기를 5대나 잃었다.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동안 저지선을 맡았던 녀석들인데, 대피가 늦어지자 길어진 전투에 손실된 것이다. 무인기를 더 이상 잃어버리면 남은 시간 동안 원활한 작전이 힘들어진다.
-곧 나갑니다. 조금만 버텨보세요.
빈우는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인체에 마이크로 머신 주사를 하나 더 꽂고 스캐너로 전신을 샅샅이 훑었다. 워프 비스트로 변이되고 있는 몸에서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어야 했다. 그러나 워프 비스트의 면역체계가 강력하단 것 외에는 달리 새로운 정보는 없었다.
그때 저쪽에서 한 명이 더 변이하기 시작했다.
-파트리샤, 처리해.
코일건의 발사음과 함께 워프 비스트는 죽었고 사람들은 다시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이번엔 발사까지 아주 잠깐의 딜레이가 있었다. 실리콘 나이트쯤 되는 정예대원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빠! 아파! 아파아.”
이번엔 앳된 소녀가 울부짖는다. 변이해서 꺾이는 팔을 보며 겁에 질린 아이 옆에서,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그 팔을 부여잡고 애를 쓴다. 그러나 워프 비스트로 변한 팔에 아버지는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한다. 놈들의 완력은 장갑복급이다. 맨몸의 사람이 어찌해볼 힘이 아니다. 팔을 잡고 버티던 아버지는 급기야 튀어나온 갈퀴에 자신의 팔뚝을 크게 베였다. 그래도 아버지는 딸의 팔을 놓지 않았다.
-파트리샤.
그러나 그녀는 쏘지 않았다. 대신 달려가서 그 아이의 팔을 잘라냈다. 뒤틀리던 팔을 자르고 지혈을 하지만 이미 반대편 팔이, 아니 소녀의 몸 전체가 다시금 변이를 시작했다. 이번에 빈우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파트리샤가 진동 나이프로 이미 워프 비스트를 죽인 것이다.
변이하던 딸이 순식간에 토막이나 죽어버리자 소녀의 아버지는 오열하며 쓰러졌다.
-파트리샤, 이제부터 변이하는 워프 비스트는 무조건 사살해.
-알겠습니다.
-나도 포함해서.
-네?
파트리샤의 되물음에 빈우는 대답을 하지 않고, 왼팔 어깨 부분부터 해서 혈류를 일시적으로 차단했다. 부상이라거나 기타 불행한 이유로 해당 부위를 잘라내야 할 때의 사전 작업이다. 혈류가 차단되고 신경계도 단선되자 왼팔은 장갑복의 기동으로만 움직인다.
그다음 빈우는 컨커러의 왼팔 장갑을 열고선 드러난 팔에 진동 나이프로 길게 상처를 내었다. 이어서 워프 비스트의 사체에서 살점과 피를 떼어 내 상처 부위로 밀어 넣었다.
-팀장님!
파트리샤가 비명을 지르지만 빈우는 신체 상태 화면에 집중했다.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온 워프 비스트 세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다. 여차하면 왼팔만 폭파해서 떼어 내면 되는 일이다.
-제길!
그러나 빈우는 이를 갈았다. 그토록 억세게 굴던 워프 비스트의 세포들이 인간의 신체로 들어오자 힘을 잃고 퇴치되고 있었다.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온 마이크로 머신들을 그토록 치열하게 사냥했던 놈들이건만, 역으로 빈우의 몸으로 들어오자마자 인간의 자기방어체제에 분해되고 있다.
이전 연구결과에서 보던 것과 같다. 워프 비스트의 세포와 인간의 세포를 가지고 실험을 했을 때도 감염성은 없다고 나왔었다. 여기서 살아있는 육체와 신선한 체조직을 사용하면 뭔가 알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성과는 없었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괜찮아.
걱정해서 달려오는 파트리샤에게 대답한 빈우는 워프 비스트의 살점을 밀어 넣었던 부위를 칼로 긁어낸 다음 다시 장갑판을 닫았다. 신경계와 혈류를 다시 연결하자 팔이 다시 움직인다. 하지만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런 썅.
창고 안 여기저기서 변이가 시작되고 있다. 곳곳에 널브러져 있던 사람들이 비틀비틀 일어서기 시작한다. 누워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팀장님. 여긴 슬슬 한계입니다.
밖에서도 좋은 소식은 없다. 워프 비스트들이 몰아닥쳐 B조의 방어선 몇 곳은 이미 근접전을 하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도 인간이 변한 놈들이 있었다.
게이트가 닫혀 워프 비스트의 증원은 없지만, 이렇게 구해야 할 시민들이 적으로 변하는 상황이라면 최악이다.
-부팀장. 퇴각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빈우는 대답을 들으며 또다시 변이한 워프 비스트를 죽였다. 파트리샤와 무인기들도 창고 안에서 변이하는 놈들에게 칼을 꽂아 넣고 있다.
이제 빈우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미 뉴 소노라의 상공에는 40척 이상의 워프 비스트 함선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이유를 모르지만, 놈들이 궤도 엘리베이터를 먼저 노렸기에 이쪽으로만 주력부대가 침공을 시작했고, 그 덕에 수월하게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도시로도 침공이 시작되었다.
정찰로 돌린 무인기의 망원카메라에 뉴 소노라에 곳곳으로 떨어지는 워프 비스트 소형정들이 보인다. 간 보기로 약간씩만 떨어진 것과는 규모가 아예 다르다. 소규모 선발대는 도시 국가의 방어병력으로 어떻게 막아냈겠지. 하지만 이곳 궤도 엘리베이터 터미널처럼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하면 녹색 연맹의 군사력으론 무리다. 실제로 이 도시의 방어병력은 워프 비스트의 기습이 시작되고 한 시간도 안 되어 전멸당했다. 태스크 포스 373의 화력 팀이 지원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침내 빈우는 결단을 내렸다.
-모두 나가. 이곳을 소각한다.
-팀장님?
-무인기 이끌고 어서 나가.
반문하는 파트리샤에게 빈우는 한 번 더 명령했다. 뒤따라 부팀장인 아룹도 물어본다.
-팀장님, 정말이십니까? 그곳의 시민들을 포기하시려고요?
-네. 소각합니다.
냉정한 빈우의 음성에 373 팀원 어느 누구도 대꾸하지 못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방법을 찾아내는 닉스 레벨 3의 요원이, 목숨을 걸고 강하했던 뉴 소노라에서 시민들을 포기한다면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나갑니다.
파트리샤가 무인기들과 나가자 빈우는 소이탄을 준비했다. 이미 창고 안의 사람들은 2/3 이상이 워프 비스트로 변해있었다. 나머지 1/3을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달려드는 워프 비스트와 발버둥 치는 인간들 사이에서 빈우는 소이탄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