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48화 (146/301)

148화

-그게 우리 일 아니냐.

오늘 저녁 디저트는 마카롱이다, 라는 식의 말투에 모니카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헤헤, 지옥으로 꼬라박는 게 저희들 일이죠.

뒤에서 위르겐의 말이 들린다 싶더니 모니카의 부머가 떠밀려 날아간다. 그녀가 자세를 바로잡으려 할 때는 이미 우지의 롱소드가 부머를 낚아챈 다음이었다.

-우지야!

-꽉 잡으십쇼.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주변으로 궤도 엘리베이터의 파편과 조각난 아군 함선, 워프 비스트의 사체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지금 롱소드가 향하는 곳은 태스크 포스 373의 모함인 블랙 랜스다. 그리고 현재 블랙 랜스는 점프 게이트를 향해 날아가는 궤도 엘리베이터 상부를 방어물로 쓰며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꺄아악!

블랙 랜스로 다가갈수록 사방에서 빗발치는 플라스마 포격이 더더욱 거세진다. 행여 닿았다간 인간 따윈 흔적도 없이 증발시킬 공격들에 모니카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워프 비스트들의 포격은 그다지 정확하지 않아, 저 멀리 날아가거나 궤도 엘리베이터에 명중한다. 플라스마에 맞은 궤도 엘리베이터의 표면이 녹아내리지만, 워낙에 거체라 그 정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위님, 준비 하십쇼!

롱소드가 급하게 꺾으며 블랙 랜스의 곁으로 날아가 모니카의 부머를 떨어뜨렸다. 그러자 이번엔 블랙 랜스의 견인빔이 부머를 잡아 격납고 안으로 집어넣었다.

-모니카 대위.

-네넷!

오르 함장의 부름에 모니카는 정신을 다잡으며 일어섰다.

-앞으로 함 내 수리를 도와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모니카는 즉시 격납고의 정비창으로 뛰어가 부머에 각종 정비용 장비들을 장착했다. 함 내 정비와 수리를 담당하는 로봇들이 있지만, 전투가 격렬해지고 길어지면 사람 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일손이 기술 장교인 모니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다.

-궤도 엘리베이터가 게이트에 명중합니다. 중력파가 올지 모르니 모두 주의하십시오.

오르 함장의 경고에 모니카는 화면을 띄워보았다. 아까 자신과 위르겐이 떼어서 날려 보낸 궤도 엘리베이터 상부 부분이 마침내 워프 비스트들이 나오는 점프 게이트로 들어가고 있다. 블랙 랜스는 일찌감치 뒤돌아서 도망가는 상황이다.

-게이트 소멸.

엄청난 질량과 부피의 궤도 엘리베이터가 억지로 비집고 들어오자, 갑작스러운 에너지 부하를 못 견딘 게이트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점프 포인터처럼 별도의 관리시설이 없으면 자연스레 일어나는 현상이다. 마침내 뉴 소노라의 점프 게이트는 작은 중력 붕괴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덤으로 주변에 있던 워프 비스트들도 함께.

-이제 더 이상 워프 비스트들이 나올 일은 없겠지요?

방금의 일은 여러 이론을 빠삭하게 꿰고 있는 모니카도 처음 보는 대형사고다. 그런 만큼 워프 비스트들의 증원은 더 이상 없어야 했다. 이제 달리 게이트를 닫을 방법은 없다.

-글쎄요. 일단 닫기는 했으니, 놈들에게 게이트 생성능력만 없기를 바래야죠.

이어지는 함장 오르의 말에 모니카는 찔끔했다. 미처 그 생각을 못 한 것이다. 놈들이 샤다이와 비슷한 능력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점프 능력 또한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뉴 소노라를 침공한 워프 비스트들은 원래 있던 게이트를 통해서 나왔다. 그리고 게이트의 소유권을 빼앗아갔다. 이것들로 미루어 보아 점프 능력은 없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점프 게이트에 간섭하는 것으로 봐선 게이트에 관련된 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

그에 대해선 모니카가 조금 더 조사를 해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자료도 없고, 상황도 긴박해서 그럴 여유가 없었다. 모니카는 자신일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부머를 몰아 달렸다.

* * *

우지는 코일건의 사격으로 워프 비스트 소형정 하나를 격침시켰다.

-이것들까지는 쉬운데.

우지는 소형정 크기의 워프 비스트 무리가 자신의 공격에 결속력을 잃고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보았다. 이 정도 사이즈의 놈들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지금 뉴 소노라에 나타난 워프 비스트들의 공격 방법은 샤다이와 대단히 유사해 보이는 플라스마 포격이다. 발사구나 가속용 부품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그저 허공에서 플라스마가 생성되어 쏘아진다. 또 그 위력은 연방 구축함의 것에 준하지만 명중률은 샤다이와 엇비슷할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함선들의 방어막이다. 샤다이는 플라스마 공격을 무효화 해버리지, 이놈들처럼 아예 흡수해버리지는 않는다. 또 워프 비스트들은 샤다이 특유의 방어막 반응이 없었고, 물리적 공격에도 아무런 방어력이 없어 미사일과 코일건 사격에 대책 없이 두들겨 맞았다.

덧붙여서 일정 크기 이하의 소형 워프 비스트 함선들은-방금 우지가 격추한 것과 같은 크기의 소형정들은-이런 플라스마 조작 능력이 없었다. 때문에 이 소형 함선급들은 아군의 레이저나 플라스마 공격에 속절없이 당했다. 공격 방식도 단순하기 그지없어서 주변의 민간선박을 보면 접근해 부딪힌 다음, 잘게 나뉘어 안으로 침투하는 게 전부였다.

즉, 손쉬운 먹잇감이란 얘기다.

“너무 많아.”

하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플라스마 사용능력이 있는 대형들만 해도 현재 42척, 소형 함선과 전투기 크기는 백여 척 이상. 이 중 전투기들은 레이저 요격에 빠르게 수가 줄어들고 있다. 조금 큰 소형 함선급은 주변의 민간 함선을 공격하거나, 궤도 엘리베이터로 가거나, 대기권을 강하하려 한다. 그리고 주력 함선급들은 아군 방어함대와 교전 중이다.

-우지 일병. 빠져야겠습니다.

마지막 무인 구축함이 격침당한 후, 블랙 랜스와 롱소드는 전장을 이탈하려 했다. 이제 지상으로 내려간 화력 팀이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워프 비스트들을 상태로 방어전을 펼치게 된다. 만약 지상팀의 작전이 실패로 끝난다면 모함인 블랙 랜스가 이들을 탈출시켜야 하니, 그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발 가르단 하스 때와는 또 다른 양상이군요.

우지는 지금과 상황이 비슷한 그때를 떠올렸다. 당시에도 지상에는 화력 팀이, 궤도 상에선 롱소드와 블랙 랜스가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렇군요. 하지만 이놈들은 속도가 느립니다. 치고 빠지면서 수를 줄이죠.

다만 발 가르단 하스에선 지상팀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지연전을 펼쳤었다면, 지금은 작전이 끝날 때까지-성공하든 실패하든-철저한 게릴라 전을 펼쳐야 할 때다.

-이탈하기 전에 소형 함의 수를 최대한 줄입시다.

-알겠습니다. 함장님.

궤도의 대형 함은 블랙 랜스에 위협적이다. 소형 함들은 지상으로 떨어져 화력 팀의 위협이 된다. 그러니 수를 줄일 수 있을 때 줄여 놓는 게 좋다.

-시간을 끌어주세요.

오르 함장은 장갑 드론으로 주변의 파편을 끌어모아 블랙 랜스의 임시방패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궤도 상으로 들어가는 소형 함들을 레이저로 요격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근접하는 어뢰나 미사일, 전투기들을 목표로 삼는 요격용 무기라 이런 일엔 제격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다른 대형 함들이 모여들며 포를 날린다. 아군 방어함대가 전멸한 이상 뉴 소노라의 궤도엔 블랙 랜스와 롱소드 뿐이라, 지금 엄호를 해줄 아군은 롱소드 뿐이다.

우지는 블랙 랜스에 견인빔을 쏴 고정한 다음 급반전해서 뒤로 날아갔다. 이어 쏟아지는 플라스마 포격을 신들린 기동으로 회피하며 워프 비스트 함선 무리에 접근했다. 대형 함들은 현재 블랙 랜스를 노리는 중이라, 작은 목표인 롱소드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관심을 준다 해도 요격용 무기가 없는 놈들이라 롱소드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올라온다. 올라와.

우지는 롱소드를 향해 날아오는 전투기 크기의 워프 비스트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느린 속도에 근접전만 하는 놈들을 상대로 위험을 느낄 리 없다. 그리고 우지의 목표는 저런 작은 것들이 아니었다. 큼지막한,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대형 함이 그의 사냥감이다.

롱소드가 앞으로 돌출된 대형 함 하나를 목표로 잡고 날아간다. 놈은 이쪽을 아예 보지도 않고 블랙 랜스를 향해 열심히 포격을 쏘고 있었다. 롱소드는 재빨리 날아가, 놈에게 견인빔을 걸고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동축 코일건을 난사했다. 그러자 마치 과일을 깎듯 함선의 겉이 갈려나간다. 마무리로 뻥 뚫린 구멍으로 미사일을 든든하게 쑤셔주자 놈이 반으로 뚝 갈라졌다.

대형 함들은 그제야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그런데 그 방법이란 게 자기들끼리 주포를 맹렬하게 갈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고온의 플라스마 포격이 서로를 때리지만 피해는 전혀 없다. 이런 포격의 폭풍에 휘말리면 롱소드는 뼈도 못 추린다.

-으어억!

예상치도 못한 방어 전술에 식겁한 우지는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그의 할 일은 블랙 랜스가 요격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기에 목적은 달성했다.

-우지 일병, 포위망이 구축되기 전에 빠집시다. 그전에….

블랙 랜스에서 보급물자를 실은 강하 포드가 발사되었다. 치열한 지상전을 벌이고 있는 화력 팀에게 도움이 될 탄약과 배터리들이 실린 포드가 궤도 엘리베이터 터미널이 있는 웨이블로 떨어진다.

-건투를 빕니다.

우지는 지상을 향해 경례를 하곤 블랙 랜스를 따라 후퇴했다.

* * *

히토미는 우주복으로 갈아입고 자신의 방에 대기하고 있었다. 저번에 빈우가 장갑복에 대해 훈련시켜준 덕분에 입는 속도가 예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의원님, 괜찮으신가요?”

어느새 우주복으로 갈아입은 아나스타샤가 히토미의 방으로 찾아왔다.

“으응, 괜찮아. 난.”

그러나 누가 봐도 지금의 히토미는 괜찮지 않아 보인다. 긴장하고 겁에 질린 모습이다. 그런 그녀 옆으로 아나스타샤가 조심스레 다가와 앉았다.

“42 전단에 합류하기 전에 수사만 잠깐 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사건이 터져버렸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태스크 포스 373의 모든 분들은 연방 최고 중의 최고입니다. 이분들이 의원님을 안전하게 지킬 겁니다.”

아나스타샤가 안심시켜주려는 말을 해도 히토미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히토미의 손이 떨리는 게 우주복 너머로도 보일 정도였다. 아나스타샤는 그 위로 부드럽게 손을 올린다.

“라출노그 때와는 많이 다르지요?”

“음? 아, 그렇네.”

라출노그 때는 잽싸게 들어가 기습 공격한 다음, 샤다이 배만 들고 튀는 작전이었다. 끝나고 나서 보안국이 태클을 걸어와서 문제였지, 작전 자체는 이렇게 위험하지 않았다.

히토미는 문득 이번 일과 비슷한 태스크 포스 373의 과거 작전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발 가르단 하스에서의 작전이 이번과 비슷했었지?”

“네, 그렇죠. 헌데 뭐랄까. 그때는 아예 도망을 못 쳤으니까요. 샤다이 함대에 둘러싸여 치고박고 난리도 아니었죠.”

히토미도 자료를 봐서 알고 있다. 그때의 블랙 랜스는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였었다. 함은 엉망진창에 화력 팀 전원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거기다 아버지인 이케가미 의원은 사망했고, 팀장인 빈우도 빈사지경으로 발견됐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죠. 블랙 랜스는 적들을 피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간 팀이 작전을 마칠 때까지만 버티면 되니까요.

“그래, 그렇다면 싸우지 않아도 되는구나.”

히토미는 전투를 피한다는 말에 안심했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히토미가 안심하는 진짜 이유를 눈치챘다. 이제껏 그녀를 시중들었던 안드로이드를 무서워하는 이유를.

“혹시 제가 무서우신 건가요?”

정곡을 찌른 안드로이드의 말에 히토미가 움찔한다. 그 모습을 보며 아나스타샤가 쓰게 웃었다.

“그때 주인님께서 말씀하신 ‘청소’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응.”

비상시에 자신을 죽여야 하는 안드로이드가 옆에서 딱 붙어있는데, 기분이 좋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눈치챈 아나스타샤가 자세를 바로 하며 히토미를 마주 바라봤다.

“의원님, 저는 주인님의 명령에 따라 의원님을 지킬 겁니다. 어떤 위험 속에서도 따라가 구해드릴 거고요. 하지만….”

잠시 말을 끊은 아나스타샤가 결심한 듯 히토미의 손을 꼭 잡았다.

“피할 수 없는 위험이라면…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히토미는 각오를 다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