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지상팀은 재빨리 파편 그늘로 숨었다. 저 위에서 함포 한 방 쏘아지기만 해도 알량한 지상팀은 순식간에 증발한다.
-리퍼 함선이 온다는 데 저건 또 뭐냐고오.
파트리샤가 이를 갈며 전열함을 노려보지만, 그것뿐. 지상 병력이 상공의 함선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 어째 샤다이의 전열함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내려오는데?
빈우 말대로 전열함은 점차 강하하고 있었다. 고도를 낮추며 주변의 건물을 비스킷처럼 부수던 놈은 마침내 지상에 착륙했다. 연방의 함선처럼 어디 안착하거나 고정되지 않고, 균형을 잡고 떠 있는 게 기이해 보인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던 전열함의 옆에서 문이 생기더니 거기서 스팸들이 나왔다. 지상으로 내려선 놈들은 모두 일곱 명. 그중 가운데 한 놈이 앞으로 나서더니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는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른다.
-저 새끼 뭐지?
위르겐은 투덜대면서도 빈우의 지정에 따라 목표를 조준하고 있었다. 지상팀은 명령만 떨어지면 저 스팸들을 날려버릴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팀장님, 놈들이 뭐라고 하는 겁니까?
아룹도 조준을 하면서 질문했다. 굳이 지상까지 내려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샤다이의 연설 내용이라면 궁금할 법도 하다.
태스크 포스 373은 수많은 샤다이 자료를 수집했지만, 아직 번역기의 제작은 시작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지금, 팀 내에서 샤다이어를 할 수 있는 것은 빈우 정도다.
-흐음. 인사하는데? 만나서 반갑다고, 기쁘다고. 계단을 내려온 자들에게.
-반갑다고요? 워프 비스트들이?
의외의 대답에 파트리샤가 반문한다. 워프 비스트는 샤다이에 의해 다른 종족이 변이한 생체병기로 알고 있는데, 뜬금없이 인사를 한다니 의아한 것이다.
-뭐 그렇다는데.
실제로 듣고 번역해 준 빈우도 알쏭달쏭하다. 저놈들이 저렇게 무기를 좋아했나 싶은 것이다. 그때 시가지에서 워프 비스트들이 슬슬 기어 나왔다. 그러더니 스팸들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샤다이들이 팔을 벌려 워프 비스트들을 맞이한다. 마치 친구들을 만나는 것 같다.
-얼씨구, 감격의 상봉이네.
위르겐이 그 광경을 악마의 똥구멍으로 보며 이죽거린다. 기괴하게 얽힌 워프 비스트들이 달려오는 데도 샤다이들은 헬멧을 벗고 미소 지으며 맞이한다. 하긴 아군 병기이니 위험하지는 않겠지.
‘헌데 인간이나 외계종족이 변한 워프 비스트를 왜 저렇게 대하지? 변이했기에 아군처럼 대하는 것인가?’
그런 의문은 빈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병기 같아 보이진 않는데요? 마치, 가족을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만….
아룹 역시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타 종족을 변이시키는 무기치고는 꽤 대접이 좋아 보인다.
마침내 둘의 사이는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고, 샤다이 놈들은 워프 비스트들을 맞이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워프 비스트들은 팔을 벌린 샤다이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물어뜯었다. 워프 비스트가 맨 앞의, 헬멧을 벗은 샤다이의 얼굴을 씹어 먹은 것이다. 물린 놈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얼굴 앞이 완전히 날아갔으니 당연히 못 하겠지.
뒤따라 들이닥친 워프 비스트 무리가 스팸들을 둘러싸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뭔….
빈우는 기막혀하며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있었다. 워프 비스트를 맞이하려던 샤다이들이 놈들에게 둘러싸여 공격받는 광경은 의외의 구경거리였다.
헬멧을 벗은 놈들은 처음부터 머리가 날아갔고, 다른 놈들은 사방에서 붙들려 이빨과 발톱에 당하고 있었다.
샤다이들은 어떻게든 대응해보려 했다. 하지만 시즐러를 들고도 쏘질 못했고, 클레이모어를 든 채 머뭇거릴 때, 사방에서 달려든 놈들이 할퀴고 물어뜯었다.
스팸은 명색이 장갑복이라 그나마 버티고는 있지만, 잠시 후 번뜩이던 푸른 섬광이 사라졌다. 방어막이 뚫린 것이다. 그때부터 장갑에 공격이 직접 닿기 시작했다.
-아이쿠야.
파트리샤의 나직한 감탄사. 푸른 피와 함께 샤다이 한 놈의 목이 뽑혀 허공으로 날았다. 그리고 그때, 전열함의 문에서 스팸 하나가 시즐러를 들고 나왔다. 놈은 뭐라고 경고를 하는 모양인데, 워프 비스트들은 개무시하고 전열함을 달려 올라간다.
샤다이는 들고 있던 시즐러를 한두 발 정도 쐈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함체를 타고 올라간 워프 비스트 두셋이 덮쳐들자 바로 뒤로 자빠졌다. 그 뒤를 이어 사방에서 몰려든 워프 비스트들이 전열함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워프 비스트가 통제를 벗어난 것일까요?
아룹의 말은 그럭저럭 설득력이 있었다. 다른 종족을 변이시키는 무기를 쓰고, 후발대로 와 날름 삼키려 했다. 그런데 어머? 선발대가 오히려 이쪽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꽤나 그럴싸하다.
-그렇다면 잘 된 거 아닙니까?
위르겐은 자기 도끼질에 자기 발목을 날려버린 샤다이의 꼴을 보고 신나서 키득거렸다. 더러운 수작을 써서 침공하러 왔다가 오히려 자기가 당했으니 고소할 것이다.
하지만 빈우는 마냥 좋아할 순 없었다.
-글쎄다. 워프 비스트가 좆같긴 하다만, 통제가 안 되는 병기는 진짜 개좆같지.
그때 전열함이 불쑥 떠올랐다. 아무런 추진도 없이 날아오른 전열함은 계속해서 고도를 높인다.
-도망가나 보네?
파트리샤가 어이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놈들은 제대로 된 구출은 하지도 않고 배에 탄 채 도망가고 있었다. 하긴 지상의 샤다이들은 이미 푸른색 피떡이 되어 워프 비스트들에게 씹히고 있으니, 구출에 의미가 없긴 하다.
전열함은 더 이상 뉴 소노라엔 볼일이 없다는 듯 계속 고도를 높여 대기권을 탈출했다. 그리고 중력권을 벗어나자마자 사방에서 달려든 워프 비스트 함선의 공격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기습이라 그런지 아니면 승무원들이 정신을 못 차렸는지, 전열함은 제대로 된 대응도 못 하고 소형 워프 비스트 함선들에게 접근을 허용해 버렸다.
-소형 워프 비스트 함선들이 들어가려 하는데… 장갑을 못 부수네요?
위르겐이 자신의 장거리 망원 카메라로 보는 영상을 팀원들에게 공유해 줬다.
-어, 큰놈이 갖다 박습니다.
위르겐의 중계대로 대형 워프 비스트 함선이 샤다이 전열함의 옆구리를 들이받았고, 그렇게 부숴진 틈으로 워프 비스트들이 물밀듯 들어갔다.
-팀장님, 설명 좀.
파트리샤가 빈우를 보며 말했지만, 빈우도 대답이 궁하다. 뭘 알아야 대답을 하지.
-개판이네.
빈우의 시선은 아까 샤다이들이 처음 공격받은 곳으로 향해 있었다. 거기엔 스팸과 샤다이들의 조각이 땅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워프 비스트들은 그것들을 맹렬하게 짓밟고 있었다. 장갑복의 팔을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고, 푸른 피로 물든 땅을 손톱으로 할퀸다.
인간을 공격했을 때는 하지 않았던 행동들이다.
-저거 혹시… 자신을 변형시킨 샤다이에 대한 복수일까요?
이번엔 파트리샤의 가설이다. 이 역시 제법 그럴싸하게 들린다. 워프 비스트들의 행동에는 누가 봐도 샤다이를 향한 분노가 느껴졌다.
-오, 누님. 그거 좀 그럴듯합니다. 부팀장님 의견하고 조합하면 시나리오가 나오는데요?
-위르겐.
-옙, 팀장님. 팀장님 의견은 어떠-
팀장의 부름에 위르겐이 신나서 대답하지만, 빈우가 부른 이유는 달리 있었다.
-여기 확대해.
-알겠습니다.
빈우의 무시에 풀이 죽은 위르겐이 망원 카메라의 초점을 옮겼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에 대한 솔직한 감상을 말하려고 입술을 뗐다.
-위르겐, 너 이 새끼 지금 씨발이라 하려고 했지?
-…맞습니다 팀장님.
위르겐은 자신이 찾아낸 것을 다시 팀원들에게 공유했다. 그걸 본 아룹이 조용히 중얼거린다.
-리퍼함 세 척. 그놈들이군요.
아까 블랙 랜스가 점프 반응으로 찾아냈다던 리퍼함 세 척이 벌써 뉴 소노라의 대기권 근처까지 접근해 온 것이다.
놈들은 거기서 다시 나뉘었다. 두 척은 갈라져 궤도 엘리베이터 주변에 있던 워프 비스트들과 전투를 시작했고, 나머지 한 척은 다시 이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워프 비스트와 리퍼 간의 함대전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서로 주 무기인 플라스마가 통하지 않는 상대다 보니 유효타가 잘 나지 않았고, 소형함들만 고래 싸움에 등이 터져 녹아나고 있었다.
-시발 오늘 무슨 날이냐.
빈우는 또다시 자신들의 머리 위로 내려오는 리퍼함을 보며 이를 갈았다. 적함 밑에 깔리는 더러운 기분을 짧은 시간에 두 번이나 겪는 것이다.
리퍼함은 아까 전열함이 착함한 자리 근처에 내려왔다. 그리고 문이 열리더니 리퍼들이 튀어나왔다. 밖으로 나온 리퍼들의 행동은 아까의 스팸들과는 전혀 달랐다. 놈들은 워프 비스트들을 인정사정없이 도륙 내기 시작했다. 시즐러에서 발사된 플라스마에 워프 비스트들이 녹아 사라지고, 이글거리는 클레이모어의 칼날이 놈들을 토막 냈다.
-이야, 저 새끼들. 그때 그놈들 아니에요?
파트리샤가 그 광경을 보며 혀를 차며 말했다. 지상으로 내려온 리퍼의 수는 모두 열하나. 그중 열 명은 어깨 장갑에 문양이 있었다. 발 가르단 하스에서 태스크 포스 373 팀원들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킨 리퍼의 어깨에 있는 것과 같은 문양이다.
-동일인이 아니더라도… 같은 부대 소속이면 실력도 비슷하겠군.
빈우의 말에 팀원들은 긴장했지만, 겁먹지는 않았다. 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샤다이의 공격력은 연방의 방어기술을 확연하게 뛰어넘는다. 그래서 기습을 당할 경우, 연방 측은 아무런 대처도 못 하고 당하게 된다. 때문에 발 가르단 하스에서 리퍼의 기습에 위르겐과 파트리샤, 모니카가 당했던 것이다.
워프 비스트들은 계속해서 몰려들었고, 리퍼들은 그에 맞서 계속 싸웠다. 태스크 포스 373이 지상에서 전투를 하며 워프 비스트들의 숫자를 제법 줄였지만 그래도 많았다.
하지만 리퍼들의 화력은 압도적이다. 저들이 기본으로 사용하는 시즐러는 연방의 주력 전차포와 맞먹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것이 열한 개나 있으니, 조금 강력한 보병전력에 불과한 워프 비스트들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잠시 후, 전투는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근처에 있는 워프 비스트들은 전멸당했는지 더 이상 달려올 기색이 없었다. 그때 어깨에 문양이 없는 리퍼 하나가 전장 한가운데를 걸어갔다. 장갑복 너머로도 지친 기색이 확연하다. 놈은 땅바닥의 시신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자신의 헬멧을 벗었다.
그 안의 얼굴은 빈우가 아는 얼굴이었다.
-알탄훼아나.
빈우의 혼잣말에 팀원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다.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생포했다가 탈출한 샤다이 여성. 그리고 발 가르단 하스에서도 태스크 포스 373과 마주쳤으며, 최근 디안머 항성계에선 비홀더 전대의 이 전대장이 그녀를 찾았었다.
알탄훼아나의 표정엔 슬픔이 가득했다. 샤댜이와 인간은 아예 다른 종족임에도 서로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고, 또 유사한 감정과 표현력을 가지도 있다니 참 희한한 일이다.
어쨌든 알탄훼아나는 바닥에 떨어진 시신을 주워들었다. 워프 비스트의 잘린 머리다. 그녀는 고열에 눌어붙은 괴수의 머리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에 떠오른 것은 명백한 분노와 슬픔이었다.
이어서 그녀는 바닥에서 다른 것을 발견했다. 아까 죽임을 당한 스팸의 갑옷이다. 알탄훼아나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그 가슴 갑옷을 만졌다. 그리고 무어라고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팀장님?
파트리샤의 요청에 빈우는 다시 번역해 준다.
-어리석은 자에 대해 후회하고 있어. 자신이 좀 더 말렸어야 했다고 한다. 왜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냐고 비난도 하는데….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아까의 스팸과 지금의 리퍼는 다른 파벌 같아 보였다.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소규모 도시국가로 전락한 오늘날의 샤다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알탄훼아나의 눈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빈우는 그것이 마치 눈물 같다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영문 모를 일이다.
그러나 빈우에겐 궁금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스팸들은 왜 워프 비스트들에게 호의적이었을까, 그리고 왜 죽임을 당했을까, 리퍼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빈우의 머릿속에서 다시금 의문의 퍼즐들이 생겨난다.
‘워프 비스트는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또 하나.’
빈우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가장 뒤쪽에 심어놨던 퍼즐 조각 하나를 꺼내 들었다.
‘왜 그날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그녀는 피에르 라캉을 죽였을까.’
이에 대해 빈우는 몇 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빈우가 봤을 때 라캉 중령은 편안한 얼굴로 죽어있었다. 당시엔 그저 압도적인 전력 차에 싸움을 포기한 것이라 추측했었다. 아내와 아들의 죽음이 거의 확실했으니 그랬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모은 사실로 보자면 다른 무언가가 있으리라 추측된다. 퍼즐의 조각 하나. 톱니바퀴 하나가 비어 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을 찾을 수 있다.
빈우는 결심했다.
-부팀장, 저쪽과 접촉해 보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위험합니다.
팀원들이 소란스러워하는 게 들린다. 열 한 명의 리퍼라면 현재의 전력으로는 꽤 위험하다. 하지만 빈우는 일어섰다.
-네, 엄호해 주세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