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53화 (151/301)

153화

“그건 차차 이야기해 주지. 먼저 이 이야기부터 마무리 짓고.”

그녀가 이런 중요한 대목에서 말을 돌리는 이유는 뻔하다. 그것은 지금은 말할 수 없는 막중한 것이란 의미다. 아니면 빈우가 오르틀랑을 대접받지 못해 생긴 ‘선’ 너머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빈우의 눈을 피한 알탄훼아나의 시선이 푸른 피로 젖은 스팸의 갑옷으로 향한다.

“어쨌든 보다시피 이런 괴물이라도 선조로 섬기려는 어리석은 부류들 또한 있다.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 자들이지. 그들은 다시 선조를 내려오게 해 종족의 번영을 꾀하려 한다. 흥, 어리석긴. 멸망이 다가온 우주에서 뭘 하겠단 말인가! 그 결과를 보라.”

그녀가 부르짖은 결과란 바닥에 깔린 푸른색 살점들이다.

“섬기던 이들에게 도륙당한 이 모습을! 실패한 선조들에게 이성은 없다. 다만 온전한 육체를 가진 후손들을 보면 맹렬한 질투심에 사로잡힐 뿐이지. 가지고 싶지만, 결코 빼앗을 수 없는 몸을 가진 후손들을 말이야.”

알탄훼아나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갑옷을 향해 워프 비스트의 사체를 집어던졌다. 빈우는 선조와 후손의 찰진 랑데부를 보며 질문했다.

“선조들은 후손의 몸에 들어올 수 없나? 왜 굳이 다른 종족의 몸을 쓰는 거지?”

이번에는 알탄훼아나가 선선히 대답했다. 아마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겠지.

“애초에 우린 계단을 쓰지 않고도 우주를 여행할 수 있으니 그들과 마주칠 일이 없지. 행여 계단으로 들어간다 해도 우린 선조에게 적셔지지 않아. 우매한 저쪽 분파에서 여러 가지 시험을 해봤지만 살아있는 몸에도, 죽어있는 몸에도 계단을 내려온 자들은 오지 못했다. 오직 다른 종족의 몸에만 계단이 만들어졌어.”

아이러니하다. 고대의 샤다이들은 육신을 버리고 승천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돌아오려니 몸은 없고, 동족의 육체에 깃들 수도 없다. 가능한 것은 그들이 하등종족이라 부르는 뒤따르는 자들뿐.

“그러다가 너희들의 시간으로 백여 년 전. 너희, 으음, 그대의 종족들마저 계단을, 점프 게이트를 발견하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차 젖어가야 했지만, 그대들의 황제는 이것을 막았다.”

“어떻게?”

낮지만 위압감 있는 빈우의 목소리에 알탄훼아나는 움찔했다. 그 모습에 빈우는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반응을 겉으로 드러내다니, 라면서.

“그건 나도 모른다. 오히려 내가 피에르 라캉에게 물어보았지만, 그 역시 이 방법에 대해서 조사 중이었다.”

말할 수 없다, 가 아닌 것을 보면 딱히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데 보안국 소속이었던 라캉 중령이 어떻게 알탄훼아나와 연이 닿았을까. 아마 여러 방면으로 수사를 하다가 알아냈을 것이다. 과거 그는 빈우와 울토르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그렇다면 빈우가 클론으로 잠수했을 동안 일어난 일이리라.

“아무튼 너희 선조들이 우리 인류에겐 성공적으로 내려왔단 말이지?”

빈우의 질문에 알탄훼아나는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그래. 이 불쌍한 선조들은 계단으로 들어온 너희 유에네스의 몸을 빼앗으려 했었고, 처음엔 나름 순조로웠다고 한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채 계단을 내려와 자신의 정보로 너희 종족을 적셨지. 하지만 그대들의 황제가 이 사실을 깨닫고 대책을 세웠다고 한다. 정확히는 몰라도 아마 계단에 무슨 조치를 취한 것 같은데, 아무튼 그 때문에 더 이상 선조들이 내려올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대들 황제의 치세는 짧았지.”

빈우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지구 제국의 치세는 24년밖에 되지 않았다. 제국은 2100년에 탄생했으나 폭풍 같은 발전 후 황제는 갑자기 사라졌고, 2124년에 연방이 설립되었다.

알탄훼아나는 주변들 두리번거리며 새로운 워프 비스트의 사체를 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빈우에게 보여준다.

“이것은 알아보겠지?”

그녀가 보여준 것은 인간이 변한 워프 비스트의 사체다.

“그대들 유에네스에 온전히 내려온 선조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거기다 황제의 방비로 다시금 뒤틀려서 내려오게 되자 동족들에겐 분란이 일었지.”

“분란이라고? 너희들도 동족끼리 다투는가?”

여기서 빈우는 알탄훼아나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한번 슬쩍 떠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약간 머뭇거리면서도 대답을 해주었다.

“우리는 예전부터, 그러니까 선조들이 떠난 이후부터 분열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통일된 의견 없이 개인이 따르는 가문의 이름 하에 움직이지. 때문에 계단을 내려오는 자들에 대해서도 크게는 선조들의 귀환을 환영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로 나뉜다.”

이쯤에서 한번 말을 멈추는 게, 지금 말하는 내용이 과연 해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망설임처럼 보인다. 알탄훼아나는 인상을 찡그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는 반대하는 쪽의 세력이 컸었다. 보다시피 저렇게 선조들이 뒤틀려 내려오는 데 누가 좋아하겠나. 하지만 유에네스를 통해 제대로 내려온 선조들을 보자, 귀환 찬성파의 세력이 갑자기 늘었지.”

샤다이의 세력이 분열됐다는 얘기는 반가운 얘기지만, 찬성파의 세력이 늘었다고 하니 빈우는 기분이 꿀꿀해진다.

“그래서 방금과도 같은 일이 생긴 것이군. 조상님들에게 찢겨 죽은 놈들은 귀환 찬성파, 그리고 조상들을 불태운 너희들은 반대파란 말이지?”

비꼬는 빈우의 말에 이들이 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선조들과의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닌 듯했다.

“맞다. 파벌은 그 밑으로도 세세하게 갈린다. 몇몇은 계단을 쓰는 그대의 종족을 불손하다 보고 공격했고, 또 몇몇은 선조들을 내려오는 것을 돕기 위해 그대의 종족을 공격했다. 그리고 우리 가문은….”

그러나 더 이상 대화하기 힘들 것 같았다. 빈우의 안구로 몰래 광통신이 들어오고 있다. 아룹이 워프 비스트들의 접근을 발견한 것이다.

“알탄훼아나,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해야겠는데.”

“뭐? 무슨 속셈이냐?”

경계의 눈빛을 보내던 알탄훼아나는 저 멀리서 워프 비스트들이 몰려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헬멧을 썼다. 그 뒤에 서 있던 리퍼들 역시 임전 태세를 갖춘다.

“그렇군. 알겠다.”

빈우는 다시 통신을 연결해서 화력팀에 명령을 내렸다.

-373, 접근하는 워프 비스트를 모조리 쓸어버려.

화력팀의 두뇌 통신으로 다시 전의가 감돈다.

-리퍼들은 어떻게 할까요?

아룹의 질문에 빈우는 알탄훼아나와 리퍼들을 쳐다보았다. 그 잠깐의 순간, 373 팀원들은 긴장했다. 이 양반이라면 이 혼란을 틈타 충분히 뒤통수를 때리고도 남을 인간인 것이다.

-당분간 임시동맹이다.

-저쪽은 우리를 동맹이라고 생각할까요?

373팀 중에서 리퍼에게 가장 험한 꼴을 본 위르겐이 투덜거렸다.

-우리와 같겠지. 대화가 끝날 때까지는.

-근거라도 있나요?

지적한 것은 파트리샤였다. 알탄훼아나는 몇 번이고 접촉이 있었던 샤다이지만 기본적으로 적이다. 우호적인 반응을 기대하기는 힘든 것이다. 하지만 빈우의 생각은 달랐다.

-너무 친절해.

그 말에 파트리샤를 비롯한 373 팀원들은 의아해했다.

-너무 자세히 잘 가르쳐 주더라고. 내가 피에르 라캉의 동료라 해도 이렇게까지 해줄 필요가 있었을까? 아니면 설마 라캉 중령과 모종의 협약이 되어 있을까?

팀원들은 빈우와 샤다이 간의 대화를 듣지 못했지만, 빈우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그제서야 팀원들은 팀장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쪽도 뭔가 바라는 것이 있군요.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니까. 미끼일 수도 있고. 서로 이용하는 거야.

그다음 빈우는 샤다이 쪽을 돌아보았다. 그들도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알탄훼아나, 나중에 보자.”

그리고 빈우는 점프젯을 써서 파트리샤 쪽으로 합류하기 위해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본 샤다이 중 하나가 알탄훼아나에게 다가온다.

“호민관. 저들은 어쩌실 겁니까?”

호위병의 물음에 알탄훼하나는 잠시 생각했다. 다시 한번 호위병이 대답을 보챈다.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것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한 게, 방금 그들의 호민관인 알탄훼아나는 적들이 물어보지도 않은 것조차도 미주알고주알 자세히 풀어냈던 것이다. 자신의 종족과 선조에 대한 것들까지도. 하지만 그녀는 호위병들의 우려에 미소로 대답했다.

“후후. 그는 나에게서 몇 번인가 선택의 잔상을 보았고, 나 또한 그에게서 선택의 메아리를 들었습니다. 피차 서로의 계획에서 중대한 인물이란 뜻이죠.”

“아하, 그렇다면.”

“네, 떨어트리기 위해선 먼저 들어올려야 하죠. 제게서 알아낸 사실들로 그가 어떻게 움직일지 매우 기대됩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나 역시 그에게서 물어볼 것이 있기도 하지요. 그러니 때가 될 때까지 공격하지 마세요. 물론 그의 부하들도. 대단히 위험하단 것을 알고 있겠죠, 펠훼단.”

“물론입니다.”

말을 건 호위병들의 수장, 펠훼단은 발 가르단 하스에서 싸웠던 유에네스들의 정예병들을 기억한다. 전투복의 차이로 운 좋게 이기긴 했지만 다시 싸운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때 다른 젊은 호위병이 끼어들었다.

“흥, 부하들 따윈 저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습니다. 고작해야 일상복 아닙니까?”

근거 없는 자신감에 유에네스와 싸워본 경험이 있는 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심하단 기색을 비쳤다. 그리고 부끄러움은 스승의 몫이었다.

“어린 것아, 닥쳐라. 빈우라 불린 저자는 혼자서 우리 모두를 죽일 수 있다.”

자신의 일갈에 움츠러든 제자를 보며 펠훼단은 호민관의 옆에 섰다.

“호민관. 계단에서 내려온 자들이 곧 들이닥칩니다.”

“그럼 맞서 싸워야죠.”

알탄훼아나 검을 들었다. 그녀의 부탁에 이곳의 별이 자신의 불길을 나눠준다. 이어 함성을 지르며 부하들을 이끌고 앞으로 달렸다.

“타락한 선조들이여. 이곳은 우리 터전이다!”

그에 맞서 계단을 내려온 자들의 외침이 마음속으로 들려온다.

-무서워무섭다싫어고통어두워아파괴로워.

-밉다미워증오돌아간다비켜라몸을다오죽어라.

도대체 계단을 올라간 선조들은 거기서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 때문에 저렇게 미쳐버려 뒤따라오는 자들의 육신을 빼앗으려는 것일까.

그때 유에네스들의 공격음이 들린다. 역시나 공격은 이쪽이 아닌 계단을 내려온 자들을 향하고 있었다. 어찌저찌 불편한 협력 관계가 이뤄진 듯하다.

과거 종족의 번영을 위해 계단에 손을 댔던 종족의 말로가 샤다이들의 앞으로 달려온다. 호위병들이 창을 쏴 그들을 태우고, 알탄훼아나는 검을 휘둘러 놈들을 녹인다.

치열한 싸움 속에서 문득 그녀는 빌어먹을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자, 보세요. 알탄훼아나. 어떻게 하면 선조들이 내려오기 쉬운지. 간단합니다. 마지막 계단이 생길 기미가 보이는 마음에 상처를 내면 되는 일이에요. 그러면 한층 적셔지기 쉬워지고, 선조들은 온전히 그들의 몸을 차지할 수 있답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죠?’

‘충격과 고통을 줘야 하지요. 몸과 마음 둘 다. 예를 들자면 육친의 사망이나 사고 같은 것이 있지요. 거기서 일어난 슬픔과 공포로 마음에 틈이 생기면, 선조들은 거기에 계단을 심는답니다. 또 달리 이런 감정을 주기 쉬운 행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싸움?’

‘그래요, 싸움. 싸움입니다. 그것도 크면 클수록 좋지요. 유에네스의 단어로는 전쟁이라고 하던가요? 뒤따라오던 자들 주제에 제법 가르침을 주더군요.’

그러면서 뒈졌으면 하는 남자는 고개를 계단을 내려온 선조에게 향했다. 유에네스의 몸을 차지한 선조를.

‘곤란하군요. 뒤따라오는 자의 몸을 차지한 부작용일까요? 별 심장의 불길을 다루지 못하네요.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지도요. 그럼 후손으로서 도와주는 게 예의겠지요.’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별 심장의 불길을 불러 유에네스의 몸을 지졌다. 불쾌한 냄새와 비명이 일고, 선조의 증오가 머릿속을 울린다.

생명이 스러져가는 광경에 미소 짓는 아버지를 떠올린 알탄훼아나는 구역질이 이는 걸 느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렸다. 눈앞에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유에네스들에게.

그들은 각자 저마다 계단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굳건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지만 위태위태하다. 언제 계단이 완성되고 선조들이 내려와도 이상할 것이 없다.

“호민관!”

호위병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알탄훼아나는 검을 다시 움직였다. 가까이 다가온 선조가 후손의 손에 죽었다.

“집중하십시오. 적들이 더 몰려옵니다.”

“알겠어요.”

대답했던 알탄훼아나의 손은 움직이려다가 다시 멈추었다.

“알탄훼아나!”

펠훼단이 날아와 그녀를 지킨다.

“정신 차리십시오. 싸움 중입니다.”

스승이자 호위병인 그는 숙련된 솜씨로 워프 비스트들을 도륙 냈다. 그러나 갑자기 알탄훼아나가 그의 팔을 잡더니 경고를 했다.

“펠훼단, 도망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닫혔던 이쪽 계단이 열리고 있어요.”

호민관인 그녀가 한 말이라면 그럴 것이다. 유에네스가 닫았던 계단이 다시 열린다면 거기서 무엇이 나오던 적일 가능성이 높다.

“선조들입니까?”

“아니요, 이 방법은… 유에네스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