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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54화 (152/301)

154화

위르겐은 다가오는 워프 비스트들을 향해 사격을 퍼부었다. 방금 보급 받은 덕에 미사일과 로켓을 아낌없이 발사할 수 있었다. 폭발과 화염이 달려오는 워프 비스트들을 휩쓸었고, 나머지 새어나오는 것들은 무인기들이 처리한다.

-뒤쪽 백화점 옥상으로 이동한다.

아룹이 후퇴명령을 내리자 무인기들이 점프젯을 써 뒤로 도약했다. 그리고 위르겐은 소이탄을 발사해 길을 막은 다음 아룹을 따라 백화점 옥상으로 날아갔다. 워프 비스트들은 접근전밖에 못 하기에, 고지대를 잡고 총알만 뿌리면 손쉽게 잡을 수 있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끝도 없이 몰려드네.

위르겐은 다른 블록에서 몰려든 워프 비스트들을 보며 혀를 찼다. 다행히 궤도 상에서 리퍼 함선들이 워프 비스트들과 싸워주는 덕분에, 궤도 엘리베이터를 통해 내려오는 적들은 끊겼지만 아직도 지상에는 수가 많았다.

아룹의 B조가 후퇴하자 빈우의 A조가 나섰다. 위르겐이 뿌린 화염에 막혀 허둥대던 워프 비스트들의 옆으로, 관통으로 설정된 탄두들이 날아가 한꺼번에 두셋을 동시에 꿰뚫는다.

-어이쿠, 이쪽 보네요.

파트리샤가 가리킨 곳에 한 무리의 워프 비스트들이 나타났다. 후열에 있던 놈들이 방향을 바꿔 가까운 A조 쪽으로 달려온다.

-땅에는 샤다이들이 있으니 우린 옥상에서 뜀뛰기나 하자.

373의 A조와 B조는 서로 거리를 벌렸다 좁혔다 하면서 교차된 화망으로 지상의 적들을 갈아버렸다. 지금까진 궤도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놈들이나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서 아래로 내려가야 했지만, 샤다이들이 밑에서 싸워주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샤다이들이 편하긴 편하네요. 게이트 없이도 폴짝폴짝 점프하는 것을 보니.

파트리샤가 날아오르며 투덜댄다. 그녀의 말대로 샤다이들은 게이트 없이 점프하며, 이것은 게이트를 쓰는 인류의 점프와는 다르다. 더구나 점프 게이트에 대한 내막을 들은 빈우는 두 가지의 차이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물론 연방의 순양함이나 게이트 지원함도 자체적으로 점프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건 목적지에 게이트가 있을 경우에만 가능한 단방향 점프이고, 간이 게이트를 만드는 데만도 10시간 이상 걸린다. 더구나 지금의 뉴 소노라처럼 게이트가 아예 사라진 경우에는 도착지에 게이트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건 족히 4~50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조금만 버텨라. 곧 아군이 올 거다.

-곧 언제요?

빈우의 격려에 파트리샤는 헛웃음 치며 질문한다.

-한 30시간?

-네에, 그렇겠죠. 곧 오네요. 씨바랄.

그녀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지만, 점프 게이트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빈우는 마냥 빨리 오라고 닦달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인류는 점프를 하면 할수록 워프 비스트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나마 못 믿을 아군이라도 생겨서 다행입니다.

아룹의 말대로다. 지금까지 연방에게 적의 적은 그냥 새로운 적이었지만, 쓰기에 따라 얼마든지 아군이 될 수도 있다. 현재 알탄훼아나의 병력은 지상에서 고기 방패를 해주고 있으며, 궤도 상의 리퍼 전투함들은 우주전을 통해 궤도 엘리베이터로부터의 워프 비스트 증원을 막아주고 있었다.

문제는 이번 전투가 끝나면 어떻게 되느냐다. 지상 병력을 빼도 저쪽은 리퍼 전투함 세 척이고, 이쪽은 개조 구축함 한 척에 전투기 한 기다. 아차 하는 사이에 쓸려나갈 전력 차이다.

그런데.

-어랍쇼?

궤도 엘리베이터를 보고 있는 빈우의 눈에 불길한 게 잡혔다. 샤다이 특유의 점프 반응이다.

-궤도 상에 점프! 샤다이다.

빈우의 경고와 함께 전열함 두 척과 모니터함 다섯 척이 점프해 들어왔다. 함체에 워프 비스트 함선을 여기저기 쑤셔 박은 채.

-…저 새끼들 뭐하냐?

허탈해하는 빈우의 질문에 금세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합체?

위르겐의 이번 대답은 그다지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것보단 워프 비스트들한테 공격받는 것 같습니다만.

어이없어하는 아룹의 대꾸가 그나마 그럴듯해 보인다. 방금 뉴 소노라의 궤도에 나타난 샤다이 함선들은, 저마다 두 세척의 워프 비스트 함선에게 잡아먹힌 상태로 점프해온 것이다.

그쪽으로 알탄훼아나가 이끄는 리퍼 전투함의 공격이 쏟아졌다. 이 리퍼 전투함은 플라스마 외에도 다른 무기들을 발사해, 같은 샤다이와 워프 비스트들에게 유효한 피해를 주고 있었다.

-같은 샤다이 끼리 전투라, 진귀하네요.

파트리샤의 솔직한 감상이다.

-진짜 뭐 하자는 거냐, 저 새끼들.

툴툴거리며 아래를 본 빈우의 눈에 자기들끼리 뭐라고 하는 알탄훼아나 파벌이 보인다. 아까 그녀의 말에 의하면 샤다이도 여러 분파로 나뉘어 있다고 했다. 방금 워프 비스트들에게 죽은 샤다이는 귀환 찬성파이고, 알탄훼아나 측은 반대파라고 했다. 그렇다면 저 위에서 워프 비스트와 알탄훼아나 파벌에게 공격받고 있는 샤다이는 높은 확률로 찬성파이리라.

-부팀장 이거 보이십니까?

빈우는 자신이 눈여겨보던 장면을 아룹에게 공유해 주었다. 이번에 나타난 샤다이 함선 곳곳에 난 손상 부위들이다. 마치 잘려나간 듯 소멸한 피격 부위와 녹아내린 장갑들은 자신이 어떤 무기에 당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네, 반물질 병기에 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이 알기로 저런 반응이 나오는 무기는 반물질밖에 없다. 그리고 373 팀원들은 반물질로 기막히게 요리를 잘하는 집 또한 알고 있다.

-팀장님, 들리십니까?

갑자기 우지의 롱소드로부터 연락이 들어온다.

-그래. 회선이 회복된 모양이군.

-네, 리퍼 함선들이 대형함들을 격침시키고 나서부터 통신이 가능해진 듯합니다. 근데 저것들 왜 싸운답니까?

현재 블랙 랜스는 리퍼 함선을 피해 사거리 바깥 멀리서 기웃거리고 있고, 롱소드만 통신과 보급을 위해 웨이블의 상공을 오가고 있었다.

-마침 잘됐다. 함장님께 연락해. 증원으로 온 리퍼 함선은 공격하지 않는 이상 먼저 공격하지 말라고. 현재 임시로 협동전선을 펴고 있다.

-예? 협동입니까? 알겠습니다. 이번에 나타난 샤다이는 어떻게 할까요?

-할 수 있으면 조져야지.

그때 빈우는 뭔가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머릿속에서 뭔가 차오르는 기분이다. 워프 비스트들이 쳐들어왔을 때 정체 모를 상실감을 느꼈다면, 지금은 까닭 모를 유대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팀원들 때문은 아니었다. 뭔가 다른 이유였다.

짐작 가는 바가 있어, 빈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 위를 보았다. 그리고 장갑복의 시야를 최대한 확대했다.

-…점프 게이트가 열린다.

빈우의 말에 팀원들도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어서 탄성을 질렀다.

-워후! 왔구나, 왔어.

마침내 뉴 소노라에 점프 게이트가 생성되며 연방의 함선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점프해온 함선들은 신형 헤라클레스급 순양함 5척. 아직 통신이 연결되지 않았지만, 함선에 적힌 마크로 보아 소속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크는 단순히 숫자로만 되어있었다. 그런 마크를 쓰는 함대는 연방에 단 하나뿐이다.

-42 전단이다.

곤란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 뉴 소노라에 도착한 것이다.

빈우는 서둘러 42 전단과 통신을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만약 42 전단이 리퍼 쪽을 공격한다면 알탄훼아나 측과의 관계가 애매해지고, 이후의 대화도 물 건너가게 되기 때문이다.

‘아군 전력이 확실하다면 아예 포로로 잡는 게 마음 편하긴 하지만.’

빈우의 이런 생각이 딱히 틀린 것은 아닌 게, 샤다이는 지금까지 인류를 닥치고 공격하는 종족이었다. 오히려 발 가르단 하스에서 벌어졌던 사건과 오늘의 일이 상당히 이례적인 축에 속했다. 상대와의 안전한 대화를 바라는 게 욕먹을 짓은 아니다.

허나 리퍼 함선 세 척에 순양함 다섯 척이면 이쪽도 제법 피해를 입어야 한다. 그래서 빈우는 어떻게든 통신을 연결해 중재를 시도하려 했다.

바로 그때, 빈우의 A조가 있는 건물 옥상으로 리퍼 하나가 날아올라 왔다. 빈우와 파트리샤는 본능적으로 코일건을 겨눴지만, 상대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먼저 쏘지는 않았다.

“김빈우.”

헬멧을 벗은 리퍼는 알탄훼아나였다. 그녀는 서둘러서 빈우에게 말했다.

“그대들의 부하를 진정시켜다오. 우리는 적이 아니라고 말해 다오.”

지금 뉴 소노라로 점프해온 42 전단의 순양함들은 아군 빼고는 다 공격하고 있었다. 맹렬히 날아간 플라스마 포격이 워프 비스트들에게 흡수당하자, 곧바로 코일건과 입자 가속 포로 놈들을 갈아버린다. 물론 샤다이 함선 주변으로는 이미 사이클론 어뢰로 모내기를 하고 있는 중이시다. 물 흐르는 듯한 전투 방식을 보아 저들은 꽤나 숙련된 듯하다. 42 전단으로 뽑힐 정도니 당연하겠지.

42 전단은 나타난 위치상 방금 나타난 샤다이와 워프 비스트들을 먼저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이어 리퍼 전투함도 공격할 것은 당연했다.

빈우도 헬멧을 벗고 서두르는 알탄훼아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잠깐. 내 부하들은 여기 있는 장갑 보병과 조그만 구축함이고, 저 위의 순양함들은 나와 소속이 달라. 내 부하들이 아니란 말이다.”

“장난할 시간이 없다.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 여길 먼저 떠날 수는 없다. 너에게도 그건 좋지 않은 일이겠지?”

“알아, 나하고 할 이야기가 남았지. 그래서 저 위쪽과 대화는 해보겠지만 장담은 못 해.”

빈우의 그 말에 알탄훼아나가 버럭 화를 냈다.

“그 말이 아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너와의 대화가 아니다. 내가 여기로 온 것은 저 계단을 내려온 자들의 몸에서 계단을 부수려는 것이다. 이케가미 소이치로처럼.”

그제서야 빈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약 그녀의 말이 진실이라면 알탄훼아나는 워프 비스트들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알았어. 지금 하고 있어.”

다행히 태스크 포스 373과 42 전단과의 통신은 금세 잡혔다.

-여기는 태스크 포스 373의 김빈우 소령이다.

통신 회선이 연결되는 즉시 서로에 대한 인식과 신분확인이 끝났다.

-여기는 42 전단 소속 순양함 타이런트입니다. 현재 본 함은 임시 분함대의 기함을 맡고 있습니다.

빈우의 통신을 받은 것은 순양함의 부장을 맡은 AI 루 펑센이다. 그리고 빈우는 그에게 자료를 속속들이 넘겼다.

-내가 지정하는 리퍼 전투함은 공격하지 마라. 아군이다.

-네?

지상의 장갑 보병이 궤도 상의 적함 보고 아군이라고 하니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 뭐냐, 그거 내 팀이 나포한 거야. 어서 함장에게 알려.

-어?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타이런트의 부함장은 즉시 함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뭐? 저게 아군이라고? 아군이 나포한 거란 말이야?”

“네, 그렇다고 합니다.”

타이런트의 함장이자 임시 분함대의 지휘관인 동 중잉 대령이 기가 막혀 소리쳤다.

그리고 그의 눈앞으로 아군 롱소드 하나가 날아가는 게 보인다. 그리고 리퍼 전투함 두 척이 그 롱소드를 뒤따라 이동하며, 워프 비스트와 샤다이 함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 동네 뭐 하는 동네야.”

“함장님, 김 소령님의 말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태스크 포스 373은 특수전 사령부의 특별 회수팀으로, 샤다이의 기술과 무기들을 수차례 회수한 전력이 있습니다. 아마 저 리퍼함도 그런 부류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 함장의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다. 그가 이끄는 분함대는 뉴 소노라에서 태스크 포스 373과 합류하기 위해 점프를 준비 중이었는데, 갑자기 도착지점의 게이트가 사라졌다고 했다. 당연히 함대에는 비상이 떨어졌고, 부랴부랴 게이트 재생성에 들어갔다. 만약 예전 같았으면 몇십 시간은 족히 걸렸을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과학기술국에서 개발한 신기술을 사용해, 다수의 게이트 엔진을 동기화시켜 연결하는 방법을 썼다. 그 덕에 분함대는 획기적으로 짧은 시간에 뉴 소노라에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도착해서 보게 된 광경이 또 걸작이다. 궤도 엘리베이터 상부는 분리되어 있고, 그 분리된 부분은 날아가다 점프 게이트를 박살낸 것처럼 보인다. 여기다가 처음 보는 적, 워프 비스트로 추정되는 생물로 된 함선들이 궤도 상에 버글거린다. 그리고 그것과 싸우는 샤다이들과 모두를 공격하는 리퍼 전투함. 저 위험한 리퍼를 이끄는 아군 전투기. 연락이 온 것은 지상에서 리퍼와 함께 전투하는 아군 병력.

동 함장은 결단을 내렸다.

“일단 식별 신호 불분명으로 배정해.”

“알겠습니다.”

붉은색의 적함으로 나타나던 리퍼 전투함들이 노란색으로 되었고, 이 사실은 함대의 다른 순양함들에게도 공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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