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자, 이제 계단을 어떻게 부술 건지 말해주실까?”
빈우는 코일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과거 목타하를 숱하게 잡았던 세팅의 탄두들이, 오늘은 워프 비스트들을 갈아버리고 있었다.
“발 가르단 하스 때와 같다. 계단을 찾아 부숴야 한다.”
알탄훼아나는 조그만 유에네스 전투기를 따르란 명령을 내렸다. 그 다음 유에네스 전투함들의 공격이 자신의 배로 향하지 않는 걸 확인한 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빨리해.”
빈우의 재촉에 그녀가 머뭇거렸다.
“그러려면 우선 계단이 있는 자를 찾아야 한다.”
“지나가는 워프 비스트 하나 잡아서 족치면 안 되나? 다 계단이 있을 거 아냐.”
“안 돼. 우선은 종족이 다르고, 또 계단이 너무 튼튼하다. 발 가르단 하스라면 가능하겠지만 나로서는,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무리다.”
알탄훼아나가 시즐러로 사격을 하자 달려오던 워프 비스트 한 무더기가 사라진다. 스핑크스보다 위력도, 연사력도 뛰어난 무기를 저렇게 손쉽게 사용하다니 부러울 지경이다.
“실력이 떨어진다고?”
“…그래. 내가 계단을 닫는 방법을 배운 것은 그날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빈우의 질문에 알탄훼아타는 시즐러를 거두며 착잡하게 말했다. 그날이라고 하면 빈우와 발 가르단 하스에서 만난 날일 것이다.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배운 다음에 실제 해본 적 있나?”
“…, 아니.”
“솔직하군. 그래서 다음은? 계속해.”
“내 실력으로 계단을 닫으려면 일단 종족이 같아야 하고, 계단 또한 막 생기려는 부드러운 것이어야 한다.”
뭔가 조건이 주렁주렁 달렸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그런 놈을 빨리 찾아야겠군. 찾을 수 있나?”
“지금부터 찾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곳으로 내려온 것이다.”
“야 이 등신아! 그럼 뭐 하고 있어, 빨리 찾아! 지금 여기서 워프 비스트들하고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아, 알았다.”
빈우의 일갈에 알탄훼아나가 움찔하더니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평상시엔 잘 안 보이는 것들이 그녀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 위, 저 멀리에 있는 계단과 지상에서 동조하는 계단의 마지막 부분들. 마른 땅에 스며드는 빗물처럼 서서히 찾아오는 선조들. 그리고.
“찾으라고 했더니 멍하니 서서 뭔 개지랄이야!”
자신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유에네스. 이번엔 알탄훼아나도 지지 않고 마주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해! 지금 찾고 있는 것 안 보이나! 정신이 흐트러진단 말이다.”
빈우가 멈칫한 사이 알탄훼아나가 다시 쏘아붙인다.
“나도 이렇게 찾는 방법은 배운지 얼마 안 돼서 낯설단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는 평상시와는 달랐다. 안구 안에 들어있는 금색 실타래들이 열심히 원운동을 하고 있었다. 빈우는 샤다이들의 ‘눈’처럼 보이는 신체 기관이 ‘평범한 눈’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니카의 말로는 광선 외에도 전파, 자기장들을 감지하는 기관이라고 했다. 아마도 지금 그녀는 별도의 기기 없이 눈만으로 찾는 것 같다.
“…미안. 힘내라.”
빈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물러서자, 알탄훼아나는 다시금 정신을 집중해 목표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 분도 안 되어서 그녀가 탄성을 질렀다.
“찾았다, 저기다.”
그러면서 알탄훼아나가 손가락으로 저쪽을 가리킨다.
“저기 어디?”
빈우에겐 아무것도 안 보인다. 장갑복의 헬멧을 썼다 벗었다, 센서 설정을 이리저리 바꿔 봤지만 변하는 건 없다. 그러자 알탄훼아나가 그를 착 끌어당겨 같은 곳을 보게 했다.
“저쪽. 잘 봐.”
그러면서 샤다이는 손가락으로 인간의 시선을 유도했다.
“난 안 보여.”
“아, 미안. 너는 유에네스였지.”
알탄훼아나는 머쓱해져서 빈우를 놓아주었다. 그러나 빈우에게 그딴 것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목표를 찾았다고 했지. 가자.”
“간다고? 지금?”
알탄훼아나는 서두르는 빈우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찾은 목표는 계단의 마지막 부분이 완성되기 직전의 유에네스였다. 지체하다간 계단이 완성될 테고, 그러면 저쪽 너머의 계단을 부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또 빈우는 자기 나름대로의 사정으로 서둘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연방의 곳곳에선 점프가 이뤄지고 있으며, 그 말은 연방의 시민들이 워프 비스트가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단 의미였다. 당장 머리 위의 42 전단만 해도 그렇다.
-부팀장, 잠시 지휘를 맡아주세요. 저는 샤다이들과 볼일이 있습니다.
-또 뭔 사고를 치실 겁니까?
팀장이 발 가르단 하스에서 저질렀던 전과가 화려하기에 부팀장은 일단 걱정부터 했다.
-인간이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것을 막으러 갑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까 알탄훼아나와 빈우의 대화는 두 사람만이 나눈 것이라 373 팀원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빈우는 방금 들었던 내용을 팀원들에게 두뇌 통신으로 공유했다. 그녀가 오직 빈우에게만 알려준 정보였으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란 언급이 없었기에 그냥 풀어버린 것이다. 애초에 빈우란 놈은 말하지 말라고 해도 들을 인간이 아니었다.
-원 세상에.
내막을 알게 된 파트리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사태가 너무나 심각한 것이다. 점프 항법을 써왔던 인류가 그 때문에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위험에 빠졌다니. 그 위험도와 중요성이 보통이 아니다.
-이거 사실이랍니까?
위르겐이 물어본다. 사태의 심각성을 방증이라도 하듯, 담대한 뱅가드 대원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다.
-거의.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로는 앞뒤가 맞아. 그리고 전력이 우수한 샤다이 쪽이 굳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할 메리트가 없지. 부팀장, 그래서 지금 알탄훼아나란 샤다이 지휘관이 계단을 닫으러 간답니다. 제가 따라가야겠어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행동은 빨라야 한다.
-알겠습니다. 누굴 데려가시겠습니까?
-저 혼자 가겠습니다.
서두르는 빈우를 아룹이 만류한다.
-안됩니다. 팀장님 혼자서 따라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한 사람은 더 가야 합니다.
-아니오. 현재 팀원들의 장비로는 제가 제일 안전합니다.
빈우의 말이 옳았다. 유사시에 샤다이의 플라스마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는 건, 컨커러를 입은 빈우뿐이다.
-잠시 기다려 보세요. 42 전단에게 지원을 요청해 보죠.
빈우는 궤도 상에서 전투하는 42 전단에게 통신을 연결했다. 그리고 지상 병력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안타깝게도 42 전단의 장갑 보병들은 아직 합류하지 않은 상태이고, 순양함에 있는 병력들은 모두 방어용 무인 어벤져들이었다.
-힘들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우리만으로 버텨야겠군요.
빈우의 말에 아룹이 한숨을 내쉬었다. 몰려드는 워프 비스트들이 지상의 리퍼들에게 집중하고 있어서 아까보단 부담이 한결 덜하지만, 여유가 넘치는 건 아니었다. 현재 팀의 중화기는 위르겐과 빈우가 담당하고 있는데, 빈우가 빠지면 화력의 공백이 너무 크다.
-일단 두 조를 합쳐서 지상의 리퍼를 엄호하는 쪽으로 갑시다. 부탁합니다, 부팀장.
-알겠습니다.
빈우는 지휘를 마친 다음 알탄훼아나를 불렀다. 무인기를 먼저 보낸 파트리샤는 대화하는 둘을 보더니, 헬멧을 들어 팀장에게 윙크를 한 번 날렸다. 그리곤 자신도 아룹 쪽으로 날아갔다.
“아오, 저 썅.”
“왜, 무슨 일이지? 아직도 앙금이 남았는가?”
“아니, 아니다. 이제 찾으러 가자. 그런데 너희 쪽에선 누가 따라갈 거지?”
그 말에 알탄훼아나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나 혼자서, 그대와 함께.”
“안됩니다, 호민관! 너무 위험합니다.”
지상에선 호위병의 대장 격인 펠훼단이 만류한다. 호민관인 그녀가 혼자서, 그것도 유에네스와 함께 움직인다니 결코 안 될 일이다.
“잘 들어요 펠훼단. 이게 최선이에요. 지금 계단을 내려… 워프 비스트들이 너무 많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하늘에서도 다시 떨어져 내리고 있어요. 유에네스들이 엄호해 줘서 망정이지, 우리뿐이었다면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녀의 말대로 궁지에 몰린 워프 비스트들은 마구잡이로 강하하기 시작했다. 리퍼와 42함대가 중간에서 요격을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아 다 잡기는 힘들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방어를 하다가 놈들을 전멸시킨 다음 움직이십시오.”
펠훼단이 다시 만류한다.
“아뇨, 지금 계단이 언제 생길지 몰라요. 서둘러 움직여야 합니다. 또 하나, 놈들이 노리는 건 우립니다. 호위병 여러분이 되도록 눈을 돌려줘야 제가 행동하기 편합니다.”
지금 워프 비스트들의 목적은 샤다이다. 선조들이 후손의 온전한 몸에 증오심을 품고 득달같이 달려들고 있다. 펠훼단과 호위병들이 그럭저럭 막아내고는 있지만, 373팀의 엄호가 없었다면 그녀 말대로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런데 말이야.”
이동하기 전 빈우가 한 가지 물어본다.
“뭐 질문할 거라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너희들 병력이 그거뿐이야? 또 배에는 다른 무기 없어?”
사실 빈우는 아까부터 이게 궁금했었다. 전장의 가운데에 덩그러니 떠 있는 리퍼 전투함의 존재를. 저 배에서 병력이 더 내린다면 전황은 좀 더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배에서 엄호 포격을 해준다면, 워프 비스트들은 싹 쓸려나간다. 그런데도 저 배는 그냥 땅 위에 꼿꼿이 서 있을 뿐이었다.
알탄훼아나가 그 의문을 풀어주었다.
“배에 있는 모든 사람이 지금 여기서 싸우고 있다. 그리고 우리 전투함의 무기는 지상에서 쓰기엔 위력이 너무나도 크다. 자칫 스치기라도 하면 전투복을 입고 있는 우리라도 위험해.”
“응, 네, 너희들이 하는 게 뭐 그렇지.”
빈우는 한숨을 쉰 다음 어리둥절해 하는 알탄훼아나에게 손을 훠이훠이 휘둘렀다. 알탄훼아나는 떨떠름한 기색으로 길을 안내했다.
두 사람은 옥상에서 뛰어내려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역시나 샤다이인 그녀는 직접 달리지 않고 공중에 떠서 이동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빈우에게 다시금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호민관, 잠깐 질문.”
“또 뭔가?”
“너네들 날 수 있잖아? 날면서 워프 비스트를 쏘면 안 될까?”
생각해보니 섬뜩하다. 은신하고 날면서 전차포를 쏘는 인간형 외계인이라니. 그런데 빈우의 기억에 스팸들이 그랬던 기억은 없었다. 하늘을 나는 것도 리퍼들뿐이었다.
“그렇겠지. 그러나 그 정도로 섬세하게 힘을 다룰 수 있는 자들은 얼마 없다. 별 심장의 불길을 빌리는 건 그저 타인의 빌리는 것이라 쉽지만, 별의 손아귀를 잡고 움직이는 것은 이쪽의 실력 또한 필요하다. 하물며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다루는 자는….”
알탄훼아나가 잠시 말을 멈췄다. 끊어진 말 사이를 채운 것은 작은 분노였다.
“…망할 아버지의 부하들뿐이다.”
빈우는 참 바람직한 부녀 사이라고-인류에게 있어-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마음속으로.
대화를 멈추고 이동한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이다. 이곳 지하에 목표가 있다. 서두르자.”
목적지에 도달한 빈우는 문제점을 하나 깨달았다. 지금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웨이블의 지하 벙커 중 하나다.
‘바보같이.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빈우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아까 분명히 알탄훼아나는 말했었다. 계단을 닫으려는 목표는 일단 종족이 같아야 하고, 계단 또한 막 생기려는 부드러운 것이어야 한다고.
“알탄훼아나.”
차갑고도 무거운 연방 군인의 부름에 샤다이 호민관이 돌아본다. 그리고 그녀 또한 빈우의 질문을 직감한 듯, 굳은 표정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아직 인간이지?”
“…맞아. 아직 변이를 안 한 상태다.”
다시금 빈우에게 기억이 떠오른다. 지하 창고에서 소이탄을 터뜨렸을 때의 기억이다. 워프 비스트도, 변하는 인간도, 변하지 않은 인간도 모조리 불타버렸다.
“달리 질문할 것이라도?”
심상치 않은 빈우의 표정을 본 알탄훼아나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그리고 빈우는 천천히 질문했다.
“계단을 부수는 방법은… 발 가르단 하스 때와 같나?”
발 가르단 하스는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이케가미 의원의 몸에 플라스마 신경 다발을 밀어 넣어 계단을 파괴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케가미 의원은 고온의 플라스마에 타죽었다.
“그래. 맞아.”
알탄훼아나가 확인시켜 주었다.
“계단을 부수면, 그자는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