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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56화 (154/301)

156화

지금 빈우는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알탄훼아나와 함께 여기까지 달려왔다. 헌데 그 방법이란 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계단을 통해 저쪽, 샤다이의 선조들이 있는 곳의 계단을 부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상자인 인간은 죽는다. 고온의 플라스마에 불타서.

“김빈우.”

알탄훼아나의 부름에 빈우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착잡한 표정으로 빈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그 심정을 안다. 내가 지금 하려는 것은 그대의 동족을 죽이는 짓이다. 그리고 그대의 소임은 동족을 지키는 것이지. 하지만.”

결심한 표정의 알탄훼아나가 빈우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푸른 눈 안쪽에서 배어 나온다.

“나는 반드시 내 일을 할 것이다. 설령 그대가 방해하더라도.”

알탄훼아나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현재 행동을 같이하는 건 자신의 목적와 빈우의 목적이 일치해서 일 뿐이다. 빈우의 손이 서서히 지하 벙커의 조작 패널로 갔다.

“그, 계단을 부수는 것은 반드시 인간의 안에 있는 것만 되나? 저 위의 점프 게이트는 안되나?”

“저 위의 점프 게이트? 혹시 별의 손아귀에 잡혀있는 계단들 말인가? 아까 말하지 않았나. 그대들의 동족으로 내려오는 선조들을 막으려면 같은 종족 안에 있는 계단으로만 가능하다고.”

마지막 지푸라기를 놓친 빈우는 차근차근 문을 열었다. 마지막 보안 단계에서 빈우가 한 번 더 물었다.

“너는 왜 계단을 부수려는 것이지?”

“귀환 반대파들이 들고 일어섰던 건, 대개 추레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선조들의 모습이 싫어서였다. 그렇기에 정상적으로 돌아온다고 하자 찬성파로 많이들 돌아갔지. 하지만 난 달라. 이 우주는 우리의 것이다. 실패한 자들이 돌아올 곳이 아니야.”

빈우는 그녀가 말한 우리의 범위가 어디인지 궁금했다. 다른 종족들도 포함하는지, 아니면 오직 샤다이만 포함하는지. 하지만 지금은 일단 그런 생각을 접어둬야 할 때다. 마지막 절차가 끝나고, 지하 대피소의 두꺼운 방호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에서 시끌시끌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구조대인가? 구조대다!”

“아냐, 외계인일지도 몰라. 나가지마, 조심해.”

한 번에 백여 명 정도 수용 가능한 지하 대피소엔 그 두 배는 되는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373팀이 밀어 넣었던 결과다. 문으로 달려오던 사람들은 빈우와 알탄훼아나가 안으로 들어오자 금세 좌우로 갈라졌다.

“야, 연방군. 이제 다 끝난 거야? 다 끝난 거냐고?”

청년 한 명이 나서 빈우에게 고함을 지르지만 대답은 없었다.

“이 새끼야. 사람을 이딴 돼지우리에 집어넣고, 응. 뭐라고 말 좀 해봐.”

사내는 나서려다가 주변에서 잡아끌자 못 이기는 척 다시 인파 속으로 들어간다. 그때 알탄훼아나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저쪽이다.”

빈우는 그녀가 지목한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호기롭게 길을 막아서려던 몇몇이 있었지만, 장갑복이 걸어오는 모습에 오금이 저려 뒤로 물러설 뿐이다.

“그래, 거기다.”

알탄훼아나가 찾아낸 목표, 아직 계단이 완성되지 않은 자가 거기에 있었다.

“어느 쪽이지?”

엉겨있는 둘을 보고 빈우가 물었다.

“큰 쪽.”

그 말에 빈우는 목표물에게 천천히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헬멧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다음, 한쪽 손을 내밀었다.

“겁먹지 마라. 아저씨 기억하지?”

빈우의 힘든 미소에 아이들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열 대여섯은 됨직한 남자아이가 서너 살은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를 꼭 껴안고 있었다. 아마도 남매겠지.

“기억. 해. 요.”

오빠 쪽으로 보이는 소년이 잘 움직이지 않는 얼굴 근육을 움직여 대답한다. 빈우도 이 아이를 알고 있다. 뇌성마비에 걸려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음에도 필사적으로 여동생을 챙겨 대피소로 들어갔었다.

“이 아이가 확실한가?”

“맞아. 음? 벌써 몸에 변이가 온 건가? 하지만 아직 계단은….”

“아니, 이건 병이다.”

겁에 질린 남매는 서로 꼭 껴안고 있었다. 여동생은 울음을 그쳤지만 아직 눈가가 빨갛고, 오빠는 힘들게 눈을 굴려 빈우와 알탄훼아나를 살펴보고 있었다.

“아저씨 이름은 김빈우라고 한단다. 연방 군인이지. 너희들 이름은 뭐니?”

오빠가 잠시 빈우를 바라보더니 더듬거리며 대답한다.

“티, 모시 1078. 동생은 티모시 10. 79.”

“그래, 티모시… 1078.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헤어졌니?”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더러운 일이다.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으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오빠가 머뭇머뭇 대꾸한다.

“없, 어요.”

자세히 살펴보니 이 아이는 해진 옷에 거친 손을 하고 있다. 힘든 일을 하며 살아온 것 같다. 여동생 쪽도 영양 상태가 썩 좋은 것 같진 않다.

“그 애, 고아에요. 티모시 고아원 출신의 부랑자인데….”

옆에서 중년여성이 조심스레 말을 꺼내온다. 그렇다면 고아원의 이름에 그냥 숫자를 붙여 아이들의 이름을 만들어 줬다는 이야기다. 한심스러운 일이다.

한숨을 푸욱 쉬는 빈우를 알탄훼아나가 재촉한다.

“서두르자. 얼마 있지 않으면 계단이 완성된다. 그 전에 부숴야 해.”

오만가지 생각이 빈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죽어야 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면 얼마든지 죽을 수 있다. 빈우는 그러기 위해서, 연방과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서 군에 들어갔으니까. 그런데 눈앞의 아이는 아니다. 자신이 지켜야 할 쪽에 선 사람이다.

‘혹시 다른 사람은 없을까? 나중에 할 수는 없을까?’

하지만 부질없는 생각이다. 다른 이를 찾는다 해도 어차피 같은 인간, 같은 생명이다. 더군다나 지금 이 순간에도 샤다이 선조들이 내려올지도 모른다. 연방 어디에선가, 아니면 지금 뉴 소노라에서.

“티모시 1078,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단다.”

무거운 장갑 보병의 말에 티모시 1078이 두려운 얼굴로 반응했다. 빈우는 이 아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짐작이 갔다. 이 말 다음에 이어진 ‘일’이란 것이 의지할 곳 없는 고아 남매에게 딱히 좋은 일이 아니었으리라.

묵묵부답인 아이에게 빈우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아까 괴물들을 봤지?”

티모시 1078의 뻣뻣한 끄덕임을 본 빈우는 말을 잇는다.

“이제 다른 사람들도 그런 괴물이 될 위험이 있단다. 그걸 네가 막아야 해.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거든.”

빈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끄러운 대답이 주변에서 터져 나온다.

“괴물이라고! 저 아이가 괴물이었어.”

“역시 거지새끼가 문제야. 감염시킨다고.”

“세상에, 어떻게 해. 좀 막아 봐요. 당신 연방군이잖아.”

“괴물이 온대요. 그 괴물들이 온다고요.”

공포에 휩쓸린 군중들 사이에서 빈우는 주먹을 휘둘렀다. 바닥을 때린 커다란 굉음에 순식간에 사람들이 입을 다문다.

“여러분, 저는 지금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조용히 해주십시오.”

나지막한 목소리에 주변은 금방 조용해 졌다.

“나, 는요? 동생은, 요? 구에물이… 되. 나. 요?”

띄엄띄엄 이어지는 티모시 1078의 질문에 빈우는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그래. …너나 네 동생도 괴물이 될 수 있단다. 너는 곧 그렇게 될 거야.”

일그러진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억울함과 슬픔이 엉겨 볼로 흐른다.

“왜요? 왜. 왜에요?”

“미안, 그건 아저씨도 몰라.”

“못… 못 막아… 요?”

“아저씨는 못 해. 티모시 1078. 너만이 할 수 있어.”

빈우는 자신의 능력 밖의 일에 무능함을 느끼면서도 설명을 계속했다.

“사람들이 괴물로 되는 것을 막으려면, 네 도움이 필요해. 그리고….”

마지막 말을 하기 전 빈우는 힘겹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너는 죽을 거야.”

오빠가 소리없이 오열하자 품 안의 어린 동생도 울음을 터트렸다. 오빠의 눈물이 동생의 얼굴로 뚝뚝 떨어져 내린다. 오빠는 자신의 눈물이 동생에게 떨어지지 않게 얼굴을 돌렸고, 꺾인 팔로 동생의 등을 다독여 달랜다.

“티모시 1078. 어떻게 하겠니? 선택은 네게 맡길게.”

빈우는 마지막 선택권을 당사자에게 맡겼다. 그러자 주변에서 갑자기 들고 일어섰다.

“뭐해요. 어서 하세요. 괴물을 막아야지. 허 참.”

“저 아이가 돕겠고 하잖아요. 뭔지 몰라도 어서 해요.”

빈우도 안다. 그에게 선택권은 없고, 시간도 없다. 해야만 하는 일은 해야 한다. 딱히 공리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알량한 양심에 휘말려 일을 그르쳐선 안 된다.

연방 군인은 소란스러운 주변을 무시한 채 눈앞의 고아 남매를 주시하고 있었다.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남자 하나가 주춤주춤 나섰다.

“얘야, 넌 거지잖아? 사회를 위해서 큰일을 해야지 않겠니? 너를 길러주고 키워준 녹색연맹을 위해서 뭔가 보답하고, 희생을 해보겠다는 생각 없어?”

빈우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정중하게 말했다.

“선생님도 할 수 있습니다만, 하시겠습니까?”

“아아니, 난 뭐. 그냥 좋은 일 해보겠다고….”

대답이 궁해진 사내는 눈을 피하며 몸도 피했다. 그때 티모시 1078의 대답이 들려왔다. 동생을 달랜 아이는 빈우를 똑바로 마주 보려 애썼다.

“제. 가. 희, 희. 생하고. 싶어요.”

“그건 희생이 아니야.”

빈우는 다가서서 티모시 1078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사실을 알려주었다.

“네가 다른 누군가의 제물이 될 필요는 없어. 넌 죽는다. 뜨거운 불에 타서. 그리고 동생은 홀로 살아가야 해. 그래도 하겠니?”

가혹한 사실이다. 남매 중 한 명은 죽어야 하고, 다른 한 명은 혈혈단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오빠는 결심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죽으면. 안 힘. 들어요. 사는. 거… 아파. 요. 무서. 워해. 요.”

빈우는 뱃속에서 목으로 터져 나오는 뜨거운 소리를 참으려고 노력했다. 왜 이 아이가 삶은 힘들어하고, 무서워해야 할까.

“대. 신… 부탁… 부탁… 이 있어. 요.”

“말하렴. 아저씨가 들어줄게.”

말 대신 티모시 1078이 동생을 내민다.

“동… 생. 동생. 부탁… 부탁.”

오빠의 굳은 얼굴 근육은 흐느낌에 먹혀 말하기 더욱 힘들어졌다. 빈우는 조심스레 여동생을 안아든다.

“그래, 아저씨가 동생을 맡아줄게. 걱정하지 마라.”

컨커러의 손이 헐떡헐떡 숨을 삼키는 티모시 1079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따뜻한 물로 깨끗이 목욕하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편한 침대에서 푹 잘 거다.”

빈우의 말에 오빠는 흐느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눈물 가득한 눈으로 동생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아… 안녕. 조… 좋은 곳… 가서… 잘… 살아… 아프지… 말고.”

짧은 작별인사를 마친 티모시 1078은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그리고 빈우가 고개를 돌려 알탄훼아나를 돌아보았다. 준비되었다는 뜻이다. 그러자 샤다이의 호민관이 나섰다.

“김빈우. 이제 시작하겠다. 도와다오.”

“어떻게?”

“나는 별 심장의 불길을 불러 이 자의 계단으로 들어간다. 그동안 이 자를 잡아 주면 된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나와 그의 신경계 접합이 뒤틀리면 안 돼.”

빈우는 고개를 돌려 대피한 사람들을 보았다.

“누가 잠시 이 아이를 맡아주신 분 계십니까?”

그러나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제발, 잠깐이면 됩니다. 잠깐만 이 아이를 안고 있어 주십시오.”

그때 중년여성 한 명이 쭈뼛쭈뼛 나섰다. 빈우는 겁에 질린 그녀에게 다가가 아이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돌아오겠습니다.”

아이를 넘긴 빈우는 돌아가 티모시 1078의 뒤에 섰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깨에 컨커러의 손이 닿자 비쩍 마른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의 죽음이 피부에 와 닿자 겁에 질려 울음을 터트리려 한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입술을 깨물어 울음을 참으려 한다.

이어서 알탄훼아나가 소년의 앞에 서서 양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마주한 손바닥 사이에서 플라스마가 생겨났다. 온도는 없었다. 그러나 장갑복 센서의 스펙트럼 측정에는 2만5천도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실로 항성의 일부를 떼어온 것 같다. 샤다이의 손안에 갇힌 고온의 플라스마는 넘실대고 있다.

“시작한다.”

그녀의 말과 함께 플라스마가 가늘게 뻗어 나와 티모시 1078에게로 향한다. 자신을 향해 넘실거리며 다가오는 플라스마를 본 소년은 본능적으로 발버둥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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