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오늘 무슨 잔치 하냐.”
헤라클레스급 순양함 타이런트의 함장인 동 중잉 대령은 지금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 작전은 처음부터 사고의 연속이었다.
발단은 태스크 포스 373과 합류하기 위해 점프를 하려고 했는데, 게이트가 터졌다는 급보가 들려왔다는 것부터였다. 그다음 간신히 점프 게이트를 만들고 뉴 소노라에 왔더니, 궤도 상에선 이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 정도까지는 이미 예상한 바였지만 문제는 그 대상이 샤다이와 워프 비스트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교전 중이던 태스크 포스 373의 모함 블랜 랜스와 지상의 김빈우 팀장으로부터 대략적인 정보를 전달받은 다음, 리퍼 전투함과 협동해 워프 비스트와 샤다이 함선들을 격침시켰다. 여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사건은 해결은커녕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방금 일어난 유례없는 샤다이의 대규모 함대 출현에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비장한 각오로 마지막 명령을 내리려고 했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작 일어난 것은 샤다이들끼리의 내전이었다. 연방군 최정예 42 전단 소속의 순양함들은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는 새우의 심정으로 필사적으로 도망을 쳤다.
그때 타이밍 좋게 비홀더 전단이 등장했다. 그것도 꽤 큰 규모로.
“이제 살았다.”
동 함장은 한숨을 돌렸지만 부장인 펑센은 그러지 못했다.
“함장님, 잊으셨습니까? 저들은 디안머에서 아군과 행성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적이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비홀더 1전대는 얼마 전 디안머에서 샤다이와 싸운 적이 있었다. 1대 47의 전투였지만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자치 행성과 연방 함대의 안전은 도외시한 채 싸웠다는 점이다. 당시 비홀더 전대는 근처에 있는 연방의 징수 함대를 무시하고, 반물질 병기와 타키온 감속기 같은 고위력 병기들을 마구잡이로 썼었다. 그 바람에 연방의 함대는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그때 발생한 중력파와 방사선의 여파는 행성을 휩쓸었다.
“놈들이 직접 공격한 것은 아니잖아. 휘말린 거지.”
“그게 그거 아닙니까.”
“알아. 비홀더 전대의 제1 목표는 외계종족이다. 전투의 여파는 우리가 막는다.”
그래서 동 함장은 분함대를 최대한 행성 근처로 이동시켰다. 지금 헤라클레스 순양함들의 방어력이라면 당시 징수 함대를 훨씬 뛰어넘는다. 비홀더 전대와 샤다이 간의 전투가 발생해도, 그 여파가 행성까지 가는 것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비홀더 전대들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샤다이 대 함대를 둘러싼 비홀더 전대에서 공격이 시작되었다. 현재 연방의 기술을 아득히 뛰어넘는 파괴력을 지닌 병기들이 날아가 샤다이들을 소멸시킨다.
“뭐야, 왜 중력 닻을 쓰지 않지?”
“그러게 말입니다. 대 샤다이 전에는 기본일 텐데요.”
동 함장의 의문에 부장인 펑센도 동의했다. 샤다이들은 게이트 없이 점프를 하지만-정확히는 다른 계통의 공간이동이지만-거기엔 지연시간이 있다. 놈들은 한번 점프를 하면 대략 15분간은 점프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연방은 그사이 샤다이를 무찌르거나, 아니면 중력 닻으로 묶어서 도망치지 못하게 한 다음 공격했다.
그러나 지금 비홀더 전대는 아무런 양념도 치지 않은 채 공격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조준도 형편없었다.
“이런, 함장님. 빗나간 공격에 같은 비홀더 전대가 맞았습니다.”
“뭐야. 지구 제국의 최정예란 이름이 울겠다.”
눈앞의 전투는 정말 개판 오 분 전이었다. 샤다이 대함대들을 서로 사분오열하여 자기들끼리 편을 갈라 싸우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비홀더 전대들의 공격은 빗나가서 맞은편에 있는 아군 비홀더 전대에게 명중하기 일쑤였다.
“중력파가 옵니다만, 상쇄했습니다.”
펑센은 사방으로 퍼지는 중력파와 방사선들을 보여주었다. 눈앞의 대전투에서 그 여파가 날아오지만, 방어대형을 짠 순양함들에겐 위협거리도 안 된다. 함대는 물론이고 뒤의 뉴 소노라도 안전하다.
“쯧쯧, 아무리 포위를 한다 해도 아군의 사선에 들어가면 안 되지. 점프한 다음에는 빨리 대형을 재정비하란 말이다.”
처음에 동 함장은 비홀더 전대들이 점프한 직후 바로 전투에 들어가는 바람에 대형이 꼬여 아군끼리 오인사격을 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응?”
함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공격의 밀도가 다르다. 지금 비홀더 전대의 공격은 샤다이보다는 같은 비홀더 전대에게 명중하는 것이 더 많았다. 마치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펑센아, 저것들 왜 저래?”
동 함장은 자신의 의문이 틀렸기를 바라며 부장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지금 비홀더 전대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펑센은 그 의문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니! 저것들은 또 왜 저러냔 말이다!”
“저도 모릅니다!”
어이를 상실한 동 함장이 답답해서 소리쳤지만, 전투정보실에는 대답해 줄 사람이 없었다. 지금 다들 그와 같은 심정인 것이다. 샤다이들이 내전을 하는 것은 좋았다. 몹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구 지구 제국의 정예들끼리 전쟁을 한다면 이건 숫제 악몽이다.
* * *
“이 무슨 지랄이냐.”
지상에서는 빈우가 탄식을 했다. 오백 척은 족히 넘는 샤다이 대 함대를 스무 척 남짓한 지구 제국 전투함들이 포위했을 때는, 그럭저럭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개판 오 분 전이라고.
지금까지 비홀더 전대가 외계인을 상대로 패배한 적은 없었다. 샤다이를 상대로도, 심지어 1대 10 이상의 전투도 어렵지 않게 이겨냈다. 더구나 얼마 전 디안머에서는 그리폰 순양함 단 한 척이 신형병기를 사용해 리퍼 전투함 47척을 상대로 싸워 이겼었다.
그래서 머리 위에서 일어난 전투에선 수적 열세 때문에 비홀더가 피해를 볼지언정 결국은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재 빈우는 그것이 대단히 안일한 생각이었다고 자책하는 중이었다.
“일단 눈앞의 전투에 집중해!”
빈우는 알탄훼아나를 흔들며 소리쳤다. 궤도 상에선 대형 사고가 일어나고 있지만, 지금 지상에서는 워프 비스트들이 눈앞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허둥대고 있으니 빈우가 다그친 것이다.
“알아. 일단은… 계단을 내려온 자들부터 처리한다.”
알탄훼아나는 빈우의 팔을 뿌리치며 검을 들었다. 하지만 아직 머뭇거리는 게 보인다.
그녀는 현재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두 파벌의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에 꽤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실은 아버지인 집정관의 계략이었으며, 동포들을 죽이기 위해 지구제국군마저 유인한 상황이란 것을 안 지금은 더더욱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싸우는 도중에도 자신의 함대에 연락을 시도했다. 어떻게든 싸움을 멈춰보려는 생각이겠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팀장님, 혹시 집히는 것 있으십니까?
블랙 랜스에서 오르 함장이 연락해 온다.
-아니요, 전혀요.
빈우로서도 알 길이 없다. 샤다이들이 대규모로 모여 자기들끼리 싸우는 이유에 대해선 이미 유추한 바 있다. 그러나 비홀더 전대들이 서로 치고받는 이유는 짐작조차 안 간다.
-으아, 혹시 저것들이 디안머에서 친 사고하고 관련 있지 않을까요?
파트리샤가 몰려드는 워프 비스트들의 물결에 학을 떼며 질문한다. 그녀의 말대로 비홀더 전대가 먼저 이쪽과 접촉하러 온 것은 꽤 드문 일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일이 오늘의 이 해괴한 사태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있을지도, 아니면 없을지도. 아직 뭐가 뭔지 몰라. 일단 이것들 다 죽여.
빈우는 정비가 끝난 스핑크스로 플라스마를 한 방 쏘았다. 일격에 달려오던 워프 비스트 한 무리가 증발해서 사라진다. 하지만 목표는 그게 아니었다.
-위르겐, 내가 쏜 곳을 한 번 더 쏴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구경 코일건과 미사일들이 날아간다. 한차례 폭발이 일어난 다음, 빈우가 노렸던 고층 건물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길이 막혀버리자 워프 비스트들의 움직임이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이쪽도 지지 않고 화력을 집중시켰다.
-칼 들어! 전열을 짜서 밀어붙여. 썅 귀먹었냐, 귀쟁이들아! 헨칼 다리얀!
빈우의 명령에 알탄훼아나의 호위병들은 일순 망설였지만, 자신들의 집정관이 명령에 따르란 눈짓을 하자 서로서로 칼을 앞세워 대열을 짰다. 한곳으로 모인 플라스마의 검들에 달려드는 워프 비스트들은 불타 녹아내리고 증발할 뿐이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373 지상팀의 사격이 쏟아진다.
-끝도 없네. 개놈들!
빈우가 이를 악물었다. 태스크 포스 373이 온종일 죽이고 죽였지만, 아직도 놈들은 몰려들고 있었다. 뉴 소노라에 남아있던 워프 비스트들이 모두 모여든 듯싶다.
-우지, 지원 올 수 있겠냐?
일단 빈우는 공군을 부르기로 했다. 지상군 조지는 데 첫째가 공군이요, 둘째가 포격이다.
-애매한 소강상태네요. 좌표 불러주십쇼.
지금 42 전단의 순양함들과 블랙 랜스는 대기권에서 역장 방어막을 펼치고 있었다. 비홀더 전대의 공격에서 일어난 여파가 지상에 닿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샤다이와 비홀더 전대들이 서로 물어뜯고 있는 지금은 롱소드가 딱히 할 일은 없었다.
곧이어 연방군의 주력 우주 전투기가 대기권을 뚫고 내려와 뉴 소노라의 시가지에 쑥과 대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 * *
“이거 골치 아프군요.”
체메트디오프의 얼굴에서 드물게 미소가 사라졌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집정관의 푸념에 함장이 돌아보면서 질문했다. 현재 이곳에 모인 동포들은 자신들이 믿는 이상을 위해 동족상잔을 벌이고 있다. 계획대로다. 그리고 집정관은 보다 빠른 처리를 위해 비홀더 전대들을 유인해 이곳으로 모아놓은 상황이다. 이 또한 계획대로다. 자기 종족 외에는 모조리 쓸어버리는 학살자들에게 달리 말은 필요 없었다. 놈들은 어리석은 동포들을 모조리 처리해 줄 것이다. 공짜로.
“혹시 주시자들의 함대가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 때문입니까?”
함장의 말대로 그들이 주시자라 부르는 지구 제국의 함대들은 가운데에 있는 샤다이를 무시하고 서로 싸우고 있었다. 동포들의 배는 그사이에 끼어 죽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도 샤다이들은 반대되는 파벌에게 포격을 퍼붓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준다.
“네, 제가 저들을 과소평가한 듯싶습니다.”
집정관이 말한 ‘저들’이란 지구 제국의 함대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저들의 병기는 멸망에서 힘을 빌려 쓰는 거지요. 가불, 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차피 파산으로 끝날 우주에서 가불을 한들 큰 영향은 없겠지만….”
말을 잠시 끊은 체메트디오프는 지구 제국 그리폰 순양함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지난 백여 년간 수많은 종족들을 멸종시킨 배다. 그리고 반대되는 곳의 함선들도 보았다. 그리폰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큰 형태를 한 전함들이었다.
“못 보던 배들도 보이는군요. 제국 시절의 유물을 끌고 온 건 아닐 테고, 아마 주시자들의 신형함이겠죠? 게다가 우리 동포들을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우리와 그들 사이에 무시해도 될 만한 격차가 생겨버렸단 뜻입니다.”
체메트디오프는 어리석은 동포들을 청소하기 위해 오늘의 장을 마련했고, 주시자들에게도 미리 정보를 흘려놨었다. 이 정도 규모의 대함대가 한꺼번에 모인다면 주시자들은 어쩔 수 없이 선 안쪽으로 들어와 모일 것이다. 자신들이 루비콘 라인이라 부르는 선 안으로.
그리고 이 일이 끝난 다음, 그들은 선 바깥으로 되돌아가 당분간은 돌아올 수 없겠지.
설령 지구 제국이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동포들이 죽는 시간이 좀 더 길어질 뿐이고, 향후의 계획에 주시자들이 끼어들 변수가 생기겠지만, 큰 줄기의 흐름은 변하지 않는다.
“예상외의 사태입니까?”
함장의 질문에 집정관이 되찾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럴 리가요, 예상은 했지요. 아주 싫은 예상 중 하나입니다. 그들이 단시간에 이토록 강해질 줄은. 잘못하면 오늘 제가 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체메트디오프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아주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 섬에게요? 그렇다면 여덟 번째로군요.”
함장 역시 익숙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음? 아니요, 일곱 번입니다. 저번에는 제가 스스로 자폭하지 않았습니까?”
“이 섬에게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자폭하셨잖습니까. 여덟 번.”
“꼼꼼하긴. 그래서 제가 당신을 곁에서 부려먹는 겁니다.”
“영광입니다. 집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