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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61화 (159/301)

161화

태스크 포스 373의 지상팀은 보이는 워프 비스트는 다 죽이면서 문제의 대피소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직은 한 곳이군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렇게 말한 아룹은 마주친 워프 비스트의 머리에 나이프를 박아 넣었다.

-이제 시작이겠죠.

대답한 빈우는 모퉁이에서 멈춘 다음 수류탄을 던졌다. 폭발과 함께 워프 비스트 너덧이 나뒹군다.

-그러게요? 대피소끼리 통신하는 것을 보니 나가자고 하는 곳이 꽤 되네. 돌았나.

폭음이 채 잦아들기도 전에, 파트리샤는 건물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허둥대는 워프 비스트들을 썰어버렸다.

-이럴 거면 아예 감금할 걸 그랬습니다?

위르겐이 포격 위치를 알려준 다음 고출력 레일건을 쐈다. 건너편에 있던 한 무리가 피떡이 되어 사방으로 흩날렸다.

-이 자식아, 나중에 뒷감당 어쩌려고. 시민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핀잔 한번 날린 빈우는 대피소와 연결된 채널로 통신을 시도했다. 지휘하랴, 통신하랴, 달려드는 놈 정리하랴 바쁘다.

-시민 여러분, 아직 바깥은 위험합니다. 대피소 안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곧 저희 군이 모든 적을 물리치고, 안전을 확보할 겁니다. 나오시면 안 됩니다. 안에서 기다리셔야 합니다.

대부분의 대피소는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안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 그러나 몇몇은 이렇게 방송을 해야 나오지 않고 참는다. 그나마 이들까진 말귀를 들어먹어서 다행이다.

-네 놈들이 무슨 권리로?

문제가 되는 대피소의 회선에서 한 청년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이곳은 373팀이 초기에 인솔한 시민들이 있는 곳이다. 이들은 워프 비스트들을 직접 본 적이 없고, 오랜 시간 갇혀있던 터라 불만이 상당했다.

-긴급상황에서 치안 유지를 맡았습니다. 어서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으십시오.

빈우는 그동안 뉴 소노라의 근황을 대피소로 간간이 보냈었다.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면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기 때문에, 이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적절히 가공한’ 정보를 제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것이 화근이 되었다. 바깥의 상황이 진화될 조짐이 보이자, 이 대피소에서는 나가서 맞서 싸우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말았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세요. 주변에는 아직 적이 있습니다.

빈우의 필사적인 만류에도 해당 대피소의 사람들은 흥분해서 바깥으로 나가고 있었다. 게다가 방금 빈우와 대화했던 청년은 동료들과 이미 문밖으로 나온 상태고, 지금 다른 대피소에도 연락해 바깥으로 같이 나갈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적? 어디, 안 보이는데?

-아직 저희가 완전히 소탕한 게 아닙니다. 남은 괴물들이 어딘가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궤도 상에선 아군과 외계함대의 전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여파가 지상으로 미칠지도 모르니 어서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잠시 대답이 없었다. 대피소의 휴대용 통신기 회선 너머로 자기들끼리 쑥덕대는 소리가 들린다.

-궤도 어디서 싸우냐고.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오로라는 보이는데….

빈우는 탄식했다. 아무리 저궤도라고 해도 강화하지 않은 맨눈의 인간이 볼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그 오로라가 위험하단 증거입니다. 궤도 상의 전투로 인한 전자기장의 여파로 생긴 겁니다. 부팀장, 먼저 갑니다.

빈우는 지휘를 아룹에게 맡기고 제트팩을 써서 날았다. 서둘러 간다면 어찌어찌 5분 내로 도착할 거리다.

-제가 가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니 그러니까 내가 왜 댁을 기다려야 하냐고. 댁 연방군이잖아? 여긴 녹색연맹이야. 댁들이 무슨 권리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지금 같은 비상상황에선 저희 군인들의 지시를 따라주셔야 합니다.

어떻게 설득이 먹히나 싶었는데 여기에 초를 치는 방송이 들려왔다.

-시민 여러분! 저는 이곳 웨이블의 시장인 폴 애머슨입니다.

침공 초기에 측근들과 궤도 엘리베이터로 도망치려 했던 양반이 뜬금없이 연설 방송을 시작했다. 아룹에게 얻어맞는 입은 좀 나아졌는지 아까처럼 발음이 새진 않는다.

-제가 대피령을 내렸던 것은 연방군의 협박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무력에 무릎을 꿇었던 저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빈우는 스핑크스를 꺼내 조준했다. 지금 시장이 있는 곳은 궤도 엘리베이터 터미널의 피난 구역이다. 워프 비스트들의 이빨과 발톱이라면 뚫기 힘들었겠지만, 플라스마 포라면 얘기가 다르다.

-녹색연맹의 시민들이여! 일어서십시오. 싸우십시오. 외침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으악!

피난 구역을 스쳐 지나간 플라스마의 위력은 충분했다. 개소리를 짖던 개새끼가 꼬리를 말고 자지러졌다.

-뭐지? 시장님이 왜 저러지?

시장의 연설이 끊기자 청년이 의아해한다. 거기에 빈우가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보십시오. 아직 바깥은 위험합니다. 어서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계십시오.

통신 너머로 술렁이는 기색이 느껴진다. 빈우는 이제 조금만 밀어붙이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저거야?

방금 청년의 말에 빈우는 소름이 쫙 돋았다.

-맞네, 저게 댁들이 말한 괴물이지?

-어서 안으로 도망쳐! 너희들이 싸울 상대가 아니야!

빈우는 황급히 소리쳤다.

워프 비스트는 붙어서만 공격할 수 있는 야수 같은 놈들이지만, 적어도 근접전에서는 연방의 주력 장갑복 어벤져와 싸울 수 있는 놈들이다. 강화하지 않은 민간인이 자치 행성의 무장을 가지고 어찌해볼 상대가 아니다.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러. 한 마리잖아. 우린 총도 있다고. 야, 저 새끼 이리로 뛴다. 포위해.

-이 새끼들아! 도망치라고!

빈우의 외침에 대한 대답으로 통신기 멀리서 총소리가 들린다. 괴수의 포효가 들린다. 이어서 인간의 비명이 들린다. 그리고 비명은 점점 더 가까워진다. 허둥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우성친다.

-뭐야, 총이 안 통, 아악! 살려줘!

-어서 안으로 들어가! 어서!

-밀지 마요! 밀지 마.

-문 닫아 문! 아악!

마치 소풍 가듯 설렁설렁 나왔던 청년들은 절명했다. 대피소의 문 근처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빈우는 최고속도로 날고 있지만, 아직 도착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들어왔다! 막아!

워프 비스트들이 대피소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빈우는 그저 이를 악물고 목표를 항해 나아갈 뿐이었다. 잠시 후, 대피소에 도착한 빈우는 무장을 들고 입구로 달려갔다. 피와 살점 같은 전투의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시신은 없었다.

빈우는 한 손엔 코일건을 나머지 손엔 진동 나이프를 들고, 센서로 내부를 스캔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끝나는 곳에 워프 비스트 한 놈이 있었다. 놈은 이쪽을 보지도 못하고 코일건에 머리가 터졌다. 코일건의 발사음에 안에서 놈들의 괴성이 들려온다.

“씨발.”

안의 광경을 본 빈우는 욕부터 뱉었다. 팔다리가 잘린 인간, 배가 갈려 내장을 쏟고 있는 인간, 워프 비스트에 잡혀 땅바닥에 짓이겨지는 인간. 죽은 사람은 얼마 없다. 모두 워프 비스트들에게 고문당하고 있었다.

문득 빈우는 티모시 1078의 몸에서 계단을 부수던 광경을 떠올렸다. 놈들은 계단의 마지막 부분을 만들 때 인간의 공포와 고통을 재료로 썼었다.

‘그것 때문에 고문을 하는 것인가.’

허나 다행히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사람은 없었다. 알탄훼아나와 했던 일이 성과를 보인 모양이다. 그때 빈우를 본 괴물들이 덤벼온다.

“덤벼봐, 이 새끼들아.”

빈우는 날아오른 놈에게 코일건을 쏘고, 달려오는 놈에게 나이프를 박아 넣었다. 앞에서 덤비는 놈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뒤에서 알짱대는 놈에겐 제트팩을 쏴 자빠뜨린다. 아직 대피소 안에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많아 마음껏 싸울 수 없다. 사격보다는 격투로 싸우는 것이 안전하다.

그렇게 빈우 홀로 워프 비스트들을 하나둘 잡아가고 있을 때 373 팀원들이 도착했다. 대피소 안으로 지원 온 그들 덕에 전투는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아무리 워프 비스트가 위험한 놈들이라고 해도 이쪽은 연방 최정예 특수부대원들이다. 상대가 될 리 없다.

-이게 마지막이군요.

아룹이 넘어져서 버둥대는 워프 비스트의 머리에 나이프를 꽂아 넣었다. 대피소 안으로 들어온 놈들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 살려줘….”

“아파, 아… 파.”

대피소 안의 시민들은 모두 몸 여기저기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다. 373 팀원들이 달려가 응급치료를 한다. 상처 부위의 접착제를 쏴 지혈을 하고, 벌어진 상처는 고정핀으로 꿰어놓는다. 이어서 위르겐이 치료용 마이크로 머신 주사기를 들었을 때, 그를 말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위르겐, 쓰지 마라.

팀장인 빈우의 말에 위르겐이 멈칫했다. 분명히 빈우는 작전에 들어가기 전, 말했었다. 치료용 마이크로 머신은 오직 팀원들을 위해서만 쓰고, 시민들에겐 쓰지 말라고. 이해할 수 있는 판단이다. 치료용 마이크로 머신으로 시민 열 명, 스무 명 치료해 봐야 전황에 변화는 없다. 그러니 장시간 게릴라전을 해야 하는 373 지상팀원에게 쓰는 것이 맞다.

-하지만 팀장님. 이제 막바지입니다. 워프 비스트들을 거의 정리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이분들을 치료해도 될 겁니다.

-안 돼, 아직 작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위급한 사람은 없다. 대피소의 응급물자로 충분히 대처 가능하다.

냉정한 빈우의 말에 위르겐은 작은 반항심이 들었다.

-팀장님은요? 팀장님도 아까 시민에게 마이크로 머신을 쓰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하지만 그건 인간이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빈우가 전에 들린 그 지하 창고에서도, 워프 비스트들은 인간을 모아 놓고 변이시키려 했다. 그렇게 다치고 겁에 질린 사람들에게 계단이 만들어졌고, 결국 하나둘씩 워프 비스트가 되어갔다. 거기서 빈우는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인간의 몸에 마이크로 머신을 주사해, 변화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보려 했었다. 하지만 그건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마이크로 머신 주사 한 방이면-

위르겐은 뭐라고 대답하려고 할 때, 누군가 거친 목소리로 그를 찍어 눌렀다.

-위르겐 이 새끼야, 닥쳐.

다름 아닌 부팀장 아룹이 으르렁거린 것이다. 언제나 온화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그가 이럴 정도면 위르겐이 실수해도 큰 실수를 했다는 의미다.

-앗, 죄송합니다. 팀장님.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 알아챈 위르겐이 급히 고개를 숙인다.

-아니다, 이 일이 빨리 끝나야지. 치료를 계속하자.

373 팀원은 대피소 안에 있던 물자로 어떻게든 치료를 계속해 나갔다.

* * *

-고작 이 정도인가?

비홀더 1전대장인 이 섬이 말했다. 그는 카이사르의 전투 정보실에 동료들과 함께 서 있었다. 마주하고 있는 자들은 13전대의 장갑 보병들과 13전대장인 아흐메드 후세인 대령이다.

-이 섬.

후세인 대령이 넋두리를 한다. 같은 지구제국의 병사이고, 같은 지구제국의 장갑복이다. 그러나 이 섬은 격이 틀렸다. 그와 맞선 13전대원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그가 이끄는 1전대원들에게 13전대원들은 패배만 거듭했다. 과연 황제의 첫 번째 검이라 불릴만한 자였다.

잠시나마 백중세였던 함대전조차도 1전대의 우위로 돌아갔다.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카이사르급 전함들은 오히려 그리폰급 돌격 순양함에게 밀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1전대는 카이사르급의 약점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함대전도, 장갑 보병전도 모두 1전대의 승리로 끝나가고 있었다.

-어리석은 자들아!

후세인 전대장이 외쳤다.

-우리가 저 너머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아는가. 왜 샤다이들이 그 계단을 이용해 다른 우주로 떠났을까, 그리고 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까.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냔 말이다.

그의 질문에 답하듯 섬은 걸어 나왔다. 한걸음, 또 천천히 한걸음. 그 모습을 본 후세인 대령이 섬을 바라보며 다음 말을 이으려 했다. 하지만 마음만 그랬을 뿐이다. 이 섬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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