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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62화 (160/301)

162화

후세인은 목을 향해 바로 날아오는 검을 막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양 진영이 다시 충돌했다.

“반역자들에게 죽음을!”

1전대원들이 외치며 돌격한다.

“어리석은 자들에게 계몽을!”

13전대원들이 외치며 막아선다.

어썰트급 장갑복들끼리 난전이 벌어졌다. 엄청난 힘, 놀라운 빠르기, 아득한 전투경험. 이런 지구 제국의 전사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자는 같은 지구 제국의 전사뿐이다.

중성미자가 응집된 검끼리 격돌한다. 무엇이든 통과하는 중성미자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같은 간섭력을 가진 중성미자 검뿐이다.

가속된 양성자가 총구에서 뿜어져 나간다. 물질을 붕괴시키는 이 마탄은 어썰트급 장갑복 표면에 발린 정지장은 돼야 막을 수 있다.

백 년 동안 우주를 떠돌며, 수많은 외계종족을 척살했던 역전의 용사들이 죽어간다. 인류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맹세가 더 큰 적의에 짓밟힌다.

“인류를 위하여!”

제국의 전사로 했던 맹세가 양 진영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다.

“평화를 위하여!”

루비콘 라인을 건너기 전 황제 앞에서 했던 맹세가 전투정보실 안을 크게 울린다.

“모두 죽여라!”

하나의 함성 아래에 전투는 한층 뜨겁게 달아올랐고, 이에 따라가지 못한 낙오자들이 하나둘씩 바닥에 쓰러진다.

“전대장님! 물러서십시오!”

이 섬의 검에 후세인 전대장의 오른팔이 잘려나간다. 주춤하는 그의 옆으로 부관이 달려 나와 막았다.

“이 섬! 내가 상대하마.”

그런 부관의 어깨를 후세인 전대장이 잡아 말린다.

“그만, 자네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야.”

이 섬은 공격을 멈추고 그런 둘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훌륭한 부관이군. 잠시나마 상관의 목숨을 연명시켰으니.”

수치심으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부관을 뒤로하고 후세인 전대장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왼손에 들린 검이 투명하게 일렁이며 이 섬의 육체를 분해하려 덤벼든다. 그러나 이미 양측의 기세는 명확하게 갈렸다. 지금 섬은 왼손으로 검을 들고 자신의 적과 놀아주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후세인 전대장도 모를 리 없는 굴욕이다.

“네, 네놈이!”

격분해서 자세가 흐트러진 13전대장에게 검 대신 주먹이 날아들었다. 바닥을 구른 후세인 전대장은 그제야 자신이 마지막으로 쓰러진 자임을 깨달았다. 모두 죽은 것이다. 방금까지 살아있던 부관도 앞뒤로 공격을 받아 죽어가고 있다. 백 년간 같이 싸워왔던 전우들이 자신의 의무에서 벗어난 존재가 된 것임을 본 그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대답해.”

위에서 내려다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싸움을 끝낸 이 섬의 눈은 지루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13 전대장. 정말로 그 안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자들과 마주친 적이 있는가?”

아흐메드 후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누운 옆으로는 단말마가 들려온다. 1전대원들이 남은 13전대원들의 숨을 끊어놓고 있었다.

“황제께서 금한 공간에서 그대는 무엇을 보았는가?”

마침내 13전대의 마지막 생존자가 된 후세인 전대장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1전대장인 이 섬을 마주 보며 말문을 열었다.

“그래, 우리는 놈들을 쫓아갔다. 그러나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었지. 문 너머로는 육체를 가지고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놈들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을 보았다. 고대의 존재들이 본격적으로 돌아오려는 것이다.”

후세인 전대장은 주변의 1전대원을 돌아보며 외치기 시작했다.

“고대 샤다이는 육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놈들은 인간을 바꾼다. 인류를 변이시킨단 말이다. 이것을 막아야 해.”

그러나 그의 열변에 1전대원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도 미봉책에 불과해. 비를 막는 우산? 좋아. 집? 좋아. 하지만 이래선 안 된다. 구름 자체를 없애야 한단 말이다. 그래, 황제께서 하신 것처럼.”

말을 마치고 뜨거워진 후세인을 이섬이 차갑게 노려본다. 그리고 말했다.

“하지만 황제는 지금 안 계시지.”

정곡을 찌른 말에 후세인 전대장이 움찔한다.

“…맞다. 그래서 황제가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황제가.”

“역시, 그것이 지구로 돌아가려는 목적이었군.”

고대 샤다이가 돌아온다니, 인류를 구한다니, 다 포장이고 헛소리였다. 목적은 하나. 새로운 황제의 옹립이었다.

실망스러운 결과에 납득한 이 섬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는 예측했던 바였다. 흥미를 잃은 그는 명령을 하나 내렸다.

“데려와.”

그의 부름에 13전대의 부관인 낭소로호 중위가 여인 한 명을 끌고 전투정보실로 들어왔다.

“안나 닐센 함장님을 모셔왔습니다.”

거대한 어썰트급 장갑복의 절반이 조금 넘는 키의 그녀는 우악스러운 팔에 잡혀 휘청거리고 있었다.

“함장님!”

후세인 전대장이 13전대의 기함인 카이사르의 함장에게로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그의 발보다 섬의 손이 더 빨랐다. 머리부터 내리꽂힌 검은 장갑을 통과해 그의 몸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 검극의 중성미자들이 응집과 산란을 반복하며 물질에 간섭을 시작했다. 아흐메드 후세인의 몸은 투명해진다 싶더니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어느 것 하나 이루질 못했군.”

섬은 한때 전우였던 자를 배웅했다.

그 모습을 카이사르의 함장은 멍하니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초점 없는 눈에 헤벌어진 입은 그녀가 제정신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흠, 루비콘 라인의 안쪽을 너무 돌아다닌 결과이려나.”

이 섬은 안나를 조심스레 받아들곤 그녀의 얼굴을 살펴봤다.

“전대장.”

그때 13전대의 함장인 샹 메이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모습도 이곳의 전투정보실에 비치고 있었다.

“예, 함장님.”

이 섬이 안나를 내려놓고 공손히 대답한다. 주변의 1전대원들도 모두 무릎을 꿇어 그녀를 맞이한다.

“제 자매와 잠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메이화는 슬픈 눈으로 기능이 마비되어가는 자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 모셔가겠습니다.”

“아뇨. 여기서 하겠어요.”

“알겠습니다. 즉시 치우겠습니다.”

1전대원들은 바닥을 더럽힌 적과 전우의 시체를 치우며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나간 이 섬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곤 전투정보실의 문을 닫았다.

숙인 고개를 들었을 때, 섬은 부관을 보고 있었다.

“낭소로호, 마무리는 어떻게 되어가나?”

“모든 카이사르급들은 격침되었습니다. 그리고 심심한 전대원들은 나가서 샤다이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요시오도 갔겠군.”

“이를 말이겠습니까.”

오랜 전우 둘은 서로 쓴웃음을 지으며 바깥의 광경을 보았다. 웅장한 자태를 자랑했던 카이사르급 전함들과 그리폰급 순양함들이 격침되어 있었다. 그 대가는 꽤 컸다. 아군 순양함들도 작지 않은 피해를 입은 것이다.

“이만하길 다행이군.”

전대장이 한숨 돌리며 안도했다.

“13전대가 서둘러준 덕분이죠.”

부관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원래대로라면 그리폰급 순양함은 카이사르급 전함의 적수가 되질 못 한다. 허나 오늘 만났던 카이사르급은 얼치기에다 절름발이였다. 서두른답시고 함장들의 총의를 거치지 않고 마구잡이로 만든, 칠삭둥이 결과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전대장과 부관이 앞으로의 일에 대해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메이화 함장이 나왔다.

“함장님, 이야기는 다 나누셨습니까?”

섬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네. 마지막을 배웅했어요.”

그렇게 대답한 메이화는 궤도 상의 학살극으로 눈을 돌렸다. 샤다이들끼리 벌이던 소꿉놀이는 망나니의 칼 아래 잘게 다져지고 있었다. 멱살 잡고 티격태격 싸우던 놈들의 머리통이 사이좋게 날아간다. 그 무리 안에서 눈에 익은 전투함이 한 척 보인다. 집정관의 전함이다. 그것을 보며 메이화가 반쯤 혼잣말로 질문했다.

“어머나, 저 배짱. 도망가지도 않고 있네요. 체메트디오프는 대체 뭘 꾸미는 걸까요?”

“동족들의 죽음이겠죠. 놈은 자격 없는 자가 혈통만으로 동족이 되었다는 사실을 경멸했으니까 말입니다. 자세한 꿍꿍이는 본인의 입으로 들으시겠습니까? 그렇군, 아비라면 혹시 딸이 어디 있는지 알지 않겠습니까?”

이 섬이 대답했다. 체메트디오프는 지금까지 그의 손에 일곱 번 죽었다가 여덟 번 되살아난 적이 있다. 이는 가면 갈수록 쉬워졌으며, 한층 더 강해진 현재의 1전대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놈을 잡아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메이화는 그다지 내켜 하지 않았다.

“글쎄요. 설령 그가 딸의 행방을 안다 한들 그것을 말할까요?”

“하긴….”

그리고 절묘한 타이밍에 요시오의 통신이 들어왔다.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민망해지던 순간이었다.

-전대장님, 저 지금 호민관 알탄훼아나의 배입니다.

“뭣이!”

놀란 이 섬의 눈앞에 요시오가 보는 영상이 펼쳐진다. 틀림없이 호민관이다. 호위병 무리 속의 그녀는 분노와 공포에 질려있었다.

-곁가지가 좀 있는데 어쩔까요?

“그녀의 혓바닥을 부드럽게 할 몇 놈은 남겨서 데려와.”

-옙.

통신이 끊기고 이 섬의 눈에 다시 생기가 돌아온다. 심심해서 출격했던 요시오 녀석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자를 우연히 찾아낸 것이다. 옆에서 낭소로호가 ‘소 뒷걸음치다 쥐잡기’라고 하면서 박수를 치고 있다.

“그렇다면 높은 확률로 김빈우란 자도 가까이 있겠군요. 이건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메이화의 말에 섬도 고개를 끄덕인다.

“네, 오늘 한꺼번에 처리해버리죠.”

디안머에선 거하게 헛다리 짚었지만, 이번엔 마치 그걸 만회하듯 얻어걸렸으니 기회를 날릴 수 없는 노릇이다.

그때 옆에서 낭소로호가 질문했다.

“그건 그렇고, 김빈우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그 상부에 바로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닙니까? 연방이 그 정도는 가르쳐 주지 싶은데 말입니다.”

“중위,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연방이 아는 김빈우가 아니에요. 알탄훼아나가 선택의 기로에서 보았던 그의 반응입니다. 샤다이 호민관의 선택에 김빈우란 자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것이 중요한 겁니다.”

샤다이가 선택의 기로에서 보았던 것은 자신이 고르지 않았던 다른 길의 도입부다. 비록 짧은 것이겠지만 이런 것들이 모이고 쌓이면 미래를 추측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메이화의 설명에 낭소로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하, 과연. 그렇다면 김빈우가 보았던 알탄훼아나의 반응 또한 중요하겠군요.”

“물론이에요. 하지만 이것은 결코 연방이 알아선 안 됩니다. 되돌아온 샤다이들이 연방의 상층부에 암약하는 이상, 이번 일은 되도록 비밀리에 이뤄져야 합니다. 그리고 전대장.”

메이화의 말에 머리를 조아린 섬이 명을 기다린다.

“말씀하십시오.”

“눈엣가시인 체메트디오프를 치우세요. 오늘의 일은 보는 눈이 적을수록 좋아요.”

“알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샤다이 함대 속으로 거대한 중력 닻이 내리꽂혔고, 전대장과 부하들이 집정관의 전함으로 날아갔다.

* * *

“펠훼단!”

알탄훼아나가 비명을 질렀다.

“호민관, 도망. 치십.”

두 동강이 난 호위병의 수장은 마지막 말을 잇지 못했다. 넘어진 얼굴을 장갑복의 발이 짓이긴 것이다.

“호민관을 지켜라.”

호민관의 호위병들은 지구 제국의 장갑 보병 노노무라 요시오 한 명을 상대로 시간을 끌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노리개가 되어서.

“헨칼라!”

가장 어리지만, 그만큼 겁이 없었던 젊은 호위병이 달려나갔다. 하지만 그는 순식간에 살점 조각이 되어 벽에 달라붙었다.

“뭐래, 좆병신이.”

요시오가 손을 털며 앞으로 걸어갔다. 심심풀이로 나선 전투에서 뜻하지 않게 월척은 잡았다는 사실이 그를 미소 짓게 했다.

“야, 너. 내 말 알아듣지?”

요시오는 알탄훼아나를 보면서 사로잡은 호위병의 팔다리를 하나씩 잡아 뜯었다. 마지막으로 발버둥 치는 샤다이의 머리를 똑, 하고 뽑아낸 그는 좌우에서 덤벼드는 호위병들의 어깨를 잡아 으깼다.

“우리 대장님이 너한테 궁금한 게 있대. 대답만 하면 죽이진… 음,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땐 내가 고통 없이 보내줄게.”

알탄훼아나는 억울하고 원통했다. 동족의 미래를 위해 했던 일이 동족상잔의 빌미가 되어버렸다. 이를 막으려 열심히 노력했건만, 갑자기 지구 제국의 함대가 나타나 동족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시쳇더미에 자신과 부하들마저 들어갈 예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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