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빈우는 웨이블의 시가지를 걷고 있다. 주변에 워프 비스트의 움직임은 없어 보인다.
-부팀장, 그쪽은 어때요?
-조용합니다.
373팀의 무인기들도 넓게 퍼져 수색을 진행하고 있지만 더 이상 전투의 기색은 없다.
궤도 상의 전투도 마무리되었다. 비홀더 전대끼리의 전투가 1전대의 승리로 끝나자마자 학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내전 중인 샤다이 함대는 물론이고 집정관 체메트디오프의 함대, 호민관 알탄훼아나의 함대까지 1전대의 공격을 받았다. 다른 함대들은 모두 포격에 격침되었지만, 집정관과 호민관의 배는 비홀더 전대의 장갑 보병들이 직접 침투했다. 아마도 생포하려는 것이겠지.
-동 함장님. 지상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워프 비스트의 소탕과 뒤처리를 위해 지원을 요청합니다만, 가능하겠습니까?
-알겠소. 지금 곧 편성해서 내려보내지.
빈우는 궤도의 42 전단 분함대에 지상 병력 지원을 요청했다. 곳곳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워프 비스트를 소탕하고, 부상자 치료 및 사후 처리를 위해서다. 어차피 빈우와 373팀은 42 전단으로 합류할 예정이었고, 궤도의 큰불은 꺼진 참이라 요청은 쉬이 받아들여졌다.
“어이쿠, 오는구나.”
빈우는 헬멧을 벗고 마카롱을 씹으며 지상으로 강하하는 그라디우스들을 보았다. 안에 든 무인기들은 전부 어벤져이고, AI 부장인 펑센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빈우는 그에게 뉴 소노라와 웨이블의 대략적인 상황에 대해 알려주었다.
-알겠습니다. 흥분한 시민들에겐 되도록 반응하지 말란 말씀이군요.
-그래. 웨이블은 자치 행성에다가 반 연방 정서가 강한 곳이야. 시민들의 반응에 일일이 대응하지 말고 그냥 할 일이나 해.
자치 행성들은 강한 애향심만큼 배타적이다. 게다가 반 연방 세력이 장악한 웨이블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지만 어쩌겠는가. 빈우 자신이 말한 것처럼 자기 할 일이나 묵묵히 하는 수밖에.
그렇게 제 할 일을 하는 빈우는 지금 42 전단의 장갑 보병과 그라디우스, 그리고 정찰 드론들이 보내준 정보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제 워프 비스트의 꼬리도 안 보인다. 아까의 전투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이 정보를 팀원들에게 공유하자, 역전의 용사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기대어 선다.
-에고고, 그럼 워프 비스트는 전멸인가요?
파트리샤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열두 시간은 족히 넘게 쉬지 않고 싸워왔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렇겠지.”
빈우는 그렇게 대답하곤 먹던 마카롱을 마저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극상의 ‘가짜’ 맛이 터져 입안 곳곳에 흘러넘친다. 이게 눈앞의 피폐한 풍경과 어우러지자 오히려 토악질이 나올 지경이다. 군데군데 전투의 흔적이 보이는 시가지에서 느끼는 고급 레스트랑의 맛은 언제나 그렇듯 변태적이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사람 연료를 씹어 삼킨 빈우는 현재의 상황과 이 정보를 조합해 웨이블의 시장에게도 넘겨주었다. 사건이 일단락된 지금은 적절한 통치권자인 그에게 이곳의 행정권이 돌아가야 한다.
-자, 무인기들이 정리하면 철수한다.
애초에 373 지상팀은 빈우가 수사를 하러 몰래 들어왔다가, 워프 비스트들의 공격에 갑작스레 출동한 것에 불과하다. 뒤처리는 뒤에 올 다른 팀들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잠시 동안 지상팀과 궤도의 함대가 통신을 하고 있을 때, 빈우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우리가, 녹색 연맹이 이겨냈습니다.
폴 애머슨. 웨이블의 시장이란 작자가 기어 나와서 연설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지의 롱소드가 보내준 영상을 보니, 아예 임시로 연단까지 마련해 놓고 떠들어 대고 있었다. 뒤에 있는 전광판에는 워프 비스트의 시신들이 재생된다.
-외계의 침략도 우리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연방의 협박도 우릴 꺾을 수 없었습니다.
-팀장님, 저 양반 어떻게 할까요?
그의 입에 치과 치료를 해줬던 아룹이 지친 목소리로 물어본다.
-내버려 두죠. 다 끝났으니 챙겨서 뜹시다.
빈우도 지쳤다. 마카롱으로 채울 수 있는 육체의 피로가 아니었다. 그리고 피로를 가중시키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온다.
-지금 우리 땅에 내려온 연방군을 배척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처음에는 이 땅을 찬탈하기 위해 왔을지는 모르나, 지금은 저의 명에 봉사하는 충직한 종입니다.
-아오, 저 씹새끼를 내 그냥.
위르겐은 분통이 터지는지 씩씩대고 있었다. 아까는 협박으로 자신을 무릎 꿇게 만든 적이라고 헛소리를 씨부려 대더니 이제는 자신의 종이란다.
-키야, 대가리 잘 돌아가네. 이거 반만이라도 아까 대처하시지 그랬어.
파트리샤가 싸늘하게 웃으며 이죽댄다. 저 시장은 373이나 연방군이 항의하지 않으리란 생각에 저렇게 마구 말을 던지는 것이다. 하긴 저쪽은 자치 행성의 시장, 이쪽은 연방의 군인. 사태가 정리되는 이 마당에선 뭐라고 말할 건덕지가 없다.
-팀장님, 저거 그냥 놔둘 겁니까?
-뭐 어쩌라고 인마. 우리가 무슨 부귀영화 누리자고 여기 온 건 아니잖아.
빈우는 투덜대는 위르겐을 달래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다. 저들을 구했으면 된 것이다. 말마따나 딱히 영광이나 포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다.
-어머나 세상에~ 사람들 다 기어 나오는데요?
파트리샤의 탄식대로 대피소의 사람들이 시장의 연설에 감화되어 하나둘씩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런 사실에 고무된 듯, 애머슨 시장의 목소리가 점차 커진다.
-시민 여러분! 콘스탄틴에 요제프 클림트가 있었다면, 우리 녹색 연맹에는 어린 영웅 티모시가 있습니다.
이 말에 빈우의 발걸음이 뚝 하고 멈췄다.
요제프 클림트, 콘스탄틴의 대피에서 홀로 남겨진 고아다. 결국 목타하의 손에 떨어져 산채로 해부당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연방의 프로파간다에 이용되었다.
티모시 1078, 장애를 가진 고아였다. 여동생과 둘이서 힘들게 살다가 샤다이의 귀환을 막기 위해 스스로 희생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지금부터 포장되기 시작한다.
-나 잠깐 갔다 올게.
-아니 아니, 기다려보세요. 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저 괜찮다굽쇼.
빈우의 말에 위르겐이 질겁해서 말린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자신의 팀장이 뚜껑 열리면 무슨 짓을 하는지 질리게 봐온 것이다.
-그냥 말만 좀 하고 올게.
-에헤이, 가지 말라니까.
파트리샤가 후다닥 달려오고, 아룹도 이쪽으로 날아온다. 하지만 빈우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먼저 제트팩을 써서 날아올랐다.
-여기서 기다려.
메마른 그의 말에 팀원들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빈우가 도착한 궤도 엘리베이터의 터미널에는 사람들이 서서히 모이고 있는 중이었다. 이들은 굴러들어온 생존과 승리를 마치 자신이 일군 것인 양 착각하고 있었다. 결집하고 있던 웨이블의 시민들은 하늘에서 착지한 연방의 장갑복을 보고 놀라서 좌우로 흩어졌다.
“연방군이다.”
“아, 나 저 사람 알아요. 아까 우릴 구해줬어요.”
“아니에요. 우리 스님 머리를 때린 사람인 것 같은데?”
빈우는 웅성거리는 대중을 지나 애머슨 시장이 열변을 토해내고 있는 연단 위로 올라갔다. 시장은 갑자기 나타난 빈우를 보고 놀라긴 했지만,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다시 연설을 시작했다.
“보십시오, 저의 부름에 달려온 연방의 군인을!”
시장의 말에 시민들이 안심하고 환호한다.
“이들은 더 이상 침략자가 아닙니다. 저의 명령에 따르는 연방의 군인이자 녹색 연맹의 영웅입니다. 저들이 저의 명령에 따라 여러분을 구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애머슨은 마이크를 빈우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작게 속닥거렸다.
“대충 말이나 좀 맞춰주시오.”
그러나 빈우는 말없이 그저 이 정치꾼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길어질 기미가 보이자, 애머슨 시장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아까 아룹이 원만한 사태 해결을 위해 해준 치과 치료일 것이다. 즉 네놈이 한 짓이 있으니 협력하란 의미다. 아니면 여기저기 나불대기 시작할 테니.
그래도 부팀장인 아룹은 여기서 자신의 노련함을 잔뜩 뽐냈었다. 정확하게 충치만을 손가락으로 잡아 발치했고, 지혈도 확실히 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취를 할 수 없었지만, 시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 덕에 대피도 늦게나마 시작할 수 있었다.
치료를 받았던 그 입이 비굴한 미소와 함께 다시 움직인다.
“자, 영웅이여. 마이크를 잡고, 오늘 제 지시에 따라 웨이블을 구한 소감 한 말씀….”
“내가 영웅이라고? 난 그냥 씹새끼요.”
빈우의 막말에 연단 위가 조용해 졌다.
“그래. 씹새끼지. 왜인지 알아? 내가 처음에 당신 대가리부터 깨부쉈으면 이 지랄은 안 났어. 아니, 궤도 엘리베이터 타고 도망가게 내버려 둘걸 그랬지. 그랬다면 댁은 위에서 기다리는 괴물들 아가리로 골인했을 거고, 대피는 빨라졌을 테니까.”
그러면서 빈우는 시장에게 성큼 다가섰다.
“여기 있는 이 씹새끼가 당신을 살려두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이가 죽고 다쳤을까? 댁의 그 헛소리에 몇 명이 우왕좌왕하다가 길을 잃고 죽었을까? 어디 한 번 씨부려 보시지.”
빈우의 흉흉한 기색에 사람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바로 앞의 애머슨 시장은 연달아 뒷걸음친다. 그가 뭐라 말을 못 하고 입만 벙긋거릴 때, 뒤에서 측근이 달려와 시장에게 귓속말을 했다. 빈우에게도 다 들리는-기도 안 차는-귓속말이다. 그러자 시장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감돈다.
-여러분, 이곳에 또 한 분. 이 웨이블을 구한 또 한 분의 영웅을 모시겠습니다. 바로 티모시 고아원의 원장, 티모시 핸튼 씨를 소개합니다.
저기서 웨이블 경찰들의 인도를 받아 연단으로 오는 노인이 보인다. 아마 그가 티모시 핸튼이겠지. 노인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옆에 있던 경찰이 뭐라고 말하자 손가락을 들어 빈우를 가리켰다. 그리고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저기, 저 사람이오. 저 사람이 제 아기를 죽였습니다.”
고아원 원장의 말에 주변에서 비명과 탄식이 들려온다.
“세상에, 내 그럴 줄 알았어.”
“아니, 무슨 소리예요. 연방군이 우릴 구해줬잖아요.”
“바보야, 그게 다 꿍꿍이가 있는 거라고.”
“그 괴물들이 사실 연방의 생체병기가 아니었을까? 저놈들은 그 뒤처리를 하러 온, 그런 비밀부대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도 입막음 당하는 거야?”
혼란스러워하며 웅성거리는 사람들. 그때 전광판에 새로운 영상이 보인다. 티모시 1078이 플라스마에 타들어 가는, 고통스럽게 죽어가던 당시의 대피소 내부 영상이다. 빈우가 티모시 1078을 잡고 있고, 알탄훼아나가 플라스마를 뽑아내 아이의 몸속으로 밀어 넣는다.
어딘가에서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세상에, 사람을, 아이를 산채로.”
“저 괴물 같은 새끼, 외계인과 같은 편이었어.”
시민들이 흥분해서 들고 일어난다. 그런 대중을 시장이 나서서 진정시킨다.
“진정하십시오. 보시다시피 그는 잠시나마 우리 녹색 연맹을 적대한 자입니다. 허나 지금은 저의 설득에 감복해 우리의 부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저 소년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던 겁니다. 저 아이가 목숨을 바쳐 우리 녹색 연맹의 아름다운 이상을 가르쳐 준 겁니다. 이 소년 영웅은 저 폴 애머슨이 후원하는 티모시 고아원의….”
긴급 시에는 어벙했지만 이런 수완 하나는 기막힌 사람이다.
하지만 빈우는 전부 다 무시하고 연단을 내려가 원장의 앞으로 걸어갔다. 한 대 치려고 나왔던 시민들은 실제 장갑복을 보고선 주춤주춤 물러난다. 경찰과 원장은 우물쭈물 물러나려고 했지만, 빈우가 먼저 그 앞에 섰다.
그리고 빈우가 질문했다.
“저 때 죽은 아이의 이름이 뭡니까?”
질문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는지 원장이 버벅거린다.
“어어, 이름? 티모시… 으음.”
고아원장 티모시 핸튼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모르는 건지, 아니면 숫자를 말하기 껄끄러운 것인지 입만 우물거린다. 빈우가 재차 질문한다.
“죽은 아이의 동생 이름을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원장이 가슴을 잡고 비틀거린다.
“허억, 가슴이, 숨을 쉴 수가.”
“지금 다친 사람에게 무, 무슨 짓이요!”
옆의 경찰이 원장을 부축한다. 노인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지만 다 쇼다. 빈우의 센서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나온다.
“그 아이, 티모시 1079는 지금 어디 있소?”
메마른 빈우의 질문에 노인은 정신을 잃은 척 눈을 감지만, 다시 부릅떴다. 비명과 함께.
“흐아아아!”
“티모시 1079는 지금 어딨냐고!”
치료용 마이크로 머신 주사가 원장의 가슴에 꽂히고, 마이크로 머신이 몸 안으로 주입된다.
마이크로 머신은 주사기도 굵고, 크기도 커서 주사 시의 이물감이 꽤나 불쾌하다. 솔직히 말해서 민간인이 마취 없이 맞기엔 존나게 아프다.
“어거어어어!”
콧물과 침을 흘리는 원장, 그 옆에서 눈물과 오줌을 흘리는 경찰관들.
이것도 저것도 다 쇼다. 웨이블의 시민들에겐 빈우가 원장의 가슴을 송곳으로 쑤시는 것으로 보일 테고, 나중에 만날 연방의 사후조사관에겐 이것을 현장의 판단에 의한 긴급의료 행위로 ‘이해’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