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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64화 (162/301)

164화

이 모습을 본 뉴 소노라의, 웨이블의 시민들은 대번에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나가라! 연방은 우리 땅에서 꺼져라!”

“네놈들 도움이 없어도 우린 우리가 지킨다!”

“무슨 소리야. 저 사람들이 우리 지켜준다고 하루 종일 싸운 거 잊어버렸어?”

“그걸 믿어요? 사람들을 지하실에 밀어 넣고 수작질 부린 게 분명하잖아요.”

“시민 여러분, 진정하세요. 저자는 웨이블의 시장인 저의….”

갑론을박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간에 빈우는 원장을 압박했다. 다음 주사를 꺼내어 말없이 그의 눈앞에 들이대자, 입에서 침과 함께 대답에 흘러나온다.

“몰라요, 모릅니다아.”

대개 진실은 피똥과 함께 나온다는 것을 아는 빈우는 이게 사실임을 간파했다. 아무래도 이 노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장의 프로파간다를 위해 끌려온 것 같다. 티모시 1079는 아직 그 여자와 함께 대피소에 있을지도 모르고, 이미 시장의 손에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아기는 어디 있을까.’

이제 걸음마를 하고, 말은 고작 한두 마디 할 나이다. 눈앞에서 가족을 잃고 지금 어디에 있을까. 빈우는 약속을 했다. 자신의 손안에서 죽은 그 아이의 오빠에게, 동생을 행복하게 살게 해주마고 약속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걸까.’

그 약속을 지키려면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티모시 1079를 구하기 위해선 빈우는 빨리 모함인 블랙 랜스로 돌아가야 한다. 그다음 정상적인 입양 절차를 거치고 통보만 하면 될 일이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의 멱살 잡고 주사기를 쑤실 일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빈우는 눈앞에서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안다. 바로 자신이 그랬으니까.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그 아기를 구하고 싶었다.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정의감으로.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른 빈우는 픽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불현듯 자신이 군에 입대한 이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연방을 구하기 위해? 택도 없다. 누나 같던 아나스타샤를 덮친 충격으로? 핑계다. 눈앞에서 엄마가 죽어가도 아무것도 못 했던 꼬마는 과연 무엇에 떠밀려 도망쳤을까.

‘조잡한 정의감과 열등감, 그리고 후회.’

빈우는 그날 이후 변하지 않은 자신을 다시금 느끼고 있다. 각종 군사 훈련을 받은 군인은 창고 안에서 울던 아이를 구하지 못했다. 고도의 신체 강화를 받은 살인 병기는, 워프 비스트로 변하던 아이를 자기 손으로 죽여야 했다. 군사정보국에 들어간 주제에, 자신을 그렇게나 따르던 피에르 라캉의 생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저 군에 들어가 강한 육체와 강한 정신을 가지면 변할 거라 착각했었지.’

사람은 성장하고 교육받으며 변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빈우는 그런 자신의 변하지 않는 부분을 혐오했다. 바꾸고 싶어 했으나 결코 바뀌지 않는 자신의 과거 모습은 지금도 그대로였다. 그것은 언제나 빈우를 얽매어왔다.

바로 지금 노인의 멱살을 잡고 있는 빈우가 그러하다. 티모시 1079란 일면식도 없던 아기를 구하기 위해 난리를 피우는 모습이, 과연 군사정보국의 소령이 할 짓일까?

아니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가 정의라고 믿는 유치한 발악이다. 과거에 하지 못했던 행동에 대한 반동이고 보상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보고도 멍하니 서 있던 여섯 살짜리 겁쟁이 애새끼가 커진들, 위험에 처한 연방에 뭘 할 수 있을까. 그저 겁에 질려 질질 짜겠지.’

빈우는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방법을 찾아냈다.

‘그 방법은….’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였다. 뭔가 이상하다. 강렬한 기시감이 빈우를 감싼다.

‘이건, 트리니티 패턴!’

지금 빈우의 머릿속에서 트리니티 패턴이 풀리려 하고 있다. 두뇌 속에서 생성된 전기신호들의 파장이 겹치고 겹쳐 하나의 열쇠가 되고, 그것이 두뇌 칩으로 밀려들어 간다. 이제 마지막 하나다. 마지막 하나의 열쇠가 들어가면 트리니티 패턴은 풀리게 된다.

그러나 그 비밀은 당사자인 빈우는 볼 수 없다. 기록 자체가 정보국에 의해 묶여 있는 것이다. 트리니티 패턴의 비밀이 풀려도, 기록의 원래 주인인 빈우는 열람조차 못 하고 군사정보국의 손에 바로 넘어가게 된다.

‘이제 곧 풀릴 것이다. 한 번이나 두 번째에.’

좀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빈우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에게 성난 군중들이 덤벼들고 있다. 그러나 불도저에 덤비는 개미 꼴들이다.

“그만 하세요. 때리지 마세요!”

애머슨 시장이 사색이 되어 말린다. 빈우가 손이라도 한번 휘두르면 주변은 토마토케첩이 되리라.

“미쳤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몇몇 사람들이 폭도들을 말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작은 불씨는 이제 화재가 되어 빈우를 덮치고 있다.

빈우 주변의 사람들은 저마다 장갑 보병을 걷어차고 때린다. 그리고 부러진 자신의 손과 발을 감싸고 바닥을 구른다. 파이프를 들고 친들, 칼로 얼굴을 찌른들 다 의미 없는 행동이다. 자신만의 정의감에 떠밀려 행동하는 이들은 얼핏 빈우 자신의 모습과도 같아 보인다. 과거 연방 사관학교를 들어갔을 때의 모습 말이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빈우의 말에 사람들이 딱 굳어버렸다.

“약간 오해가 있었던 것 같군요. 원장님의 치료는 다 끝났습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빈우는 몸을 돌려 연단 위로 다시 올라갔다.

“티모시 1079는 제가 입양하겠습니다. 필요한 서류는 나중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시장에게 통보한 그는 제트팩을 써서 날아올랐다. 그리고 지상팀을 회수하기 위해 온 그라디우스에 합류했다. 팀원들이 뭐라고 하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쉬고 싶었다. 웃고 있는 아나스타샤의 곁에 누워 그녀와 함께 자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나 빈우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팀장님, 비홀더 전대에서 승함 허가를 원하고 있습니다.

오르 함장의 말에 빈우는 긴장했다. 궤도 상에서 그렇게 깽판을 친 놈들이 태스크 포스 373에는 무슨 볼일이 있다고 찾아온 것일까.

-알겠습니다. 올라가는 대로 맞이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전해 주십시오.

이런 까닭으로, 빈우는 블랙 랜스에 올라가자마자 손님맞이를 해야 했다. 지상팀을 태운 그라디우스가 블랙 랜스에 착함하자 그 뒤를 이어 찝찝한 손님이 비집고 들어왔다.

“만나서 반갑소. 본관은 비홀더 1전대의 전대장인 이 섬 준위요.”

거대한 지구제국 장갑복이 블랙 랜스의 격납고에 내려온다. 태스크 포스 373 에서 가장 체구가 큰사람이라면 부팀장인 아룹 라마누잔이다. 212cm인 그의 키는 장갑복을 착용하면 250cm까지 커진다. 그러나 눈앞의 이 섬은 그런 아룹조차 한참 아래로 내려다보는 거구다. 이게 군용으로 개조한 연방의 군인과 애초에 군용으로 만들어진 제국 군인의 차이다.

이 섬은 사뭇 긴장한 373 팀원들을 온화한 표정으로 둘러보았다.

“대화를 몇 마디 하러 왔소만, 괜찮겠소?”

말하자고 해놓고서 디안머에서 깽판을 친 전력이 있는 놈들이니 괜찮을 리가 있나. 하지만 빈우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며 대답했다.

“대화? 못할 것도 없지요. 일단 자리로 안내하지요.”

“아, 번거롭게 할 생각은 없소. 이 자리에서 해도 상관없지 않소?”

비홀더 1전대장이 자리를 옮기지도 않고 격납고에서 선 채로 바로 얘기하자고 한다. 빈우는 이게 무슨 꿍꿍이일까, 하고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딱히 집히는 것은 없었고, 그래서 나온 말 또한 단순했다.

“그럽시다. 뭐 궁금한 거라도 있습니까?”

빈우가 알기로 섬은 디안머의 징수 함대에 그곳을 지났던 연방군 함선의 점프 기록을 요구했었다고 한다. 그 직전에 라출노그로 가기 위해 디안머 점프 게이트를 쓴 적이 있는 태스크 포스 373으로선 조금 찜찜하다.

“이 자를 아시오?”

그러나 섬이 상자에서 꺼낸 것은 절단면이 너덜너덜한 머리였다. 빈우도 알고 있는 샤다이의 머리다. 빈우는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질문했다.

“대답해야 합니까?”

“그야, 당신의 선택이잖소?”

빈우는 바로 대답했다.

“체메트디오프. 샤다이의 집정관이지요.”

그리고 포말하우트 게이트 안에서의 일을 알고 있는 중요인물이다. 그런 자가 이렇게 손쉽게 시체가 되어 나타나니 빈우는 허탈했다.

“역시 알고 있군. 그럼 이자는?”

이번에 제국 군인이 상자에서 꺼낸 것은 만신창이가 되어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샤다이였다.

그녀의 사지는 부러지고 꺾여있다. 일그러진 얼굴은 고통과 울분에 삼켜져 있다. 비록 적이지만 한때나마 같이 싸워왔던 처지라 빈우의 입맛은 조금 썼다. 그래서 대답하는 목소리도 조금 씁쓸했다.

“알탄훼아나… 샤다이의 호민관이지.”

빈우의 대답에 섬은 흡족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전에도 이것을 만난 적이 있지 않소?”

“지금 심문하는 겁니까?”

갑작스러운 빈우의 질문에 거대한 지구제국 병사가 손사래를 친다.

“천만에. 불쾌했으면 사과하리다. 아주 중요한 사안이기에 신중을 기하는 거요. 부디 양해해주기 바라오.”

디안머에서 징수 함대를 대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도 꽤 예의 바르고 정중하다. 그래서 빈우는 약간 기세를 타기로 했다.

“뭐 알고나 대답합시다. 대체 이런 것을 내게 왜 물어보는 겁니까? 또 뉴 소노라의 궤도 상에서 벌어진 비홀더 전대의 내전은 무슨 일입니까?”

“흠, 하긴 당사자인 이 팀장은 알 필요가 있겠구려.”

섬은 납득한 듯 알탄훼아나를 바닥에 던져놓고는 곰곰이 생각했다. 적절한 말을 고르는 것처럼 보였다.

“이 샤다이는, 아니 샤다이의 몇몇 직책은 자신이나 종족의 일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대상에 한해서 그 존재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소. 예를 들어….”

섬은 주먹을 쥐어 바닥에 널브러진 알탄훼아나를 겨누는 시늉을 했다.

“나 같은 자가 그녀를 공격하려 한다면, 그녀는 본관의 수많은 공격 방법 중 몇몇을 보게 될 거요. 주먹을 바로 내지를지, 검을 휘두를지, 총을 쏠지 하는 것 등 말이요.”

이 섬의 말이 맞다면 알탄훼아나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도 눈앞의 제국 군인에게 졌다는 이야기다.

“아주 편한 것은 아니라오. 이때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시발점일 뿐 확정된 미래가 아니며, 또한 자신이 보았던 것을 쫓을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주먹을 거둔 섬의 시선은 이제 빈우를 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영향은 좀 묘하게 번진다오. 만약 상대방이 자신이나 종족의 일에 함께 말려 들어가는 자라면, 그 역시 자신의 가능성을 보는 샤다이를 마주 볼 수 있소. 샤다이가 선택했을지도 모르는 행동과 말을 잠깐이나마 엿보고 엿들을 수 있단 말이외다.”

섬의 말을 들으니 짐작 가는 것이 있다. 오브리가도의 감옥에서 알탄훼아나는 동시에 여러 곳을 보고 있었다. 이번 뉴 소노라에서도 그녀는 빈우가 뒤집어쓴 위장포를 앞뒤로 동시에 들추고 들어왔다. 알탄훼아나는 그것을 선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흔적을 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서로가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이 섬의 말대로라면 빈우는 알탄훼아나와 샤다이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존재이며, 더불어 그 사건에 자신 스스로가 말려들어 간다는 얘기다. 지금으로서 짐작 가는 사건은 하나뿐이다. 바로 워프 비스트다.

이런 설명을 하면서 비홀더 1전대장의 시선이 빈우를 의미심장하게 훑는 것을 보니, 그는 아마 빈우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습득한 듯싶다. 그리고 섬의 말은 이어진다.

“물론 귀관께서 이 샤다이가 하려 했던 가능성의 흔적을 봐도 큰 의미는 없을 거요. 그 능력은 본디 이들을 위한 것. 당신에게 보인 것은 그 현상의 반동에 불과하기 때문이오. 허나 그게 전혀 쓸모없지는 않소. 그러한 가능성들을 차근차근 모아본다면, 대상이 선택할 미래를 알 수 있기 때문이지.”

빈우는 대강 짐작이 갔다. 이 섬이 알탄훼아나와 빈우를 대질시킨 건, 두 사람 사이에서 서로가 보았던 흔적들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워프 비스트에 대한 미래를 추리하려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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