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간신히 숨만 붙어있던 샤다이 호민관은 즉시 블랙 랜스의 치료실로 들어갔다. 현재 샤다이에 대해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모니카다.
“이거 억지로 이어붙이고 있긴 한데, 저도 장담은 못 해요. 치료라기보다는 수리라고요.”
모니카는 치료를 하면서도 울상을 짓고 있었다. 샤다이에 대한 대략적인 해부적 지식만 있지, 실제 신진대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니 당연하다.
“일단 죽지는 않을 거야. 최대한 해봐.”
빈우는 그녀를 격려한 다음 팀원들과 미팅을 했다. 지금까지의 전투기록을 조합하고 그 성과를 분석했다. 나중에 이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회의를 해야 하니 아무리 힘들어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일단 부를 때까지 쉬어.”
팀원들을 보낸 빈우는 이어서 함장에게 약식 보고를 했다. 모아놓은 전투기록과 기타 중요 정보를 보낸 것이다. 같은 내용을 특수전 사령부와 군사정보국의 타이 차장에게도 보냈다. 다음은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이다.
“의원님, 괜찮으셨습니까?”
“아니에요. 팀장님이야말로 고생하셨어요.”
압도적인 전력차에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던 블랙 랜스다. 그동안 감금되다시피 한 그녀는 안색이 파리해져 있었다. 죽음을 옆에 둔 채 꼬박 반나절을 보냈으니 그렇다.
빈우는 태스크포스 373의 조사 겸 방패막이로 쓰이는 그녀에게 대략적인 보고를 했다.
“그만 하세요. 정식 보고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은 조금 쉬어요.”
그러면서 히토미가 빈우의 손을 잡아준다. 겉보기엔 빈우는 멀쩡하다. 상처들은 언제나 치유되고 피부는 최상의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그녀가 본 빈우의 눈은 위험했다.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자신을 던졌던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넘거나 부술 수 없는 벽에 부딪혔을 때 종종 저런 눈을 하곤 했다.
자신을 매몰차게 대하던 딸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웃어주려 했다. 그러나 요즘 떠올린 아버지의 눈은 힘들고 지쳐있었다. 고된 아내의 일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리고 자신의 한계에 봉착한 전남편의 눈 또한 저러했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의원님도 쉬십시오.”
히토미는 인사하고 돌아서는 그에게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돌아가는 지친 군인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빈우는 서둘러서 자신의 방으로 갔다. 이제부터 정식 보고서부터 시작해 뒤처리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전에 잠시라도 쉬고 싶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와있던 아나스타샤가 빈우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썩 좋질 못했다.
“저, 주인님. 티모시 1079에 대한 입양이 거부되었어요.”
빈우는 귀환하는 그라디우스에서 아나스탸샤에게 아기의 입양을 부탁한 적이 있다. 그게 거부가 되었단 거다. 그런데 지상이 난장판이 된 뉴 소노라치고는 상당히 빠른 일 처리다.
“넘겨 봐.”
빈우는 서둘러 화면을 살펴보았다. 각종 미사여구로 점철된, 시장이 직접 쓴 문서를 본 빈우는 구역질이 났다. 내용은 하나다. 아기를 가져가고 싶으면 돈을 내놓으란 것이다.
“지불할까요?”
옆에서 아나스타샤가 조심스레 물어온다. 꽤 큰 액수지만 지불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농장의 돈이라면 충분히 가능해요.”
“아니, 내가 처리할게.”
그러면서 빈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조리 떠올렸다. 가장 간단한 것은 지금 지상으로 강하해 방해물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아기를 데려오는 거다. 증거를 인멸하고 목표를 회수하는 작전은 지금까지 드물지 않게 해왔다. 하지만 같은 연방의 지역에서는 아니다. 게다가 민간인을 상대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보다 강한 적과 싸울 방법은 많지만, 약한 아군과는 싸울 방법이 달리 없던 빈우는 분을 삭이며 친구를 불렀다.
“마커스.”
“빈우야.”
사관학교 시절부터 쭉 이어져 내려온 친우가 화면 너머에 있다.
“대충 보고서는 봤다. 고생했어.”
말없이 힘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빈우를 보며 마커스도 쓰게 웃었다.
변경농장에서 맨몸으로 사관학교에 들어온 빈우와 달리 마커스는 국방부 차관인 아버지와 군수산업체의 이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주 달랐던 둘이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친해질 수 있었다. 같이 쿠델카 모델에게 양육되었던 그들은 자신의 보모들을 주제로 온갖 이야기를 나누었고, 또 다투었으며, 사고 또한 무수히 쳤다. 정상적인 식사보다 빵과 커피가 더 익숙해질 정도로.
스무 살에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다르게 자랐던 둘은 그제야 같은 출발점에 선 것 같았다. 그러나 차이는 알게 모르게 있었다. 닉스 2레벨이 되면서부터 그 차이는 더욱 명확해졌다. 같은 임무를 수행하더라도 고과에는 다르게 반영된다. 냉정하고 치밀한 마커스 타이와 냉혹하고 공격적인 빈우. 냉혹하다와 공격적이다는 그다지 좋은 평가가 아니다. 개인적인 성향도 있겠지만 가족의 배경 또한 무시 못 할 것이다.
빈우는 그런 자신을 알았기에 마커스를 열심히 밀어줬다. 정보국에 들어서서도 녀석은 친구를 위해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커스는 이런 젊은 나이에 군사정보국 차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닉스 3레벨에 정보국 소령인 빈우는 결코 이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마커스는 빈우를 잘 알고 있다. 그 정도 되면 통합사령부의 참모로 가거나 특수전 부대의 함장, 혹은 전대장 쯤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빈우가 했던 일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마커스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 정보국 3차장인 자신은 언젠가 국장이 되거나, 아니면 국방부의 주요 직책을 맡게 될 것이다. 하지만 빈우는 여러 가지-그중에서도 특히 더럽고 어려운-일을 너무 많이 했다. 위험한 기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이제 편안하게 살기는 힘들 것이다. 군은 그를 놔주지 않을 것이고, 놔준다 해도 정보국을 나설 때는 대부분의 기록을 삭제당하고 세탁당할 것이다.
그래서 마커스는 자신이 더도 덜도 말고 친구가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배경이 될 만한 위치까지는 올라가고 싶었다. 도움이 되고 싶었다.
“말해 봐.”
마커스의 말에 빈우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식 보고는 아니고 친구끼리의 청탁이다. 빈우는 지금까지 마커스에게 이런저런 부탁을 많이 해왔었다. 하지만 임무가 아닌 일에서 빈우가 이러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내가 처리할게.”
처리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연방중앙정보국의 실행부대에 요청하면 금방 이뤄진다. 그들은 글림의 클론 살인 사건 때문에 이미 침투해 있으니 연락 한 번이면 될 일이다. 아니면 연방 국세청에 신고해 징세 부대를 불러도 된다. 저번부터 뉴 소노라는 세금 관계로 지저분하게 얽혀있던 터라 마카로니 일에 이번 일까지 엮으면 일사천리다. 시장부터 시작해 탈탈 털어버리겠지. 아니면 재건 비용을 묶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게 처리했다. 가장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티모시 1078은 워프 비스트화되면서 샤다이의 손에 타죽은 아이다. 그리고 티모시 1079는 그 여동생이다. 이 경우 중요 참고인으로 소환하면 되는 일이다. 외계인과 관련된 문제해결은 연방이 직접 하기로 협약되어있는 터라 자치정부 쪽에선 할 말이 없다. 또 마침 샤다이와 엮인 일이니 100% 군사정보국 관할이다.
마커스는 이번 일의 현장 책임자를 빈우로 정한 다음, 특수전사령부와 태스크포스 373의 팀장인 빈우에게로 ‘협조 요청’을 보냈다. 정식 명령은 사령부를 거쳐야 하겠지만, 이런 요청은 언제든 할 수 있다.
“고맙다. 마커스.”
“일단 좀 쉬어. 너 눈이 완전히 갔어.”
화면 너머로 보이는 마커스에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역시 그렇지?”
일 하나를 처리한 빈우는 통신을 끈 다음 의자에 푹 기대어 앉았다.
“저기, 주인님.”
아나스타샤가 멋쩍게 웃으며 침대에 앉아있다. 무릎을 비워놓은 채. 빈우는 그녀에게 다가가 무릎을 베고 누웠다. 주인의 머리를 안드로이드가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다.
말없이 조용한 방 안은 사각사각, 머리를 쓰다듬는 소리만 나고 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빈우였다.
“많이 죽었어.”
“네, 봤어요.”
아나스타샤의 손이 머리를 지나 빈우의 귓불을 만지작거린다.
“살리지 못했어.”
“충분히 살리셨어요.”
“더 살릴 수 있었어.”
“주인님은 고작해야 장갑보병이에요. 일개 분대 되는 팀으로 더 이상 뭘 하시겠다는 거예요. 자신의 한계를 넘는 일을 가지고 자책하지 마세요.”
주인의 마음을 달래는 아나스타샤의 손가락이 빈우의 입술에 닿았다.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막으려는 듯이 입 주위를 오락가락한다.
“피곤해. 조금 잘게.”
깨워줘, 란 말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전투OS에 의한 수면이다. 맞춰둔 시간에 일어나겠지.
“네, 주무세요.”
아나스타샤는 이미 잠든 주인이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동생이 슬퍼하는 것은 보기 싫었다. 자신의 아들이 스스로의 업보에 휘말려 괴로워하는 것 또한 보기 싫었다. 그가 자신의 품 안에서 부디 편히 쉬기만을 바랄 뿐이다.
“좋은 꿈 꾸세요, 도련님.”
그녀는 고개를 숙여 지친 군인의 이마에 작게 입맞춤을 하곤, 계속, 그리고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빈우는 마지막 컨테이너를 화물칸에 실었다. 이걸로 오늘 작업은 종료다.
-이야, 존. 빠른데?
옆에서 누가 빈우의 어깨를 친다. 이곳의 반장인 음바페다.
-처음엔 이래저래 사고만 치더니, 이젠 우리 팀에서 실적이 에이스야.
음바페는 개척지 프리마의 빙괴 채집 회사에서 여러 수집반 중 이곳을 담당하고 있다. 며칠 전 ‘존’이란 이름의, 조금 지친 눈을 한 이 청년이 취직을 하러 왔었다. 빙괴 채집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 얼음을 채취하는 일이다. 거칠고 힘든 일인 동시에 수입 또한 그만큼 높아서 잠깐잠깐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음바페는 처음 봤던 존 역시 그런 뜨내기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이 바뀌기엔 하루면 족했다.
-지치지도 않는가 봐.
-하하하, 사이보그 아냐?
주변의 다른 인부들도 감탄을 하고 있다. 빙괴 채집은 극저온에 저중력, 산소가 없는 극지방에서 거대한 얼음 무리를 찾아 그것을 캐는 직업이다.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일도 고되다. 그런 곳에서 존은 처음 얼마간 익숙지 않아 일을 그르쳤을 뿐, 지금은 벌써 팀의 에이스가 된 것이다.
-만선이군. 돌아가자.
-이히-!
수집선의 화물칸이 모두 얼음으로 가득 찼다. 벌써 돌아갈 시간이 되자 다른 인부들이 탄성을 지른다.
-존 저 친구, 혼자서 두 사람 몫을 하네.
-그러게, 작업용 강화복을 입어도 그 정도는 못해.
인부들은 싱글벙글하며 수집선 안으로 들어갔다. 빈우도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압력조절이 끝나자 다른 사람들과 함께 헬멧을 벗었다.
“어우, 냄새야.”
수집선 안의 화학약품 냄새에 한 사내가 질색한다.
“퀴퀴한 작업복보다야 낫지.”
그걸 시작으로 인부들 간의 농담이 시작되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수집선의 산소로 숨을 쉬면 자신에게 할당된 산소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다들 좋아라 한다. 그때 반장인 음바페가 한 사람을 지목해 불렀다.
“이봐, 맥커니.”
“예, 반장님.”
“자네 작업복의 산소 소비량이 늘었어. 뭐 문제 있어?”
“아뇨, 곰팡이 배양이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보건소에 한번 가봐야겠는데요?”
“어이쿠, 진작 말을 하지 그랬어. 내일이라도 가봐. 아니야, 내일 당장 가. 알겠지?”
음바페는 맥커니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폐 속에 있는 곰팡이가 줄어들면 호흡계에 끼치는 악영향이 엄청나다. 자칫하면 산채로 질식할 수도 있다. 음바페 자신도 시험 삼아 심호흡을 한 번 해보았다. 그러자 가슴 안에서 뻐끔거리는 포자들이 느껴진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자신의 산소소비량을 보면 아마 정상적인 수준일 것이다.
이렇듯 개척 행성 프리마의 사람들은 모두 폐 속에 곰팡이가 피어있다. 이 곰팡이는 여기 프리마라 불린 개척지의 빙하 속에 살고 있던 원주 균사류로서 발견된 후에 그 놀라운 산소교환율 덕에 약간 품종개량을 거친 다음 개척지의 대기순환용도로 사용되었다.
‘그게 아마 내가 막 철들 무렵이었나.’
그러던 어느 날, 아직 음바페가 어린이였을 때다. 한 개척민이 작업을 하다가 자신의 산소 소비량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발견했다. 이유는 건강검진 중에 발견되었는데, 대기순환용으로 쓰던 이 균사류가 인간의 폐 속에서도 기생해서 살아가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도시가 발칵 뒤집어졌었지.’
처음에는 이를 질병이라 생각하고 개척민들은 기겁했다. 어린 음바페도 어른들의 공포에 감염되어 울었었다. 하지만 연구와 분석 후, 이 균사류들이 인체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산소 소비량을 줄여준다는 점에 착안해 개척민들은 이것들을 스스로 자신의 폐 속에 기르기 시작했다. 덕분에 프리마의 개척은 대단히 수월해졌다.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인 산소에 여유가 생기면서 여기에 쓰이는 자원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프리마 시민 열 명이 넘게 있는 이 수집선의 산소는 원래라면 인간 세 명이 쓰기에도 간당간당하다. 그러나 프리마의 개척민들은 폐 속의 곰팡이 덕에 이런 낮은 농도의 산소 속에서도 아무런 불편함 없이 호흡할 수 있었다.
“자, 도착했다. 다들 내려.”
반장인 음바페의 말에 수집선 안이 다시 시끌해진다. 이제 각자 작업량에 대해 정산 받을 시간이다. 만선이기도 하니 추가수당도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