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빈우는 프리마 7의 내부를 걸었다. 터무니없이 낮은 산소 농도. 게다가 이곳의 곰팡이 따위는 군용 육체를 한 빈우의 몸속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하지만 강화 신체를 가진 그에게 이 정도 산소면 충분했다. 그 덕에 이곳의 개척민들 사이에 눈에 띄지 않고 숨어들 수 있었다.
지하층으로 계속 내려가자 거주 구역이 나온다. 빈우가 들어간 곳은 하숙집이다. 원래는 일반 가정집이었으나 가장이 죽은 다음, 빙괴 채집하러 온 노동자들을 상대로 하숙집을 연 것이다.
“존 씨 어서 오세요. 일이 일찍 끝난 모양이네요.”
“네, 얼음이 많은 장소더군요.”
만삭의 주부인 아미라가 식사 준비를 하며 빈우를 맞이한다. 주방과 붙은 거실, 안방과 작은방 하나가 전부인 작은 집이다. 빈우는 짐을 식탁에 올려놓으며 앉았다. 식탁 맞은편에선 딸인 니티가 뚱한 표정으로 숙제를 하고 있다.
“아미라 씨, 이거 받으세요.”
빈우는 자신이 쓰다 남은 산소캔을 넘겨주었다. 회사에서 지급 받은 거지만 강화 군인인 그에겐 크게 필요 없는 물건이다.
“어머나, 고마워요.”
프리마의 개척민들은 폐 속의 곰팡이 덕에 호흡 걱정은 없지만, 배 속의 아기는 다르다. 그래서 산모들에겐 높은 농도의 산소가 필요한 것이다. 엄마와 아저씨가 이야기하는 중에도 딸은 아무 말 없이, 그러나 뾰로통한 표정으로 앉아만 있을 뿐이다.
“니티, 존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엄마의 나지막한 꾸지람에도 니티는 들은 척도 않고 연필을 들고 깨작거리고 있었다.
“어디 보자.”
빈우는 니티의 숙제를 흘깃 보았다.
“수학이구나. 니티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니티가 고개를 들고 대답한다.
“왜 수학을 배워야 해요. 이런 건 전부 다 계산기가 해주는데.”
“계산기는 계산만 해주지. 문제 해결을 위해 식을 세우는 것은 사람이 한단다.”
“그것도 인공지능이 있잖아요. 인공지능에게 시키면 되죠.”
“인공지능도 결국 인간이 쓰는 도구야. 주인이 도구를 다루지 못하면 어떻게 하니.”
빈우의 웃음 섞인 핀잔에 니티는 말문이 막혔다. 닫힌 입은 엄마가 저녁을 가져오자 함박웃음과 함께 열렸다.
“와, 고기다. 엄마, 이거 콩고기 아니죠?”
“그럼. 돼지고기란다.”
벌이가 시원치 않아 대개 버섯과 클로렐라로 끼니를 때우던 이 집에 고기가 올라온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이는 얼마 전 하숙하게 된 존의 영향이 컸다. 빙괴수집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벌이가 꽤 괜찮은 듯 선금을 두둑이 넣었고, 가끔 산소캔이나 식자재 같은 것을 얻어 오곤 했다.
“잘 먹겠습니다.”
한창 클 때의 아이라 그런지 접시 위의 돼지고기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엄마인 아미라가 눈치를 주려고 하지만 빈우는 이미 자기 몫의 돼지고기를 모녀에게 양보했다.
“전 회사에서 먹었습니다.”
사실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모녀는 그저 감사히 먹을 뿐이다. 간만의 고기 덕에 즐거운 식사가 끝났다. 엄마인 아미라는 고운 모래에 식기를 넣어 헹궜고, 빈우는 딸 니티의 숙제를 봐주었다.
“존 씨, 죄송해요. 제가 해야 할 일인데.”
“아닙니다. 저도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하던 차에요.”
사실 아미라는 딸의 숙제를 봐주기 벅찼다. 개척기 초기에 노동자로 살았던 그녀는 학력이 낮을 수밖에 없었고, 그 반동으로 딸을 향한 교육열이 높았다. 만약 니티가 공부에 재능이 없었다면 일찌감치 포기했겠지만, 칭얼대면서도 상위의 성적을 유지하니 엄마의 입장으론 욕심이 날 뿐이다.
“자, 니티. 그럼 이 부분을 해석해볼까?”
집중하면 금방 풀 수 있는 문제에서 니티는 또 칭얼거린다.
“저 연방 사람이 되면 안 돼요? 연방 사람들은 머리에 칩을 심어서 번역기도 넣는데요. 저절로 해석이 된다고요.”
“그런 고민은 연방에 귀화하고 해.”
말괄량이를 타이르던 빈우는 말을 멈췄다. 갑자기 이유 모를 충족감과 유대감을 느낀 것이다. 열 살 되는 여자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다가 느낄만한 감정은 아니다. 이런 감정변화는 이상하다. 어쩌면 이 현상은 반나절 전에 갑자기 느낀 알 수 없는 상실감과 무슨 연관이 있을 것도 같다.
“아저씨?”
문득 정신을 차리니 니티가 빈우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아저씨도 해석하고 있었어.”
빈우는 말을 돌린 다음, 마저 공부를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숙제가 끝나고 니티가 빈우에게 같이 놀아달라고 조르고 있을 때, 식탁 옆에서 홀로그램 화면이 떴다.
“어? 긴급 뉴스 나온다.”
니티는 냉큼 화면 쪽으로 자세를 돌려 앉았다.
“어머, 정말이네?”
간식을 준비하던 아미라도 식탁 쪽으로 다가왔다. 조용하던 TV에서 갑자기 영상과 소리가 나오자 모녀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어제저녁에는 갑작스레 중앙 채널이 끊기고 이곳 프리마의 지방 방송만 나왔었다. 그 때문에 마법소녀 피스메이커를 보지 못했던 니티는 엉엉 울면서 잠이 들었다.
“아저씨, 저거 뭐 때문에 저래요?”
뉴스에는 뉴 소노라 쪽의 게이트가 원인 모를 이유로 닫혔다가 12시간 만에 다시 열린 사실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파장으로 뉴 소노라와 연결된 게이트들마저 잠시 동안 사용 불능에 빠졌다고 한다.
“글쎄다···. 아저씨도 모르겠는데.”
빈우는 자기 일이 아닌 듯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뉴 소노라라면 자신이 들렀던 곳이다. 그는 뉴 소노라를 통해 마카로니에 갔었고, 다시 거기로 돌아와 솔트 파이크로 갔다. 다음은 록산느, 이어서 케트쿤, 마지막으로 이곳 프리마다.
‘설마 추적자는 아니겠지.’
자신에게 추적이 붙었다면 아무도 모르게 뒤쫓지 저렇게 동네방네 사고를 치진 않을 것이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모녀가 잠들자 빈우는 몰래 집을 나섰다.
빈우가 향한 곳은 프리마의 통합정보 보관소였다.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레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간 빈우는 사전에 설치해 놨던 정보수집기를 확인했다. 수집기는 케이블에 붙어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기술력에서 몇 단계가 차이 나면 이런 쉬운 방법이 가능하다.
“예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찰리 하나팔이 다가와 말을 건다. 같은 얼굴, 같은 체격의 클론이지만 그 표정만은 왜인지 빈우보다 부드러워 보인다.
“그래.”
빈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예상이 맞아서 다행이다. 위은쓸납학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오며 아득바득 주웠던 정보들을 조합해 찾아낸 결과다.
“길었지.”
빈우의 말에 이번엔 찰리 하나팔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다. 그는 현재 인류를 공격하는 워프 비스트를 막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길었던 추적에 드디어 끝이 보이는 것이다.
솔트 파이크에서 엘리자베트 허드슨, 록산느에선 하비에르 부뉴엘. 모두 워프 비스트가 되던 중에 치료를 받은 아이들이다. 그 배후에는 모종의 조력자가 있었다. 연방의 기술이 아닌 치료 방법을 쓰는 자가. 이를 추적하다 보니 케트쿤의 클론 제조시설까지 가게 되었고, 거기엔 자크 라캉의 클론들이 있었다.
처음에 빈우는 연방이 케트쿤에서 클론을 가지고 치료법을 개발한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은 거꾸로였다. 연방은 엘리자베트와 하비에르의 치료법을 알아낸 다음 케트쿤에서 재현 실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치료법을 전해준 자는 인간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자료를 훑어보며 빈우가 말했다. 프리마와 녹색연맹을 거쳐 간 자료들은 모두 암호화돼 있으나 군사정보국 소속의 그에게 이 정도 해석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려운 것은 그 흐름을 특정해서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네, 우린 그걸 추적하다가 결국 여기까지 왔고요.”
빈우와 찰리 하나팔은 자료의 흐름을 조사하다가-리처드 허드슨에게서 얻은 장부에서-이 곳 프리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곰팡이를 개조해준 녀석이 아닐까요.”
찰리 하나팔이 유력한 용의자를 꼽았다. 워프 비스트의 치료법을 역추적하다가 이곳 프리마까지 도착했는데 놀랍게도 이곳의 주민들은 폐에 곰팡이를 공생시키고 있었다.
개척민들이 프리마의 곰팡이를 자기 입맛에 맞게 개조했을 리는 없다. 그들의 기술로는 무리다. 누가 했을까.
연방은 아니다. 연방은 숫제 폐를 개조하고 말지 이런 방법은 쓰지 않는다.
이 곰팡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변화해 인간과 공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찾아낸 자료에 의하면 곰팡이를 준 자와 워프 비스트의 치료법을 준 자의 행적이 겹치고 있다. 이 둘은 동일 인물이거나, 같은 조직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샤다이다.”
프리마에 곰팡이를 개조시켜 준 자에 대한 정보가 나온다. 신체적인 특징을 조합하면 그자는 샤다이였다. 인간에 적대적인 샤다이가 왜 개척지에 도움을 주었을까.
“이름은… 알탄훼아나라고 하는군요.”
“흔해 빠진 샤다이 암컷 이름이잖아. 부모란 작자가 어지간히 게으르군.”
둘은 프리마의 개척민 선조들이 여기저기 기록해 놓은 자료를 조합하며 퍼즐을 맞춰나갔다.
“잡아다 족치면 답이 나오겠지.”
꼬리를 잡았으니 이제부터 후려갈기면 되는 일. 빈우는 알탄훼아나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 두뇌칩에서 하나의 기록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마치 꿈처럼. 본인이 원하지 않았는데 그 기록이 열람되고 재생된다.
* * *
“김 소령. 저녁에 시간 되나?”
피에르 라캉 중령이 물어온다. 보안국 소속인 그는 울토르 프로젝트의 감사역으로 와있다. 그러나 실상은 감사를 가장한 협조역이다.
“시간은 있습니다만.”
빈우는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그는 당시의 자신이 무슨 생각인지,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기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 식사나 함께하지.”
기록 속의 라캉 중령도 차갑게 권한다. 빈우는 거절하지 않고 그를 따라간다. 라캉 중령의 방에는 식사 준비가 되어있었다. 중령은 빈우를 초대한 다음 차례차례 음식을 내어온다. 그중 하나에 빈우의 시선이 꽤 오래 가 있었다. 작은 새의 통구이 요리다.
“오르틀랑일세.”
빈우의 시선을 눈치챈 그가 요리의 이름을 말한다. 그리고 그 조리법을 설명한다.
“오르틀랑이란 새를 잡아 눈을 뽑고, 어둠 속에서 먹이를 먹여 살찌우지. 그리고 브랜디 속에 익사시키면 그 술이 몸 구석구석에 퍼져 들게 돼. 이것을 조리해서 통째로 씹으면, 그 향이 입과 몸 전체로 스며들지. 가히 진미라고 할 수 있다네.”
여기까지 말한 라캉 중령이 조금 큰 냅킨을 들어 보인다.
“과거 조상들은 이 잔인한 조리법 때문에 신의 두려움을 살까 봐 얼굴을 가리고 먹었다고 하는데, 실상은 요리의 향을 가두고 먹기 위함이었지.”
“특이하군요.”
빈우의 감상에 라캉 중령은 냅킨을 팔랑팔랑 흔든다.
“뭘, 모조품이야.”
그리고 눈앞에 있는 오르틀랑에 대해 설명했다. 견과류와 오리 기름, 다진 닭의 모래주머니 등을 조합해 만들었다고 한다. 음식물용 물질생성기를 쓰면 될 것을 직접 만들다니, 요리를 좋아하는 라캉 중령답다.
설명을 마친 라캉 중령의 표정은 모조품을 내었다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의기양양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자랑해도 좋다네.”
라캉 중령이 직접 오르틀랑을 빈우의 접시에 올려준다.
“나한테서 이걸 먹었다고 하면 어딜 가도 섭섭지 않은 대접을 해줄걸세.”
그의 말로 미루어 보건대, 아마 이 오르틀랑이란 요리를 먹는 것이 무언가의 비밀결사나 모임에 가입하는 조건인 것 같다. 기록 속의 빈우는 작은 새 요리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그리고 오르틀랑 모조품이 점점 가까워진다. 아마 먹으려는 순간이겠지. 그러나 빈우는 그것을 먹지 못했다.
-경고, 클론제조실에 이상 발생. 경고, 클론제조실에 이상 발생.
갑작스러운 경고에 빈우는 달려나갔고, 그 뒤를 라캉 중령이 따랐다. 비밀 시설인 이곳에서의 경고라면 보통 상황이 아니다. 목적지에 도달한 빈우는 사건의 원인을 발견했다.
“저리 가! 저리 가라고!”
경비 로봇들이 주춤주춤 물러선다. 아기를 안아 든 아나스타샤가 울면서 악을 쓰고 있었다.
“저리 가! 도련님이야! 내 도련님이야!”
안드로이드 메이드는 제조 탱크에서 꺼낸 클론 태아를 안고 로봇들과 맞서고 있었다.
“아나스타샤.”
빈우는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아나스타샤를 불렀다.
“주인님.”
아나스타샤가 빈우를 바라본다. 마치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이다.
“주인님, 이 로봇들이 주인님을 죽이려고 해요. 주인님을….”
횡설수설하는 그녀를 내버려 두고, 빈우는 옆의 탱크들을 보았다. 탱크 안에는 모두 클론 태아들이 들어있다. 모두 빈우의 클론이다. 그리고 오늘의 실험은 이 클론 태아들에게 쉬바를 투입하는 것이었다.
“김 소령, 이건 뭔가.”
뒤에서 라캉 중령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탱크 속에서는 이미 실험이 진행 중이다. 적당하게 성장한 클론 태아에 쉬바가 주입된다. 갈색의 나노머신들이 뻗어나가 태아를 덮치고, 잡아먹고, 복제된다. 탱크 안은 금세 쉬바로 가득 찬다.
“오 세상에.”
돌아보니 라캉 중령은 입을 막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고 있다.
“안돼! 도련님! 주인님! 주인님!”
발작하는 아나스타샤에게 빈우가 다가간다. 그리고 짧게 명령했다.
“아나스타샤. 방으로 돌아가.”
그러나 아나스타샤는 명령을 듣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