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안돼! 도련님, 내 아기, 내 아이야!”
탱크를 향해 달려가는 아나스타샤를 빈우가 붙잡는다. 그리고 다시 강하게 명령했다.
“진정해, 아나스타샤. 저건 클론이다. 클론을 제자리에 놓고 당장 방으로 돌아가.”
“주인님, 이런 거 그만두세요. 이제 그만 하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하지만 안드로이드 메이드는 오열하며 매달릴 뿐, 명령을 듣지 않는다. 결국 빈우가 최종 명령을 내렸다.
“아나스타샤. 수동모드로 전환, 내 방으로 가서 대기해.”
그 명령에 AI는 모든 기능이 정지되고, 단순한 로봇이 된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주인의 명령에 충실히 따른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김 소령. 이게… 이게 뭔가.”
라캉 중령은 눈앞의 사태에 경악하고 있었다. 인간의 태아들이 지구 제국의 나노머신에게 집어 삼켜지는 광경에 겁을 먹고 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쉬바에 대한 실험을 한다고.”
“자네의 클론 태아에 한다고는 듣지 못했어!”
답이 없는 빈우 대신 라캉 중령이 계속해서 다그친다.
“김 소령, 그게, 이건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야. 어찌 태아에게.”
“중령님도 쉬바의 위험성에 대해 잘 아시잖습니까.”
허리를 끊는 빈우의 말에 라캉 중령이 말을 멈춘다.
“쉬바는 애초에 비홀더 전대의 것입니다. 그리고 주요 목표는 같은 인간이고 말입니다. 그 어떤 종족을 상대로 하는 것보다 인간을 상대로 했을 때, 쉬바는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입니다.”
그러면서 빈우는 홀로그램 영상을 띄운다. 군사정보국의 가상 시나리오다.
“만약 놈들이 루비콘 라인을 뚫고 돌아와 쉬바를 뿌리게 된다면, 어찌 될지 잘 아시잖습니까?”
가상 시나리오는 참혹했다. 나노머신에 대한 방어능력이 없는 자치행성은 순식간에 쉬바의 먹이가 되고, 여기서 자라난 쉬바는 다시 군체를 이뤄 마침내 우주 항행 능력까지 가진다. 그리고 비홀더 전대를 따라 자치행성과 연방 직할령을 차례로 공략한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이런 방법은….”
머뭇거리는 라캉 중령에게 빈우가 다가가 쐐기를 박았다.
“중령님, 양심하고 타협하지 마십시오.”
* * *
“무슨 일입니까, 대장님.”
자신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이 들린다. 찰리 하나팔의 목소리다.
“옛날 기록이 떠올라서.”
“예? 지금 와서요? 뭔가 조건부로 발동한 겁니까? 내용이 뭐길래요.”
빈우는 조용히 찰리 하나팔을 쳐다보았다.
“니들 유생체에 쉬바를 쓰는 실험을 했어.”
“으엑, 그런 것도 했습니까? 왜요?”
클론 병사가 질색하며 고개를 흔든다.
“이유는 뻔하지 않나. 쉬바가 인류 연방에게 사용되었을 최악의 경우 대처법을 찾기 위해서였지.”
담담한 빈우의 설명에 찰리 하나팔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따지고 보면 영유아 살해 아닙니까?”
“영유아? 내 클론이지.”
단호한 빈우의 말에 클론의 말문이 막힌다.
“실험은 나 자신에게 한 거야. 내가 승인한 거고.”
하지만 찰리 하나팔은 머뭇거리면서도 다시 말문을 열었다.
“클론이 대장님은 아니지요.”
“동일한 육체에 동일한 기록. 그러면 동일인 아닌가? 울토르 클론들은 전부 김빈우를 만들기 위해 제작되었어. 약점을 보완한 보다 나은 김빈우 말이다.”
“기억이 다르지 않습니까.”
찰리 하나팔이 다른 점을 들었다. 울토르 클론과 원본 빈우의 차이는 이것이다. 클론들은 인간 김빈우로서의 기억이 없다. 하지만 빈우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엄마의 죽음에 휘둘리고, 메이드의 치마폭에 감싸인 애새끼가 정말 김빈우라고 생각하나?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게 연방에 있어 중요한 인물인가? 연방 군인 김빈우라면 군에 입대한 이후, 군사정보국에 들어간 이후의 기록만으로도 충분해. 그게 지금의 인류 연방에 필요한 김빈우다.”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힌 약자는 더 이상 필요 없다. 워프 비스트를 비롯한 연방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약점이 없는 빈우가 필요했다.
빈우는 약간 올라왔던 흥분을 가라앉히며 다시 작업에 착수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기록된 정보들을 조회하고 비교, 대조하던 중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최근에 수집된 전파 기록이다. 헌데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심각한 기록이다.
“대장님, 이건….”
찰리 하나팔 역시 그 전파 기록을 살펴봤다. 얼핏 보면 점프 포인터에서 나오는 노이즈 같아 보이지만, 울토르 중대 출신인 이들은 잘 아는, 그리고 자주 썼던 전파다.
“솔리드 시리즈의 경고 신호다.”
중대장이었던 빈우가 모를 리 없다. 이것은 작전 지역에 울토르 중대가 공격하기 전, 그곳에 침투해있는 선발대나 아군 정보요원들에게 대피하라는 경고 신호다. 그 신호가 이곳 프리마에 쏘아지고 있다는 것은 조만간 여기에 울토르 중대가 쳐들어온다는 얘기다.
“언제지?”
빈우는 전파가 수신된 일시를 보았다. 사흘 전이다.
“점프 포인터에서 여기 프리마까지 이틀이면 옵니다.”
프리마는 점프 포인터로부터 꽤 떨어진 변경 개척지다. 날짜 계산이 맞다면 솔리드 시리즈와 클론 부대는 이미 프리마 근처에 와 있다는 얘기다.
“왜 아직 쳐들어오지 않았지?”
빈우는 서둘러 다른 자료들을 살펴보았지만, 개척지의 기기로 탐지할 수 있을 만큼 솔리드 시리즈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덧붙여 울토르 중대의 작전 목표는 거의 수색과 섬멸이다. 그리고 현재의 빈우는 울토르 중대에 들켜서는 안 된다.
“일단 피하자.”
빈우는 자료들을 챙기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시 외곽에는 숨겨둔 비행정이 있다. 그것을 타고 극지방으로 이동해 장거리 우주선을 타고 도망쳐야 한다.
“아미라 씨와 니티는요?”
뒤따르던 찰리 하나팔의 질문에 빈우가 멈칫한다.
“그 두 사람은 구할 거지요?”
재촉하기는커녕 풀에죽은 질문이지만 그것이 더욱 빈우에게 사무친다.
“…빨리 도망쳐야 해. 여기서 시간을 끌다간 죽도밥도 안된다.”
“고작해야 모녀 두 명입니다. 비행정에 태울 수도 있고, 들고 달리면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빈우는 못 들은 척 달렸다. 집에 들어가면 재빨리 중요한 짐만 챙겨 도망치기로 마음먹으며.
* * *
아미라는 잠에서 깨어나 산소캔을 찾았다. 잠결에 아기의 거센 발길질이 아파 깨어났는데 숨이 너무 가빴다. 호흡하기 힘들 정도로.
“우리 아기. 착하지. 괜찮아. 이제 괜찮아.”
그녀는 빈우가 준 산소캔으로 호흡하며 집안의 산소 농도를 보았다. 시에서 중앙관제로 배급되는 산소의 농도는 정상이다. 이 호흡 곤란이 아마 임신 증상 중 일시적인 거라 생각한 만삭의 임산부는 배를 쓰다듬으며 침대로 갔다. 그리고 누울 자리를 마련하며 첫째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니티?”
그런데 첫째 딸 니티의 상태가 이상하다. 아이의 호흡이 정상이 아니다.
“니티! 일어나, 니티!”
아미라는 딸을 잡아 흔들고 뺨을 때려 깨웠다. 잠에서 깨어난 니티는 몽롱한 것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는 서둘러 딸의 입에 산소 호흡기를 끼웠다. 몇 호흡이 지나나 니티도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엄마, 숨쉬기가 힘들어요.”
니티가 헉헉대며 엄마에게 매달렸다. 그런데 아미라도 점차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산소캔이 없으니 숨을 쉬기 힘들어진 것이다. 다시금 산소의 농도를 봐도 정상수치다. 휴대용 측정기로 집안의 산소를 봐도 마찬가지. 혹시 가스나 독극물의 영향인가 싶었지만 어떠한 경보기도 울리지 않았다.
‘곰팡이가 상했나봐.’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아미라는 니티를 안고 집을 나섰다. 폐안의 곰팡이가 상했다면 프리마의 사람은 숨을 쉬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 만삭의 엄마는 늘어진 딸을 안고 필사적으로 보건소로 향했다.
“맙소사.”
보건소로 가까이 가자 아미라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것도 전부 호흡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산소캔을 들어 간신히 숨을 쉬고, 어떤 이는 숨을 쉬지 못해 자신의 목을 피가 나도록 긁는다.
“아미라.”
익숙한 목소리가 불러 돌아보니 죽은 남편의 친구인 음바페였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아미라는 휘청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부족한 살림에 서로 도우며 살아왔던 이웃, 음바페의 품엔 누군가 안겨 있었다. 빙괴채집회사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직장동료이지 싶다.
“맥커니가… 죽었어.”
아까만 해도 산소 소비량이 늘었다고 푸념하던 맥커니는 지금 시퍼런 얼굴로 죽어있다. 산소 부족으로 질식한 것이다.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술을 마시면서 일어난 일이다. 갑자기 숨쉬기 힘들어하던 맥커니를 음바페가 들쳐업고 보건소로 뛰어왔는데, 그사이 이 건장한 사내가 죽어버렸다.
“이것들 보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사람들이 숨을 못 쉬잖소.”
다른 남자가 늙은 어머니를 업고 보건소에 항의한다. 그러나 보건소의 간호사도 딱히 답이 없어 보였다.
“모르겠습니다. 산소 농도는 정상이고, 독극물이나 기타 유독가스는 없어요. 일단 위급한 분들부터 이걸 쓰세요.”
그러면서 간호사가 산소탱크를 꺼내 온다. 그러나 호흡기가 얼마 없어 사람들이 몰려 다투기 시작한다.
“뭐 하는 거야, 다 죽을 셈이야.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숨 쉬면 충분하잖아.”
반장으로 일해서 사람의 다툼을 다루는 데 이골이 난 음바페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호흡기를 써 일단은 한시름 놨다. 마침 그때 의사가 보건소 밖으로 나왔다. 손에는 곰팡이 배양통이 들려있다.
“원인을 알았습니다. 곰팡이예요. 곰팡이들이 죽은 겁니다. 어서 새 곰팡이를 폐 안에 넣으세요,”
폐 속의 곰팡이가 죽었다면 프리마의 사람들은 그대로 질식한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의사 주변으로 몰려 다시금 북새통을 이룬다. 원인이 밝혀진 만큼 공포도 구체화된 것이다.
“밀치지 마세요. 곰팡이는 충분해요. 다 돌아갑니다.”
배양통을 들고 있던 의사가 인파에 이리저리 밀린다. 음바페의 말도 이제는 소용이 없다. 급기야 배양통이 땅에 떨어져 깨진다.
“안돼!”
헐떡대는 사람들이 바닥에 흩뿌려진 곰팡이에 몰려든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쥐고 호흡하려 애쓴다.
“뭐야, 이거 왜이래?”
하지만 사람들은 금세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손에 든 곰팡이들이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촉촉하게 모여 있던 곰팡이들이 공기에 노출되자 부슬거리며 흘러내린다.
“곰팡이들이 죽는다!”
“뭐야, 이거 왜 이런 거야!”
호흡곤란의 원인이 눈앞에 바로 보이자 공포가 더욱 거세진다. 호흡 또한 더욱 가빠진다. 아미라는 아픈 배를 부여잡으면서도 니티의 입에 호흡기를 끼워줬다. 그러자 니티가 호흡기를 엄마에게 양보한다.
“엄마도 써야지.”
“아냐, 엄마는 아까 많이 썼어. 이제 니티가 써야지.”
“아니이, 나 말고 동생이.”
딸은 엄마 배속의 동생을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평상시라면 기특히 여겨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느낄 상황이 아니었다.
“아미라 씨! 니티!”
멀리서 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존 씨, 여기에요.”
아미라가 헐떡이며 손을 흔들었다. 존은 놀랄 만큼 빨리 달려와 두 사람의 안부를 살폈다.
“아미라 씨, 괜찮으신가요? 니티, 괜찮니?”
“숨을, 숨을 못 쉬겠어요.”
산소 호흡기를 떼자 숨쉬기가 힘들다. 아미라는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딸과 배 속의 아이를 끌어안았다.
언제나와 같은 산소 농도 속에서도 제대로 호흡하지 못하는 시민들. 거기에 바닥에 죽어가는 곰팡이들. 이것만으로도 빈우는 순식간에 사태를 파악했다. 살균제다. 솔리드 시리즈는 이미 근처까지 와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정찰조를 보내 프리마에 살균제를 뿌린 것이 분명하다.
인체에 무해한 ‘연방제’ 살균제는 개척지의 ‘연방제’ 공기정화시스템에 당연히 감지되지도 않고, 정화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규정되지 않은 외계기술로 배양된 곰팡이만 골라서 죽이게 된다. 처음에는 살균제의 농도를 낮게 살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농도가 높다. 작전개시가 임박했다는 증거다.
‘안일했다.’
하숙집의 포근한 분위기에 젖은 탓일까, 이제까지의 임무에 지쳤기 때문일까. 빈우는 프리마를 덮친 공격을 미처 감지하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존, 자네는 괜찮나?”
음바페가 가쁜 숨을 쉬면서도 존을 걱정한다. 이제껏 자신을 챙겨주던 반장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걸림돌일 뿐이다.
빈우는 독한 마음을 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려 했다. 그러나 좀처럼 실천이 되지 않는다.
‘내가… 왜 이러지.’
그런 빈우의 옆으로 찰리 하나팔이 따라 왔다.
“대장님, 살릴 수 있을 만큼은 살립시다.”
녀석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이미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얼마나 긴박한지 파악했다는 의미다. 이를 증명하듯 프리마에 경보가 울렸다.
-외벽 파괴 경보. 외벽 파괴 경보. F-45구역의 외벽이 파괴되었습니다. 근처의 시민 분들은 즉시 안전장비를 챙기시고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외벽 파괴···.
마침내 적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적은 높은 확률로 울토르 중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