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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69화 (167/301)

169화

“모두 피해요! 개척지 바깥으로 도망쳐요!”

그렇게 외친 빈우는 아미라와 니트를 양쪽에 들쳐 안고 뛰었다.

“아미라! 존!”

뒤에서 음바페의 외침이 들리지만 빈우는 무시하고 달렸다. 이제는 정말 지체할 시간이 없다. 외벽이 부서졌으니 적들이 몰려들어 올 것이고, 그 적들은 보이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말살하는 존재들이다. 현재의 프리마로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적이다. 그리고 빈우조차도.

멀리서 코일건의 발사음이 들린다. 마침내 적들이 프리마 거주 구역 안으로 들어와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서 강한 화염이 저 멀리서 솟구쳐 오른다. 산화제를 섞은 화염방사기다.

“꽉 잡아요.”

빈우는 높이 점프해서 사람들을 뛰어넘고 건물 위로 달렸다. 발아래에는 사람들이 질식해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비상용 산소통 근처에는 아비규환이 펼쳐져 서로 호흡기를 잡으려고 싸움이 났다.

“으으윽.”

아미라의 갑작스런 신음에 빈우가 발을 멈췄다. 옥상에서 그녀를 앉히자 만삭의 임산부가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린다.

“아아, 안 돼. 조금만 참아라, 아가야.”

엄마는 배를 만지며 안에서 요동치는 아기를 달랜다.

“엄마, 많이 아파? 괜찮아? 동생이 아야해?”

맏딸인 니티도 엄마와 동생을 걱정하며 엄마의 치마폭을 잡았다.

“산통입니까?”

빈우의 질문에 아미라는 바들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낭패다. 지금은 도저히 아기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프리마라 해도 갓 태어난 아기는 고농도 산소실에서 지내다가 곰팡이를 이식받고 나서야 일반 신생아실로 이동한다. 지금 바깥에서 바로 태어나 버리면 아기는 산소 부족으로 질식해 죽을 것이다.

그걸 떠나서라도 클론 중대로 추측되는 적에게 공격받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갑시다.”

빈우가 다시 모녀를 안으려고 했을 때, 아미라가 고개를 들었다.

“존… 씨. 지금 이게, 무슨 일이죠?”

땀범벅이 된 아미라는 울먹거리는 니티를 쓰다듬으며 질문했다. 빈우는 알고 있다. 그러나 대답할 수 없다.

‘왜 대답을 못 하는 걸까.’

빈우는 스스로도 궁금했다. 그저 연방군이 쳐들어와서 당신들을 죽이려 한다고 말하면 될 일이다. 왜 말을 하지 못할까.

“대장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뛰어요!”

찰리 하나팔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빈우는 두 사람을 안고 다시 달렸다. 총소리와 화염이 점차 다가온다. 아무리 강화 육체의 군인이 달린다 한들, 어벤져 무리의 포위망이 더 빠른 것이다.

“어서, 들어가요! 어서.”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착한 빈우는 좁은 입구에 두 사람을 내려놓았다.

“엄마, 엄마아아아.”

니티는 아까부터 울고 있었다. 하늘을 날며 봤던 무서운 광경은 열 살배기 소녀가 받아들이기엔 무리였다. 고향이 불타고 이웃이 죽어간다. 그걸 보고 우는 딸을 달래던 엄마는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아아, 안 되겠어요. 근처의 보건소로… 보건소로 가요.”

“안됩니다, 아미라 씨. 놈들은 우릴 다 죽일 겁니다.”

중대장이었던 빈우는 잘 알고 있다. 울토르 중대는 결코 생존자와 목격자를 남기지 않는다.

“저들이 누구죠? 누가 우릴 공격하는 건가요? 항복하면 아기는, 아기는 살려… 으윽.”

하지만 산고를 겪는 아미라는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고 있다. 그리고 니티는 옆에서 괴로워하는 엄마를 보며 울고 있다.

“대장님,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요.”

빈우는 찰리 하나팔의 재촉에 모녀를 건물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안에는 다시 내문이 있다. 이 문만 열면 비행정이 있고 그걸 타고 도망가면 당분간은 안전할 것이다. 빈우가 문을 열기위해 암호를 입력하던 바로 그때, 코일건 사격이 일행이 들어간 건물로 쏟아졌다.

“아아악!”

“엄마아아!”

모녀는 선 채로 비명을 지르며 얼어붙었다. 빈우는 황급히 두 사람에게로 달려갔다. 다행히 공격은 한 번뿐이다. 이곳을 노린 것이 아니라 지나가던 사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일행에겐 치명적이었다.

“아아, 아아아-.”

아미라의 치마 사이로, 허벅지를 타고 양수가 흘러내린다. 방금의 충격으로 양막이 터진 것이다. 옆에서는 니티가 겁에 질려 울며 오줌을 싸고 있다.

아기가 나오기 시작한 산모를 데리고 도주는 힘들다. 앞으로의 계획을 짜며 생각에 잠긴 빈우를 잡아채는 목소리가 있었다.

“버리면 안 됩니다.”

찰리 하나팔의 단호한 목소리다.

“할 수 있습니다. 대장님을 할 수 있어요. 연방이 가진 모든 기술이 대장님 머릿속에 있잖습니까.”

빈우는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모녀를 안고 내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충 자리를 마련하고 아미라를 눕혔다.

“아미라 씨, 지금 아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을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형식은 질문이지만 내용은 일방적인 통보다. 산모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니티, 이제 동생이 태어날 거다. 네가 엄마를 도와줘야 해. 알겠지?”

빈우가 다독이자 니티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그러나 아직도 울먹이며 엄마의 손을 잡아주었다.

“다리 벌리고, 무릎을 굽혀요. 아기가 나올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하세요.”

그렇게 말한 빈우는 비행정으로 달려가 시동을 걸고 비상용 산소캔을 꺼냈다. 그리고 호흡기를 칼로 잘라 대충 신생아용 호흡기로 만들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그는 산모의 등에 부드러운 잡동사니를 갖다 채웠다.

“배꼽을 봐요. 고개를 숙여요, 더. 턱이 배꼽에 닿도록.”

그런 찰나 다시금 코일건 사격이 건물을 덮쳤다. 떨어지는 파편을 빈우가 쳐낸다. 다음 다리 사이를 보자 이미 아기의 머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치고 숨을 쉴 수 없는 엄마는 아기를 낳을 힘이 없었다.

빈우는 진동나이프를 꺼냈다. 그것으로 아기가 나올 공간을 마련하려는 찰나, 무언가 그의 손을 잡는다. 찰리 하나팔이다.

“이제껏 수많은 생명을 앗았던 무기로 생명을 구하겠다는 겁니까?”

사람이 죽어가는 마당에 무슨 헛소리인지 모르겠다.

“시답잖은 소리 집어치워!“

빈우는 칼로 아미라의 회음부를 절개해 아기의 머리가 통과하기 쉽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산모가 너무나 지쳐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빈우는 아미라의 뒷목을 잡고 세게 앞으로 당겨서 배를 압박한다.

“니티, 엄마의 목을 밀어라. 동생이 나올 수 있게 도와줘.”

그러자 니티는 울면서도 시킨 대로 엄마의 목을 밀었다. 있는 힘껏.

“대장님, 사격이 거세집니다.”

찰리 하나팔의 말에 빈우는 이를 악물었다. 이건 우연히 스치는 게 아니다. 아마 비행정의 시동을 발견하고 공격하는 게 분명하다. 아기는 산도를 나오다가 중간에 걸려있다. 그러나 아미라는 더 이상 힘을 내지 못했다.

“아미라 씨! 아미라 씨!”

보다못한 빈우는 서둘러 아미라의 음렬을 비집고 손을 밀어 넣어 아기의 목을 받쳤다. 그리고 산모의 배를 누르며 억지로 아기를 꺼냈다. 엄마는 비명을 질렀고, 고통에 못 이겨 입술을 깨물어 피가 흥건하다. 맏딸은 무서운 광경에 울면서도 있는 힘껏 자기 할 일을 했다.

“아미라 씨, 나왔습니다. 아기가 나왔어요.”

빈우는 아기의 코와 입을 약하게 빨아 양수를 뱉어내게 하고, 탯줄을 잘라 묶었다. 그리고 아기의 머리에 산소 호흡기를 뒤집어씌운 다음 엄마의 가슴위에 올려놨다.

“아아, 테테루. 테테루….”

아미라는 이런 순간에 태어난 아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 광경을 보며 빈우는 왜 자신이 군에 지원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현재의 우주는 인류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인류의 세력권은 너무나도 넓고, 적 또한 그만큼 많다. 그래서 인간을 지킬 자들이, 강력한 군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시간은 결코 길지 못했다. 적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빈우가 군에 지원한 업보가 결국엔 도착하고 말았다.

“대장님!”

찰리 하나팔의 외침. 빈우도 이미 봤다. 골목을 비집고 들어오는 어벤져 장갑복, 역시나 울토르 중대 사양이다.

‘어떻게 하지?’

찰나의 순간에 빈우는 고민했다. 여기서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그러나 그 카드를 지금 써버리면 정작 나중에 중요할 때에 쓰지 못한다. 개척지의 세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쓰기엔 너무나 아까운 카드다.

아주 잠깐의 고민이었지만, 그동안 어벤져는 코일건을 겨누었다. 텅스텐 탄자를 자기장으로 가속해 발사하는 무기, 게다가 장갑복의 출력이면 맨몸의 빈우 따위는 갈기갈기 찢어버릴 화력이 나온다.

어벤져는 경고도 없이 바로 사격했다. 그러나 빈우는 먼저 달려들어 사격의 사각, 장갑복의 품 안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헬멧의 응급용 개폐 버튼을 눌렀다. 똑같은 클론의 군용 지문에 똑같은 유전 정보다. 헬멧은 어이없이 쉽게 열렸고, 빈우는 눈앞에 드러난 자신의 얼굴에 진동나이프를 찔러 넣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휘두르는 장갑복의 팔을 피해 다시금 칼로 후벼팠다. 방금 사람을 구했던 칼이 다시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가까스로 적을 처리한 빈우는 산모에게로 돌아섰다. 방금 전까지 산모였던 것에게로.

“엄마아아아!”

니티는 비명을 지른다. 가슴 위로 사라진 엄마의 시신을 보며 놀라서 자지러지고 있다. 방금의 사격에 아미라가 죽은 것이다.

“니티, 보지 마, 눈감아.”

빈우는 재빨리 달려가 니티를 껴안아 엄마를 보지 못하게 했다. 간발의 차로 살아남은 테테루는 엄마의 피와 살점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다. 아기는 젖내음을 맡고 엄마 품에서 입을 뻐끔거리지만 젖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비릿한 피만이 아기의 입을 적시고, 테테루는 다시 울었다.

그런 남매의 울음 소리를 날카로운 굉음이 덮었다. 장갑복의 제트팩 소리다.

“계속 옵니다. 어서 쓰세요. 대장님.”

찰리 하나팔이 재촉한다. 여기서 비장의 수를 안 쓰면 탈출도 못 하고 죽을 게 분명하다.

들리는 제트팩 소리는 셋. 방금 한 명이 빈우에게 당하자 나머지 분대원들이 이리로 오는 것이다. 놈들은 빈우의 육체와 빈우의 전투 경험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세 명이나 되는 클론은 완전 무장한 채다. 방금처럼 일이 쉽게 풀리진 않을 건 뻔했다.

“대장님!”

일행 근처로 어벤져 장갑복 셋이 거의 동시에 착륙했다. 그리고 빈우는 어쩔 수 없이 아껴두었던 비장의 수를 썼다. 울토르 중대에 있을 때 만들어 놓았던 백도어를 연 것이다. 빈우는 만약을 대비해 클론들의 명령체계에 비밀리에 간섭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놓았는데 지금 그것을 써서 클론들의 현재 정보를 빼냄과 동시에 새로운 명령을 집어넣었다.

-명령 승인.

한때 현장 지휘관이었던 빈우의 명령이다. 클론들은 각자의 분대를 적으로 인식하고 싸우기 시작했다. 눈앞의 클론들은 다른 분대의 형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급히 자리를 떴다. 그러나 이것도 얼마 못 간다. 클론들이 모순된 명령을 깨닫고 이것을 무시하거나, 후방에 있던 지휘관에게서 새로운 명령이 올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시간 벌이면 비행정을 타고 도망치는 데는 충분했다.

“엄마, 엄마아아.”

니티는 바닥에 널브러진 엄마의 시신을 보고 미친 듯이 울었다. 갓 태어난 테테루는 엄마의 젖 한번 제대로 먹어 보지 못한 채 배가 고파 울고 있다.

빈우는 이 둘을 안고 비행정에 탄 다음, 출발했다. 비행정은 바닥을 부수고 내려가 프리마의 구 지하도로의 안을 날았다. 과거 프리마의 토대를 다질 때 만들었던 도로는 꽤 커서 비행정이 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나왔다.

‘이제 우주선이 있는 곳까지만 가면된다.’

빈우는 앞으로의 계획을 간단히 살펴봤다. 먼저 비행정으로 지하도로를 빠져나간 다음 극지방까지 간다. 장갑복의 제트팩으론 이 비행정을 따라잡을 수 없고, 솔리드 시리즈에 탑재된 함재기 중에서 이 좁은 지하도로를 날 수 있는 기체는 없다. 그러므로 당분간은 안전할 것이다. 지하도를 탈출할 때까지의 당분간은.

우선은 지하도를 따라 시 바깥으로 나간 다음엔 조심스레 저공비행을 하여 목적지로 향한다. 거기서 우주선으로 갈아탄 뒤, 이 행성을 탈출하는 것이 계획의 마지막 단계다. 그러나 그 계획을 불가능케 하는 이유가 생겨버렸다.

‘산소가 부족해.’

빈우는 비행정 내의 산소잔량을 보고 혀를 핬다.

도시 바깥은 개척작업이 덜 끝나서 산소가 아예 없다. 이렇다면 제아무리 곰팡이와 공생하는 프리마 개척민이라 해도 숨을 쉴 수가 없는 것이다. 즉 세 사람이 이 비행정을 타고 극지방 까지 가려면 비행정 내부에 있는 산소로만 숨을 쉬어야 한다. 그러나 신생아 테테루와 곰팡이가 없는 니티는 산소 소비량이 크다. 또한 첩첩산중으로 아까 아기를 받을 때 산소캔을 꺼냈는데, 클론의 공격으로 상당수의 산소캔들이 파손되었다.

이제 빈우은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이 안의 세 명이 우주선까지 살아서 도착할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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