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빈우는 지하도를 빠져나온 다음 비행정을 자동조종으로 돌렸다. 목적지까지는 정상적으로라면 일곱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울토르 중대는 아까 백도어로 했던 공격의 여파가 꽤 컸는지, 아니면 비행정의 탈출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아직까지 추적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 해도 지금은 모습을 감추고 이동하는 게 중요하다. 경로를 안전한 쪽으로 재설정하자 도착 시간이 늘어난다. 하지만 산소가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 양으론 두 시간 정도….’
아까 탈출 전에 날려 먹은 게 꽤 크다. 강화 군인인 빈우라면 어떻게 버티겠지만 승객들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빈우는 뒤에 앉은 승객들을 돌아보았다.
“엄마··· 엄마아···.”
니티는 동생인 테테루를 안고 비행정의 뒤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품 안의 갓난아기는 자지러지듯이 울고 있다. 빈우가 조심스레 다가가자 누나가 화들짝 놀란다.
“아저씨, 저 엄마! 엄마한테 갈래요, 엄마한테 보내주세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빈우는 대답 없이 상자 하나를 꺼냈다.
“동생이, 테테루가 배고파하네.”
그 말에 니티는 울먹거리며 품 안의 동생을 꼭 끌어 앉았다. 빈우는 액상영양제 캡슐을 하나 꺼내 끝을 작게 잘랐다.
“아저씨가 동생 밥 줄게, 니티도 뭣 좀 먹어. 그런 다음 엄마한테 같이 가자.”
“정말요? 진짜예요?”
방금의 참극을 기억 못 하는지 엄마에게 간다는 말에 니티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그럼, 어서 가야지. 엄마가 니티랑 동생을 보고 싶어 할 거야. 빨리 가자.”
빈우는 영양제 캡슐을 조금씩 짜서 자신의 손가락에 발라 테테루의 입에 물렸다. 그러자 아기는 엄청난 기세로 손가락을 빨았다. 손목이 들썩일 정도의 힘으로.
‘왜 울토르 중대가 왔을까.’
아기에게 손가락을 물리며 빈우는 방금 일어난 참극의 원인을 파악하려 했다. 프리마는 중립이라 연방파와 반연방파가 섞여 있고, 양측과 다 거래한다. 그래서 그다지 위험도가 높지 않은 개척지다.
‘혹시 나를 노린 것인가?’
탈주한 빈우를 잡으러 왔다면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일 필요가 없다. 조용히 암살부대를 보내거나, 아니면 운석 낙하를 가장한 궤도포격으로 깨끗이 처리하면 될 일이다. 굳이 보병들을 보냈다면 달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프리마에 목적이 있다고 하기엔 빈우가 지금까지 수집한 프리마의 정보를 보면 이 개척지는 연방을 딱히 적대한 적이 없고, 그럴 계획 또한 없었다. 연방의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 개척지에 비밀 중의 비밀, 그리고 연방에서 가장 더러운 부대인 울토르 중대를 보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아니, 울토르 중대라면 쳐들어올 이유가 있군.’
그 이유는 바로 샤다이다. 빈우는 워프 비스트에 관련된 자료를 추적하다가 이곳 프리마까지 오게 되었고, 여기서 샤다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알탄훼아나라 불린 샤다이는 곰팡이를 개조해 이곳의 시민들에게 주어 공생하게까지 했다.
그리고 울토르 중대의 주적은 외계인, 그중에서 샤다이는 가장 위험도가 높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개척민들이 샤다이와 협조하고 그들이 만든 곰팡이를 몸속에 키운다 해도 울토르 중대를 보내 다짜고짜 죽일 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아니면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겠지. 마카로니처럼.’
빈우가 마리 라캉을 추적했던 마카로니는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이 뒤섞여 울토르 중대가 출동한 곳이다. 그리고 그 결과 참극이 벌어지게 되었다. 생각을 정리하던 빈우는 고개를 돌리다 비상사태를 발견했다.
“안돼!”
빈우는 서둘러 손을 뻗어 니티의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아이의 입안을 샅샅이 훑고 또 긁었다.
“뱉어! 어서 뱉어!”
“으아아앙-.”
갑작스런 행동에 니티가 놀라서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우악스러운 손길이 아프고, 또 무서운 것이다. 다행히 아이의 입에서 알약 하나가 토해져 나왔다. 아마 사탕이나 비상식량으로 착각했겠지.
“아니야, 니티. 아저씨는 니티를 탓하는 게 아니야. 지금 니티는 나쁜 약을 먹었거든. 저건 먹으면 안 되는 약이야. 저건 먹으면 자게 되는 약이야.”
빈우는 서둘러 니티를 안고는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자결용 극약을 밟아 으깼다. 조난되어서 구조가망성이 없을 때 편히 죽는 것을 도와주는 약이다. 니티는 상자 안에서 이것을 보고 사탕이라 생각해 먹은 것이다.
“이거 먹으면 자요?”
울음을 그친 니티가 훌쩍이며 물어본다.
“그래, 아주 깊게 잔단다. 다시는 깨지 못할 정도로. 그러니까 먹으면 안 돼.”
빈우는 엘리자베트 허드슨 같은 일은 더 이상 보기 싫었다. 다시는 아이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자, 이걸 먹어. 초콜릿이다. 맛있어.”
빈우가 다른 비상식량을 까서 내밀자 아이는 다시 울음을 그쳤다. 허나 이번엔 품 안의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강화군인이 무릎에 누나를, 품 안에 동생을 안고 달래고 있다. 그러다 아기가 잠에 빠지자 빈우는 조심스레 눕힌 다음 니티를 불렀다.
“니티, 이리 와보렴.”
니티는 진정했지만, 아직 겁에 질린 상태다. 그러면서도 빈우의 부름에 주춤주춤 따라나섰다.
“지금 우리는 이 비행정을 타고 목적지까지 가야 한단다. 그런데 산소가 부족해. 그래서 세 명이 숨쉬기엔 힘들어.”
개척지에서 자란 아이라 빈우가 하는 말을 금세 알아들었다. 조종석의 화면에는 현재 산소의 잔량과 도착 시간, 그리고 승객들의 산소 소비량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산소가 아주 부족하다. 도착까지는 여덟 시간이 걸리지만 세 명이 쓸 산소는 세 시간 분량이 채 안 된다. 그중에서 빈우가 쓰는 양이 가장 많다.
“그래서 니티, 이제 아저씨는 좀 쉴 거야.”
그 말에 니티가 겁을 더럭 먹고 올려본다.
“아저씨는 산소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 잠을 잘 거야. 그러면 니티와 동생인 테테루는 도착까지 숨 쉴 수 있어. 알았지?”
소녀는 겁에 질려 눈을 크게 뜬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빈우는 강화군인치고는 생체의 비율이 높다. 그렇다면 당분간 생체의 산소 소비량을 줄이면 해결될 일이다.
“니티, 이게 산소캔과 호흡기야. 사용 방법을 알려줄게.”
빈우는 니티와 테테루에게 할당된 산소량을 계산해서 시간과 횟수를 정해주었다. 그리고 밸브에 타이머를 설정해 니티에게 사용법을 가르쳤다.
“자, 해봐.”
그러자 니티는 빈우가 가르쳐준 대로 호흡기로 숨 쉬고, 조금 쉬었다가 동생에게 호흡기를 대고 숨 쉬게 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된다. 이제 아저씨는 좀 잘게. 도착하면 일어날 테니 걱정 마.”
그리고 빈우는 자리에 앉아 벨트를 맸다. 다음 양팔과 양다리로 가는 혈류를 차단하고 신경계를 끊었다. 이렇게 하면 팔다리 분의 산소를 아낄 수 있다.
‘음? 내가 이걸 한 적이 있던가?’
문득 빈우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이렇게 사지를 차단하는 것을 해본 듯한 기분이 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잡생각을 할 시간조차 아깝다. 빈우는 즉시 두뇌칩을 조절해 수면을 넘어서 가사 상태로 들어갔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영양과 산소를 아껴 생존하는 가사법을 쓰는 것이다. 다음 눈을 뜰 때면 목적지 근처일 것이고, 빨리 비행정을 착륙시킨 다음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 * *
가사 상태가 끝나고 눈을 다시 뜬 빈우가 본 것은 쪽지였다. 그의 앞자리에 쪽지 하나가 붙어있다.
-아저씨 미안해요. 제가 계산이 틀렸어요. 저도 조금 잘게요.
니티의 글씨다. 빈우가 공부를 가르쳐 줬기 때문에 알고 있다.
“니티! 니티!”
팔다리의 감각이 미처 돌아오기 전이다. 빈우는 목이 터져라 니티를 불렀다. 그러나 대답이 없다. 억지로 붙은 신경, 다시 흐르는 혈류. 빈우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부자유스러운 그의 몸에 불길한 예감이 감겨온다.
“니티!”
다시금 아이의 이름을 부른 빈우는 의자를 잡고 뒤로 돌았다. 그리고 호흡기를 낀 채 곤히 자고 있는 테테루와 그 옆에서 같이 자고 있는 니티를 보았다.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영원히.
“아- 안돼.”
빈우는 재빨리 니티의 호흡과 맥박을 재었다. 허나 그전에 아이의 몸이 차갑다는 것을 손끝으로 알 수 있었다. 옆에는 아까 먹지 말라고 했던 자결용 약의 포장지가 떨어져 있었다. 쪽지의 내용이 다시 떠오른다.
-아저씨 미안해요. 제가 계산이 틀렸어요. 저도 조금 잘게요.
아마 산소캔의 호흡 순서를 틀렸을 것이다. 아니면 숨이 차 조금 더 호흡을 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니티는 실수를 했고, 산소를 허비했으며,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선생을 따라 한 것이리라. 빈우가 산소를 아끼기 위해 잔다고 했으니 이 아이도 그걸 그대로 배워 써먹은 것이다. 잠이 드는 약을 먹어서.
‘어째서!’
빈우는 마음속으로 자책했다. 왜 좀 더 강하게 약을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을까, 왜 먹으면 죽는 약이라고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미 니티는 죽었고, 빈우가 아무리 자책한들 되살아나지 않는다.
그때 조종석 쪽에서 알람이 울렸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빈우는 조종간을 잡고 착륙 준비를 했다. 그러나 바람이 너무 강하다. 소형 비행정으론 더 이상 앞으로 가는 것이 무리일 정도다. 세찬 강풍에 비행정이 흔들리고 눈보라가 시야를 가린다.
“썅!”
눈보라를 뚫고 갑자기 빙하 산맥이 눈앞에 나타났다. 빈우는 욕을 하며 조종간을 급히 꺾었지만 이미 비행정은 옆부터 충돌해 버렸다. 그리고 기체는 중심을 잃고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기에서 경보음이 울리고, 각종 위험경고를 화면에 띄운다. 추락하는 와중에 빈우는 어떻게든 안전한 장소를 찾아 비상착륙을 하려고 했지만 여의치가 않다. 그때 충격의 여파인지 비행정의 뒷부분이 뚝 하고 떨어져 나가버렸다. 그리고 안전벨트 안에 있던 테테루가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생각할 틈도 없이 빈우는 뒤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비행정을 박차고 날아 테테루를 잡았다. 이어 빈우 자신도 영하의 설원으로 추락했다. 단단한 얼음 위에 얕게 깔린 눈이지만 강화 군인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착지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빈우와 테테루가 있는 곳은 산소가 없는 영하의 설원이다. 빈우는 이곳에서 우주선이 있는 목적지까지 도보로 가야 한다. 갓난아기를 데리고. 다행히 독성기체나 기압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장시간 있다간 테테루의 목숨이 위험하다.
“응애, 응애!”
갑작스런 추위에 아기가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숨을 쉬지 못해 헉헉댄다. 빈우가 호흡기를 갖다 대자 그제야 테테루는 숨을 쉬며 울음보를 터트릴 수 있었다.
“미안하다 아가야. 조금만 참아라.”
빈우는 아기를 자신의 품 안 깊숙이 넣어서 안고, 호흡기를 머리 위에 씌워주었다. 그래도 막을 수 없는 추위에 테테루는 경련하듯 부르르 떨었다. 지금 빈우에겐 아무런 방한 물품이 없다. 방한 물품은커녕 얼마 안 되는 물자조차 저 멀리 추락하는 비행정 안에 들어있다. 이제 둘은 맨몸이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목적지, 우주선이 있는 곳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빈우는 괜찮다. 강화군인인 그에게 이 정도 추위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정도다. 다만 신생아인 테테루가 문제다. 산소가 없는 극지방, 영하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이곳에선 목숨조차 위험하다.
“응애. 응애애-.”
태어나서 처음 겪는 맹추위에 테테루가 악을 쓰며 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 빈우는 경련하는 아기를 안고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달렸다. 잠시 호흡기로 산소를 마시고 다시 아기 머리에 호흡기를 뒤집어씌운다. 아무리 껴안고 옷으로 감싸도 차가운 공기가 아기의 몸을 파고들어 체온을 앗아간다.
그리고 빈우는 계속해서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산소가 모자란다는 경고가 계속해서 빈우의 머릿속에 뜬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조금만 더. 그렇게 자신을 달래며 빈우는 달렸다.
마침내 설원 한가운데에 위장해 놓은 우주선이 보였다. 빈우는 산소 호흡기로 숨을 듬뿍 마신 다음 힘껏 달렸다. 그리고 마지막 스퍼트의 끝에 마침내 우주선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주선 바닥에 나동그라진 빈우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헉, 헉.”
그리고 아기의 안색을 살피기 위해 호흡기를 치웠다. 호흡기 안쪽에 드러난 테테루의 코와 입에는 얼음이 끼어 있었다. 피부도 파랗고 아기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테테루, 숨을 쉬어. 테테루. 숨 쉬라고. 이제 다 왔어. 다 왔단 말이다.”
빈우는 테테루의 얼굴을 쓰다듬고 등을 비볐다. 하지만 이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은 빈우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엄마인 아미라가 죽고, 누나인 니티가 죽고, 마지막으로 테테루마저 빈우의 품 안에서 얼어 죽었다. 빈우는 아기의 코에 서린 얼음을 떼어 내려 했지만 떨어지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다간 얼어버린 피부까지 같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입김을 호호 불고, 혀로 조심스레 핥았다. 간신히 얼음을 녹이고 그 위로 다시 호흡기를 갖다 대었지만 아기는 숨을 쉬지 않는다.
“안돼.”
이미 눈마저 얼어 눈꺼풀이 붙어 있다.
“안돼….”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아기는 얼어 죽어 갔을까.
“안돼…….”
왜 자신은 품 안에서 죽어가는 아기를 살리지 못했을까.
“으아아-!!!!!”
빈우는 얼어 죽은 아기를 꼭 껴안고 오열했다. 또 한 번 자신이 살리지 못한 생명이 자신의 품 안에서 꺼져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