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71화 (169/301)

171화

뉴 소노라의 전투가 끝난 다음, 빈우는 42전단과 합류했다. 하지만 42전단이 채 완전히 편성되기도 전에 통합사령부로 호출을 받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빈우가 뉴 소노라에서 수집한 정보는 연방을 발칵 뒤집어 놓을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야이 자식아.”

빈우의 옆에서 마커스가 한숨과 함께 투덜거렸다. 뉴 소노라의 전투가 끝난 다음 빈우가 보낸 약식 보고서에는 ‘샤다이로부터 워프 비스트및 점프 게이트에 관한 최중요 정보 수집, 매우 위험함, 즉각적인 대처 필요.’라고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엔 녀석이 개인적인 부탁을 해오는 바람에 마커스 머릿속에서 보고서 내용의 우선순위는 약간 뒤로 밀려버린 것이다.

그러나 보안이 확실한 루트로 정식보고서가 들어오자 군사정보국은 문자 그대로 폭발했다. 워프 비스트가 실은 고대 샤다이의 귀환이란 것은 좋다. 그 존재들이 인류사회에 숨어들었다고 하는 것도 납득이 간다. 하지만 그 경로가 점프 공간을 통해서이고, 점프를 하면 할수록 인간이 샤다이의 정보에 감염된다고 하니 이건 이만저만 중대 사항이 아닌 것이다.

인류가 점프 항법을 쓸 수 없다면 연방은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 항성계 단위로 분열돼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래서 통합사령부는 당사자인 김빈우 소령을 긴급 소환했고, 군사정보국에서도 차장인 마커스까지 달려오게 되었다. 핀잔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뭐, 내가 이런 적이 한두 번이냐. 그리고 요즘은 특히 조심해야지.”

하지만 빈우는 새삼 무슨 엄살이냐는 투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군사정보국의 작전을 하다 보면 간혹 약식 보고서는 사안의 민감함을 반영해, 혹은 정보의 보안을 위해 정말로 약식으로 작성한다. 그리고 정식으로 보고할 때 제대로 모든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하긴, 보안국의 낌새가 이상하긴 하지.”

마커스도 빈우의 말에 납득했다. 현재 보안국은 이상하리만치 태스크포스 373과 빈우에게 집착하고 있다. 당시 빈우의 보고서 내용을 중간에 도청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들킨다 해도 중요 사안에 대해서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고 사후보고하면 끝이다.

“너는··· 보안국이 넘어갔다고 생각해?”

마커스의 질문은 조심스러웠다. 보안국이 워프 비스트의, 고대 샤다이의 손아귀에 넘어갔냐는 의미다.

“글쎄다. 정확한 건 모르지. 하지만 그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해. 문제는 보안국이 아냐. 상원 의회다.”

빈우의 지적에 마커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우드 중장과 오다 의원의 말에 따르면 상원과 연방의 각 부서에는 태스크포스 373의 창설을 막으려는 무리들이 있다고 했다. 더구나 울토르 프로젝트의 지휘자였던 전 상원의장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행동했을 때 주변이나 동료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아니면 의도적으로 본인이 회피하고-홀로 움직였었다.

결정적으로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과 그 파벌은 상원 내의 비밀 조직을 이미 인식했고, 이를 추적하기 위해 빈우와 협력한 상태다.

“아직 판별이나 색출 방법에 대한 정보는 없나?”

워프 비스트의 완성형이, 인간의 안에 샤다이의 정신과 정보가 들어온 것이라면, 놈들이 인간들로 바꿔치기 되어 연방 사회 여기저기에 파고들 수 있다. 이건 상당히 위험하다. 인류의 가장 위험한 적이 정체를 감추고 숨어있으니 한시라도 빨리 잡아내야 하는 것이다.

“없어. 알 만한 사람이 하나 있긴 있는데, 상태가 영 안 좋아.”

빈우가 말한 사람은 알탄훼아나였다. 샤다이의 호민관이자 인류가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것을 멈춰준 은인이다. 다만 문제가 몇 가지 있었다. 우선 그녀가 행동한 것은 순수한 호의라기보다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였기 때문에, 과연 이 차단이 얼마나 가는지 모른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녀가 현재 제정신이 아니란 점이다.

동료와 부하를 모조리 잃고 제국의 전대장에게 극심한 고문을 당한 그녀는 지금 치료 중에 있었다. 육체의 상처는 어찌어찌 수리를 했지만 정신 쪽은 언제 나을지 요원했다.

“그렇다면 과거의 행적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을 비교해 색출하는 방법밖에 없겠는데.”

마커스는 과거 이와 유사한 기록들을 이미 찾아봤다. 이전에도 연방은 인간에게 숨어드는 외계종족과도 싸운 전적이 있다. 그리고 그 당시 군사정보국과 보안국, 연방중앙정보국은 상당히 비인도적인 방법을 써서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지구 제국 시절부터 정체를 숨겨온 놈들이라면 그것도 힘들어.”

빈우의 지적에 마커스가 혀를 찼다. 이미 오래전부터 인류사회에 침투해 살아온 놈이라면 찾아내는 것이 꽤 까다로울 것이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위험한 이야기를 태평하게 나눌 때쯤, 비서 안드로이드가 나와 둘을 호명했다.

“김 빈우 소령님, 마커스 타이 차장님. 입실해 주십시오.”

두 사람은 통합사령부 안에 마련된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연방의 각 부처에서 쟁쟁한 인물들이-그중에서도 신원이 확실한 사람들이-보고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 * *

“안녕하세요, 오늘은 좀 어때요?”

모니카가 침대에 누워있는 알탄훼아나에게 말을 걸었다. 치료라기보다는 수리, 복원에 가까운 과정을 거쳐 샤다이의 호민관의 육체는 원래 형태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가 겪었던 고통과 절망까지는 보듬어 주지 못했다.

“….”

오늘도 알탄훼아나는 그 금색 눈을 멍하니 뜨고 천장을 바라다볼 뿐이었다. 모니카는 몇 번 더 말을 붙여보았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래서 일상적인 신체 점검을 마친 다음 병실을 나섰다. 모니카는 뒤로 문이 닫히자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나름 중요 인물이라고는 하는데 아무런 진척이 없으니 답답하다.

“아직도 그대로네.”

“앗 깜짝이야!”

허공에서 말이 들려오자 모니카가 질겁했다.

“아, 미안미안.”

파트리샤의 인필트레이터가 위장을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알탄훼아나의 호위와 감시역으로 여기에 있었다. 지금 병실에 멍하니 있는 샤다이는 과거 특수전 사령부를 뒤집어 놓은 전적이 있기 때문에 요주의 대상이다. 조금이라도 수상쩍은 모습이 보이거든 침대째-폭탄으로 만들어진 특제 침대째-날려버리란 게 팀장인 빈우의 명령이었다.

“나름 중요한 인물 같아 보였는데 소득이 없네.”

파트리샤가 헬멧을 열고는 말했다. 처음에는 샤다이의 호민관에 워프 비스트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 상당한 VVIP인줄로만 알았었다. 그러나 블랙 랜스로 온 다음부터는 죽 반송장인 채였으니 24시간 붙어있어야 하는 파트리샤로서는 따분했다.

“그러게요. 하지만 마음의 상처가 크니 어쩔 수가 없지요.”

“마음의 상처라···.”

파트리샤에겐 방금의 단어가 이질적으로 들린다. 인류의 주적에게 과연 어울릴만한 표현인가 싶은 것이다.

“팀장님은 어쩌신대?”

파트리샤는 질문해놓고도 아차 싶었다. 요근래 태스크포스 373의 팀장인 빈우는 당최 그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호출받았다 하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게 요즘 그의 일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팀원들도 팀장을 만나기가 힘들었고, 빈우는 대략적인 팀의 지침 정도만 부팀장 아룹에게 일임하고선 가끔씩 통신으로만 팀원들과 만나고 있었다.

“오늘 회의 결과를 보고 결정하신다고 했어요.”

“역시나.”

파트리샤도 오늘 회의가 팀의 향방에 큰 영향을 끼치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 *

빈우는 나름 유명했다. 닉스레벨 3이라면 군의 각 부서에서도 탐을 내는 인재다.

빈우는 꽤 유명했다. 군사정보국에서도 별의별 악독한 작전을 수행하여 누구나 꺼리는 폭탄이다.

그 유명한 빈우는 회의 중에 순식간에 그룹을 구분했다. 매파와 비둘기파, 자신에게 호의적인 자와 적대적인 자. 각 분야의 세부적인 파벌은 알 필요가 없다. 자기가 당겨야 할 줄만 잘 파악하면 일은 쉽게 풀리는 법이다.

“…이런 이유로 건물을 파괴해 적들의 진입로를 차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흠, 그렇군. 고생했어.”

태스크포스 373의 직속 상관인 레드우드 중장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중차대한 사안에 특수전 사령부의 사령관이 직접 달려온 것이다.

“샤다이의 호민관, 알탄훼아나와의 대화 중에 모호한 의미는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계단을 씸이라고 하는 고어체 표현이 있었지만, 심리전의 기색은 없었습니다.”

마커스는 지금 군사정보국의 차장의 입장으로 있지만, 미리 말을 맞춰둔 덕에 빈우와 쑥떡찰떡 죽이 맞는 대화를 한다.

“대기권 안에서 입자가속포를 써? 허허허, 야 이 새끼 이거 멋진 놈이네.”

“죄송합니다. 위급한 상황이라 화력이 조금이라도 더 필요했습니다.”

42전단에서도 전단장인 스베뜰라냐 스크로도프스카 중장이 직접 왔다. 그녀는 자신과 합동작전을 펼치게 될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이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빈우가 듣기로 그녀는 순양함을 위주로 한 묵직한 기동타격전을 선호한다고 했다. 뉴 소노라에 온 분함대가 모두 순양함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아, 대기권 내에서 쐈다고 뭐라는 게 아니야. 이게 당시 뉴 소노라에 있던 샤다이 함선들의 정보인가?”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빈우가 제출한 보고서의 샤다이들의 전투함에 대한 부분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앞으로 42전단이 직접 맞서 싸워야 할 상대들이니 관심이 갈 수밖에.

“예, 개중에 리퍼 전투함들은 플라스마 외에도 아군이 쓰는 자기가속계열 병기를 쓰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동족들을 상대할 때 유효하다고 판단해 채용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과연, 놈들도 개판이란 말이지.”

그녀는 워프 비스트와 점프 공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의 방침은 ‘농사는 농부에게, 낚시는 어부에게’였다. 즉 자신은 자신의 전문분야에만 집중하고 그 외의 일은 다른 전문가들에게 맡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빈우는 그녀가 개판이란 단어를 쓴 것을 흘려듣지 않았다. 42전단의 창설에 반대는 없었다고 했지만 아주 잡음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김 소령, 굳이 그 방법을 써야 했습니까?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까?”

보안국에서는 마힌다르 후세인 소령이 왔다. 그녀는 앞뒤 없이 대뜸 ‘그 방법’이란 단어를 썼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 말입니까?”

빈우는 이게 그녀의 실수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꼬투리 잡기인지 알아보기 위해 자신도 슬슬 준비를 했다.

“필요 이상으로 뉴 소노라의 건물을 부순 것 말입니다.”

“그 건에 대해서는 이미 레드우드 사령관님께 보고를 했고, 각하께서도 납득하셨습니다. 특수전 사령부의 의향에 달리 반감이라도 있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요?”

빈우의 반격에 후세인 소령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화제를 바꿔 영상을 하나 띄웠다. 빈우가 알탄훼아나와 함께 워프 비스트의 계단을 파괴하던 장면, 고아 소년에게 플라스마를 밀어 넣는 기록을 보며 빈우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김 소령, 이것이 정말로 연방을 위해서 한 행동이 맞습니까? ‘그 샤다이’와 협력해가며 말이지요. 이 때문에 뉴 소노라와 연방 간의 불화-.”

“씨발년아, 뭐 어쩌라고.”

그녀의 말을 끊은 것은 빈우였다. 그 순간 후세인 소령이 얼어붙었다. 쟁쟁한 별들 사이에서 소령이 틱틱거리니 별들의 시선이 꽤나 집중된다. 그리고 그 시선을 나누어 받는 후세인 소령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다시 말했다.

“…음, 일단 샤다이의 진위를 파악하고 행동에 나서는 게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이건 또 뭔 씹지랄이야, 사방에 워프 비스트 바글바글하고, 민간인들 여기저기 모가지 따이고, 대가리 위에선 플라스마 폭풍이 쏟아지고, 아차 하다간 연방 어디서 워프 비스트가 더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뭘 어쩔까.”

빈우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그 정적을 깬 것은 두 번이나 공격받은 후세인 소령이다.

“지금 어디서 감히-.”

“어디서는 여기서지. 통합작전사령부의 회의실. 여기가 보안국 안마당인 줄 아냐? 오다 의원님께 잡짓 하다가 된통 당하고도 아직 정신 못 차렸어? 아, 정신 차렸으니 나하고 계급 맞춰서 소령 보낸 건가?”

보통 보안국의 소령급쯤 되면 장성급을 수사한다. 그래서 어지간한 별들도 보안국의 영관급은 껄끄러워하고, 보안국 쪽도 자연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문제는 빈우는 군사정보국 소속이란 점이고, 군사정보국은 보안국과 천생연분 애증의 관계다.

“아니지, 42전단 보급목록 보니까 스파게티 드래곤에서 아주 퍼부었더라? 니들 또 뒤에서 무슨 꿍꿍이 벌이는 거 아니냐?”

빈우의 폭로에 42전단장은 ‘뭣이시발.’ 하면서 날카로운 시선을 후세인 소령에게 보냈다. 군사정보국의 차장은 ‘작작 해 이새끼야’라고 조용히 속삭인다. 보안국 패는 것은 좋은데 싸움은 붙이지 말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것도 이미 짜놓은 판이다.

빈우와 마커스는 어떻게든 보안국을 쑤시려고 했다. 보안국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철저하게 확인한 다음 분석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저쪽에서 그다지 급이 높지 않은 인물을 보낸 것을 보면 얻어낼 수 있는 정보가 적다는 것은 둘째치고 좀 수상하다.

워프 비스트와 점프 게이트에 관련된 정보. 워프 비스트의 영향력이 닿고 있는 보안국이 이번 일에 이렇게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쿠사키나 국장을 위시한 고위 간부급들이 오지 않았다면 몸을 사리는 거나 아니면 다른 일이 있는 경우다.

‘지금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빈우는 스스로 반문해 보았다. 확실히 후자의 경우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허나 만약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 아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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