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72화 (170/301)

172화

마침내 길고 긴 회의가 끝나자 빈우와 마커스는 지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중간에 나가거나 들어오는 등 주제에 따라 멤버의 교체가 있었지만, 빈우는 해당 사건의 보고자이고 마커스는 이번 일의 전담부서인 군사정보국의 차장이다. 두 사람 다 결코 중간에 빠질 수가 없는 것이다.

“평생 먹을 마카롱 오늘 다 먹네. 앞으로는 못 먹을 거 같다.”

마커스가 복도 벽에 마카롱을 집어 던지며 넋두리를 했다.

“질리면 똥구멍으로 빨아먹지 그러냐.”

빈우 역시 멍하니 대꾸를 던진다.

“…그거 된다더라. 뱅가드에서 했다던데.”

“허미, 시발것들.”

실없는 농담을 하며 두 사람은 걸었다. 아무말 대잔치에서 주제를 바꾼 것은 마커스였다,

“참, 빈우야. 아이 입양은 끝났다.”

빈우는 마커스의 말을 순간 알아듣지 못했다.

‘아이라, 아이? 누구지?’

빈우가 멍한 표정으로 머리 속을 더듬다 질문했다.

“입양이라고? 니티 말이냐?”

빈우의 질문에 마커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니티? 티모시 1079 본명이 니티였냐?”

“…아, 아아. 미안해. 내가 정신이 없나 보다. 그래, 입양은 잘되었고?”

“그래, 우리 쪽에서 세탁된 부부에게 입양 보냈다.”

세탁이라면 군사정보국의 일을 하다가 모든 복무기록을 삭제당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런 자들의 결혼은, 관리 차원에서 같은 세탁된 자들끼리 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런 가정에 티모시 1079가 입양되었다는 것은 이 아기도 앞으로 군사정보국의 관리 대상이란 의미다. 오히려 잘되었다. 이제 그 아이는 과거의 일을 모른 채 새로운 곳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것이다.

“한번 만나 볼래?”

마커스가 화면을 띄우려고 하자 빈우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이제 나하고 안 만나는 게 그 애한테 좋을 거야.”

빈우가 그 아기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뉴 소노라로 내려가 정치꾼들의 품에서 뺏어올 때였다. 당시 빈우는 연방의 정식 명령서를 가지고 내려갔었고, 그 사실을 가볍게 여긴 현지의 녹색연맹들은 저번처럼 빈우를 대했다가 제대로 곤욕을 치렀다. 적대종족과의 내통이나 내란 선동 등의 혐의로 엮어서 줄줄이 잡아들인 것이다.

친구의 말에 마커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친구를 보니 얼굴이 퀭하다. 강화육체를 가진 군인이 지쳤다면 그건 육체가 아니라 정신일 것이다.

“빈우 너, 너무 피곤해 보인다. 좀 쉬어.”

“나도 쉬고 싶다.”

빈우는 태스크 포스 373에서는 팀장이지만, 따지고 보면 중간관리직이다. 최고 지휘관과 현장 부대원들 사이에 끼인 것이다. 일이 위아래로 덤벼드니 미칠 지경이다.

“잠은 제대로 자냐?”

“뭘, 그냥 대충 수면 모드 돌리고 있지.”

강화군인은 수면 모드로 잠깐잠깐 휴식이 가능하지만, 이런 게 반복되고 길어지면 좋을 건 없다.

“그러다가 너, 몸은 몰라도 정신 갉아먹는다. 나중에 아나스타샤한테 무릎 베게 해달라던가.”

“…….”

마커스는 자기 말에 대답 없이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빈우의 어깨를 툭 쳤다.

“얌마.”

“…어, 그래. 가볼게.”

빈우는 친구의 걱정스런 시선을 뒤로하고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러나 그가 간 곳은 아나스타샤가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방이 아니라, 피에르 라캉 중령의 허수아비인 아를르캥이 있는 주방이었다.

마침 주방에는 아를르캥이 재료의 밑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빈우는 대답 대신 질문부터 던졌다.

“아를르캥, 오르틀랑의 조리법을 아나?”

“물론이지요. 가르쳐 드릴까요?”

하지만 아를르캥이 알려준 것은 전통적인 오르틀랑 조리법이다. 새를 잡아 가두고 통째로 요리하는. 그 조리법을 끝까지 다 들은 빈우가 말했다.

“너 혹시 이 조리법을 알고 있나?”

그가 말한 것은 피에르 라캉이 어레인지한 모조품의 조리법이다. 곱게 간 견과류의 가루를 오리 기름으로 반죽해서 살을 만들고, 다진 닭의 모래주머니를 술로 졸여 내장 흉내를 낸다. 여기까지 들은 아를르캥의 표정이 바뀐다. 빈우의 말에 반응해 수동모드로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를르캥은 그저 로봇처럼 단순하게 반응할 뿐이다.

“김 빈우 소령님, 그 조리법을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울토르 클론 제조시설에서. 너의 주인에게 직접.”

“주인님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이걸 먹고 나면 어딜 가도 섭섭한 대접은 안 한다더군.”

“그렇군요. 헌데 약간 보충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를르캥이 홀로그램 하나를 띄운다. 방금 빈우가 말한 오르틀랑 조리법이다.

“이것이 맞습니까?”

“맞아.”

거기서부터 화면의 조리법이 변한다. 정확히는 글자가 지워지고, 순서가 변형된다. 조리법이 아나그램 되어 새로운 문장을 만든다.

바로 피에르 라캉 중령이 남긴 메시지다.

-현재 연방의 인간을 괴물로 변형시키는 워프 비스트 현상은 고대 샤다이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한 정보와 치료법은 샤다이 협조자 알탄훼아나 호민관으로부터 알아낸….

애초에 아를르캥에게는 정보가 없었다. 이 안드로이드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해당 문장이 들어가면 그 문장에 반응해 문자 순서를 바꾸는 키만이 들어있을 뿐인 것이다. 피에르 라캉이 아군이라고 파악한 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별다른 것은 없군.’

빈우의 눈앞에 보여지는 것은 워프 비스트와 점프 게이트에 대한 중요 기밀정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미 당사자인 알탄훼아나를 통해 알고 있는 정보이기도 하다.

‘이것은… 계단을 만드는 방법.’

아를르캥이 조합해준 정보 중에선 이쪽 우주에서 계단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나와 있다. 알탄훼아나가 말하려다 중간에 끊은 정보다. 허나 실망스럽게도 그것은 점프 게이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계단을 만드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방법도 빈우가 반 정도는 짐작한 대로였다.

‘역시 육체가 아니라 정신 쪽이었나?’

빈우는 뉴 소노라에서 워프 비스트들이 인간을 고문하는 것을 보고 육체를 망가트려 변형을 돕는 것이라 짐작했다. 허나 이 정보에 따르면 인간의 안에 계단을 만들려면 당사자의 정신을 부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인간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을 때 마음에 상처가 생긴다. 그러면 인간을 잠식한 샤다이의 정보가 이것을 토대로 삼아 계단을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티모시 1078의 안에 있는 계단을 부술 때 빈우는 알탄훼아나와 함께 그 광경을 보았다.

‘인류가 아는 물리학과는 동떨어져 있다. 오히려 심리학 쪽에 가깝군.’

아닌 게 아니라 샤다이의 과학은 오히려 정신과학이나 심리학 부분 같은 느낌이 든다. 어찌 보면 마법과도 같다. 원리를 이해할 수 없는 현재의 인류에겐 당연히 이렇게 느껴지겠지.

‘그 외에도 자잘하게 꽤 많지만, 중요하지는 않고 알거나 짐작하는 것들이다.’

시기가 아쉬운 정보들이다. 만약 빈우의 기록이-피에르 라캉 중령에게 오르틀랑을 대접받은 기록이-잠겨 있지 않았더라면,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아를르캥을 만난 그 순간에 알 수 있었던 내용이다. 지금부터 훨씬 전에 말이다. 라캉 중령은 과거 빈우에게 오르틀랑을 대접했을 때 그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으니, 빈우는 아를르캥을 만났을 때 분명 이 조리법에 대해 물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빈우는 그 기록을 잠가 놨었다. 포말하우트 게이트 안에서 자신의 트리니티 패턴으로. 이렇게 하면 다른 이들은 이 기록에 대해 접근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이전의 빈우는 그 당시의 대화를 상당히 주요한 키워드라고 판단해 보호했던 것 같다. 그 결과 수수께끼가 풀리긴 했지만 너무 늦게 풀려버리고 말았다.

정보를 확인한 빈우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아를르캥, 넌 무엇을 위해 일하지?”

“저는 연방과 연방의 시민을 위해 일합니다.”

“좋아, 그리고 거기서 좀 더 나아가 네가 본질적으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지?”

“연방의 영토와 평화입니다.”

아주 상투적인, 그러나 모든 인공지능에게 각인된 것이다.

“그 방법은?”

“복종과 봉사와 헌신입니다.”

“그렇다면 복종해라. 나는 연방군사정보국의 소령으로서 보안국 소속 피에르 라캉 중령의 가정용 허수아비인 너에게 명령한다. 네가 알고 있는 정보는 연방에 대단히 중요하면서도 또한 위험한 정보다. 따라서 연방을 지키기 위해 그 정보를 보호해야 한다. 이해했나?”

“네,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가정용 허수아비인 너에겐 이를 지키고 보호할 능력이 없다. 때문에 그 정보를 회수한 지금, 연방의 안위를 위해 너를 분해하겠다. 따라와.”

“네.”

빈우는 아를르캥을 데리고 설비실로 갔다. 그리고 안드로이드의 전원을 끈 다음 허수아비 AI를 뽑아내 완전히 삭제했다. 마지막으로 그 육체는 분해기에 집어넣어 물질생성기용 자원으로 완전히 환원시켜버렸다. 이제 아를르캥이란 안드로이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중에 작전 중에 파손되었다고 말을 돌리면 보안국은 이를 바득바득 갈겠지만 포기할 것이고, 태스크 포스 373 팀원들은 군사정보국 쪽에 무슨 일이 있겠거니 하고 납득할 것이다.

“어머, 팀장님 어쩐 일이세요?”

돌아보니 모니카다. 그녀는 피곤한 얼굴에도 미소를 띄우며 다가오고 있었다.

“응, 기밀자료 제거하고 있었어.”

빈우의 대답에 모니카는 한창 돌아가고 있는 분해기를 봤다.

“뭔데요? 무슨 자료인데요?”

호기심에 찬 눈으로 물어보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천진하기까지 하다. 일반적인 군인이라면 방금 빈우의 말에 납득하고 넘어가겠지만, 모니카는 무늬만 군인이지 거의 민간연구원에 가깝다. 사고방식이 일반적인 군인들과는 조금 다르다.

“말하는 거야 문제는 아닌데, 그러면 너 비밀엄수 계약서 써야 한다? 군사정보국 쪽의 걸로.”

“…그거 귀찮은가요?”

“어차피 너도 정보사령본부 소속이니까 자격획득이 어렵지는 않겠지만, 나중에 이것저것 절차가 복잡해. 또 보안국이 집적거리기도 할 거고. 추천은 안 한다.”

“웩, 안 할래요.”

호들갑을 떠는 모니카를 보며 빈우는 픽 웃더니 요 근래 하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모니카, 너 앞으로 어떻게 할래?”

“….”

빈우의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모니카는 대답 없이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다. 그래서 빈우는 한 번 더 물어봤다.

“비홀더 전대로부터 받은 병기 기술들. 그것 때문에 니네 본가가 미쳐 날뛴다는데, 넌 안 가봐도 되겠어?”

빈우가 섬으로부터 받은 대가는 입자빔포 계열의 화기를 비롯해 샤다이에게 유효한 병기들이었다. 개중에는 샤다이의 보호막이나 은신막을 해제하는 기술도 있었다. 이걸 본 모니카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정보 분석에 매달렸고, 이것을 받은 군사기술국의 상황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게다가 아주 상세한 설계도까지 있어 제작과 양산이 바로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안 그래도 돌아오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던걸요. 이번 성과로 소령으로 특진하고 바로 프로젝트 투입이래요. 가고 싶긴 한데… 여기 일도 신경 쓰이기도 하고.”

빈우의 컨커러나 스핑크스는 아직 미완의 병기라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전문가는 바로 눈앞에 있는 모니카 보르자 대위다. 그녀가 없으면 당장 빈우는 어벤져에 코일건을 들고 뛰어야 한다.

“또 여기 있으면 또 새로운 기술들을 접할 기회가 있으니까, 그것도 기대가 되고요. 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글쎄다. 가고 말고는 네 맘이지만 소령 진급은 관두는 게 좋을 거다.”

“어, 왜요?”

모니카가 고개를 갸웃한다. 영관급이 되면 접근할 수 있는 기밀 등급이 높아지고, 연구나 개발에 대한 권한도 많아질 텐데 팀장이 추천하지 않는 것이다.

“영관급부터는 좀 골치 아파. 너처럼 순수하게 연구와 개발만 좋아하는 애들하곤 안 어울려. 차라리 대위로 주욱 있는 게 좋을걸.”

실제로 소령인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굉장히 설득력이 있어 모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분해기의 작동이 끝나서 빈우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빈우를 모니카의 질문이 붙잡는다.

“참, 팀장님. 혹시 아를르캥 못 보셨어요? 오늘 저녁 식사 기대하라고 하던데 아까부터 통신이 안 돼요.”

그 질문에 빈우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대답한다.

“아, 내가 말을 했어야 하는데, 방금 군사정보국에서 아를르캥을 회수해 갔다.”

“에엣? 왜요?”

“알다시피 그 녀석, 샤다이와 워프에 대한 고급정보가 있을 거라 추측되잖아. 그런데 진척이 없자 군사정보국에서 들고 가서 조사한다더라.”

“아아….”

갑작스레 동료가 떠났다는 소식에 모니카가 실망의 한숨을 내쉰다. 그의 식사는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못 먹게 된다고 하니 꽤나 서운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빈우는 피식 웃더니 손가락으로 분해기를 가리켰다.

“이제 저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겠냐? 아를르캥의 중요한 소지품도 이미 군사정보국이 다 들고 갔고, 나머지 기타 등등을 이렇게 내가 재활용하고 있는 거야. 알겠어?”

“네에. 참, 근데 그거 비밀이라면서요?”

“못 들은 셈 쳐.”

빈우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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