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다음으로 빈우가 간 곳은 블랙 랜스의 알탄훼아나가 있는 병실이었다. 그런데 그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을 즈음 오다 히토미 의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랜만이에요, 팀장님.
“오랜만입니다, 의원님.”
그녀는 상원의회로 가서 지금까지의 일에 대해 보고를 하고 온 참이다.
“통합사령부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네? 저 블랙 랜스로 돌아가는 길인데요?
그러고 보니 오다 의원은 42전단에 합류해서도 블랙 랜스에 머물겠다고 한다. 블랙 랜스는 아무리 최신예라 해도 태생이 구축함이라 지내기에 불편하다. 그래서 빈우는 그녀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나 싶어 마커스나 레드우드 사령관에게 넌지시 물어봤지만, 두 사람 다 그녀의 고집은 아버지를 똑 닮았다면서 그냥 포기하라고 했다. 빈우도 이케가미 전 상원의장의 고집을 익히 아는 터라 두 사람의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혹시 제 방 뺀 건가요?
익살맞은 그녀의 농담에 빈우는 피식 웃었다. 그녀가 없는 틈을 타 방을 빼려고 했는데 선수를 빼앗겨 버린 것이다.
“그럴 리가요. 아나스타샤를 시켜 단장 좀 하라고 시키겠습니다.”
-호호, 고마워요. 그런데 지금 바쁘세요?
“바쁜 건 아니지만, 생포한 샤다이를 보러 가는 중입니다. 말씀하실 게 있다면 미루지요.”
-아니에요. 마침 잘됐네요. 저도 같이 가요.
그렇게 빈우와 히토미는 블랜 랜스의 앞에서 만나 같이 승함하게 되었다.
“가신 일은 잘되었습니까?”
빈우의 질문에 히토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태스크포스 373에서 수집한 정보를 상원에 보고를 하러 갔었다. 워프 비스트와 점프 게이트에 관한 것도. 따라서 보고도 보고지만 그녀에게 준 정보로 그녀가 속한 파벌이 연방 내에 숨어있는 워프 비스트를 어떻게 상대할지 그 반응도 대단히 중요하다.
“일단 올라가서 얘기해요.”
밖에서 할 얘기가 아닌 듯 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히토미의 얼굴도 꽤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래서 빈우는 주머니에서 간식을 하나 꺼냈다.
“마카롱 하나 드시겠습니까?”
히토미는 빈우의 손에 들린 앙증맞은 간식을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어마나, 이뻐라아. 근데 이거— 는. 민간용이겠죠?”
“그럴 리가요. 군용입니다. 개당 이만오천 칼로리에다 먹는 순간 피로가 뿅 하고 사라지는 피로뿅 에디션입니다.”
“제발, 그만. 아나스타샤하고 먹을래요. 치우세요.”
히토미도 이제는 태스크 포스 373에 적응했는지 악랄한 농담과 장난도 척척 받아넘겼다.
“야아, 우리 팀장님 오래간만이네요. 의원님도 어서 오십시오.”
병실 입구에서 인필트레이터가 모습을 드러내며 반겨준다. 파트리샤다.
“오냐, 별다른 사항 없고?”
“네, 그냥 죽은 듯이 있던데요.”
“그렇단 말이지.”
뉴 소노라에서 알탄훼아나를 구했을 때, 그녀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하지만 그 벼랑 끝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었다. 굴욕과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살아남아 목적을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이거 눈이 완전히 갔네요?”
파트리샤의 말대로다. 지금 알탄훼아나의 눈은 아주 탁하고 멍했다. 비록 인간의 눈과는 구조가 다르지만, 그 내면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으음, 지상에서는 그래도 총기가 살아 있었다고 하셨었죠?”
히토미가 알탄훼아나를 조심스레 훑어보며 질문했다.
“네,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었지만, 정신만은 포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빈우는 파트리샤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요? 내 가슴?”
“미친년아, 칼.”
파트리샤가 진동나이프를 건네주자 그걸 받아든 빈우는 전원을 켜지 않고 날 부분을 알탄훼아나의 눈앞에 들이댔다.
“어···.”
뭔가 날카롭고 번뜩이는 것을 본 알탄훼아나는 작은 반응을 보였다.
“어어, 어어어! 아아악!”
그리고 비명을 지르더니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온몸이 침대에 묶여있는 터라 그 자리에서만 버둥거릴 뿐이다. 잠시의 발작이 끝나자 샤다이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침대에 파묻혔다.
“씨바랄, 깜빡이를 키던가!”
파트리샤가 버럭 화를 내며 진동나이프를 채갔다. 그녀의 뒤에는 히토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겁에 질려있었다.
“그냥 반응을 보려고 한 겁니다. 그런데 반응이 격렬했던 것뿐입니다.”
빈우는 해명을 했지만, 히토미는 놀란 눈으로 째려봤다.
“이제 뭐 하려거든 말하고 해주세요. 제발요.”
용감무쌍한 연방의 군인은 상원의원의 부탁에 그러겠다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쟤 뭐라 뭐라 말하던데 무슨 뜻이에요?”
파트리샤가 질문했다.
“그 비명?”
칼을 본 순간 알탄훼아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애원이고 부탁이었다.
“나를 죽여라. 동포들은 죄가 없다. 그들을 놓아주고 내게 와라, 뭐 이런 뜻.”
빈우의 설명에 파트리샤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히토미는 잘 못 알아들은 눈치였다. 그래서 빈우가 부연 설명을 했다.
“알탄훼아나 파벌은 비홀더 1전대에 붙잡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문을 받았고, 생존자는 알탄훼아나 그녀뿐이죠. 아마 비홀더 전대는 그녀의 눈앞에서 그녀의 동료를 고문했을 겁니다. 산채로 타르타르 스테이크로 만들며 말이죠. 흠, 색이 좀 퍼런 스테이크겠군요.”
빈우의 설명에 히토미는 가벼운 헛구역질은 했고, 그걸 본 두 군인은 가볍게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에요. 토하는 건 아니에요. 조금 기분이 그래서…. 이제 괜찮아요.”
히토미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훔쳤다. 그리고 파트리샤는 손바닥으로 팀장의 뒷통수를 훔쳤다.
“아마 저 샤다이는 마음의 상처가 큰 모양이네요. 나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질문한 히토미는 빈우와 파트리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문득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 같아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에요. 샤다이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그녀의 정신이 돌아와야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녀의 필사적인 변명을 들은 빈우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아니, 저희는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만. 또 샤다이가 저희들의 주적이라 한들 의원님께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은 자유지요. 이런 것 가지고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네, 저도요.”
“…아, 그런가요.”
상원의원이 안심하며 그 큰 가슴을 쓸어내리자 빈우가 설명을 시작했다.
“정신이 돌아온다… 라고 하셨지요. 일단 샤다이의 사고체계와 감정은 인간과 대단히 유사합니다. 그래서 외부의 자극에 대한 상호반응도 인간과 거의 일치하는 편이죠.”
그러면서 빈우는 병실의 책장에서 메모지 한 장을 꺼냈다.
“저 사댜이가 보이는 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러니까 PTSD의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치료 과정이라면…. 그전에 일단 이것으로 예를 들어 보지요.”
빈우는 메모지를 조금씩 뜯어서 팔다리가 달린 사람 모양 인형을 만들었다.
“아시다시피 사람은 외부의 충격과 공격에 부상을 입습니다. 하지만 그 점은 내부, 즉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빈우가 손가락을 탁탁 튕겨 종이 인형을 때린다.
“이 인형을 인간의 정신이라고 가정하고, 보시다시피 가벼운 충격이라면 금세 회복합니다. 하지만 그게 심하면 이렇게 되지요.”
손가락을 조금 세게 튕기자 인형의 팔 부분이 조금 찢어진다.
“이런 건 좀 큰 충격이겠죠. 이 인형은 사고로 인한 충격이나 어떠한 일의 좌절 등으로 상처를 입었을 겁니다. 몸이 그렇다면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치료해 볼까요?”
그다음, 풀로 인형의 찢어진 팔을 도로 붙인다.
“짜잔, 고통을 이겨내고 좌절을 딛고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번엔 인형의 다리를 북하고 찢어서 떼어냈다.
“충격이 크면 클수록 상처 또한 커지는 법입니다. 친구나 동료가 죽었을 경우, 혹은 자신이 큰 부상을 당한 경우라면 아마도 이렇게 될 겁니다.”
그러면서 빈우는 찢은 종이를 돌돌 말아 탁 튕겨냈다.
“큰일이네, 다리가 없어.”
장난스런 빈우의 말대로 다리가 없는 인형은 제대로 서지 못한다. 책상 위로 계속 넘어진다.
“이걸 못 이기면 사람은 넘어집니다. 하지만 말이죠. 인간은 어떻게든 회복하려 합니다.”
빈우는 새로 메모지를 길게 찢어 다리를 만든 다음 인형에게 붙였다,
“자, 다시 일어서는 데 성공.”
새로 다리가 생긴 인형은 책상 위에 삐뚤하게나마 서 있다.
“그런데 알탄훼아나 같은 경우는 그 정도가 꽤나 심합니다. 저런 강도 높은 고문을 당하거나 눈앞에서 가족, 혹은 동료가 처참하게 죽었다면…….”
누워있던 인형이 빈우의 손가락에 잡혀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북북 찢겨진다. 마지막으로 찢어진 종잇조각들이 책상 위로 떨어진다.
“그 상처가 꽤 클 겁니다. 그만큼 치료에도 시간이 걸리지요. 이렇게.”
빈우가 접착제와 여분의 메모지를 가져와 인형을 수리하기 시작한다. 찢어진 종잇조각들이 다시 인형 모습을 갖춘다. 그러나 팔다리가 바뀌는 경우도 있고, 없는 부분은 새로 종이를 덧대 만든다.
“정신적 충격은 육체적 부상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결과는 두 가지죠. 재활해서 극복하고 일어서거나, 서지 못하고 넘어져 있거나.”
인형을 수리한 빈우는 그것을 다시 책상 위에 세웠다. 모양은 이상해도 인간 모양 종잇조각은 어떻게 서 있긴 하다.
“저기, 팀장님. 이거 인형이 좀···.”
히토미가 넝마주이가 된 인형을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이게 치료냐고 묻는 표정이다.
“원래 그렇습니다. 치료한다고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흉터는 남고, 사람은 변하죠. 뭐, 사람은 변화하는 생물이긴 합니다만.”
하지만 빈우의 대답은 냉혹했다.
“발달된 의료기술 덕분에 육체의 상처는 빨리 치료되고, 흉터 역시 금방 사라지지요.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렇게 쉽게 안 됩니다. 그저 정신 상담과 치료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그 흉터는 결코 지워지지 않아요. 결코.”
그제야 히토미는 자신의 앞에 있는 두 사람의 직업을 다시금 떠올렸다. 군인. 폭력과 죽음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자들이다.
“아, 저….”
뭔가 죄책감을 느낀 히토미가 뭐라 말을 꺼내려 할 때, 빈우가 선수를 쳤다.
“제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만, PTSD는 실제 신경계에도 영향을 끼치는 병입니다. 갑작스런 폭발과 공격, 전투, 죽음. 이런 것들은 흥분과 공포를 유발하고 결국 뇌 속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만들죠. 종내에는 신경계가 피폐해집니다. 다행히 저희들은 강화신경계와 두뇌칩 속의 전투용 OS 덕에 극단적인 경우까지는 가지 않지요. 또한 저희 연방군은 전투피로에 지친 장병들을 위한 대응책과 치료법들을 다수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까지 말한 빈우는 파트리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말할 기회를 받은 실리콘 나이트 대원이 자기 경험을 얘기했다.
“뭐어, 대부분은 코일건 처음 쏴보면 거기서부터 놀라요. 그 소리와 파괴력. 그때까진 모르던 것들이죠. 의원님도 아시지만 영화와는 영 다르죠. 그리고 훈련받으면서도 이래저래 놀라지만··· 가장 큰 건 부조리입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하지만 의원님. 우린 우리가 원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팀장님 말씀대로 우린 이겨내고 있어요.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 그래도···.”
머뭇거리는 히토미에게 이번에는 빈우가 나섰다.
“네, 그렇다 한들 이겨내지 못하는 자들도 다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대하게 되지요. 그러나 이런 것은 비단 우리 군인들뿐만이 아닙니다. 위험한 직종에 종사하는 연방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증상에 노출되지요. 그만큼 치료 방법도 다양하지만. 흠, 글쎄요. 샤다이 상대로는 어떨지.”
빈우도 명색이 장교라 부하들의 멘탈케어에 대해서는 교육받은 바 있다. 하지만 외계종족을 상대로는 완전히 백지 상태다. 알탄훼아나를 대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돌려놓기 위해선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는 지금부터 알아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