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결국 스미스 일가는 연이은 정신적 충격에 못이겨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마저 치료가 되기 전에 알탄훼아나 측과 전투가 일어나는 바람에 다시 상처가 재발, 샤다이의 계단이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날의 광경을 떠올린 373 팀원들은 입맛이 조금 썼다. 스미스 일가는 바로 그들이 죽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알탄훼아나 호민관은 왜 오스카 스테이션을 공격한 거지요? 게다가 피에르 라캉 중령과는 협력관계였는데 왜 죽였을까요?”
파트리샤가 질문했다. 몇 차례 협조를 하긴 했지만 알탄훼아나는 샤다이고 연방과 적대적인 종족이다. 또 실제로 태스크 포스 373과 교전했다.
“그것은 당사자가 정신을 차려야 알아볼 수 있겠지만, 몇 가지 가능성 높은 추측이 있다. 첫째, 알탄훼아나는 고대 샤다이들의 귀환을 반대하는 파벌의 수장이다. 때문에 당시 스미스 일가의 몸에 있는 계단을 알아보고 행동했을 수 있지. 더불어 라캉 중령과의 일도 그런 맥락일 수도 있다.”
“설마 라캉 중령도 계단이 생겼다는 말입니까?”
이어진 파트리샤의 질문에 빈우는 당시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보았던 피에르 라캉 중령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내와 아들을 잃고 폐인이 된 모습. 그 망가진 정신이라면 계단이 충분히 생기고도 남는다.
“그렇겠지. 자세한 것은 앞서 말했듯이 당사자에게 물어보도록 하자. 그리고 그 계단의 조건이 문제다.”
다음 빈우가 나열한 것은 몇몇 연방 시민들의 신상명세서다.
“지금까지 워프 비스트로 변한 사람들의 사례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경향의 PTSD를 겪은 사람들이다. 다만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아직 변이하지 않은 이들이 더 많기에, 이 부분에 관해선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단 결론이 나왔다. 다음은 24함대다.”
이어지는 빈우의 설명에 팀원들은 긴장했다. 24함대는 변경함대라고는 하나 엄연히 두뇌칩이 있는 연방의 군인들이다. 전투를 하며 그에 대한 충격을 받아도, 두뇌칩의 전투OS를 통해 전투 피로를 관리받는다. 신체 내 신경망 또한 강화되어 있다. 지금 태스크 포스 373과 똑같은 상황인 것이다.
“일단 공식적으로 24함대는 발 가르단 하스에서의 토끼몰이 작전 이후 순찰 임무 외에는 작전을 한 적이 없다.”
최초로 발견한 리퍼는 연방이 추적해도 그다지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교전을 피하며 도망쳤다. 그래서 연방은 토끼몰이 작전으로 포위망을 펼쳐 리퍼의 움직임을 서서히 한 곳으로 몰았고, 그 결과 비홀더 전대와 마주친 리퍼들은 몰살당했다.
“당시 24함대원들의 통신과 신경 신호들이다.”
변경의 2선급 병력인 24함대는 샤다이를 상대하는 작전에 투입되어 초긴장 상태였다. 그러나 주력 부대는 전면으로 나서지 않고 오히려 24함대를 방패막이 삼는 듯한 움직임마저 보였다. 자세한 설명 없이 막무가내로 내려오는 명령에다 수상한 아군의 움직임까지 겹쳐지자 24함대원들의 정신 상태는 극도로 피폐해져 갔다. 자신들을 정말로 방패, 버림말로 쓰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이상한데? 아무리 변경의 병력이라 해도 이렇게까지 되나요?”
위르겐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상 이상으로 지쳐가는 24함대원들의 모습이 자신이 알고 있던 뱅가드 연대의 함대원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변경의 2선급 병력과 베테랑 특수부대의 차이라 해도 이건 너무 심했다.
“잘 봤다, 위르겐. 함대원들의 감정제어가 이상한 이유로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되는 것이 하나 있다. 여기 이것이 당시 24함대원들의 두뇌칩 OS의 프로세스다.”
이번에 빈우는 당시 24함대원들의 두뇌칩에 들어있던 전투 OS의 작동상황을 보여주었다.
“어라? 뭔가… 조금 부자연스러운데? 이거 정규 OS가 아니고 커스텀 버전이에요.”
OS의 작동상황을 보던 모니카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지적했다.
“모니카의 말대로다. 조사 결과 24함대의 전투 OS는 토끼몰이 작전 직전 과학기술국의 추천으로 새로 버전업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소스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빈우는 그 안에서 몇 가지 작동 프로세스를 집어내어 강조했다.
“나는 알고 있다. 이건 울토르 중대에서 쓰던 OS에서 몇 가지 따온 게 확실하다.”
금지된 클론 부대인 울토르 중대. 그 유전자 제공자는 바로 눈앞의 빈우이고, 울토르 중대는 해당 OS를 가지고 작전을 하다가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못하고 학살하는 사고를 쳤다.
“물론 사고를 낸 시점의 울토르 중대 전투 OS는 여기저기에서 손을 댄 결과 넝마주이였고, 24함대는 해당 OS 중에서 몇 가지 기능만 뽑아 쓴 것이기 때문에 이 OS가 24함대원들에게 일어난 감정 불균형의 확실한 원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추측되기에 조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번에 빈우가 보여주는 것은 특수전 사령부에서 24함대원들이 워프 비스트로 변하던 당시의 신경 신호와 OS 작동상태다.
“이날 24함대원이 느꼈던 감정들은 태스크 포스 373 선발 실패로 인한 긴장을 비롯해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들이다. 이어서 동료들이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광경을 보고 경악과 공포를 느꼈지. 그런데 OS의 관리가 제대로 듣질 않는다. 정확히는 작동을 하는데 두뇌 쪽에 적절한 반응이 일어나질 않아. 자세한 것은 두뇌칩과 당시의 전투 OS를 분석해봐야겠지만, 여기에 작은 문제가 있다.”
화면에 중년 여성 한 명의 신상명세가 뜬다.
“24함대에 울토르 중대의 것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전투 OS를 넘겨준 것은 과학기술국의 응우옌 티 빈 중령이다. 울토르 클론 제작에 관여했지. 그리고 현재 행방불명 상태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팀원들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사고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스미스 일가는 우연히 일어난 사고라고 쳐도, 24함대가 변한 사건에는 분명히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다.
“보다시피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매커니즘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인간의 정신적 상처를 계단으로 삼아 점프 공간 안에서 샤다이들이 온다고 하지만, 그 과정들은 인류의 기술로는 측정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영역이다. 또한 발 가르단 하스와 알탄훼아나 덕에 계단을 부쉈다고는 해도, 이 또한 무작정 믿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래서 통합작전사령부는 뻐꾸기 사냥작전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허어, 뻐꾸기.”
작전명을 들은 아룹이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띠었다.
“그러고 보니 부팀장은 뻐꾸기 사냥작전을 직접 해보셨다죠?”
빈우의 말에 팀원들의 시선이 부팀장에게로 집중된다.
“네, 메창이라고, 인간에게 감염, 기생하는 바이러스 생명체였습니다.”
과거 한때 인류 연방을 시끄럽게 했던 메창은 인체에 무해한 바이러스 생명체였기 때문에 굳이 정밀검사를 하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메창 바이러스는 점차 인류 사회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감염된 인류들이 일정 밀도를 이루게 되면 주변의 동족을 인식한 메창들은 지능을 가지게 되었고 인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바이러스 군체의 명령에 따르게 되었다. 그 결과 많은 수의 자치 행성들이 메창의 손에 넘어갔다.
그래서 당시의 인류는 점프 포인터를 중심으로 대규모 방역과 지상 소각, 의심되는 인물의 납치와 암살 등 다각도의 작전을 동시에 진행해 메창을 멸종시켜 버렸다.
“이번의 뻐꾸기 작전은 전 연방의 인간들이 이미 샤다이에게 감염되었다는 전제로 진행된다.”
빈우의 충격적인 말에 팀원들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러나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인류 연방이 생긴 이후 대체 얼마나 많은 점프가 이뤄졌을까.
“때문에 우선은 계단의 생성, 즉 샤다이의 발현을 막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집중치료, 두뇌칩의 보강 프로그램 개발, 이어서 수상한 행보를 보이는 인물의 감시와 수사, 체포 등이지.”
원래 이런 일은 경찰이나 연방수사국이 맡는다. 그걸 군이 한다고 한 이상 상황이 대단히 안 좋다는 의미다.
“대위님, 과학기술국 쪽에선 판별법 같은 것 나오지 않았나요?”
우지의 질문에 모니카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으응, 그게 아직 개발 중이야.”
그런 그녀의 머리를 킥킥대며 쓰다듬던 파트리샤가 뭔가 떠오른 듯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잡고 있는 샤다이, 그 알탄훼아나가 워프 비스트 판별 능력이 있다고 했죠? 게다가 꽤 중요한 인물일 텐데, 상부에서 달라는 얘기가 없네요?”
“아 그거? 하기야 했지. 하지만 샤다이의 호민관이 태스크 포스 373과 함께 있겠다고 강력히 주장한다고 말해놨다.”
빈우의 대답에 파트리샤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송장 상태로 누워있는 알탄훼아나를 감시했던 그녀다.
“뭐 상황이 상황이니 달라고 넙죽 줄수도 없는 노릇이지. 대신 자료가 나오면 바로 주기로 했다.”
여기까지 말한 빈우가 화면을 바꿨다. 태스크 포스 373의 앞으로의 작전지역을 나타낸 작전지도다.
“자, 그래서 우리 태스크 포스 373은 기존의 작전을 신속하게 강행한다.”
목적지는 연방 직할령 솔트 파이크, 그리고 정보분석국의 리차드 허드슨과 그의 딸 엘리자베트 허드슨의 살인 사건을 조사한다고 한다.
“에, 지금 상황에서 말입니까?”
위르겐이 얼빠진 목소리로 질문한다. 워프 비스트가 나타나니 마니 하는 위급한 마당에 대 샤다이 전문부대인 태스크 포스 373이 의문의 살인 사건에 매달린다고 하다니 이상한 것이다.
“그래, 그 범인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은 워프 비스트와 관련이 있다. 엘리자베트 허드슨은 워프 비스트로 변하다가 멈추었어. 만약 이게 우연히 멈춘 게 아니라 누군가의 간섭에 의한 것이라면 치료 방법이 있다는 얘기다.”
빈우의 말에 팀원들은 납득했다. 워프 비스트의 치료법은 엄청나게 중요한 자료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연방 중앙정보국이 싹쓸이해갔지 않나요?”
파트리샤의 말대로 정보분석국의 리처드 허드슨이 사망한 사건은 보안국과 연방 중앙정보국이 앞다투어 달려들어 진작에 쓸어 담아 갔다. 이렇게 뒤늦게 전문 수사기관이 아닌 태스크 포스 373이 가서 무슨 성과를 낼 수 있을지가 의문인 것이다.
“그래, 하지만 이번 사건에는 오직 나만이 찾을 수 있는, 그리고 나만이 풀 수 있는 퍼즐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발탁된 것이고.”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했겠지만, 팀장인 빈우가 말하니 상당히 그럴싸하게 들렸다. 그들의 팀장은 그만한 실력이 있었고, 실력이 없다면 별 수작을 써서라도 해낼 사람인 것이다.
팀원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던 빈우는 솔트 파이크의 지도를 보여주었다.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솔트 파이크는 연방의 직할령인 만큼 우리의 행동도 조심해야 한다. 마카로니처럼 마구잡이로 내려갈 수는 없고, 뉴 소노라처럼 사기 치고 들어갈 수도 없다. 현지 행정조직과는 이미 얘기가 되어있지만 각별히 유념하도록.”
빈우는 별다른 대답이 없는 팀원들을 물끄러미 둘러보더니 가벼운 힐난조로 다시금 말했다.
“그러니까, 솔트 파이크 가거든 조심히, 얌전히 있으란 얘기다. 괜히 사고 쳐서 일 크게 만들지 말고. 다들 알겠지?”
반응은 매우 격렬했다.
“아이 씨바랄. 우리 팀 중에서 제일 사고 치는 게 누군데!”
발칵해서 일어난 파트리샤가 시작을 끊자 뒤질세라 다른 팀원들도 마음속에 담아놨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말뿐이 아니고 행동으로도 나타난다. 어어 하는 사이에 억울한 표정을 한 위르겐이 빈우의 멱살을 잡고 하소연을 한다.
“팀장님. 제에에발. 부탁드립니다. 부디 이번에는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수사만 합시다. 제발요. 네?”
“어, 응. 알았어. 새끼야.”
빈우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찜찜한 마음으로 작전회의를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