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77화 (175/301)

177화

인류에게 점프 항법은 익숙하다. 일렁이는 점프 게이트과 그것을 관리하는 위성 점프 포인터. 그 게이트를 통과하면 다른 항성계로 바로 이동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익숙했던 것이 경계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점프를 하면 할수록 고대 종족의 정신에 빙의가 되고, 마음의 상처가 있으면 그것을 계단 삼아 샤다이가 몸을 차지한다고 하니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점프를 하지 않으면 인류 사회는 유지되지 않는다. 때문에 2중, 3중의 안전과 보안절차가 신설되었고,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뻐꾸기 작전을 비롯한 여러 작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서, 아니면 그것 때문인지 태스크 포스 373의 솔트 파이크 수사 허가는 비교적 손쉽게 떨어졌다.

“윗선에선 미리 이야기가 다 된 듯싶군요.”

그렇게 말한 오르 함장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현재 블랙 랜스는 솔트 파이크의 궤도 엘리베이터 중궤도 우주항에 도킹해 있다.

궤도상에서 본 솔트 파이크는 전형적인 연방 직할 행성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행성궤도를 위아래로 빙 둘러싼 방어 포대와 역장방어막은 샤다이가 아닌 종족들은 뚫을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막강하다. 또한 자치 행성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정규 궤도 엘리베이터는 3만 킬로미터에 걸쳐 뻗어있다. 행성의 지상 터미널과 그 끝부분 최상층까지 가려면 꼬박 하루가 걸리는 정규 시설이다. 이 궤도 엘리베이터 덕에 솔트 파이크는 해당 항성계 내에서의 자체적인 함선 운용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안이 사안이니까요.”

빈우가 대답했다. 솔트 파이크의 리처드 허드슨 살인 사건은 범인과 피해자와 목적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치명적이고 중요하다. 우선 범인에 대해서는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가지만 정확히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또 워프 비스트와 무슨 관계인지는 좀 더 조사해봐야 한다.

“이번 수사 멤버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오르 함장의 질문에 빈우는 잠시 생각해 봤다. 마카로니에선 파트리샤를 호위로 삼고 위르겐과 함께 수사했다. 다음 수색지인 뉴 소노라에는 아나스타샤를 데리고 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글쎄요. 아마 혼자 가지 싶습니다만.”

“혼자서요?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373팀 안에 전문 수사 인력은 없다. 흔적을 찾고 꼬리를 쫓는 수색, 탐색이라면 다른 팀원들도 한가락 하지만, 이런 수사를 할 만한 사람은 빈우뿐이다.

“지금 부팀장과 위르겐은 전투 교육을 위해 42전단으로 가 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 파트리샤는 함에 있어야겠지요.”

“…피아프 대위가 함에 남는 다라…. 걱정되십니까?”

오르 함장은 빈우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다.

“조심해야죠. 모니카가 올 때 그녀를 태운 셔틀이 블랙 랜스를 스캔한 적이 있었고, 사격훈련을 할 때도 단검뿔 토끼로 추정되는 특수부대원들이 그 광경을 감시했다고 합니다. 이제 보안국만이 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니, 적은 보안국 외의 다른 방법을 쓸지도 모르지요.”

워프 비스트가 연방의 어디까지 들어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히토미가 속한 파벌이 조사를 계속하고는 있지만, 아직 확실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태스크 포스 373이 42전단으로부터 떨어져 단독행동을 하고 있는 현재로서는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

“알탄훼아나란 샤다이가 제정신을 차리면 좋을 텐데요.”

오르 함장의 말에 빈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샤다이인 그녀는 인간 안의 계단을 찾을 수 있으며, 그 계단을 타고 내려온 샤다이를 구분할 수 있다. 만약 알탄훼아나가 지금의 충격을 딛고 일어선다면 연방 내의 문제는 바로 해결될 것이다.

“보르자 대위 말로는 별다른 진척이 없다고 합니다만, 팀장님 쪽에선 다른 소식이 없습니까?”

“우리 본가 쪽도 서두르긴 하는데, 그쪽도 별 다를 바 없습니다.”

빈우의 본가인 군사정보국은 대 외계종족 첩보 전문이다. 적대적 외계종족에 대한 정보가 가장 많은 그곳에서조차 소득이 없다고 하면 진짜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다. 특히 대 샤다이에 관한 정보전이라면 그 연방중앙정보국조차도 군사정보국을 상대로는 한 수 접는 상황이다.

“하긴, 정신이니 뭐니 하는 개념들이 물리적으로 실현되는 마당이니까요. 이건 숫제 마법 아닙니까.”

빈우의 푸념도 이해가 간다. 현재 인류가 직면한 난관은 인류의 영역 밖의 문제다.

“마법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요. 인간은 자신의 기술력을 넘어서는 현상에 대해서는 마법으로 보지 않습니까.”

오르 함장이 쓴웃음과 함께 말을 이어간다.

“제가 노예 검투사였다는 얘기는 했었지요?”

“대강은 들었습니다만.”

오르 함장의 고향은 아직도 피부색으로 인간의 등급을 나눈다고 했다.

“제 고향은 자치 행성 정부가 상당히… 뭐랄까, 야만적이라고 할까요. 낙후된 곳입니다. 그곳에 연방 국세청의 징수 함대가 왔을 때, 지상의 사람들은 세상의 멸망이 도래했다고 믿을 정도였지요.”

중세 언저리의 기술력을 지닌 인류의 앞에 현용 군사병기들이 육박한다면 정말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징수 함대가 온 다음부터… 제 삶은 마법과도 같았습니다.”

“많이 바뀌셨겠군요.”

하루하루 삶과 죽음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엄청난 과학력을 지닌 동족에게 구출되고 새로운 삶을 얻었으니 이거야말로 진짜 마법이다.

“‘바뀌었다’보다는 ‘태어났다’겠죠.”

오르 함장은 고향의 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만큼 좋은 기억이나 추억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다시 태어난 몸으로도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곤 합니다.”

헬레나 겔로 이뤄진 함장의 팔이 서서히 위로 올라간다.

“사자에게 물리던 팔이 간지럽습니다. 상대에게 찔리던 배가 아픕니다. 이렇게 그때의 고통이 가끔씩 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지요.”

두뇌칩의 정신관리 프로그램 없이 그런 고통과 경험을 겪었다면 PTSD가 꽤나 심하게 남은 편이다. 하지만 지금 오르 함장은 두뇌칩이 있는 연방의 군인이다.

“치료받지 않으실 겁니까?”

빈우의 질문에 오르 함장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응우옌 중령이 말했습니다. 몸이 바뀌었어도 그 안에 바뀌지 않는 게 있다. 과거의 몸으로 겪었던 고통을 현재의 새로운 몸으로도 겪고 있다. 그러니 당신은 당신이다, 라고요.”

응우옌 티 빈. 과학기술국의 중령. 빈우의 울토르 프로젝트와 오르의 롱훅 프로젝트에 관여되어 있으며, 24함대의 전투 OS를 버전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은 행방불명 상태다. 과연 무슨 이유로 행방불명이 되었을까.

“저는 수많은 점프를 했고, 마음의 상처 또한 깊습니다. 이런 저의 몸에도 과연 샤다이가 올까요? 그렇다면 헬레나 겔의 이 육체가 워프 비스트로 변할까요, 아니면 이 블랙 랜스가 변할까요.”

오르 함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은 듯이 질문했지만 빈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현재 지마 오르 소령은 법적으로 연방의 인간이다. 뇌와 두뇌칩이 있으며 육체는 전신 사이보그로 바뀐 상태다. 하지만 그 사이보그 육체란 것이 사실은 구축함이란 게 밝혀지면 연방이 발칵 뒤집어지겠지.

“글쎄요, 일단 강화 육체를 가진 24함대원들과 장갑보병들조차 워프 비스트로 변했습니다. 즉 태어날 때의 육체가 아닌 몸도 변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사이보그의 경우는… 선례가 없군요.”

두 소령은 잠시 그렇게 잡담을 나누다가 시간이 되자 헤어졌다.

* * *

“주인님, 저도 갈래요.”

사복으로 갈아입은 아나스타샤가 빈우를 따라나섰다.

“안돼. 넌 여기서 기다려.”

빈우는 돌아보지도 않고 궤도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혼자 하시면 힘드실 거예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나스타샤는 빈우의 비서로 되어있기 때문에 솔트 파이크에 간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번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아. 수사할 건 다른 부서가 다 수사해놔서 자료를 다 받은 상황이고, 내가 할 것은 현장 조사만 약간. 그것뿐이야.”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

블랙 랜스와 궤도 엘리베이터가 연결된 도킹부의 문 앞에서 빈우가 돌아보며 물었다.

“…지금 주인님은 힘드시잖아요.”

주인을 올려다보는 안드로이드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있었다. 빈우는 아까 그런 그녀를 올라타 목을 조르고 있었다.

“걱정해줘서 고맙지만 내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아.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기다려.”

그런 다음 빈우는 아나스타샤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등 뒤로 그녀가 애타게 주인을 불렀지만, 빈우는 못 들은 척 문을 닫았다.

이제 여긴 솔트 파이크의 출입 관리국이다. 입성 절차는 이미 얘기가 되어있었던 터라 별도의 창구를 통해 빠르게 진행되었다. 빈우는 자신을 위해 마련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블랙 랜스는 중간 궤도에 정박해 있고, 엘리베이터도 군용 강화를 한 빈우의 육체에 맞춘 속도를 내어 지상에는 금방 도착했다.

지상의 터미널을 나간 빈우는 주차장에 도착해 물질생성기에서 바이크 하나를 만들기로 했다. 핵심 부품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고, 기타 프레임과 액세서리만 만들면 되기에 바이크는 금방 완성되었다.

‘이건….’

완성된 바이크를 본 빈우는 옛 생각이 떠올랐다. 뉴 소노라에서 탔던 것과 비슷한 모델이다. 쓸데없는 버릇에 혀를 찬 빈우는 바이크를 몰아 목적지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민간 행성에 온 것은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그가 마카로니의 궤도에서 정신을 차린 다음에는 거의 군사시설이나 자치 행성에만 전전했었다.

“솔트 파이크라….”

빈우는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바이크를 몰았다. 푸른 하늘과 그 하늘로 솟구친 흰색 고층 건물들, 깨끗한 거리와 무성한 녹지에서 노는 웃음 가득한 사람들. 마치 연방의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보여주는 풍경 같다.

공원을 지나는 사거리에서 신호에 걸린 빈우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기 서~.”

마침 한 아이가 강아지 한 마리를 따라 달리며 해맑게 웃는다. 그 모습을 보는 빈우는 웃을 수 없었다. 현재의 상황으로 보면 저 아이의 미래가 어찌 될지 상상하기 괴롭다.

“어어!”

앞서 달리던 강아지가 신나서 아이의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그러자 아이의 발에 목줄이 칭칭 감기고, 급기야 아이가 풀밭에 고꾸라졌다.

“아앙.”

넘어진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아프기보다는 놀랐기 때문이다. 바닥은 잔디라 상처도 없다. 그래서 빈우는 우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이는 간신히 일어섰지만, 다시 줄을 밟고 넘어졌다.

“엄마아!”

마침내 아이가 엄마를 찾는다. 주변을 둘러보던 아이와 빈우가 눈이 마주친다. 그러나 빈우는 아이의 눈물을 그저 보고만 있다.

강아지는 자신 때문에 아이가 넘어진 것을 아는지 옆에 다가와 낑낑대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옆에 자기를 넘어뜨린 강아지가 다가오자 아이는 더 서럽게 울었다. 우는 아이의 얼굴을 강아지가 핥는다. 혀가 얼굴에 닿았다. 열린 입 안으로 하얀 이빨이 보인다.

순간 강아지에게 붉은색 강조선이 쳐졌다. 빈우의 전투 OS가 그 개를 적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런 미친.’

빈우는 급히 타켓을 풀고 시선을 돌렸다. 마침 신호가 바뀌었고 빈우는 우는 아이를 뒤로 한 채 목적지로 달렸다.

‘내가 왜 그랬을까.’

달리는 오토바이 안에서 빈우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이와 빈우의 거리는 별로 멀지 않았다. 넘어진 아이에게 다가가 줄을 풀고 일으켜줘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빈우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아이는 다치지 않았고, 그저 울기만 했을 뿐이다. 어릴 때는 늘상 있는 일이다. 만약 개가 아이를 해친다면 그때 개를 죽이면 된다. 자신의 생각에 납득한 빈우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