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바이크는 집 앞에서 멈췄다. 허드슨 일가의 집은 지금 매물로 나온 상태다. 그러나 아직 거래되지 않는다. 사건의 수사와 은폐를 위해서 묶어놓은 위장이다.
‘자료는 이게 다인가.’
빈우는 각 부서로부터 전달받은 수사자료를 다시 한번 더 훑어보았다. 건물 내부는 이미 현지 경찰과 보안국, 연방중앙정보국이 싹싹 훑은 다음이라, 뒤늦게 지금 조사한들 더 이상 얻을 것은 없으리라. 그러나 빈우는 여기서 자신만이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만약 범인이 예상대로의 인물이라면.
‘하지만 정말로 범인이 울토르 클론일까.’
오직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울토르 클론이 이런 암살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분명히 이런 종류의 훈련을 시키고 명령을 내린 자가 있다.
빈우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로 탁 트인 거실이 나오며 좀 더 지나가자 부엌이 나온다. 그는 부엌의 가운데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범인은 요리를 했다.’
범인은 출장 요리 서비스를 중간에 가로채 요리사로 위장하고 집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신분을 위장하고 연방의 네트워크에 잠입할 실력은 있다는 얘기다.
‘보안 카메라들도 깨끗하다. 보통 실력이 아냐.’
거리와 허드슨 가 내부의 보안 카메라에는 아무것도 찍혀있지 않았다. 범인이 미리 손을 써놓은 것이다. 게다가 조작한 흔적도 찾기 힘들다. 이걸로 미뤄보아 상당한 실력자이거나 외부에 협력자가 있다.
범인은 이곳 부엌에서 요리를 하다가 리처드 허드슨을 죽였고, 다음 이층의 엘리자베트 허드슨을 독살했다.
‘이게 조금 이상하단 말이야.’
리처드의 시신은 음식물 처리기에 넣어 발효시킨 다음 비료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 정도로 해버리면 시신은 찾아도 사인이나 기타 증거를 찾기는 힘들다.
다만 이상한 것은 딸 엘리자베트의 시신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면제와 호흡계 약물을 먹은 여자아이는 고통 없이 사망했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시신은 그대로 내버려 둔 채 현장을 떴다. 왜 둘의 처리에 차이가 있을까. 마리 라캉의 건을 보면 놈은 그녀를 마치 외계인 고문하듯 처참하게 만들어 놓았다. 리처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클론이라면 이런 판단을 하지 않을 텐데. 명령인가?’
빈우는 부엌 바닥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리고 당시의 영상을 여기에 덧씌웠다. 그러자 바닥에 의자가 움직인 흔적들이 보인다.
‘리처드 허드슨이 꽤나 불편하게 앉았다.’
처음 식탁과 의자의 거리를 보면, 앉은 사람은 언제든 달아날 수 있게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리처드는 이때 이미 요리사로 위장한 범인을 적으로 인식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짓눌러졌다. 전투용은 아니지만 나름 군용 육체를 한 리처드를 이렇게까지 밀어붙였다는 것은 상대방이 제대로 전투 강화를 한 군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협박이 있었다.’
당시의 흔적을 보면 요리와 칼, 그리고 장난감 인형들이 있었다고 나온다.
‘딸을 요리한다고 협박했나? 이 인형은….’
증거품을 살펴보던 빈우는 멈칫했다. 그 인형이란 다름 아닌 마법 인형 피스메이커였다. 빈우의 여동생이 가지고 놀던 것. 아나스타샤도 작은 아씨와 함께 가지고 놀던 인형이었다.
그리고 빈우가 아나스타샤를 안고 넘어진 침대에도 저 인형이 있었다. 자신의 밑에 깔린 안드로이드 메이드.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 매끈한 허리, 말랑말랑한 엉덩이와 그 사이의….
빈우는 고개를 세차게 흔든 다음 증거에 집중했다.
‘딸을 대상으로 협박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무슨 정보를 얻었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군.’
이어서 빈우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범인의 발자국을 자세히 살펴봤다. 역시나 장갑 보병 특유의 버릇이 있다. 계단을 올라간 그 흔적은 아주 냉정하고 확신에 찬 걸음걸이였다. 내려온 발걸음과는 달리.
그런데 2층에 다 올라가서는 발걸음 자국이 잠시 멈췄다.
‘왜 멈췄지? 새로운 명령을 받았나? 아니면 누가 제지했나? 그 때문에 엘리자베트의 시신을 남겨둔 것일까?’
빈우는 다시 발자국을 따라 방으로 갔다. 범인은 여기서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와, 맛있겠다.”
침대에 누운 엘리자베트가 빈우 손에 있는 쿠키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빈우는 침대 옆의 탁자에 쿠키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엘리자베스가 얼른 한입 베어 물더니, 조심스레 질문한다.
“아저씨, 아빠는요?”
“정원에 잠깐 나가셨어. 곧 만나게 될 거야.”
엘리자베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쿠키를 먹기 시작했다. 빈우도 좋아하는 초코 쿠키다.
“맛있니?”
“네!”
얼굴에 아직 워프 비스트의 흔적이 남은 아이가 밝은 미소로 대답한다.
“곧 있으면 아빠와 저녁을 먹어야 하니 너무 먹지는 마.”
빈우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아빠는 이미 죽었다. 자신의 손에.
“네에.”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엘리자베트는 장난기 어린 대답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뒤틀린 회색의 각질이 있는 피부, 잘린 뿔이 있는 쪽의 얼굴이다. 바로 워프 비스트의 흔적이었다.
‘어떻게 워프 비스트가 되다가 멈추었지?’
궁금해하는 빈우에게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상하죠?”
“아니, 아저씨는 그런 걸 치료하러 다니는 사람이란다.”
치료라…. 병원균을 모조리 죽이고 태우는 것을 치료라 부른다면, 빈우는 우주의 슈바이처라 할 수 있다.
“진짜요? 그럼 저도 치료해 줄 수 있어요? 아빠랑 치료를 받았는데 다 낫지 않았어요.”
바짝 다가앉는 엘리자베트를 멍하니 보던 빈우가 떠듬떠듬 대답한다.
“그래, 그래…. 치료해 주마.”
여기서 말한 치료는 진짜 치료를 의미한다. 하지만 어떻게?
“약속이에요.”
엘리자베트가 쿠키 조각이 묻은 새끼손가락을 빈우에게 내밀었다.
“어, 약속.”
빈우도 떨떠름하게나마 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둘의 새끼손가락 걸기가 끝났다. 달콤한 쿠키는 어린 엘리자베스의 식욕 앞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너무… 졸려요.”
쿠키를 다 먹은 엘리자베트는 졸린지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수면제가 먼저 듣기 시작한 것이다.
“배가 불러서 그런 거야. 좀 자는 게 좋겠네.”
“안 되는데. 나중에 아빠랑 생일파티 해야 하는데.”
하품을 하며 졸려서 휘청거리는 엘리자베스를 빈우가 조심스레 침대에 뉘어주었다.
“걱정 마. 자고 일어나면 아빠가 와 계실 거야.”
빈우는 엘리자베트를 베개에 눕혀주었다. 그리고 아이가 잠들자 두 번째 약효가 돌기를 기다린 다음 맥을 확인했다.
“헉!”
빈우는 짧은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그는 빈 침대에 손을 대고 있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방금 것은, 방금 영상은 뭐지?’
빈우는 서둘러 자신의 영상 기록을 검색해 봤다. 그러나 해당하는 기록은 빈우의 두뇌칩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빈우 스스로가 이 광경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체 점검 실시.
빈우는 자신의 육체와 두뇌칩에 부정접속이 있는지 빠르게 점검했다. 외부 보안 검체기를 꺼낸 그는 대상을 자신으로 하고 검사했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나온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런 일이 일어날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역시나 두뇌칩의 동기화다. 그것도 같은 규격의 두뇌칩, 즉 클론들끼리의 동기화다. 일반적인 인간들끼리는 이 정도로 불안정한 동기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범인은 울토르 클론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일단 빈우는 서둘러 방을 나섰다. 방을 조사해 봐도 전파나 두뇌칩 해킹을 위한 준비는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려던 그의 눈에는 이제 내려가는 범인의 발자국이 보였다. 아까 올라올 때도 보았지만 지금 보니 새삼 달리 보인다. 올라갈 때의 걸음이 냉정하고 기계적이었다면, 내려갈 때의 걸음은 거칠고 서두르고 있었다. 뭔가의 이유로 평정을 잃었다.
‘엘리자베트의 죽음 때문인가? 그 때문에 시신을 남겨두었나. 하지만 왜?’
빈우는 그 허둥대는 발자국에 자신의 발자국을 대어가며 천천히 내려갔다. 비슷한 체격에 체중이라, 당시 녀석의 몸놀림을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당황하고 있다.’
범행에 무슨 실수가 있었던가, 아니면 목표물 선정이나 실행에 오차가 있었던 걸까. 그 당시의 범인은 상당히 당황하고 있었다. 자세한 것은 조사해 보면 나올 일이다.
1층으로 내려온 범인은 다시 부엌으로 갔다. 이번에는 아주 빠르게 달려갔다. 그리고 오븐 안을 쓸어 담았다. 증거인멸일까 싶지만 그렇기엔 다른 요리는 말짱했다.
오븐을 청소한 범인은 허드슨 가 안을 마치 강도에 당한 것처럼 꾸몄다. 현지 경찰이라면 감쪽같이 속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속 요원을 잃은 정보분석국은 보안국에 조사를 의뢰했고, 결국 들통나게 되었다.
허드슨 가를 나선 빈우는 다시 범인의 흔적을 추적하려 했다. 그러나 감시 영상은 없고, 거리는 수차례 청소가 되어 더 이상 흔적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빈우는 바이크를 내버려 두고 되는 대로 거리를 걸어보기로 했다. 그저 걸어서 흔적을 찾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빈우는 솔트 파이크의 거리를 정처 없이 걸었다. 주택가를 누비고, 공원을 뒤지고, 마침내 푸드 트럭이 있는 구역까지 도달했다. 이제 저녁 시간이 되어 이곳에 위치한 여러 푸드 트럭들은 슬슬 장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이쿠, 오랜만이오.”
그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 같아 빈우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콘도그를 파는 푸드 트럭이 한 대 서있었다.
“오늘은 좀 괜찮아 보이시네.”
트럭에서 콘도그를 튀기던 가게 주인이 빈우를 보며 아는 척을 하고 있었다. 빈우는 그 푸드 트럭과 가게 주인을 유심히 살펴보며 접근했다. 그때 빈우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메뉴판 옆의 있는 ‘이달의 손님’ 란이다. 그 코르크 보드에는 지금까지 방문했던 손님들의 사진과 설명이 붙어있었다. 그중 하나가 빈우 눈에 확 들어왔다.
‘개점 이래 우리 가게 콘도그를 가장 맛없게 드신 손님.’ 우스꽝스러운 글자 옆에는 사진이 하나 붙어있었다. 그 사진 안에는 허무한 표정으로 콘도그를 먹는 김빈우가 찍혀있다.
그러나 그자가 빈우일 리는 없다. 클론이다. 울토르 클론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노우에 고토, 이 새끼…!’
빈우는 마음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이 사실을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이 모를 리는 없다. 일부러 가르쳐주지 않은 게 분명하다. 클론이 이번 사건의 범인이란 게 거의 확실시 된다.
‘고토 국장과 쿠사키나 국장은 왜 내게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클론의 탈주는 대사건이다. 애초에 독립적인 행동을 하는 전신 클론 자체가 연방에선 불법이다. 그래서 조심하느라 알리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저 여우와 너구리는 분명히 다른 이유로 가르쳐 주지 않은 게 뻔했다.
“그날 울상을 한 손님을 보내고 난 다음에 나도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데. 자,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그리고 솔직한 감상 부탁합니다.”
그리고 주인장은 갓 튀겨낸 콘도그를 하나 꺼내 소스를 뿌린 다음 빈우에게 내밀었다.
“자, 뜨거울 때 먹어봐요.”
빈우는 주인장이 주는 콘도그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낮은 영양, 낮은 열량, 무의미한 식사.
다시 한번 기시감이 빈우를 감싼다. 먹어봤던 맛, 알고 있는 음식이다. 맛과 냄새와 촉감이 자극되자 당시의 기억이 되새김질 된다.
“오늘은 어떻소?”
미소 반, 걱정 반으로 주인장이 물어보고 있다. 그러나 빈우에게 그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록산느.
그 당시의 오감이 자극되며, 그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빈우에게 동기화된 클론의 기억이 분명하다.
“…좋아요, 아주 좋군요.”
빈우는 미소를 지으며 콘도그를 퍽퍽 베어 물어 순식간에 다 먹었다.
“허허, 입에 맞아 다행이오. 그럼 사진 한 방 찍읍시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다고.”
“좋지요.”
빈우는 포즈를 취하며 준비를 했다. 자치 행성 록산느로 추적하기 위한 준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