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82화 (180/301)

182화

빈우는 잠시 생각했다. 여기서 이대로 빠질 것인가, 아니면 저 추적자들을 잡아서 정보를 얻을 것인가. 하지만 우지가 보내준 영상을 볼 때, 놈들은 상대 조직의 사람인 듯 하다. 잡아다가 물어봐야 별다른 성과가 없을 것이다.

차라리 여기서 클론으로부터 받은 기록을 되살리는 편이 나을 듯싶다. 현재 추적하고 있는 클론으로부터 받은 정보는 빈우 자신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게 뒤섞여있다. 하지만 이 기억들은 몇 가지 조건에 따라 빈우에게 보여질 수 있다.

‘대강 패턴은 파악했는데….’

빈우의 뇌에 동기화 된 클론의 기억이 재생되는 계기에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트리니티 패턴이 풀려가는 과정의 부작용인 악몽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빈우는 지금까지 꿨던 악몽들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뒤섞인 클론의 기억 또한 악몽으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떠한 행동을 하거나, 장소에 갔을 때 기시감처럼 떠오르는 기억들이다. 방금 부뉴엘가의 식당이나 저번의 허드슨 가의 집에서처럼 클론이 큰 충격을 받았던 일들은 빈우가 그 장소에서 비슷한 일을 겪을 때 강제로 재생된다.

‘시험해볼까.’

빈우는 프란시스코의 시신에 자신의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미라의 어깨에, 거기에 난 구멍에 자신의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말하면 살려주실 거죠?”

미라가 비명을 지른다. 환각이 아니다. 클론의 기억이 뒤섞여 보이는 것이다.

“아들은 고통 없이 바로 죽여주지.”

빈우의 목소리지만 빈우의 것이 아니다. 클론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가 차갑게 다그친다.

“마지막 질문이다. 워프 비스트로 변해가는 하비에르 부뉴엘을 어디서, 어떻게 고쳤지?”

“말하겠습니다.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미라가 대답했다. 개척 행성 프리마.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폐 속에 호흡 보조용 곰팡이를 기르는 개척지.

그리고 그 순간 빈우의 머릿속을 헤매던 기억들이 갑자기 뚜렷하게 모여 각인된다. 클론이 프란시스코로부터 들은 정보와 지금까지 자신이 모은 정보를 조합해 한 가지 해답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빈우에게도 보여졌다.

‘자크 라캉, 엘리자베트 허드슨, 응우옌 반쭝, 하비에르 부뉴엘.’

모두 워프 비스트로 변하던 자들, 그리고 치료목록들이다. 그리고 클론의 목표물들이다.

마카로니의 자크 라캉, 솔트 파이크의 엘리자베트 허드슨, 록산느의 하비에르 부뉴엘. 모두 빈우가 본 아이들이다.

그중에서 아직 만나지 못한 목표물 응우옌 반쭝. 하지만 빈우는 이 아이, 반쭝을 안다. 군사기술국의 응우옌 티빈 중령의 조카다. 동생 부부가 사고로 죽은 다음에 홀로남은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다고 들었다.

‘목표물 넷 모두 아이. 거기다 정보사령본부와 연이 있는 사람이 셋.’

보안국의 자크 라캉, 정보분석국의 엘리자베트 허드슨, 군가기술국의 응우옌 반쭝.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 사이에는 무언가의 연결고리나 법칙이 분명히 있다.

다만 하비에르 부뉴엘은 아직 그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

빈우는 다시금 클론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 속에서 명령을 찾으려했다. 미라의 시신을 손가락이 파헤칠 때마다 그 감촉이 두뇌칩을 자극해 기억을 일깨운다.

‘울토르 클론을 만든 응우옌 티빈 중령. 그녀는 블랙 랜스를 만드는 롱훅 프로젝트에 참가했고, 24함대원들의 전투OS에 울토르 중대 버전을 올리기도 했다. 일단 조사해볼 가치가 있다.’

다만 지금 응우옌 중령은 행방불명 상태다.

‘그렇다면 본진을 쳐야지. 울토르 클론을 만드는 케트쿤이다.’

케트쿤은 연방의 동맹종족이며, 울토르 프로젝트는 연방의 법망을 피해 그곳에 클론 제조시설을 만들었다. 응우옌 티빈 중령이 클론 제작을 지휘했던 곳이며, 지금 상황에선 반드시 조사해야 할 곳이기도 하다. 이케가미 소이치로의 행적을 보았을 때 울토르 프로젝트와 워프 비스트는 모종의 관계가 있다. 그런데.

‘내가 케트쿤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까지 빈우는 클론 제조시설이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군사정보국의 두뇌칩 조작으로 인해 그 시설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도 나름 문제다. 트리니티 패턴으로 묶인 것이라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빈우가 점검해본 바로는 빈우의 두뇌칩 속에 있는 케트쿤에 대한 기록은 아직도 잠겨있는 상태다. 빈우가 알 수 없다.

‘설마하니 클론으로부터 들어온 것인가.’

도대체 이 클론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다. 대단히 위험한 녀석이다. 빨리 잡아서 정보를 캐내야 한다.

-팀장님, 놈들이 돔 안으로 들어갑니다.

-…알았어.

빈우의 대답은 우지에게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한 것이다.

클론에게 각인된 명령을 드디어 찾았다. 녀석의 목적은 정보사령본부의 사람들을 암살하는 것이 아니었다. 연방에 잠입한 워프 비스트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것이다. 일단 지금까지 놈이 제거한 것은 워프 비스트가 맞았다.

‘제거한 목표 넷 중에서 셋이 정보사령본부, 군인의 가족이라면 혹시 그 부모들이 워프 비스트일까? 그래서 제거한 것일까? 아니지, 클론이 얻은 정보의 소스가 한정되어 이런 편중된 결과가 나왔을 수 있다. 어쨌든 지금 연방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고대 샤다이들의 정보에 감염된 상태다. 그것이 발현이 되냐 안되냐의 차이지.’

빈우는 더 이상 자신에게 자극을 주지 않는 시신을 바닥으로 던졌다.

‘하지만 치료 중인 아이들은 왜 죽였을까. 워프 비스트를 제거하라는 명령이었기에 무작정 죽인 것일까? 치료법도 상당히 유효한 반격법일 텐데. 아니지, 이 클론은 아직 워프 비스트의 정체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하비에르 부뉴엘의 시신에선 아무런 흔적이, 워프 비스트의 변이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전의 엘리자베트 허드슨에겐 아직 워프 비스트의 뿔과 피부가 있었다. 반면 마카로니에서 만난 자크 라캉은 로봇 몸체를 하고 있다. 게다가 그것은 뇌도 두뇌칩도 없는, 단지 허수아비 로봇이었다. 이들에게 과연 무슨 연관 관계가 있을까. 또 후에 보게 될 응우옌 반쭝은 어떤 상태일까.

일단 빈우는 아기의 미라를 챙겼다. 혹시 모르니 조직검사를 해볼 생각이었다.

-팀장님!

우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지만 빈우는 지금 자신의 생각을 마무리 짓는 게 더욱 중요하다. 마치 막 잠에서 깨어나 꿈을 떠올리는 듯한 기분이다.

‘울토르 클론에게 누가 이런 명령을 내렸지?’

아마도 이 클론은 위은쓸납학에서 포드를 타고 도망친 클론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녀석에게 이런 명령을 넣고 발사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빈우는 당시 찰리 하나팔로 위장한 상태라 권한이 없다. 불현듯 정체불명의 안드로이드가 떠오른다. 이거 믿지 말라는 메시지가 적힌 팬티의 주인, 아마도 그 안드로이드가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 안드로이드와 그것을 보낸 부서는 워프 비스트의 정체를 알고 적대하는 단체일 것이다.

‘일단 자료 수집은 끝났다. 블랙 랜스로 돌아가서 정리를 해야겠어.’

그때 빈우 주변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개척지용 야외작업복을 입은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놈들은 모두 손에 가스발사식 화살총을 들고 있었다.

* * *

페르난도는 부하들을 다그쳤다. 그는 부뉴엘가와 경쟁하고 있는 프랑코 가의 중간보스였다.

-야야! 서둘러 들어가!

그의 명령에 부하들이 부뉴엘가의 폐허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이제 그 새끼 면상 한번 보자.

록산느에서 고품질의 약을 엄청난 양으로 만들고, 그것을 유통할 탄탄한 판매 루트를 가진 부뉴엘가가 어느 날 갑자기 행동을 멈췄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적대조직 프랑코가에선 몇 번 정찰병을 보냈었지만, 모조리 소식이 끊겼었다. 그래서 페르난도는 혹시 또 다른 조직이 연루된 건가 싶어 부하들을 이끌고 근처에서 동향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 이방인 한 놈이 부뉴엘가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바로 행동에 나선 것이다.

부뉴엘가로 들어간 프랑코의 조직원들은 불청객을 발견하고는 빙 둘러쌌다.

-꼼짝 마.

조직원들이 화살총을 겨누자, 놈은 꼼짝도 못 하고 그대로 서 있을 뿐이다.

-워어, 저 새끼 맨몸인데요?

부하가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록산느는 아직 개척화가 안되어 맨몸으로 행동하기 힘들다. 아니, 대단히 위험하다. 그런데 저 사내는 아무런 생존 장비도 없이 저렇게 서 있는 것이다.

-너 누구야. 뭐 하는 새끼야.

페르난도가 외부 스피커로 질문했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아니, 행동이 대답이라면 대답일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대단히 폭력적이었다.

조직원들의 통신회선으로부터 비명이 되지 못한 짧은 숨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반응할 틈도 없이 사내들이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켁!

뱉은 숨소리 한 번에 또 하나가 쓰러진다. 조직원들이 서둘러 총을 쐈지만 맞출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일곱 명의 조직원들이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모두 바닥에 쓰러져 빌빌거리고 있었다.

-너, 너 이, 새끼 실수하는 거야.

페르난도가 엄포를 놓았지만, 상대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냥 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올 뿐이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나를 아나?

청음기를 통해 들린 소리는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사내는 페르난도가 대답이 없자 재촉했다. 그 재촉에 걷어차인 페르난도가 식당 벽으로 날아가 부딪혔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이건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설마… 군인인가? 연방의 군인? 록산느의 조직을 치려는 건가?’

바닥에 떨어진 페르난도는 몸을 가누며 정신을 다잡으려고 했다. 그때 그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나를 아나?

놀란 페르난도가 겁먹고 몸을 동글게 말았지만, 비명은 다른 곳에서 들렸다. 그놈이 다른 조직원을 짓밟은 것이다. 밟힌 놈은 다리 관절이 있어서는 안 될 방향으로 굽혀져 기절했다. 페르난도의 눈에 연방 군인으로 추정되는 놈이 기절한 부하를 내버려 두고 다른 희생양을 찾는 게 보였다.

-마리 라캉을 이렇게 했었나? 흐음, 다른 모양이군. 재생이 안 돼. 아니, 너무 오래되어서 안 떠오르는 걸지도.

저 미친놈은 다 죽어가는 부하들을 바닥에 패대기치거나 벽에 처박으면서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다시 페르난도에게 돌렸다.

-네가 두목이군.

-허억!

페르난도는 도망가려 했지만, 이미 붙잡혀서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다. 녀석의 손이 야외작업복의 헬멧을 쥐고 들어 올린 것이다. 그리고 그 엄청난 악력으로 헬멧을 조이기 시작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뭔가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만약 헬멧이 깨지고 맨얼굴로 록산느의 대기에 노출되면 페르난도는 3분 안에 죽는다.

-내 얼굴을 알고 있나? 본 적이 있어?

놈은 일체의 감정 없이, 마치 무생물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페르난도를 응시했다. 책에서 문자를 읽듯, 바닥에서 쓰레기를 줍듯, 살아있는 인간의 머리를 조이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페르난도는 대답 대신에 비명을 질렀다.

* * *

-팀장님, 그만두십시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보다 못한 아룹의 만류가 빈우에게 들린다. 그 목소리에 빈우가 행동을 멈췄다. 그의 손에 들려 피투성이가 된 현지인 한 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냐니요. 저를 습격한 범죄조직원을 추궁해 정보를 알아보는 중입니다.

방금 놈들은 빈우에게 총을 겨눴다. 하지만 저런 가스발사식 총으로 무장해봤자 맨몸의 인간이 연방의 강화 군인에게 이길 리는 만무했다.

-이곳은 우리가 추적 중인 범인의 범행 현장입니다. 그리고 이놈들은 그 현장을 감시하다가 조사하러 온 저를 납치하려 했고요. 조사할 이유는 충분할 텐데요?

-민간인을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말입니까?

아룹의 말대로 빈우는 군인이고, 저들은 연방의 시민들이다. 저들이 아무리 자치 행성의 범죄조직원이라 해도 엄연히 연방의 시민으로서 빈우가 보호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부팀장이 그러시다면야.

빈우는 손을 털고 조직원들을 내버려 둔 채 밖으로 나갔다. 평상시라면 모를까, 뻐꾸기 작전이 발동 중인 지금이라면 뒤처리하기가 쉽다. 현재로선 연방 군인에게 덤벼든 죄는 자칫 내란죄까지 엮을 수 있는 것이다.

증거품으로 쓸 아기의 미라를 챙긴 빈우가 박살 난 돔의 문으로 나가자 하늘에서 롱소드가 내려오는 게 보인다.

“지지, 지지.”

뜬금없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품 안의 아기가 빈우를 가리키며 옹알이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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